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사랑 - 28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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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지의 오피스텔은 생각보다 거리가 꽤 멀었다. 엘르에서도 택시를 타고 대략 30분정도의 시간을 더 달려야 도착할 정도의
주택 단지 내에 위치한 수지의 오피스텔 안은 집주인인 수지의 외모와는 전혀 다르게 정신없고 산만한 집안 풍경을 보여주고
있었다. 방 두개에 큰 거실 거기에 주방까지 전부 세련되고 미래적인 디자인의 가구들이 즐비했지만 여기저기 늘어놓은
맥주 캔과 옷가지들에 들어서던 아리는 입을 벌리고 놀라게 된다. 그 모습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대로 거실에 들어선 수지는 옷부터 벗기 시작했다.
허물을 벗 듯 그대로 옷을 거실바닥에 떨어트리고 금세 나신이 되어버린 수지는 욕실로 향해 욕조에 물부터 받기 시작한다.
" ....뭐하냐?"
거의 한 시간 넘게 욕실에서 시간을 보낸 수지는 역시 수건조차 몸에 두르지 않고 머리를 말리며 나오다 말곤 깔끔해진
거실을 보고는 이제는 방을 치우고 있는 아리를 향해 말을 건넨다.
" ...청소요."
" 누가 청소하래?"
" 이게 사람 살 곳이에요?"
" ......냅둬.. 난 그게 편하니까."
" 제가 불편해요."
" 참나.. 넌 어른한테 한마디도 안지고 꼬박꼬박 말대꾸야?!"
" 천성이래요.. 됐어요.. 그리고 아무리 같은 여자라도 뭘 좀 걸치세요...... 보기 남사스러워요..."
" 남사....풋...큭큭큭..."
" ...."
" 너도 샤워해."
" 전 나중에 할게요."
" 냄새나..."
" ....예?"
" 냄새 난다고.. 뭔 사내놈도 아니고 땀내가 나냐?"
" 그..그거야 방금 청소해서 그런 거죠.."
" 난 냄새에 민감하거든.. 빨리 샤워부터 해."
" 씨... 집에 담배냄새부터 없애던가..."
" ....요게!~~"
" ...."
" 그리고 저기 방에서 공부하면 될 거야."
" .....그런데 저긴 누구 방이에요? 어울리지 않게 책상까지 있고..."
" 여기 들어올 때부터 있었어.. 가구 일체형이라서.."
" ..집세 비쌌겠다......"
" 월세야."
" 예?? 한 달에 얼마에요?"
" 넌 몰라도 되고, 냄새난다고..."
수지의 성화에 아리는 욕실로 향하게 된다. 정말로 오랜만에 뜨거운 물에 몸을 담가보느는 아리였다. 수지의 배려인지 새로
물을 받아놓은 욕실의 욕조에서 모락모락 올라오는 김과 서리 낀 거울을 보며 수지는 자신도 모르게 옷을 훌훌 벗고는 손으로 욕조 안에 조심스럽게 담가보는데, 뜨거운 욕조안의 물 온도에 손끝에 전기가 오는듯한 착각과 함께 몸을 담갔을 때의
황홀함을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몸을 담그곤 등을 기대어 눈을 감게 된다. 그리곤 수지의 말을 떠올렸는지 긴 머리카락을
잡아 코에 가져다 대곤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아본다.
" 치~.. 냄새도 안 나는구먼....아.. 좋다~~... 음.. 술집에서 일하면 돈 많이 버나?...학교 떨어지면 술집에서 일해?..
쿡쿡쿡.... 에라이~~..큭.....아~~~~"
뜨거운 욕조에 몸을 담군 아리는 머리끝까지 물에 담갔다간 이내 다시 등을 욕조에 기대며 그 노곤함을 즐기기 시작했다.
"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 감을~~~ 자랑 마라~~~~"
' 쿵쿵쿵..'
" 야!!"
" 까..깜짝이야.."
