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감나무 - 2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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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生)은 미래가 있다. 미래는 고정되어 있지 않다. 변한다. 혹여 그 변함이 엄마와 함께 하지 못할 변함이라면 나는 차라리
죽음를 택하고 싶다. 사(死)는 미래가 없고, 당연하게도 변하는 것은 없다. 현재의 상태를 고정하여 그것으로 끝인 것이다.
지금 이순간 나는 나 자신보다 더 사랑하는 엄마와 완벽하게 결합되어 있다. 이 결합이 할 수만 있다면 영원했으면 좋겠다.
생과 사를 넘나드는 절정속에서 나는 죽음을 갈망하였다. 이대로 돌같이 굳어져서 영원해지고 싶었다.
나의 바램대로 되지 않았다. 나는 어김없이 깨어났고 엄마는 일을 나갔다. 폭풍 같은 정사는 흘러서 과거가 되었고 현실은
다시 변화하는 삶을 살라고 강요했다. 나는 공사판을 나가지 않았다. 별일 없을 것이라 자신했다. 남자로써 엄마를 완벽하게
내것으로 만들었다고 나는 확신했다. 세번이나 절정을 안겨주지 않았는가? 사랑고백을 주고 받았지 않은가? 엄마 이은혜는
이제 완전한 나 김기훈의 여자가 되었다. 공부에 집중하였다. 대학을 반드시 가야 한다. 서울이든 대구든 말이다.
엄마를 데려 갈 것이다. 멀리 가서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살 것이다. 엄마와 아들관계가 아닌 남자와 여자의 관계로 사랑을
할 것이다. 모자간이 어쩔 수 없는 운명이라 하더라도 연인이란 인연을 새롭게 만들 것이다. 운명은 하늘이 맺어주는 것이다.
인연은 노력으로 만들 수 있다. 사람이 노력하여 못할 것이 없다.나는 노력하고 또 노력하여 운명보다 더욱 강력한 인연을
만들 것이다. 나는 그렇게 이틀을 공부에 집중하였다. 다행히도 엄마에게는 별다른 일이 발생치 않았다. 삼촌의 으름장이
효과가 있었던 모양이다. 전에 없이 공부에 집중하는 날 보고 엄마는 물론 삼촌 할머니는 행복해 하였다.
삼일째 되는 날 점심을 먹고 나니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고 겨울비가 소슬하니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기뻤다. 비가 내리면
당연히 공사판은 멈춘다. 일당은 일당대로 받고 일찍 일이 끝나는 것이다. 사랑하는 엄마를 오늘은 일찍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우산 두 개를 챙겨 들고 엄마와 삼촌의 마중을 나갔다. 겨울비 답지 않게 내리는 빗줄기가
제법 굵었다. 감기라도 들면 큰일이다. 나는 뛰기 시작했다. 마중길에 집으로 돌아오는 구서방 아제를 만났다.
“ 기후이 어매 마중가나?............ “
“ 예.............. “
“ 너그 엄마하고 삼촌은 안 비던데... 어여 빨리 가봐라............ “
삼촌이 보이지 않는것은전혀 이상하지 않다. 함바집 여자랑 데이트 할 것이다. 하지만 엄마가 보이지않는 다는것은 불안하다.
마땅한 까닭없이 나는 불안했다. 급히 귀가하는 사람들과 엇갈린 방향으로 나는 내쳐 달렸다. 공사판에 도착하니 빗줄기는
더욱 굵어졌다.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다들 집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여기저기 둘러봐도 엄마와 삼촌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제일 먼저 함바집으로 달려갔다. 큰소리로 엄마와 삼촌을 부르려다가 나는 멈칫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함바집
구석에 두 사람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불 꺼진 함바집 안은 어두침침하여 누가 누군지 또렷하게 보이지 않았다.
‘설마… ‘
나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애써 진정시키며 신경을 집중하였다. 눈이 어둠이 익어갔다. 남자는 의자에 앉아 있고, 여자인 듯
보이는 한 사람은 등을 보인 채 바닥에 꿇어 앉아 있었다. 여자의 고개가 연신 주억거리는 것을 보니 아마도 남자의 자지를
빨고 있는 듯 했다.
‘설마… ‘
나는 마른침을 삼켜가며 더욱 집중하였다. 남자의 얼굴이 보였다. 삼촌이었다. 그럼 빨고 있는 여자는? 엄마인가? 뒷모습이
눈에 익지 않다. 아니다. 함바집 여자인 것 같았다. 정상으로 돌아왔다던 삼촌 말이 맞는 모양이다. 그럼 엄마는 어디 있지?
