어머니의 감나무 - 25편 > 야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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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설

어머니의 감나무 - 25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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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19가이드
댓글 0건 조회 24,204회 작성일 23-09-11 18:32

본문

한참을 달렸다. 멀리 삼촌과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손나팔을 하고 소리쳤다.
 

“ 삼촌!... 토끼라~!... 경찰들이 삼촌 잡으러 왔데이~!.............. “ 


삼촌은 제대로 듣지 못한 것 같았다. 그저 고개만 들고 나를 멀뚱히 바라 보았다. 나는 더욱 빠르게 달렸다. 가슴이 터질 듯
했다.
 

“ 삼촌~!... 이 빙신아~!... 빨리... 토끼라 안카............ “ 


퍽~! 나는 등에 둔중한 통증을 느끼며 앞으로 나뒹굴었다.
 

“ 아악~!........... “

“ 하~!... 요... 여우 같은 놈 좀 보소... 감히 거짓말을 해?............ “


내 얼굴로 사복 입은 사내의 구둣발이 날아들었다. 경찰들은 집을 나갔는 척 하다가 내 뒤를 몰래 밟아온 것이다.
 

“ 김성배!... 거 꼼짝말고 있어라!............. “ 


경찰의 고함소리가 아득히 멀어지는 듯 하더니 나는 적막속으로 빠져들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 기훈아~!... 아이고... 내 아들... 정신 차리봐라... 흐흑~!.............. “ 


나는 엄마의 울음소리에 깨어났다.
 

“ 사... 삼촌은?.......... “

“ 삼촌은 경찰들한테 붙들리 갔다... 흐흑~!.............. “

“ 와?... 와 붙잡아 갔는데?.......... “

“ 내도 모르겠다... 암말도 안코 수갑 채워가더라... 우야만 좋노... 흐으윽~!.............. “
 

그렇게 끌려간 삼촌은 두달동안 돌아오지 못했다. 엄마가 여기저기 알아본 바로는 ‘삼청교육대’라는 곳으로 끌려갔다고 했다.
TV에서 대머리 장군이 ‘사회악 일소’니하면서 연일 떠들어 대던 그것이었다. 폭력범이나 사회 풍토 문란사범등 즉 민생을
어지럽히는 불량배는 모두 잡아들여 살기좋은 나라로 만든다고 떠들던 그것이었다.
 

종철이 사건으로 인해 삼촌이 폭력범으로 내몰렸던 것이다. 하지만 삼촌이 정말 민생을 어지럽히는 폭력배, 불량배인가?
얼토당토 않는 말이다. 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경찰들이 너도 나도 윗선에 잘보이기위해 이놈 저놈 막 잡아 들였다는 것이다.
‘인권’이란 ‘단어’자체도 생소한 시절이었다. 
삼촌은 두달만에 돌아왔다. 땡볕이 쏟아지는 여름에 붙잡혀가서는 마을 들 벼가
고개를 숙여가던 가을 어느날 삼촌은 돌아왔다.
 

하지만 처음 그 모습이 아니었다. 반 병신이 되어 돌아왔다. 삼청교육대에서 얼마나 두들겨 맞았던지 건장했던 몸은 살이
다 빠져서 반토막이 나 있었다.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비틀걸음으로 들어오는 삼촌의 모습을 보자마자 할머니는 그 자리에서
정신줄을 놓아버렸다. 
또다시 엄마의 고난이 시작되었다. 삼촌이 허리를 다쳤을때 마찬가지로 엄마는 삼촌방과 할머니방을
번갈아가며 간호하였다. 덩달아 나도 이방 저방 뛰어다녀야 했다. 
삼촌의 병은 심상찮았다. 어디를 어떻게 두들겨 맞았는지
음식을 도통 먹지 못했다. 밤에는 제대로 잠들지 못하고 헛소리를 해대기 일쑤였다.
 

삼촌이 돌아온 지 일주일 되는 날 TV뉴스에서는 비바람 치는 바닷가 모습을 연일 보여주었다. ‘윈’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번
태풍은 슈퍼태풍이라고 했다. 온 나라가 난리였다. 
하지만 나는 태풍 따윈 안중에도 없었다. 슈퍼태풍이 아니라 슈퍼태풍
할아버지가 와도 좋으니 그저 삼촌만 빨리 낮게 해달라고 믿지도 않은 신의 존재를 찾으며 빌고 또 빌었다. 
태풍이 최고로
불어치던 밤에 삼촌의 숨소리가 심상찮았다. 
그르릉 거리는 숨이 헐떡고개를 억지로 넘고 있었다.
 