자신도 모르게 시조를 읊듯 욕조에 몸을 담근 채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아리였는데 갑자기 문을 두드리며 속옷만을 걸친 채 들어온 수지의 모습에 깜작 놀라 가슴을 양손으로 가린 채 얼굴까지 반쯤 물속에 담근 아리였다.
" 넌 뭐냐?"
" ....."
" 노친네도 아니고.. 뭔 노래를 그딴 걸 불러?"
" .....시..시조에요.."
얼굴만 내민 아리가 변명하듯 수지에게 말을 한다.
" 시조건 시조새건 어린게 무슨 징그럽게 그런걸 부르냐고!..꼭 노친네랑 같이 있는 거 같아서 소름 돋잖아."
" ......치~.. 이게 얼마나 옛분들의 정서와 심경이 담긴.."
" 미친....에휴~.. 내가 왜 저런걸 데리고 들어왔냐.. 여기 수건 있으니까 이걸로 닦기나 해."
" ........예."
" ........."
" ......왜요?"
" 너.. 가슴 몇이야?"
" .....예?"
" 일어나 봐."
" ...예?!!!"
" ...C?? D??... 75에 C인가?"
" 모..몰라요.. 나가요!"
" ...."
" 왜..왜요?"
" 너 씻고 그대로 나와봐.."
" ...."
" 이것도 다 땀에 젖었네..... 내가 가지고 나가서 세탁기에 집어넣는다.."
" 어..언니!!"
한쪽에 벗어 놓은 아리의 추리닝들을 들고는 나가버린 수지였다. 멍하니 사라진 추리닝을 바라보던 아리가 황급히 욕조에서 문을 열고 나갔을 땐 벌써 베란다에서 세탁기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어이없다는 듯 수지를 쳐다보는데 아무렇지도 않은 듯 아리의 몸매를 감상하며 담배를 입에 물기 시작한 수지의 모습에 다시 욕실로 뛰어 들어가게 된다.
10분 째 욕실 안에서 다 씻은 채 서 있게 된 아리는 수건으로 이리저리 몸을 가려보지만 역시 작은 수건으로는 택도 없었다. 욕실 안에서 수지에게 소리치게 된 아리다.
" 뭐해?!"
" .....언니.... 옷 좀 주세요.."
" 뭐?"
" 입을 옷이요.."
" 기다려."
노크소리에 문을 빼꼼히 열게 된 아리에게 수지가 건네준 건 달랑 원피스 하나였다. 하얀색의 민무늬 나시 원피스는 아리가 입기에는 너무 야한 옷이었지만, 어쩔 수 없이 입게 된다. 나가서 옷을 찾으려면 이거라도 입어야 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든
아리였다. 예전에 대중 목용탕을 자주 이용한 아리였지만, 수지의 시선에선 아리가 겪어보지 못한 이상한 느낌을 받게 된
행동이었다.
" 흠~... 가게 년들보다 훨 예쁘네...."
" ......."
수지의 말대로 달라붙은 원피스는 아리의 굴곡진 몸매와 함께 방금 전 샤워로 홍조띤 얼굴까지 더 도드라지고 아름답게
그려주고 있었다. 잘록한 허리와 너무도 대비되는 풍만한 가슴의 굴곡을 어렵게 가리며 작은 꼭지의 튀어나온 모습까지
적나라하게 겉으로 보여주고 있었고, 치마의 길이조차 너무 짧아 앉기라도 한다면 사타구니 안쪽까지 그대로 보일 거라는
자신의 생각에 앉지도 못한 채 서 있게 된다.
" 아..무..거나 입어도 되죠?"
" 크크크.. 예쁘다니까."
" 이런거 싫어요...."
" 왜? 예쁘기만 한데...젊은 게 좋긴 좋구나.."
" ...언니가... 더 예뻐요.."
" 당연하지!.. 내가 예쁜 건 당연하고.. 너 정말 19살 맞아?"
" 예???......맞아요.."
" 흠... 남자 한두 명 울릴 몸매가 아닌데...."
" 뭐라고요?!!"
" 참나.. 목젖에 무슨 기차화통을 삶아 먹었나..."
" ..."