나는 고개를 돌려 멀리 내다 보았다. 세찬 빗줄기 속 저 멀리 건축자재를 보관하고 있는 임시 창고가 희미하게 보였다. 느낌이
야릇했다. 나는 한달음에 창고로 달려갔다. 우산이 바람에 날려 빨리 뛰지 못했다. 우산을 던져버렸다.
창고는 얇은 양철판으로 지어져 있었다. 창고의 문으로 다가갔다. 가만히 밀었다. 창고의 문은 안으로 잠겨 있었다. 주위를
맴돌았지만 창문은 보이지 않았다. 다시 창고문으로 돌아왔다. 문틀과 제대로 맞지 않는 창고문은 한쪽 틈이 벌어져 있었다.
한쪽 눈으로 창고안을 들여다 보았다. 창고안은 함바집보다 더 어두웠다. 아무리 집중해도 볼 수 없었다. 귀를 기울였다.
세차게 떨어지는 빗방울이 양철지붕에 떨어져 흡사 총 쏘는 것처럼 탕탕거렸다. 요란스런 빗소리는 주위에 모든 소리들을
삼켜버렸다. 안은 보이지 않고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는다. 창고 안에 사람이 있는지도 알 수 없다.
아마 없을 것이다. 엄마는 나와 엇갈려 집에 돌아갔을 것이다. 지금 아마도 집에 있을 것이다. 따뜻하게 아랫목을 덥히고는
맛난 점심을 준비하여 안방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나는 분명히 그럴 것이라 믿으며 발길을 돌렸다. 그런데 그렇게
세차게 내리던 비가 갑자기 잦아들었다. 잦아든 빗줄기에 안의 소리도 한결 낮아졌다. 나는 돌린 발걸음을 다시 창고쪽으로
향했다. 귀를 기울였다. 사람의 말소리가 들렸다. 애써 진정시킨 가슴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 그... 그카만... 아무일 없이 넘어 갈끼가?... 확실하나?........ “
“ 흐흐... 이 아지매... 속고만 살았능교?... 내 약속하께요... 이번 한번만 딱 대주만 내 그냥 넘어간다 몇번 얘기함미까?..... “
불안한 예감은 어김없이 적중하는가 보다. 다리가 떨려오기 시작했다. 떨림은 이내 몸 전체로 퍼져나갔다. 팔이 떨리더니
주먹이 절로 쥐어졌다.
“ 내 씨발... 지난번 성배한테 개망신 당한 거 생각하만... 아직도 치가 떨리니더... 내 아지매 강제로 겁탈해뿌고... 성배 그
개새끼 당장 영창 처넣고 싶은데... 내 아지매하고... 기후이 보고 참는다 안캄미까?... 성배 경찰한테 딸리가만... 불쌍한
두 모자 우예 살아갈꼬 생각하이... 내 성질대로 도저히 못하겠고... 하지만 나도 이대로는 도저히 못 넘어가니더... 이대로
넘어가면 내 홧병나서 죽겠니더.......... “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바닥은 잡동사니 건축자재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나는 그 중 단단해 보이는 각목을 집어
들었다. 무게감도 좋고 손에 딱 잡힌다. 종철이가 계속 이죽거렸다.
“ 그카이 딱 한번만 보지 함 대주소... 키킥~!... 그카만 내 그냥 넘어가께요... 아지매도 좆 맛 본지 한참 됐다... 아잉교?...
지난번에도 사실은 함 해보고 싶었다 아잉교?........... “
“ 아... 아이다~!.............. “
“ 아우... 씨발~!... 빨리 결정하소... 함 대주던가... 아님 성배 영창 처넣든가?.......... “
“ 다... 다른거 해주만 안되나?.............. “
“ 다른거 뭐요?................... “
“ 빠... 빨아주께.............. “
“ 우와~!... 아지매... 빠는것도 아능교? 아따... 조신한 아지매 인줄 알았구만... 내숭은 혼자 다 까고 있었네... 킥............. “
“ 아... 안되나?......... “
“ 안되니더~!... 좆 빨고 싶음 빠소... 하지만 보지는 꼭 대조야 합니데이............ “
“ 그... 그래는 못한다...!... “
“ 아... 씨팔~!!!... 성질 테스트 하나?... 어이?... 내 확 따먹고... 경찰서 신고 해뿌야겠네~!!!......... “
갑자기 파열음이 들렸다.
