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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설

여승무원 - 25편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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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19가이드
댓글 0건 조회 163회 작성일 24-12-20 19:24

본문

20여년 전 옥임을 처음 본 순간부터 그 모든 악몽이 시작되었었다. 옥임을 처음 본 순간부터 성태는 걷잡을 수 없는 충동을
느꼈다. 
세상에 태어나서 고아로 자라나면서 세상의 모든 풍상을 맛보고 자라난 성태에게 옥임의 첫 모습은 그 첫 느낌은
도저히 자기자신의 떨림과 설레임을 주체할 수 없는 그런 느낌이었다. 고아원 친구인 태훈이 원망스러웠다.
 

아주 미웠다. 저주스러웠다. 이 빌어먹을 자식은 고아원에서 함께 자랄 때부터 자기와는 달랐다. 달라도 너무 많이 달랐다.
혼자서 온갖 착한 척은 다하고 혼자서 온갖 성실한 척은 다하면서 원장선생님과 고아원 선생님의 칭찬이란 칭찬은 독차지
했었다. 
누구에게나 인정받고 누구에게나 사랑받고 나와는 너무 달랐다.
 

역겨웠다. 네 놈 따위한테는 질 수 없다. 네 까짓 자식한테는 절대로 안진다. 두고 봐라 난 꼭 네 놈보다 성공한다. 난 꼭
네 놈보다 보란듯이 잘 살거다. 
떵떵거리면서 그렇게 살거다. 태어나자마자 버림 받았다. 이게 세상이다. 난 너 같은 우둔한
샌님이랑은 다르다. 
세상이 나한테 그랬던 것처럼 나도 세상을 그렇게 대하면서 살아갈거다. 그리고 꼭 꼭 내가 원하는 건
뭐든지 내것으로 만들면서 살아갈거다.
 

지지않는다. 난 절대로 지지않는다. 특히 너 같은 놈한테는 더더구나. 두고봐라. 그리고 이를 악물고 갖은 수모를 버텨가며

세상을 열심히 살고 있었다. 지독하게 살고 있었다. 미친듯이 앞을 보면서 살고 있었다. 어렵게 성실하게 살아가는 태훈보다
더 열심히 
더 악착같이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다. 서울에서 힘들게 결혼한 태훈에게 자신의 일은 잘 풀리고 있다고 자랑하며
더 돈벌이가 되는 직업을 소개해 주겠다고 생색까지 내 가면서 그 놈을 강릉까지 불러들였다.
 

그 놈에 대해 어려서부터 갖고있던 열등감 속 시원하게 하나하나 풀어주고 싶었다. 하지만 하늘은 도대체 어째서 하늘은
옥임 씨 같은 여자를 태훈이 같은 새끼한테 점지어 줘버린거란 말이냐!!! 옥임씨 같은 여자를 내가 꿈 속에서나 그리던 그런
여자를 
하필이면 태훈이 같은 병신새끼에게 태훈이 같은 머저리 새끼에게 옥임이 힘들게 사는 모습을 지켜보기 힘들다.
 

옥임이 지쳐있는 모습을 보면 나도 맥이 풀린다. 내 곁에 둘 수만 있다면 내 곁에 놔 둘수만 있다면 가져오고 싶다. 빼앗아
오고 싶다. 
내 여자로 만들어 버리고 싶다. 옥임의 모든 것을 가지고만 싶다. 미친듯이 부르짖었다. 술도 마셔보았다. 다른
술집 년들을 품에 안고 그 년들의 몸 속에 내 것을 마구 쑤셔넣으면서 
그 년들의 얼굴 위로 옥임의 쾌감과 희열로 일그러지는
얼굴을 포개얹어보았다.
 