" 공부나 해라.. 옷은 아무거나 꺼내 입고..."
" 아무거나...."
옷걸이를 두리번거리던 아리였지만, 막상 입어 볼 엄두도 나지 않는 옷들에 한숨만 쉬다가 결국 겨우 찾아낸 분홍색 추리닝을 챙겨 입게 된다. 상대적으로 엉덩이와 허리는 맞는데 가슴이 안 맞았다.
" 가슴이 쨍겨....."
" 야!!!!"
" ..."
" 얻어 입는 주제에 뭘 투덜 되는 건데?!"
" ....치~.. 답답하니까.. 그렇지..."
" 뭘 먹었길래 가슴만 자란 거냐..가슴 크면 무식하다는 소리도 못 들었나..."
" 누..누가 그래요?"
" 우리 애들 중에도 가슴 큰 년 치고 머리 좋은 년 하나도 없더라.."
" 마..말도 안 돼!. 누군 가슴이 크고 싶어서 컸나.. 그런 말도 안 되는 말 하지 말아요.."
" 엄마는? 엄마는 가슴 커?"
" .....보통이요."
" 유전도 아니네..맞네 머리 나쁜 년.."
" 씨!!~~"
" 공부나 해라.. 머리 나쁘면 남들보다 노력이라도 더 해야지."
" 진짜!! 나 머리 좋다니까요! 반에서도 3등 안에 꼭 들어요!!"
" 전부 꼴통들이내.. 네가 3등이나 하고.."
" ........"
'쿵~'
방문을 소리 나게 닫은 아리는 투덜거리며 책상에 책들을 펼쳐 놓고 공부를 시작한다. 어차피 남은 삼일동안 복습 위주로
해야 하는 아리였고, 그나마 시험엔 강한 자신의 천성을 믿었기에 수지의 집으로 들어오게 된다. 민기란 문제의 중심이
신경이 쓰이기도 했지만, 그것보다 화를 내며 사용한 수지의 강간이라는 단어에 더 놀라게 된 아리였다.
책상에 앉아 문제집부터 펼쳐보던 아리는 딴생각에 빠져들기 시작한다. 귀엽게 입술을 빼내어서는 인중사이에 연필을 끼워놓고는 턱을 괴고 민기에게 오해했던 자신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단순히 오해였다는 생각에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고는 가방에 고이 모셔둔 라이터를 꺼내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손때가 묻은 지포 라이터의 매끈한 굴곡진 모서리를 손가락으로 어루만지며 생각에 잠겨 있는데 갑자기 덜컥하고 문이 열린다. 괜히 라이터부터 손에 꽉 지어 숨긴 아리는 갑자기 들어온 수지를
바라보게 된다.
" 공부해?"
" ....예??예. 언니는 노크도 못해요.."
" 내 집에서 무슨 노크야. 배고프다 라면 좀 끓여라."
" 예??"
" 라면 끓이라고."
" ......"
" 배 안고파? 밥도 안 먹었잖아..."
" ...."
" 너 기민이 좋아하냐?"
" 풋!~~ 켁켁....켁.."
라면을 중앙에 두고 바삐 젓가락질을 움직이던 두 여자 중 한 여자의 아무렇지 않게 던진 말에 한 여자가 사례가 들려 켁켁
거리기 시작했다. 예상치도 못한 얘기에 아리는 하마터면 먹던 라면을 코로 뿜을 뻔 했다.
" 켁켁....무..뭐라고요?"
" 너 기민이 좋아하냐고?"
" ...아니요."
" ....그래? 후루루~~쩝쩝.."
" ....."
" 쩝쩝~~.. 라면 잘 끓이네.."
" ..."
" ...."
" ...근데 왜 물어봐요?"
" 아니면 됐어... 빨리 먹어.. 안 먹으면 내가 다 먹어 버린다."
" ...."
다시 고개 숙여 라면을 맛있게 먹기 시작한 수지를 빤히 바라보던 아리는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 ...좋아하면요?"
" ....쩝쩝......~"
" .....기민오빠..... 제가 좋아하면요?"