“ 아악~!.............. “
이어서 엄마의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들렸다. 내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랐다. 개새끼 감히 내 소중한 엄마를….!!! 두어발짝
물러선 다음 앞으로 달려가며 발로 문을 내질렀다. 종잇장 같은 양철문은 쉽게 떨어져 나갔다. 문이 열리자 창고의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창고 한구석에는 엄마가 널부러져 있었다. 종철이 놈이 아랫도리를 까고 엄마를 올라타고 있었다. 쾅하는
소리에 종철과 엄마는 놀란 눈으로 나를 돌아다 보았다. 찰나의 순간 나는 엄마의 얼굴을 보았다. 엄마의 눈에 눈물이 흘러
내리고 있었다.
“ 누... 누고?.............. “
빛을 등지고 있어 그런지 워낙 당황해서인지 종철이 누구냐고 소리쳤다. 오른손에 들려진 내 각목이 허공을 갈랐다.
“ 아악~!............. “
종철이 놈이 머리를 감싸쥐고 옆으로 나뒹굴었다. 무릎까지 까내린 바지에 걸려 허둥대던 놈은 내 각목을 미쳐 피하지 못하고
머리를 가격당하고 말았다. 옆으로 자빠진 놈은 꿈쩍하지 않았다. 정신을 잃은 모양이다. 놈의 좆은 쪼그라들어 있었다.
“ 기... 기훈아............. “
엄마는 놀란 토키눈으로 나를 올려다 보았다. 엄마의 몸빼바지는 종아리 아래까지 내려와 있었고, 무릎은 엉거주춤 벌어져
있었다. 팬티는 찢겨져 너덜거리고 있었다.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당했을 것이다. 찢겨진 팬티 사이로 엄마의 사타구니
예의 그 빽빽한 털 사이로 엄마의 보지가 보였다. 엄마의 보지는 벌어져 있었다. 양쪽 둔덕이 두툼하게 부풀어 올라서는
소음순을 비죽하니 내밀고 있었다. 벌어진 보지에는 물기가 어려 반짝거렸다. 왠지 모를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 이익~!... 이 개새끼~!............ “
감히 엄마 보지를 벌어지게 하다니 나 이외엔 누구도 손댈 수 없는 엄마 보지에 감히 물을 흘리게 했다. 나는 쓰러진 종철을
발로 마구 찼다. 내 발길질에도 종철은 꼼짝하지 않았다.
“ 기... 기훈아... 고... 고마해라...!......... “
“ 비키소... 이 개새끼를 내가 고마 마... 확! 직이뿔낍니더............. “
“ 기훈아~!... 고만~!!!!!............ “
엄마가 내 다리를 잡고 늘어졌다.
“ 이... 이상하데이... 주... 죽었는 거 아이가?............. “
엄마는 겁먹은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턱밑까지 차오르는 숨을 고르며 종철을 내려다 보았다. 종철의 머리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뭉글뭉글 많이도 흘러나왔다.
“ 어... 엄마... 피... 피난다............ “
“ 이... 이 일을 우야노...................... “
피가 솟구치는 종철의 뒷통수를 급히 손으로 막았지만 손가락 사이로 피가 흘러 나왔다. 엄마는 급히 아랫도리를 꾀어 입더니
내 얼굴을 양손으로 감싸 쥐었다.
“ 기후이... 내 말 똑디 들으래이... 니 여서 빨리 나가라... 비도 오고 해서 보는 사람 없을끼다............... “
“ 어... 엄마는요?........... “
“ 내 걱정은 하지마라... 내 알아서 다 하께............. “
“ 그... 그럴수는 없니더... 가... 같이 도망가시더.............. “
“ 아... 안된다............. “
“ 어... 엄마... 흑흑~!.............. “
겁이 났다. 바보같이 그만 울어버리고 말았다. 불쌍한 엄마를 당당하게 지켜주지는 못할 망정 찌질하게 울어버렸다.
“ 울지마라 엄마 개안타... 어여 빨리 나가라............. “
엄마는 나를 채근했다. 나는 어쩔 줄을 몰랐다.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창고가 갑자기 어두워졌다.
“ 뭐.. 뭔 일이고?............. “
우뚝하니 큰 그림자가 창고문을 가로막고는 우렁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 사... 삼촌~!............ “
삼촌이었다. 삼촌은 허황한 눈빛으로 창고안을 둘러보았다.