“ 엄마~!............ “ 


나는 다급히 할머니 방으로 뛰어갔다. 태풍은 비를 뿌리고 있었다. 나는 신발도 신지 않고 질척거리는 마당으로 달려 나갔다.
한달음에 할머니 방문을 열어 제쳤다. 엄마는 할머니 옆에서 곁잠을 자고 있다가 황망한 얼굴로 나를 보더니 이내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는 벌떡 일어났다. 
엄마 역시 맨발로 마당을 뛰었다. 엄마는 삼촌의 손을 붙잡았다. 엄마의 손이 마구 떨리고
있었다. 
엄마 또한 삼촌의 상태가 위독함을 느낀 모양이다.
 

“ 사... 삼촌... 눈 좀 떠보소............. “

“ ............ “


삼촌은 숨만 헐떡일 뿐이었다.
 

“ 아이고... 와 이카노... 삼촌... 내 말 들려요?.............. “ 


엄마는 다급하게 삼촌을 흔들었다.
 

“ 기훈아... 니 수돗가 가가 찬물 좀 떠온나... 퍼뜩.............. “

엄마는 내가 떠온 찬물을 한 숟가락 떠서는 메마른 삼촌의 입에 흘려 보냈다.
 

“ 삼촌... 눈 좀 떠보소............ “ 


엄마는 재차 삼촌을 흔들어 깨웠다.
 

“ 삼촌!... 눈 좀 떠봐라!............. “ 


나도 소리치며 같이 흔들었다. 멀리서 천둥소리가 우르릉 거렸다.
 

“ 으............ “ 


삼촌의 눈이 떠졌다.
 

“ 정신 들어요?... 삼촌!... 내 말 들려요?............ “

“ 혀... 형수요.............. “


삼촌은 실눈을 뜨더니 엄마를 바라보았다. 희미한 형광등 불빛이 눈에 부신 듯 삼촌은 미간을 찡그렸다. 나는 삼촌의 남은
한 손을 잡았다.
 

“ 삼촌... 와이카노... 흐흑~!... 정신 좀 채리봐라............ “ 


기어코 울음이 터졌다.
 

“ 기후이... 우... 지마라............. “ 


삼촌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 혀... 형수요............. “

“ 예... 말해보이소... 계속 말 하민서 정신 좀 채리보소.............. “


삼촌손을 잡은 엄마의 손에 정맥이 불거졌다.
 

“ 형수요... 미... 미안하니더.............. “

“ 뭐가... 미안해요?... 뭔 말이고 그기?............. “

“ 기후이하고... 형수하고... 끝까지 내... 지키줄라 캤는데... 미... 안하니더.............. “


삼촌의 눈에서 한줄기 눈물이 흘려 내렸다. 흐르는 눈물을 엄마가 천천히 닦아주었다. 삼촌의 호흡이 더욱 가빠졌다. 엄마는
떨리는 손으로 삼촌의 얼굴을 골고루 만져 주었다.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엄마의 손길이 좋은지 삼촌이 빙긋이 미소 지었다.
 

“ 후우........... “ 


삼촌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눈이 스스륵 감겼다. 힘겹게 뜨져 있던 삼촌의 눈이 다시 감기고 말았다.
 

“ 삼촌!... 삼촌!... 눈 좀 떠봐라!... 빨리 떠봐라!... 씨발~!... 눈 좀 떠봐라~!!!............... “ 


나는 미친듯이 소리를 질러대며 삼촌을 마구 흔들었다. 하지만 삼촌의 눈은 떠지지 않았다. 내 손길에 이리저리 아무 힘없이
흔들리는 삼촌의 얼굴에 엄마의 눈물이 떨어졌다. 
우리 삼촌 김성배 올해 나이 32세 삼촌은 그렇게 떠나갔다.
 

1980년 10월 어느 가을밤 태풍이 휘몰아쳐 치던 밤 풀벌레 소리 사방 가득했을 밤인데 태풍이 모두 쫓아 버린 밤 청명한
가을하늘 한 가득 별빛 총총 빛났을 밤인데 태풍이 모두 칠흑 어둠으로 덮어버린 밤 
그밤에 삼촌은 우리곁을 떠나고 말았다.
 