" 라면 먹고 얘기하자."
" .......전 다 먹었어요."
" ...그래?"
젓가락을 내려놓은 아리인데도 혼자서 너무나 맛있게 라면을 다시 먹기 시작한 수지의 모습에 황당한 눈빛으로 그런 수지를 바라보게 된다. 갑자기 엉뚱한 얘길 하더니 이내 상관없다는 식으로 라면을 다시 먹는 수지의 심리전에 이미 말려든 아리는 자신은 모른 채 수지만 노려보듯 쳐다보게 되었다.
" 휴~~.. 라면은 역시 남이 끓여주는게 제일 맛있다.."
" ....다 드셨으면 저 공부하러 갈게요.. 이건 놔두세요. 설거지는 나중에 제가 할게요."
" .....쩝~~~"
" ..."
" 너 정말로 기민이 좋아하니?"
" ....."
" 기민이는? 너 좋아하는 거 같고?"
" ....."
" 하긴 좋아한다고 해도.. 어쩌겠어....."
" ....?"
" 넌 모르지? 기민이가 네 사촌 오빠라는 거."
" ......."
고시원을 찾은 민기는 빈 방을 보고 시계를 확인한다. 이미 학교는 끝났을 저녁이었고, 아리가 학원 같은 곳에 갈리도 만무
했기에 두리번거리다 말고 주머니에 들어있는 핸드폰을 그제야 꺼내 단축번호 1번을 누르게 된다. 아직 익숙지 않은 핸드폰이란 물건에 어색해하며 귀에 바짝 대고 들려오는 신호흠에 숨죽이게 된다.
[여보세요?]
" ...나..나야."
[예.. 웬일이세요?]
" 응?? 그냥.. 어디 갔나 해서..."
[집인데요.]
" ......그래?....아..알았어..."
[아!! 저 수지 언니 집이에요..... 혹시 고시원에 오셨어요?]
" 아..아니야.. 그냥 뭐하나 해서..그런데 수지 집?"
[....저 지금 수지 언니랑 대화중이라 서요.. 나중에 전화할게요.]
" 대화?? 무슨 대화?"
[나중에 통화해요.. 그럼 안녕히 계세요.]
" 아..아리야..."
끊어진 핸드폰을 가만히 쳐다보던 민기는 황급히 고시원 계단을 내려가게 된다. 당연히 밑에서 대기하고 있던 동민을 발견한 민기는 다짜고짜 차부터 가져오라고 다그친다. 수지를 잘 알고 있던 민기의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불같은 성격의 수지였고, 그랬기에 예전에 사귀는 동안에도 민기의 화를 화로 푸는 그러면서도 자존심은 지키며 자신을 보호했던 수지였기에 지금 순간 무슨 말을 할지 모를 수지라는 생각에 서둘러 차를 독촉하게 된다.
" 형님 어디로 모실까요?"
" 수지년 집으로 가자!"
" .......예?"
" 빨리 출발하라고!!"
" 그..그게.. 수지씨 집이....."
" 이 새끼가.. 너 몰라?!!"
" .....예."
" ......"
헤어지고 나서 옮긴 수지의 오피스텔은 민기조차도 한 번도 안 가본 곳이었기에 당연히 동민이 알 리 없었다.
" 어..떻게 할까요 형님..."
" .....짱개 불러."
" 예??"
" 짱개 부르라고!!"
" 아..알겠습니다 형님."
동민의 전화 한 통화에 곧 달려온 짱개였고, 전반적인 모든 상황을 파악하고 뒤처리하는 짱개라도 역시 수지의 집은 알 리
없었다. 하지만 전화를 몇 통 걸더니 이내 주소를 따 민기에게 쪽지에 적어 건네준 짱개였다. 쪽지를 받아든 동민은 영문도
모른 채 황급히 차를 출발하게 된다.
" 그래.. 기민이 걔....네 사촌 오빠라고.."
" ...."
" 놀라서 말도 안 나오지?"
" ..."
" 그러니까 이상한 감정 같지 말란 말이야. 네가 좋아하고 기민씨가 널 좋아해도 둘이선 절대 이뤄져서도..