“ 사... 삼촌... 흑흑... 내... 내가 사람을 직있다... 종철이가... 엄마를 해꼬지 할라캐서... 그래가... 훌쩍.......... “
나는 훌쩍이며 삼촌을 바라보았다. 잠시 삼촌의 눈이 빠르게 돌아가더니 이내 눈빛이 결연해졌다.
“ 됐다~!... 얘기 안해도 안다... 기후이... 니 여서 빨리 나가라... 뒷처리는 내가 알아서 할꺼이까네.......... “
“ 훌쩍... 아... 아이다... 내가 이랬는긴데... 흑흑... 엄마나 델꼬 나가라... 훌쩍~!............. “
나는 떨리는 손을 진정시키려 교련복 바지를 움켜쥐었다. 갑자기 삼촌의 손이 허공을 갈랐다. 눈 앞에 번갯불이 번쩍였다.
“ 새끼야~!... 정신 안차리나?... 빨리 나가라 안카나~!!!!!!............ “
삼촌의 벼락 같은 고함소리에 신기하게도 정신이 번쩍 들었다.
“ 기훈아... 삼촌 말 들어라... 빨리 나가라.......... “
엄마도 거들었다. 나는 불쌍한 엄마를 두고 혼자 도망치는 비겁자가 아니다. 엄마와 삼촌이 빨리 도망가라고 나를 떠밀기에
할 수 없이 나는 도망치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스스로를 합리화 시켰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간신히 떼어 뒷걸음을 쳤다.
“ 아... 알았니더.............. “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뒷걸음 치는 내 어깨를 삼촌이 잡았다.
“ 기후이... 내 말 똑디 들어래이... 니 지금 여서 나가만... 개울로 해가 산으로 올라가라... 가는 길에 사람눈에 띄어서는
안된데이... 그라고... 산 개울물로 피 묻은 거 다 씻고 가라... 집에 가거들랑 옷 먼저 갈아입고... 지금 입은 옷은 뒷마당에
파묻어라... 알았제?........... “
“ 아... 알았다............. “
“ 지금부터 맘 단디 묵어야 된다... 니는 이 창고에 온 적 없데이... 알았제?.......... “
“ 오... 오민서 구서방 아제랑 마을 사람들 봤는데................ “
“ 개안타... 삼촌이랑 엄마 못 찾고 그냥 집에 갔다 카만 된다............ “
나는 창고문을 나섰다. 빗줄기가 다시 거세졌다. 나는 창고뒤를 돌아 개울에 몸을 숨긴 채 산으로 내처 달렸다. 개울물에
애써 몸을 씻을 필요가 없었다. 피는 빗물에 저절로 씻겨 내려갔다. 산길을 구비 돌아서 집 뒷마당으로 마침내 들어섰다.
할머니는 집에 계시지 않았다. 마실을 나갔을 것이다. 나는 삼촌 말대로 피 묻은 옷을 벗어서는 뒷마당 구석진 곳에 파묻었다.
세찬 비가 파묻은 흔적을 지워줄 것이다. 수돗가에서 찬물을 뒤집어 썼다. 혹시라도 피가 남아 있을 지도 모를 일이고 또
온 몸이 흙투성이었다.
사람을 죽였다. 분명히 종철이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갑자기 살떨리는 공포가 음습하여 나는 그만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새 옷으로 갈아입은 나는 안방 아랫목에 이불을 깔고 깊숙이 파고들었다. 엄마의 살냄새가 풍겨왔다. 엄마의 냄새는 졸음을
몰고 왔다. 이런 사고를 쳤는데도 잠이라니 신기할 따름이다.
“ 아이고~!... 이기 뭔일이고?............. “
몇시간이나 지났을까? 요란스런 할머니의 울음섞인 목소리에 잠을 깼다. 창호지 방문으로 햇살이 비쳐 들었다. 비가 그친
모양이다. 벽시계를 보니 오후 4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한 세시간 잔 모양이다.
“ 아이고~!... 우리 성배 우야노... 흑흑~!!............. “
“ 아지매... 진정하소... 다행히 종철이가 죽지는 않은 모양입디다... 별일 없을끼구마............. “
구서방 아제 목소리다. 드디어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하지만 종철이가 죽지는 않았다니 천만다행이다. 다시 공포가 엄습해
왔다. 나는 이불 속으로 더욱 깊게 파고 들었다. 흐흡~ 하고 엄마의 냄새를 들이켰다. 또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일어나서
삼촌이 그러지 않았다고 내가 그랬다고 말해야 하지만 나는 잠이 들고 싶었다.