와자작! 쿵! 뒷마당 감나무 가지 하나가 태풍에 부러졌는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떨어지는 소리가 묵직한 것이
제법 큰 가지인 모양이다. 
엄마와 나는 삼촌을 부여잡고 하염없이 울었다. 삼촌은 화장을 했다. 할머니가 그리하라고 했기
때문이다. 마누라도 자식도 없으니 화장하는 것이 맞다고 하셨다. 엄마와 나는 반대했다. 작은 흔적이라도 남겨놓고 싶었지만
할머니는 겉의 흔적은 그저 흔적일 뿐이라며 가슴에 묻으라 하셨다.
 

180센티가 넘는 아주 건장한 체구를 자랑하던 삼촌이었는데 화장을 하고 나니 남는 것은 한줌의 재 뿐이었다. 허무하기 그지
없었다. 장례식은 치르지 않았다. 오직 구서방 내외만 와서 거들 뿐이었다. 유골은 선산 할아버지와 아버지 묘 사이에 뿌렸다.
내가 유골을 뿌리는 동안 엄마는 울고 또 울었다. 할머니는 몸 저 누워 산에 올라오지 못했다.

할머니의 병세는 더욱 깊어졌다. 당연한 일일 것이다. 생떼 같은 두 아들을 먼저 앞세운 어미가 어찌 멀쩡할 수 있겠는가?
일찍이 청상이 되어 두 아들을 키워냈다. 둘 다 잘난 아들이었다. 번듯한 집안에서 태어났다면 한자리 했을 아들들이었다.
큰 아들은 병으로 죽었다. 그래도 작은 놈보다는 다행이었다. 장가도 갔고 자기 씨도 남겼으니 말이다. 그 씨를 보며 할머니는
지금껏 버텨 살아냈던 것이다. 작은 아들은 씨는 커녕 결혼도 못하고 허무하게 떠나버렸다.
 

할머니의 삶은 정말 살아내는 것이었다. 그렇게 억지로 ‘살아내는’ 삶을 지금껏 용케도 버텨왔건만, 작은 아들마저 허무하게
보내버렸다. 할머니는 그런 아들을 당신의 말라비틀어진 앙상한 가슴에 묻었을 것이다. 말라비틀어진 앙상한 그 가슴으로
온전하게 품기란 애초에 무리였다. 그렇게 할머니는 병들어갔다. 
할머니는 삼촌과 마찬가지로 음식을 드시지 못했다. 스스로
곡기를 끓었다고 하는 것이 맞겠다. 엄마가 지극정성으로 간호했음에도 불구하고 할머니는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삼촌이 죽은 뒤 정확히 보름뒤에 할머니도 돌아가셨다. 삼촌을 떠나 보낼 때 그랬던 것처럼 엄마와 나는 할머니의 양손을
각각 부여잡고 그저 하염없이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할머니는 화장하지 않고 할아버지
산소 옆에 모셨다. 동네 사람들은 역시 오지 않았고 구서방네만 도와줄 뿐이었다. 
할머니를 묻고 산을 내려오는 길에 엄마가
말했다.
 