이뤄질 수도 없는 사람들이라.."
" 오빠가 절 좋아해요?"
" .......?"
" 기민 오빠가.. 절 좋아한데요?"
" 그게 문제야?! 지금 내가 하는 말 제대로 듣고 있니? 둘이 사촌이라고!! 사촌사이라고!"
" .....알....고 있..어요."
" ...뭐?"
" ...."
" 알고 있었다니? 그럼 알고 있으면서?? 아니.. 언제부터 알고 있었는데? 기민씨는 너 모르고 있다고 하던데..."
" 역시 기민 오빠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구나....."
" 무..뭐라는 거야? 너 정말 알고 있었어?"
" 엄마... 돌아가시고 나서.. 며칠 있다가 혼자 오빠 면회 갔었어요.. 아무리 경황이 없어도..
저 때문에 경찰서에 끌려 가셨는 데.. 당연히 가봐야 할 거 같아서..."
" 그런데?"
" .....고기민이라는 사람은 없더라고요."
" ......."
" 그때.. 알았어요...그래서.. 면회는 못했어요..왜 나한테 말을 안했는지..혹시 오빠가 날 지켜주려고 그런 건 아닌지..
절 속인게 괘씸하기도 했는데.. 그런 생각을 하게 되니까.. 그러고 보면 다른 사람한테는 항상 무섭게 굴면서도..
저한텐 너무..."
" ...그런데? 아니.. 그래서? 알고도 좋아한다고?"
" 오빠는 잊은거 같은데.. 저 입양 됐대요....그러니까 오빠랑 전 피 한 방울 안 섞인...."
" 뭔소리야? 사촌사이인데 피가 안 섞이다니? 입양? 그럼 입양 된 아이라고? 네가?"
" .............예."
" ....."
"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에 저한테 다 말씀해주셨어요....돌아가시기전 아빠는.. 엄마가 다른 남잘 만나고 있다는 걸 알고
계셨나 봐요.. 엄마가 모진 말로 절 거리감 느끼게 할지도 모른다고....엄마도 정말 친자식처럼 사랑하는데 속상해서
그럴 수 있다고......너무 힘든 일 생기면...그래서 도저히 못 참겠으면 민기 오빠 찾아가라고요....오빠가 무섭게
생겼을지라도.. 예전부터 전 많이 예뻐했다고..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절 챙겨줄거라고요..."
" ..그럼... 그걸 알고 좋아했다고?"
" ....아뇨."
" ..."
" 좋아하고 나서.. 그 후에.... 경찰서 가서 오빠란 걸 알게 됐어요.."
" 잠깐만.. 머리 아프다.... 정리좀 하자.."
가만히 골머리를 잡고는 고개 숙인 수지였다. 자신의 몸도 그렇지만 가뜩이나 복잡한 상황에서도 더 꼬인 아리와 민기의
관계에 무슨 드라마도 아닐 거라는 생각을 하며 조심스럽게 정리를 끝내곤 입을 연다.
" 그러니까.. 너랑 기민씨가 사촌사인데.. 피는 섞이지 않았고.. 넌 알고 있는데 기민씨는 사촌인건 알고 있지만 친족이
아닌건 모른다고?...거기에 둘이 좋아한다고?"
" 전 그런데.. 기민오빠는....잘 모르겠어요.."
" 뭘 몰라?"
" 사촌 동생이라서... 좋아해 주시는 건지..."
" ......"
수지가 입술을 지그시 깨물게 된다. 민기의 마음을 먼저 확인한 수지였지만 괜한 질투심에 아리에겐 입을 다물게 된다.
'똑똑똑..'
" 누구세요?"
" 나다."
" ....."
'끼익~~~'
" 넌 여긴 어떻게 알고 왔냐?"
" ....아리 여기 있어?"
" ..미친놈.... 난 눈에도 안보이냐?!"
" ....미안."
" 됐고! 여기 금남의 집이니까 들어올 생각하지 마!"
" ...너 혹시 아리한테 이상한 말."