삼촌은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자수했다는 것이 맞겠다. 종철이를 응급처치한 다음 공사현장 사무실에 자진하여 말했다고
한다. 종철은 별일 없었다. 내가 내리친 각목을 맞고 잠시 기절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폭력은 폭력.. 삼촌은 즉시 체포되어
군소재지 경찰서로 이송되었다. 엄마는 참고인으로 끌려갔다.
동네는 난리가 났다. 춘삼이 아제는 길길이 날뛰었다. 동네 회관에 사람들을 모아놓고 종철을 변명하고, 삼촌을 매도했다.
더 나아가 엄마까지 싸잡아 비난했다. 먼저 꼬리를 쳤다는 것이다. 일당 더 받을려고 종철을 꾀였다는 것이다. 아마도 종철이
그렇게 이야기했을 것이 분명하다. 종철의 평소 행동거지를 보아온 사람들은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춘삼이 아제에게 항변하지 못했다. 동네 사람 열명중 셋은 춘삼의 소작농이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라 괜한 오지랖으로 눈 밖에
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몇몇은 춘삼이 아제의 말에 적극적으로 동조하기 시작했다.
“ 성배 금마... 원래가 무식했던 놈 아이가?... 내 언젠가는 사고 칠 줄 알았다......... “
“ 맞제?... 내가 봐도 글터라... 카고... 기후이 엄마도 예삿 여자가 아이다... 그 눈웃음 살살 치민시로 궁디 살살 흔들때부터
내 알아봤다.......... “
“ 맞다... 맞아... 고래 여자가 꼬리치는데 안넘어갈 남자가 어데 있겠노?.............. “
결국 종철의 겁탈은 사라지고 엄마의 유혹과 삼촌의 폭력만 남았다. 삼촌은 곧바로 구속되었다. 종철은 아무일 없이 머리에
붕대를 둘둘 감고는 천연덕스럽게 마을로 돌아왔다. 분명 춘삼이 아제가 줄을 댔을 것이다. 참고인 조사를 마치고 온 엄마는
제 정신이 아니었다. 할머니와 나는 그런 엄마를 부둥켜 앉고 밤새 울었다. 다음날 할머니는 산너머로 해가 떨어지자 마자
나에게 말씀하셨다.
“ 우리 장손... 회관 공판장 가가... 막걸리 한 되 받아온나............. “
할머니는 막걸리 주전자와 비단천을 감은 봉투 같은 것을 들고 춘삼이 아제네로 갔다. 나중에 엄마에게 들은 얘기로는 숨겨둔
금가락지와 뱀골 논문서(그나마 우리 집에서 땅 구실을 하는 땅이었다)를 싸들고 가셨다고 한다. 할머니는 저녁 늦게 돌아
오셨다. 엄마는 맨발로 뛰어나가 할머니를 맞이하였다.
“ 우예 됐어요?.......... “
“ 자알 됐다... 며칠만 있으만 성배 나올끼다............ “
“ 아이고... 어무이 고생했니데이... 이기 다 제가 못나가... 흑흑................ “
엄마는 할머니를 안고는 울음을 터트렸다.
“ 아이다... 니가 와?... 그런 말 하지마래이... 니가 고생했지... 우지마라............ “
할머니는 엄마의 등을 토닥이며 말씀하셨다. 할머니의 주름진 눈에도 눈물이 흘려내렸다. 할머니의 말대로 삼촌은 이틀후에
풀려났다. 삼촌이 풀려나기 하루전 종철이는 동네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풀려난 삼촌은 핏발이 아주 벌겋게 선 눈으로 온통
살기를 뿌리고 다녔다. 동네 사람들은 어느 누구도 삼촌에게 다가가지 못했다. 몇날 며칠을 술만 퍼마셨다. 논 문서를 바쳤단
말에 삼촌은 더욱 실의에 빠져 버렸다. 농사꾼에게 땅이란 목숨과도 같은 것이다.
춥고 잔혹했던 겨울이 그렇게 지났다. 그리고 봄이 왔다. 봄이 오니 삼촌과 엄마는 조금 나아졌다. 인생의 수많은 질곡을
넘어온 그네들에게 이 시련 또한 넘지 못할 것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집안도 조금씩 자리를 잡아갔다. 논은 비록 잃었지만
밭이 있었다. 삼촌과 엄마는 더욱 열심히 일을 했다. 하지만 나의 봄은 아직 오지 않았다. 엄마는 종철과의 일 때문에 극도로
몸을 사렸다. 나는 물론 삼촌과도 제대로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내 옷가지며 책은 모두 삼촌방으로 옮겨졌다. 당연하게도
나는 그 날 이후 엄마와 같이 자지 못했다.