“ 인제 우리 우예 사노?.......... “

“ .............. “
 

나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법대에 당당히 합격해서 판검사 되고, 나쁜 놈들 다 썰어버린 후에 엄마 모시고 행복하게
살겠다고 대답하지 못했다. 거기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오로지 종철에게 복수할 생각으로만 가득했다. 삼촌이 죽은
것도 할머니가 죽은 것도 모두 놈의 탓이라 생각했다. 더불어 춘삼이 아제는 물론이고 동네마을사람들까지 모두모두 삼촌과
할머니를 죽인 사람들이라 생각했다. 
복수하고 싶었다. 유치하게도 어디서 기관총 같은 것을 구할 수는 없을까 고민했다.
싸그리 다 갈겨 죽여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생각뿐이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얼마 되지 않아 종철이가 마을로 돌아왔다. 뻔뻔스럽기 그지 없는 놈이다. 이 모든 것의 원인은 분명
놈이였음에도 당당하게 얼굴을 쳐들고 마을을 돌아 다녔다. 곧 있으면 2차 사방공사를 진행한다며 떠들고 다녔다. 
나는 온
마음을 다하여 복수하고 싶었다. 
복수심에 불타오르는 나와는 달리 엄마는 점점 어두워졌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이후로 방
밖으로 거의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말을 하지 않았다. 할머니, 엄마 삼촌 나 이렇게 네식구 오손도손 살던 집은 적막강산이
되었다. 그나마 간간히 울리는 외양간의 암소 울음소리만이 이 집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대입고사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건만 내 머리속에는 온통 복수에 대한 생각으로만 가득 차 있었다. 반면에 엄마의 우울증은
더욱 깊어졌다. 구서방네 아지매가 도와주지 않는다면 밥도 제대로 챙겨먹지 못할 정도로 엄마는 깊은 어둠으로 가라앉았다.
나는 학교를 가지 않았다. 당연하게도 대입고사는 치지 못했다. 이 사단이 난 마당에 대학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자칫하면
엄마마저 잃어버릴까 노심초사하였다. 구서방네 아지매가 와서 엄마더러 제발 좀 정신 차리라고 입이 닳도록 얘기했으나
엄마의 눈동자는 점점 더 흐릿해져 갔다. 
엄마의 병세가 깊어질수록 나의 복수심은 사라져 갔다. 우선은 당장 엄마를 살려야
했다. 
날씨는 겨울로 접어들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엄마를 대구로 데리고 갈 것이다.

이제 집안의 가장은 나였다. 의논할 곳은 구서방 아제밖에 없었다. 사정을 얘기하고 남은 밭떼기와 조그만한 땅을 내놓았다.

구서방 아제는 자기 일 인양 발 벗고 나섰다. 구서방은 마지막까지 집은 남겨놓자고 하였다. 대구로 이사간 뒤에 팔더라도
늦지 않다고 했다. 
논과 밭은 금방 팔렸다. 구서방은 제법 잘 팔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소를 팔았다. 소는 구서방 아제가
샀다. 시세보다 10만은 더 얹혀주었다. 얼추 대구에서 단칸방 하나와 1년 정도의 생활비는 되겠다 싶었다.
 

어서 겨울이 지나가길 바랄 뿐이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다해 엄마를 사랑해줄 것이다. 시간이 약이라고 엄마는 회복될
것이다. 엄마와 삼촌이 그러했듯 나도 절망속에서 조금씩 희망을 찾기 시작했다. 
찬바람이 매섭게 몰아치던 12월 어느날 밤
나는 안방으로 저녁상을 들고 갔다. 
엄마는 모로 돌아 누워있었다.
 

“ 엄마... 일나가 저녁 드시소............ “

“ .............. ”

“ 엄마... 고마 일나가 저녁 드시라카이............. “


나는 엄마의 어깨를 흔들었다.
 

“ 으응............. “ 


엄마가 부스스한 얼굴로 일어났다.


“ 입맛 없겠지만 한술이라도 뜨시소............ “ 


엄마는 내 얼굴을 보더니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정리하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 아이고... 기후이 아부지... 내가 늦잠을 잤지요?............. “


나는 어리둥절했다. 뜸금없이 아부지라니… 


“ 어... 엄마?........ “

“ 삼촌하고 어무이 밥은요?... 아이고 맞다... 내 지금 밥이나 먹고 이칼때가 아이네요... 기후이 젖 조야 되는데......... “
 

방안 여기저기를 둘러보는 엄마의 눈동자는 초점을 맞추지 못하고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뭔가 잘못되었다. 엄마가 이상하다.
 

“ 기후이 아부지... 기후이 어데 갔어요?... 어무이가 데리고 갔어요?........... “ 


엄마가 멀뚱한 시선으로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 엄마... 와이카노?... 내가 기후이다... 정신 채리소............ “ 


나는 엄마의 어깨를 붙잡고 거세게 흔들었다.
 

“ 아이고... 이 양반이 와이카노... 이거 좀 노소... 아푸니더.......... “ 


엄마는 어깨가 아픈지 인상을 쓰며 내 손을 떼어 내려고 용을 썼다.
 

“ 엄마~!... 내가 기후이라카이~!!... 아부지는 돌아가셨니더~!!!!!!............. “ 


나는 소리를 질렸다. 하지만 엄마의 눈빛은 돌아오지 않았다.
 