하지만 그런 옥임을 품고 있을 것은 하필이면 그 머저리 같은 태훈이라는 놈이다. 그 새끼가 밤마다 옥임의 위에 올라타서는
옥임의 예쁜 얼굴과 그 고운 몸을 미친듯이 빨고 핥고 태훈이라는 새끼 죽여버리고 싶다. 옥임이 병으로 쓰러지고 태훈이
성태를 찾아왔다. 
기회다. 태훈이 놈을 제거하고 옥임이를 내 여자로 만들 수 있는 기회였다. 하늘이 내려주신 기회이다.
 

이 틈을 놓쳐선 안된다. 절대로 놓쳐선 안된다. 악마와 계약을 해도 좋다. 악마가 내민 계약서에 싸인을 찍는다. 아주 기꺼이
찍는다. 
주저없이 찍는다. 성태는 태훈에게 옥임을 살리려면 돈이 필요하다고 했다. 아주 큰 돈이 필요할 것이라고 속삭였다.
그리고 태훈에게 그 순간 목숨보다 더 필요했던 옥임을 살릴 목돈을 벌 수 있는 방법으로 밀수를 권유했다.

밀수거래를 소개해 주었다. 악마에게 영혼을 팔라고 태훈에게 속삭였다. 그리고 태훈을 설득하는데 성공했다. 아내를 구해야
한다는 일념에 사로잡힌 
집념에 사로잡힌 태훈은 제 정신이 아니었다. 냉철한 이성을 상실하고 있었다. 아주 간단했다. 
밀수거리를 소개하고선 
아는 이를 통해 경찰에 밀고했다. 현장에서 태훈은 체포됐다. 실형을 선고받았다.
 

태훈이 주변에서 사라지자 옥임을 찾아갔다. 재빨리 제 몸을 가누지 못하고 병마에 시달리던 옥임을 안전한 곳으로 옮겼다.
옥임을 대신 돌보았다. 옥임을 정성껏 돌보면서 말했다. 태훈이 나쁜 짓을 저지르다 경찰에 체포될까봐 도주했다고 거짓말을
했다. 
어떤 아는 사람의 소개로 밀항선을 타고 일본으로 도주했다고 거짓말을 했다. 조금만 기다리라고 했다.
 

조금만 기다리고 일이 잠잠해지고 안전해지면 그때 다시 태훈을 만날 수 있을거라고 안심시켰다. 옥임과 연락이 전혀 닿지
못하자 감옥의 태훈은 초조했다. 
미칠듯한 심정에 태훈은 탈옥을 두번이나 시도했다. 그러나 두 번 모두 실패하고 말았다.
장발장이 굶주리는 동생을 위해 빵 한조각 훔치다가 체포되어 그 죄로 가혹한 실형을 선고받고 집에서 자신을 아주 초조하게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동생을 위해 
탈옥을 시도했다가 실패하여 19년의 감옥살이를 했다.
 

태훈 또한 그렇게 형량이 더 얹어졌다. 형량이 더 길어지고 말았다. 태훈이 그렇게 옥임과 혜미를 그리워하면서 아주 가혹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을 무렵 
성태는 옥임에게 태훈의 사망신고서를 내밀었다. 배가 바다에 가라앉아 태훈이 그렇게 희생되고
말았다며 
옥임에게 거짓말을 하면서 통곡했다. 하나밖에 없는 친구를 잃었다면서 흐느꼈다.
 

위조된 사망신고서를 병약한 옥임이 알아볼리가 없었다. 옥임은 어린 혜미를 껴안고서 오열했다. 몇 번이나 정신을 잃고서
까무라치고 말았다. 
그 모습을 보면서 성태도 괴로웠다. 괴로워하는 힘들어하는 옥임의 모습을 보면서 깊은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혹시 옥임조차도 어떻게 되는 것이 아닌가하여 불안하고 초조했다. 옥임을 지켜야만 한다. 내 여자로 만들어야 한다.
 