아마도 엄마는 일련의 사건이 자신 때문이라고 자책하는 듯 했다. 제대로 씻지도 않고 꾀죄죄한 모습으로 몸을 전혀 가꾸지
않았다. 오로지 일만 했다. 그해 봄 TV뉴스에서는 연일 대머리 장군이 뉴스 첫 꼭지로 나와서는 ‘반공과 사회 불순세력’을
척결하자고 외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이어 비상계엄이 선포되었다. 마을 어른들은 김일성이가 쳐들어 올 것이라고 벌벌
떨며 야단법석이었다. 통금시간도 빨라졌다. 마을 동네 뒷산 참나무에 걸린 대형 스피커에서 밤 10시에 울어대던 싸이렌이
비상계엄이 선포된 후에는 밤 8시만 되면 어김없이 에엥~ 거리며 울어댔다. 찔레꽃이 흐드러지게 핀 5월 어느날 하교길
버스안에서 청년들 몇몇이 수근거렸다.
“ 야... 니 들었나?... 전라도 광주에 간첩들이 쳐들어와가 총 쏘고 난리가 났다더라........... “
“ 간첩?... 간첩이 아이고... 광주 불량배들이 경찰서 쳐들어가가 총 뺏아가 사람들 싸죽이뿌고... 폭동 일으킨거라 카던데... “
“ 아이고... 야는... 알라카만 똑바로 알아래이... 군인들이 탱크고 장갑차고... 막 몰고 갔다 카던데... 불량배 몇놈 직일라고
탱크 몰고가나?... 불량배 아이다... 간첩이다.............. “
“ 맞나?... 그기 아이라 카던데.............. “
나는 순간 귀를 쫑긋거렸으나 그때뿐이었다. 폭동이든, 난리든 우리 동네는 예전과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었다. 멀리 떨어진
광주의 일은 곧 잊혀졌다. 나의 우리 집의 우리 마을의 일이 아니면 그렇게 쉽게 잊혀지나 보다. 광주의 일은 더 이상 우리
마을 사람들에게 회자되지 않았다. 그렇게 또 봄이 지나고 여름이 왔다.
여름 방학 끝 무렵 어느 토요일 오후 나는 마루에 앉아 연신 부채질을 하며 학력고사 준비에 매진하고 있었다. 이제 두어달만
더 지나면 대입학력고사다. 성적은 안정권이었다. 서울은 포기했다. 대구에 있는 공립대 법학과는 무난할 것이라 담임은 얘기
했다. 서울 유명 사립대도 가능성이 있었으나 비싼 등록금이며 유학비용 때문에 포기했다. 삼촌과 엄마에게 실력이 안된다고
거짓말을 했다. 내가 대구에 있는 대학에 입학하면 삼촌은 온 식구가 대구로 이사를 가자고 했다. 집안에 다시 웃음소리가
조금씩 들렸다.
그날 토요일 오후 무척이나 더웠다. 부채를 펄럭이며 열번은 더 본 ‘정석수학’을 빠르게 속독하고 있는데 느닷없이 경찰들이
서너명 들이닥쳤다.
“ 김성배!... 김성배!.......... “
일반 사복을 입은 사내가 소리치며 구둣발로 마루에 올라서는 안방문을 벌컥 열어 제쳤다. 다른 경찰들은 방이며 부엌이며
온 집안을 뒤지기 시작했다.
“ 와... 와... 이카심미꺼?........... “
잔뜩 겁먹은 나는 억지로 목을 지어짜 소리쳤다.
“ 김성배 어디 갔어?.............. “
사복입은 사내가 나를 노려보며 다구쳤다. 가늘게 찢어진 눈의 안광이 날카롭다. 나는 그 기세에 눌려버렸다.
“ 사... 삼촌은 들에 갔는데요............... “
“ 들... 어디?............... “
“ 저... 짝 배... 뱀골 밭에요............... “
“ 정말이지?... 거짓말하면 죽는다.......... “
“ 마... 맞니더................. “
경찰들은 쏜살같이 집을 빠져나갔다. 나는 뒷마당으로 집을 빠져나갔다. 삼촌은 뱀골 밭이 아니라 갯골 밭에 나갔던 것이다.
뱀골과 갯골은 정반대다. 숨이 턱밑으로 차 올랐으나 지체할 틈이 없었다. 삼촌이 또 경찰에 붙잡히면 안될 것 같았다. 막연한
불안감은 내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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