“ 기후이 배고플낀데... 야가... 여... 울지도 않노... 이거 좀 놔보소... 내 기후이 젖 좀 주고 밥 먹어야 겠니더... 혼자 먼저...
  드시소........... “
 


엄마는 기어코 내 손을 뿌리치더니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났다.
 

“ 엄마~!!!!!............. “ 


나는 소리치며 밖으로 나갈려는 엄마를 뒤에서 끌어안았다.
 

“ 엄마~!... 정신 좀 채리소~!... 내가 기훈이다~!... 엄마 아들 여 있다~!... 흐흐윽~!!!!............ “ 


나는 결국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엄마가 미쳤다. 삼촌과 할머니의 연이은 죽음으로 인한 정신적 충격을 스스로 감당하지
못하고 그만 미쳐버린 모양이다. 아마도 엄마는 스스로 미쳐버리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가슴 찢어지는 아픈 기억을 잊을 수만
있다면 미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누구보다 고왔고 착했고 현명했던 우리 엄마 이은혜가 미친 여자가 되어 버렸다.
 

“ 으아악~!!!... 종철이 이 개새끼~!!!!... 죽여버릴꺼야~!!!!........... “ 


나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소리 지르지 않으면 나도 미쳐버릴 것 같았다. 엄마는 고함소리에
놀랐는지 양손으로 귀를 틀어막고 방구석으로 달아났다. 겁먹은 강아지 마냥 구석에서 온몸을 웅크리고는 오들오들 떨었다.
 

“ 으흐흑~!... 엄마... 엄마 마저 이카만 나는 우예 살라고카노... 엉엉~!............. “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굵은 눈망울을 이리저리 굴리는 엄마를 붙들고 나는 통곡하였다. 밤이 깊었다. 벽시계를 보니 새벽 1시
였다. 문 밖에서 겨울 찬바람이 아주 쌩쌩거리며 문풍지를 울려댔다. 건조하고 찬 겨울날씨였다. 
엄마는 방금전에 잠들었다.
겁먹은 엄마를 달래고 달래어 겨우 밥을 먹일 수 있었다. 엄마는 치매걸린 노인네 같았다. 나를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 나를
아버지로 또 삼촌으로 또 죽은 외할아버지로 불렀다.
 

나는 그런 엄마를 포근히 안아주어 겨우 진정시킬 수 있었다. 엄마는 내 품에서 잠들었다. 어스럼 달빛에 비친 엄마의 잠든
표정은 편안해 보였다. 기분 좋은 꿈을 꾸는지 입가에 미소가 있었다. 
이대로 엄마가 깨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두 번 다시 미친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엄마한테도 그게 오히려 좋을 것이다. 미쳤던 어쨌던 간에 지금은 행복해 보이니
말이다. 
내 팔을 베고 잠든 엄마가 깨지 않도록 조심조심 팔을 빼내었다. 그리고는 조용히 방문을 나섰다.
 

겨울바람이 왱왱대며 귓볼이 떨어져 나갈 정도로 매섭게 불어댔다. 하지만 나는 그 바람과 추위를 느끼지 못했다. 창고로
갔다. 그리고 낫 한자루를 들고 나왔다. 가벼웠다. 내 분노의 무게에 비해 너무 가볍다고 생각됐지만, 딱히 마땅한 것이 눈에
띄지 않았다. 
창고 옆을 지나면서 나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창고 옆은 장작을 패고 그 장작들을 쌓아놓은 곳이다. 그 곳에
도끼가 덩그러니 받침나무에 박혀 있었다. 
장작을 패던 삼촌의 모습이 떠올랐다. 삼촌은 시간이 날 때마다 장작을 패서는
차곡차곡 쌓아두고는 그것으로 소죽을 끓이고 겨울철 냉골방을 뜨듯하게 데웠었다.
 