성태는 좋은 대도시의 병원으로 옥임을 옮겨 수술을 시켰다. 옥임을 치료하도록 했다. 정성껏 치료했다. 수술과 치료 덕분에
다행히 옥임의 건강도 나날이 호전되어 갔다. 그리고 결국 성태는 끝내 옥임의 마음을 얻었다. 아주 어린 혜미를 위해서라도
가엾은 혜미를 위해서라도 옥임은 성태에게 기댈 수 밖에 없었다.
 

자신을 위해 비참하고 외롭게 죽어간 아주 가엾은 남편 태훈에게 마음속으로 용서를 빌고 또 빌면서 눈물을 흘리면서 옥임은
그렇게 성태의 품에 안겼다. 
옥임을 품에 안은 성태는 아주 즐거웠다. 설레었다. 행복했다. 태어나서 난생 처음으로 진정한
만족감을 느꼈다. 
하지만 두려웠다. 언젠가 태훈에 의해 이 행복이 깨질까봐 두려운 마음이 언제나 마음 속에 남아있었다.
 

옥임을 데리고 부산으로 내려가서 거기서 그동안 벌어 모았던 돈과 인맥으로 성태는 아주 조그마한 사업을 시작했다. 성태의
수완이 좋았고 성격이 모질었기에 다행히 사업은 잘 풀려나갔다. 
그리고 몇 년 후에는 인천으로 사업장을 옮기고 서울에도
집을 얻었다. 
태훈의 소식은 없었다. 탈옥을 시도하다가 형량이 얹어졌다는 이야기는 아는 이를 통해 들었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 태훈이 영원히 사라지기를 원했다. 몸이 바빠지면서 점차 태훈의 일도 깜박하며 잊어갔다. 혜미는
무럭무럭 잘 자라주었다. 
건강했다. 총명했다. 마음씀씀이가 깊었다.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하지만 착하고 마음씀씀이가
깊은 혜미의 모습은 
혜미의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꺼림칙했다. 혜미의 그런 모습은 혜미는 역시 나의 피가 아니구나 라고
성태가 느꼈다. 
그리고 태훈에 대한 경계심과 두려움으로 성태는 자신도 모르게 어린 혜미에게 더욱 냉정해져만 갔다.
 

그러던 어느날 일이 생겨 잠깐 집으로 들르던 성태의 눈에 혜미가 웬 낯선 남자와 함께 놀이터 주변에 있는 모습이 들어왔다.
그 남자의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성태는 가슴이 철렁했다. 태훈이었다. 예전의 밝은 모습이 아닌 사나운 운명에 시달린 아주
초췌한 모습이었지만 
자신이 그 사나운 운명 속으로 몰아넣었던 친구 태훈이었다.
 

저 자식이 내 어린 시절부터의 증오와 질투의 대상이었던 저 자식이 마침내 복수하러 나타났구나. 나에게서 옥임을 빼앗기
위해 나타나고야 말았구나. 
성태는 그날부터 혜미를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태훈이란 놈은 어린 혜미에게 무슨 이야기를
했을까. 
다행히 옥임은 아직 아무 것도 모르는 것 같다. 태훈이 자식이 아직 옥임의 앞에는 나타나지 않은 것 같다.
 

옥임은 나와 함께 사는 적지않은 세월동안 아직도 완전히 나의 여자가 되지는 않았다. 내가 옥임의 마음을 그렇게까지 잡지
못했다. 
옥임은 줄곧 전 남편 태훈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죄책감을 갖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성태는 괴로웠다.
태훈에 대한 적개심이 이글이글 불타올랐다. 옥임까지도 덩달아 원망스러웠다.
 

“몸은... 네 몸은 내 곁에 있어도... 마음만은 여태껏 태훈의 곁에서 떠나지 못하고 있단 말이냐??... 결국... 결국... 내가 가진
 것은... 
네 텅 비어있는 몸뚱아리 뿐이란 말이야??... 내가... 내가... 어때서?... 내가... 도대체 태훈이 놈보다 못한게 뭐가
 있어서??... 
그놈이 뭔데!!!... 도대체 그깟 놈이 뭐라고!!!............................................”