" 뭔소리야!? 그런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고! 꺼져!"
'쿵! 철컹...'
" 수..수지야!!"
" 시끄럽고! 아리 여기서 시험 볼 때까지 공부만 할 거니까! 찾아오지 마!"
" ...."
아리가 현관문을 빤히 바라보고 거실에 앉아 있는데 수지는 문을 닫은 채 걸어와 아리 옆에 앉아 담배를 하나 입에 문다.
잠시 후 체념한 듯 민기의 계단을 내려가는 발소리가 희미하게 문 너머에서 들리게 되자 담배를 다 핀 수지가 재떨이에
비벼 끄고는 다시 입을 연다.
" 참 기구하네.."
" ....."
" 그래도 호적상에는 둘이 사촌관계잖아... 그건 엄연한 사실이지 않아?"
".....예."
" 그럼... 둘이 결혼도 못하고... 설사 사귄다고 해도 사람들한테 인정도 못받는건 알고?"
" ....예."
" ..."
" ..."
" 뭐라고 할 말이 없다...."
" 예?"
" 화를 내려고 해도 너 하는 짓 보니까 기가 차서 화도 안 난다고..그거 알고 기민이 대신에 칼침 맞은 거야? 좋아하는 사람.. 아니 좋아하는 사촌 오빠니까 몸을 날린 거라고?"
" ...민....기 오빠에요."
" ......"
" ...."
" 말은 잘하네.....에휴~"
다시 입에 담배 한 개비를 물고는 불을 붙인다.
길게 빨아들이곤 다시 길게 내 뱉는 수지의 모습에 아리가 고개를 들어 빤히 쳐다보기 시작했다.
" 그거.. 정말로 스트레스 풀려요?"
" ....뭐?"
" ....담배요."
" ...한대 펴 볼래?"
" .............예."
" .......자."
" 후~웁~~.............켁!!! 켁켁..코..콜록~~~ 콜록!~~~켁켁.."
" 무..뭐하는 거야?!!"
한 모금을 길게 들이마신 아리는 갑자기 기침을 하더니 수지가 건네준 거의 새 담배를 그대로 재떨이에 비벼 끄기 시작했다. 화를 내며 말을 하는 수지의 모습에도 아리는 연신 기침을 하곤 눈물까지 찔끔거리며 제차 담배를 재떨이에 눌러 남은 불씨
까지도 사그라들게 만들었다.
" 켁.. 뭐야 이거.....웩~~.."
" ...참나.. 가지가지 한다..."
" 이런게 뭐가 좋다고.. 오빠도 그렇고 언니도....."
" .........피울 줄도 모르면서 왜 달라고 한 건데?"
" ..그냥요.. 맨날 오빤 입에 달고 사니까...."
" ...너 정말..........."
" 이게 뭐가 맛있다고.. 당장 끊으라고 해야지....."
" ......우선 공부나해! 며칠 안 남았다며."
" 들어갈 거예요...공부하는 사람 불러낸 게 누군데.."
" ..."
" 저기...언니...."
" ,,,,뭐?"
" 민기 오빠한테는.... 비밀로 해주세요.."
" ....그건 또 왜?"
" 민기 오빠가... 마음 아파할거 같아서요... 아마.. 자신이 깡패라는 게 사촌동생인 저한테..
숨기고 싶어 하는 거 같아 보여서요.. 사촌동생이 아닌 저한테 깡패인걸 들키고도.. 많이 당황했어요.... 그러니까 직접..
오빠가 말하기 전까진 비밀로 해주세요..."
" ....."
" 며칠 남았지?"
" 내일입니다..."
" ..."
" 가보실거지 말입니다.. 아마 5신간 6신가에 끝난다는 거 같던데 말입니다."
" 내가 거길 왜 가냐..."
" ....갈거면서.."
" ..누가 간다고 그래!"
" ....안 갈 거면 안가는 거지.. 소리는 왜 지르신데.."
" 이 새끼가.."
차라리 수지의 집에 아리가 있게 된 것이 민기는 다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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