하지만 이제 소죽을 끓일 일도 없다. 소가 없기 때문이다. 군불을 지필 필요도 없다. 엄마와 나는 마을을 떠날 것이니 말이다.
덩그라니 박혀 제 할일을 못하고 있는 도끼는 우울해 보였다. 시퍼런 날을 번뜩이며 장작을 쩍쩍 가르던 모습을 찾아달라는
듯 내게 손짓했다. 나는 낫을 버리고 도끼를 뽑아 들었다. 허공에 대고 두어번 휘둘러 보았다. 아주 묵직한 것이 느낌이 좋다.
세상 어떤 것이라도 한방에 찍어 갈라놓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도끼를 들고 마당에 우두커니 서서 집안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안방을 보았다. 안방에는 지금 엄마가 곤히 자고 있다. 엄마가
절대 깨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안방옆에 붙어있는 작은 방을 보았다. 할머니가 자던 방이다. 지금 할머니는 돌아가시고
없다. 이 겨울 차가운 땅속에 계신다. 작년 겨울 깊숙히 감춰둔 곶감을 꺼내어 몰래 나를 주던 할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외양간을 보았다. 작년 겨울 느닷없는 내 발길질에 놀라 어쩔 줄 모르던 암소가 생각났다. 그 암소도 이제는 없다. 구서방에게
팔아버렸다.
 

나는 외양간 옆 삼촌방을 보았다. 지금 그 방에는 숙모도 없고 삼촌도 없다. 엄마와의 사랑이 저 방에서부터 시작 되었는데
방주인은 한 줌 재로 허공에 뿌려졌다. 
그러고보니 1년사이에 우리집은 사라진 것이 너무 많았다. 눈에서 눈물이 맺히더니
주르륵 흘러내렸다. 떼가 낀 왼소매를 들어 눈물을 쓰윽 닦았다. 눈물 따위로 마음이 약해져는 안된다. 작두를 든 오른손을
꽉하니 움켜쥐었다.
 

‘ 엄마~ 내 금방 갔다 오께요~ ‘
 
산골의 겨울밤은 아주 깊다. 새벽 1시까지 깨어 있을 사람은 없다. 나는 뒷마당으로 하여 집을 나섰다. 춘삼이 아제네 집은
우리집에서 약 1km정도 떨어져 있었다. 길을 따라 나서면 조금 더 둘러가야 하지만 우리집 뒷마당으로 이어진 야트막한
언덕을 넘으면 곧바로 춘삼이 아제네다. 
낮은 언덕은 거의 대부분 묘들로 채워져 있다. 어릴적 창수와 같이 이 산소 저 산소
뛰어다니면서 병정놀이며 연날리기를 하던 놀이터였다.
 

추억 가득한 그곳을 지금 나는 푸른 빛이 일렁이는 도끼를 들고 성큼성큼 걸어가고 있다. 언덕배기에 올라 우리집을 내려다
보았다. 겨울바람이 웽웽거리며 옷 속으로 파고 들었다. 교교한 달빛에 우리집 뒷마당 감나무가 흔들리는 모습이 보였다.
올해는 감이 별로 열리지 않았다. 원래 해거리를 조금씩 하는 감나무지만, 올해는 유독 감이 열리지 않았다. 감나무는 흡사
내게 손짓하듯 흔들렸다. 엄마에게 돌아오라고 손짓하는 듯 했다.
 

나는 고개를 돌려 버리고는 이를 굳게 다물었다. 삼촌도 죽었고, 할머니도 죽었다. 무엇보다 엄마가 미쳤다. 내 삶의 전부였던
엄마가 미쳐 버렸다. 더 이상 살아가야 할 이유가 없다. 
곧장 언덕을 넘었다. ‘ㄷ’자 형태의 전통 기왓집 모양을 하고 있는
춘삼이 아제네 집은 내 가슴께 오는 기와담장으로 쌓여 있었다. 나는 담장을 훌쩍 뛰어 넘었다. 내 발자국 소리는 바람소리에
묻혀버렸다. 
춘삼이 아제네 집은 고요했다. 널찍한 마당을 가로질러 사랑채로 다가갔다. 사랑채는 방에 총 세개였다.

어릴 적 종철이 방에 놀러간 적이 몇 번 있었다. 기억이 맞다면 오른쪽 첫번째 방일 것이다. 방문앞 봉당을 보았다. 세번째
두번째 방문 앞에는 신발이 없다. 빈방이라는 것이다. 예상했던 대로 첫번째 방문앞에 남자 운동화가 한켤레 놓여 있었다.
신발은 종철의 것일 것이다. 
도끼를 단단히 움켜쥐고는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보름이 가까워 오는지 둥그스럼한 달이 밝은
빛을 쏱아내고 있었다. 이 정도의 빛이면 충분히 사람을 구분할 수 있겠다 싶었다.
 