태훈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 
옥임은 다시 태훈에게로 돌아갈 것이다.


“조 사장님... 이런건 고발을 하셔야 해요......................................................”
 

“왜... 이런 일이 생기는건지... 요즘들어 사업도 잘 안풀리고 있는데, 딸아이마저... 저도 속이 많이 상하네요... 어쨌든 현
 박사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
 

성태가 입맛이 쓰다는 듯이 인상을 찌푸리며 담배연기를 내 뱉으며 의사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체면도 있고 하니 그냥 조용히 집안끼리 풀어나가고 싶다는 심정은 이해하겠지만... 그래도 이런게 꼭 쉬쉬한다고 해서 될
 문제가 아냐... 
아무튼 한번 잘 생각해봐요...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나도 도울 수 있는게 있다면 일부러라도 힘써서...
 도울테니.... 
원 미친 놈... 세상에 젊은 여자를 저딴 식으로 때리는게 어딨어... 쯧쯧... 이거 원 어디 세상 무서워서 딸아이
 간수 제대로 할 수 있겠나... 
암튼 상처가 다 아물 때까지 당분간은 푹 쉬면서 요양이 필요해요... 그것보다 더 주의해야
 할 건 정신적인 상처가 클 테니까... 
조 사장님이 바쁘시더라도 특히 신경 많이 써주셔야 할거에요........................ “
 

“알겠습니다... 제가 각별히 신경쓰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저도 나름대로 생각하고 있는게 있으니까... 잘 의논해서 해결
 잘할 수 있도록 하지요... 
저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겁니다... 어쨌든 일이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박사님께서도 신경 좀
 잘 써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요... 그건 내가 다 알아서 처신할 테니 아무 염려 마시고... 그럼... 나중에 또 뵙시다.............................”
 

의사를 배웅하고 거실로 돌아와서 성태는 물끄러미 2층을 바라보았다. 다시 담배를 한 개피 꺼내들고는 불을 붙인다. 마구
뿜어내는 담배연기 속에 뭔가 답답한 심경이 가득 들어있는 것만 같이 느껴졌다.
 

“내가 왜 그랬을까...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는데..........................................................”
 

문득 마음 한 구석이 아려왔다. 다시 고개를 들어 2층을 바라보다 슬며시 계단을 따라 올라가보았다. 문을 살며시 열고는
혜미의 방 안을 들여다본다. 
혜미를 돌보던 간호사가 고개를 숙여 인사한다. 혜미가 팔에 링거를 꽂은 채로 침대에 누워서
잠들어 있다. 
무척 지쳐있는 얼굴이었다. 눈을 감고있는 표정이 다소 일그러져 있다. 다행히 얼굴의 붓기는 많이 가라앉아
있었다. 
하지만 입술 주변은 많이 부어 있었다. 성태가 가까이 침대 곁으로 다가섰다.
 

잠든 혜미의 얼굴을 내려다본다. 성태가 잠시 그렇게 아무 말도 없이 서서 혜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문득 혜미의 얼굴이
뭔가 인기척을 느끼는 듯 흠칫 하더니 아주 서서히 힘겹게 살며시 눈을 떴다. 혜미의 눈빛이 잠시 천장 여기저기를 헤매는 듯
했다. 
그러더니 살며시 눈과 고개를 옆으로 힘겹게 돌리고 자신을 내려다보는 성태의 눈과 마주쳤다. 순간 혜미의 눈이 아주
약간 아주 약간 커지는 듯 했다. 
하지만 결코 상당히 놀라거나 어떤 동요는 전혀 보이지 않고 있었다.
 

이내 냉정을 되찾은 듯 그냥 그렇게 잠시동안 성태의 눈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러더니 곧바로 다시 고개를 똑바로 돌리고선
살며시 눈을 감았다. 
아주 잠시동안의 침묵이 흘렀다. 힘겹게 혜미가 다소 힘겨운 듯 입을 열고 중얼거리듯 말을 건넸다.
 

“회사... 회사에... 연락 좀... 해... 주세요....................................................”
 

성태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내가 알아서 처리해주마...............................................................”
 

혜미가 잠시 침묵하더니 다시 말을 한다.
 

“계... 계단에서... 굴러서... 다리를 다쳤다고 해주세요... 대학 도서관에서... 토익공부 하고서... 밤에... 내려오다가 그랬다고
 하시면.... 
정... 정말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의 병가라면... 팀 고가에 영향을... 좀 줄일 수도 있을지도.. 데...데이오프 아직
 이틀 더 남았으니까.................................................................................."
 

성태가 무슨 말인지 알아 들었다는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가 진단서도 알아서 처리해주마......................................................"
 

혜미는 팀원을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항공사 승무원의 경우 병가기록이 생기면 자신의 진급은 물론 팀 고가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나름대로 업무에 필요한 영어실력 향상을 위한 시험공부를 하다가 실수로 다쳐서 어쩔 수 없는 병가를 득하게
된다면 정상참작이 인정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이다. 
성태도 사업을 하는 사람으로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성태는 기분이 야릇해졌다.

“너라는 아이는....!!........................................................................."
 

잠시 혼자서 뭔가 생각하다가 고개를 가로 젓는다. 그리고 말한다.
 

“딴 생각 말고 우선 좀 쉬어라... 네가 이야기한대로 처리해 줄테니... 그건 걱정말고... 아빠가 회사 다녀와서 자세히 이야기
 하자꾸나... 
많이 늦었다..................................................................”
 

혜미가 눈을 감은 채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대신 수고 좀 해주십시오............................................................”
 

성태가 간호사에게 아주 가볍게 목례하자 간호사도 황급히 답례했다. 성태가 다시한번 혜미의 얼굴을 내려다보더니 밖으로
나갔다.
 

“탁!....................................................................................................”
 

문을 닫는 소리가 들려온다.
 

“아버님께서 참 젊잖으시고 배려심이 깊으시네요... 아버님 생각하셔서도 어서 몸이 나으셔야죠.............................”
 

어느정도 나이가 있는 간호사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위로하듯이 혜미에게 말을 건넸다. 혜미가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눈을
들어 간호사의 얼굴을 담담히 바라보다가 
입가에 살짝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다.
 

“그럼요... 우리 아빠 좋으신 분이세요..............................................................”
 

그리고 다시 살짝 눈을 감고는 고개를 돌렸다. 새벽의 일이 새벽의 일이 살짝 혜미의 뇌리에 떠오른다. 그 무서웠던 바깥의
무서웠던 날씨와도 같이 
온통 광기에 휩싸였었던 새벽의 참경이 너무나도 두려웠다. 공포에 떨었다. 두려워서 미칠 것만
같았다. 
아빠의 그런 모습은 그렇게 광기에 휩싸인듯한 모습은 처음 보았다. 이대로 여기서 이렇게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
했다. 
스스로의 다급한 절박한 생명의 위기에서는 다른 그 어느 것도 생각할 여지가 없었다.
 

심지어 사랑하는 재성의 얼굴 조차도 이름 조차도 그 순간 만큼은 머리에 떠올릴 여유가 없었다. 나중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몸을 가눌 수가 없었다. 움직이면 극심한 통증이 밀려왔다. 자신의 몸이 불과 잠시의 시간 동안에 잠시 전의 멀쩡하던 때와는
너무나 달라져 있음을 느꼈다. 
그러면서도 우선은 살았구나 하는 생각에 우선 안심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통증은
여전히 혜미를 짖궂게 괴롭히고 있었다. 
혜미의 얼굴이 통증으로 약간 찌푸려진다.
 

“하지만... 하지만............................................................................”
 

혜미가 생각하고 있었다.
 