심호흡을 했다. 신기하게도 마음이 차분하다. 손도 떨리지 않았고, 호흡도 안정돼 있었다. 한방이면 끝날 것이다. 양손으로
도끼를 머리높이 들어올려 온 힘을 다해 가슴께를 내리칠 것이다. 제대로만 내리친다면 놈은 비명 한마디 못 지르고 끝날
것이다. 
다만 곧바로 즉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을 죽이는 사람이 누군지 왜 죽이는지 아주 똑똑히
알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생각이 너무 많다. 그만 생각하고 그냥 죽여버리자.
 

문고리를 잡고는 천천히 당겼다. 방문은 잠겨있지 않았다. 찌그덕 거리며 방문이 서서히 열렸다. 훅하니 술냄새가 풍겨왔다.
조금 열린 문 사이로 방안을 살펴보았다. 방안에 종철이가 대자로 뻗어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좋다! 죽여버리기에 더 없이
좋다! 
이제 방으로 들어가서 도끼로 내려찍기만 하면 끝난다. 종철이도 끝나고 나도 끝난다. 간절히 바라던 끝남이다. 신발을
신은 채로 소리없이 방안으로 들어섰다. 우두커니 서서 놈을 내려다 보았다. 술을 얼마나 쳐먹었는지 술냄새로 골이 띵할
정도였다.
 

‘ 개새끼!... 니 놈 때문에 삼촌이 죽었고... 할머니까지 죽었다... 엄마는 미쳐버렸어... 너는 죽어 마땅해..... 너는 사람이
 아니라 개야... 한마리 개새끼야... 개새끼는 도끼로 찍어 죽여야 해!............... ‘
 


나는 도끼를 천천히 머리 위로 들어올렸다. 이제 내려치기만 하면 끝이다. 묵직한 도끼는 충분히 날이 서있고 정확하게 놈의
심장으로 떨어질 것이다. 
죽여버린다! 순간~ 방안이 갑자기 밝아지며 놈의 몸위를 지나 벽까지 길게 늘어진 그림자가 생겨
났다. 그림자는 머리 높이 도끼를 쳐들고 있었다. 아주 또렷한 그림자는 좌우로 일렁거리며 흔들렸다. 나의 그림자였다. 달빛
때문인가? 아니다. 달빛에 의한 그림자라고 하기엔 그림자가 너무 선명하다. 그리고 방안을 밝히는 빛이 붉다.
 

급히 뒤돌아보았다. 열린 방문 너머로 방금전에 내가 건너온 언덕이 보였다. 언덕 저편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차가운 겨울
한밤에 왠 붉은 빛이란 말인가? 
붉은 빛이 점점 강해지며 밤하늘을 환히 비치었다. 불이다. 불이 났다. 언덕 저편은 바로
우리집이다. 집에는 제정신이 아닌 엄마가 홀로 잠들어 있다.
 

‘ 어... 엄마!................ ‘ 


나는 도끼를 내리고는 종철의 방에서 물러났다. 그리고는 곧장 내달렸다. 마당을 가로지르고 단번에 담장을 뛰어넘었다.
건조하고 세찬 겨울바람은 무서운 속도로 불길을 이끌었다. 불길은 빠르게 언덕을 넘어 오고 있었다. 올 때는 언덕을 넘어
왔으나 돌아갈 때는 그러지 못한다. 불길 때문이다. 길을 통해 돌아가려면 언덕을 넘어올 때 보다 두 배는 더 시간이 걸린다.
불길을 뚫고 언덕으로 갈까? 머뭇거리는 사이 언덕을 넘은 불길은 춘삼이 아제 집 코앞까지 다가왔다. 어쩜 이리 빠를 수
있단 말인가? 불길은 마치 춘삼이 아제네 집을 목표로 삼는 양 보였다. 좁은 폭으로 빠른 속도로 곧장 춘삼이 아제네 집으로
짓쳐 들고 있었다.
 

온당히 나는 ‘불이야~’ 하며 외쳐야 하나, 외치기 싫었다. 분명히 불은 춘삼이 아제네 집을 불태울 것이다. 그럴 것이기에
외치기 싫었다. 
새벽 2시가 가까워 오는 시각 요란한 소리를 내며 타오르는 불길에도 마을 사람들은 잠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화르륵 그리며 타오르는 불길 소리만이 사방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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