“후회하지 않아... 결과는 이렇게 되었다 할지라도... 잘한거야... 잘한거라고 생각해... 그렇게... 이야기를 했었어야만...
 했어... 
전하지 않으면 알 수 없어... 더 힘이 들고... 더 어렵다 해도... 또다시 이런 일이 벌어진다 해도.. 두려워해선 안돼
 두려워하면 안되는거야...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안되었어... 어차피... 어차피 쉬울거라곤 생각하지 않았어... 그렇게
 간단하게 해결될 일이 아니야... 
쓸데 없는 희망따위는... 터무니 없는 바람따위는... 갖고있지 않아... 현실에서 벗어날 수
 없어... 
현실에서 생각하자... 현실에서 방법을 찾자... 무슨 수를 쓰서라도... 끝내는... 그래... 끝내는 이겨낼 수 있을거야
 희망이 있잖아... 희망이 있는 한... 처음 결심대로... 희망의 끝을 꽉 잡고 놓지말자............................”
 

혜미가 속으로 스스로에게 중얼거리며 다짐하고 있었다.
 

“결정은 네가 해라.....................................................................”
 

순간 뇌리에 그 날의 재성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네가... 결정할 수 있어................................................................”
 

재성이 내게 그렇게 말해 주었다.
 

“오빠..........................................................................................”
 

재성의 얼굴을 떠올려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입 밖으로 오빠라는 단어가 흘러나오자 간호사가 고개를 돌려서
혜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눈을 감고있는 혜미에서 흘러내리는 한줄기 맑은 눈물이 간호사의 눈에 들어왔다.
 

“많이 아프세요?..............................................................................”
 

간호사가 아주 황급히 물었다. 혜미가 눈을 감고 누운 채로 고개를 천천히 가로저었다. 혜미의 생각이 머리 속에서 이어지고
있었다.
 

“그래... 오빠... 내가 선택하는 거야... 오빠 말처럼... 오빠가 내게 들려준 것처럼... 오빠가 내게 그렇게... 용기를 북돋워 준
 것처럼... 
내가 결정할 수 있어... 그래요... 나 어젯밤 용기를 낼 수 있었어요... 후회하지 않아요... 앞으로도... 계속 용기를
 낼거야... 
희망을 버리지 않고... 나 두려워도... 나 무서워도... 예전처럼 그렇게 웅크리고 있지 않을께요... 이젠 알아요...
 웅크리고 있기만 해선 안된다는걸...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서는 안된다는 걸... 그냥 가만히 있기만 해서는...
 아무 것도 바꿀 수가 없다는걸... 나도... 나도... 남들처럼... 평범한 여자가 될 수 있을거야... 꼭... 꼭... 반드시 그렇게...
 고마워 오빠... 우리 반드시... 반드시 잘 될거야... 반드시 잘 될거야... 나 혼자만... 나 혼자만 힘겹게... 혼자서만 애쓰진
 않을께... 
오빠가... 도와줘요... 오빠가... 같이 나눠줘요... 수고스럽더라도... 그럼... 나도... 더 큰 용기 낼수 있을테니...
 사랑해요... 오빠... 사랑해... 사랑합니다... 당신..........................................................”
 

눈을 감고 누운 채로 눈물 한줄기를 흘리고 있는 혜미의 얼굴 그 위에 자신도 모르게 미소 한조각이 덧붙여진다. 몸은 많이
불편해도 
마음은 포근하기만 하다. 간호사가 그런 혜미의 얼굴을 내려다보면서 고개를 갸웃하고 있었다. 한가지 문제가 해결
되면 또 새로운 한가지 문제가 다가온다. 
하지만 이젠 상관없다.
 

새롭게 다가오는 문제들을 한가지씩 한가지씩 모두 처리해 버릴 테다. 그리고 혜미를 둘러싸고 괴롭히는 그 문제들을 모두
해치워버릴 테다. 
그렇게 되면 혜미의 앞날은 틀림없이 조금이나마 더 밝아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밝아진 앞날의 혜미
곁에는 내가 함께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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