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바이트 이야기 - 45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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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가 한수정에게서 허락을 받았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지혜가 수정이에게 정말로 물어봤고 또 수정이는 지혜가 하는
말에 정말로 동의했을까? 혹시 지혜가 나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혜가 장난 삼아 나에게 거짓말을 한 적은
여러 번 있다. 요새는 오히려 내가 지혜에게 거짓말을 심하게 하는 편이다. 그렇지만 지혜가 아직은 이런 말도 안 되는 일로
거짓말을 나에게 한 적은 없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한수정에게 물어볼 수도 없는 일이다.
친한 여자들끼리는 한 여자의 남친이랑 잠자리를 같이 한다는 말은 여러 번 들었다. 한수정이 그 짧은 기간 동안에 지혜랑
가까우면 얼마나 가까워졌다고 그런 동의를 했을까? 물론 두 여자가 동시에 같이 침대에 가는 것은 아니지만 수정이가 동의
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내가 아는 한수정은 절대로 그럴 사람이 아니다. 지혜와 조해수가 왔다. 조해수는 뒷자리로 지혜는
내 옆자리로 탔다. 우리는 출발했다. 뒤에서 조해수가 말했다.
"나쁜 계집애..........."
"누구?... 나?........."
"완전 감쪽같이 속이고..........."
"말 했거든............."
"두달 지나서 말해놓고도 말했다고?................."
"늦게 했어도 말은 했지........."
"그런 일 있으면 바로 말하기로 했잖아!......"
"시간이 쫌 걸린 것은 미안하다고... 그래서 오늘 오빠가 쐈잖아.........."
"야아... 오빠가 나한테만 쐈냐?... 사기는 나한테 쳐놓고... 쏘는 데로는 너네 패꺼리들을 죄다 불러들이냐?........"
"기다려 봐... 말은 새 나갔고... 오늘은 애들 입부터 막아야 했으니까 그런 것이고... 좀 있다가 너한테 특별히 쏠꺼야......
오빠... 그럴 꺼지?..........."
"그러자... 지혜가 그래야 한다고 하면 당연히 그래야지... 그 대신에 이번 시험 끝나면......."
"오빠!... 그럼 한달 정도 있어야 하는데?........."
"나... 지금 회사 일로 바쁘다고 했거든.........."
"알았어... 한달 정도야 뭐........."
"너한테는 <한달 정도>지만, 나한테는 <한달 씩이나>거든요............."
"걱정하지 마시고... 시험 공부나 하셔... 우리 오빠 엄청 착하거든... 몇 일 있다가 내가 또 아주 빡씨게 졸라대면 한달 안
걸려도 돼........."
나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지혜를 쳐다보았다. 그런데 지혜는 나에게 웃으며 윙크를 한다. 우리는 오피스텔에 도착했다.
지혜는 조해수를 데리고 5층에 있는 자기 텔로 가고 나는 내 텔로 올라왔다. 나는 노트북에서 USB에 담아온 PT파일을
열어보았다. 이경숙이 꼼꼼하게 만들어놓은 파일을 한 페이지씩 넘기면서 내일 회의에서 있을 PT를 머리 속에서 준비했다.
밤 11시가 넘고 있다. 아무래도 분위기로 보면 오늘 공부는 불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지혜에게서 전화가 온다.
"오빠... 늦어서 미안한데... 우리 와인 딱 두 잔만 하면 안될까?... 안주는 내가 들고 올라갈께........."
"새삼스럽게 왜 이러실까?... 밤 11시가 뭐가 늦어?... 이 시간에 술 마신 것이 어디 한두번이야?.........."
"아이.. 오늘은 나 혼자가 아니잖아......"
"그 대신 내일 학교에 가니까 많이는 안돼........."
"딱 두잔이면 된다니까.........."
"나는 괜찮으니까 올라와... 그 대신에 공부부터 하고........"
"하이잉... 오빠아.........."
"수학 딱 다섯 문제만 풀고........."
"하아... 돌겠다... 진짜 이럴꺼야?............”
“싫으면 말고............”
“알았어... 갈께........."
지혜와 해수가 들어왔다. 지혜는 먹을 것들이 들어있는 종이 팩을 그리고 해수는 아이스크림 통을 들고 왔다.
나는 얘네들을 데리고 내 책상으로 가서 약속한 수학 문제를 풀게 했다. 이번 학기의 수학은 확률과 통계부분이다. 그런데
지혜는 비록 한 문제를 틀리기는 했지만 다 풀었다. 우리는 맨 처음으로 돌아가서 이 문제를 풀기 위해 필요한 공식 찾기부터
시작했다. 나는 처음부터 개념을 다시 짚고, 조심해야 할 곳을 체크해주었다. 그런데 조해수는 손도 대지 못하고 내 설명도
알아듣지 못한다. 조해수의 상태는 심각한 것 같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말했다.
"이 문제들은 엄청 길어... 그래서 글을 읽고 이해를 못하는 이과 애들한테는 쥐약이야.........."
"맞아요... 문제를 몇 번을 읽어도 도통 뭐라는 지 도대체 감이 안 와요........."
조혜수는 처음부터가 허당이다. 조해수는 공부를 다시 하겠다면서 손을 들었다. 나는 이들을 소파로 앉게 하고 와인 병을
열었다. 우리는 와인을 마시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우리는 자리를 끝내기로 했다. 그런데 조해수가 나에게 물었다.
"오빠... 첫경험은 언제였어요?... 어땠어요?..............."
"야아아... 조해수... 그런 얘기 꺼내면 안되지... 여기 내가 있잖아?........"
"하이구우... 서지혜가 그런 말은 또 듣기 싫어하나?... 하하하........."
"우리 오빠한테 그런 말 시키지 말고 너나 얘기해봐... 어제 밤에 어땠어?..........."
"어제 밤?... 어제 밤에 뭐가?......."
"계집애야... 어제 밤에 준석이랑 어쨌냐고.........."
"준석이가 왜?.........."
"너 어제 밤에 준석이랑 잤다며?..........."
"그래... 그게 뭐 잘못됐어?............."
"그 잠자리가 어땠냐고!......."
"얘는... 지금 또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네가 준석이랑 잤다고 안했어?............"
"잤다... 왜?... 그게 뭐 이상해?............"
"이상한 것이 아니고... 그 잠자리가 어땠냐고..........."
"너 지인짜 이상하다... 도대체 뭐가 어떻다는 거야?... 너네들 다 집에 가고 나서... 치우면서 보니까 맥주가 남았더라...
준석이가 같은 아파트에서 살잖아?... 올 수 있으면 오라고 전화했더니... 금방 오던데?... 둘이 소파에서 TV보면서 그 맥주
마시다가 그대로 잠들었어... 정신차리고 보니까 아침 6시반이 넘었던데?... 그래서 준석이 깨워서 집에 보냈고... 나도
준비해서 학교로 갔지... 하루 종일 속쓰려서 죽을 맛이었고... 그래... 아침에 정신차리고 보니까 엄청 황당하긴 하더라...
뭘 더 알고 싶은 거야?........."
"뭐?... 뭐야?........"
"내 말 이해 못했어?... 할 수 없다... 그래도 그냥 살아... 나... 똑같은 얘기 두 번은 못하거든... 그런데 너 표정이 왜
이모양이야?.........."
“어?.. 아냐... 너네 참 딱하다고...........”
순식간에 지혜의 얼굴이 완전 빨개지고 지혜는 고개를 숙인다. 나는 지혜에게 뭐라고 말하려고 했지만 참기로 했다. 비어있는
세 잔에 와인을 따랐다.
"이제 세잔째거든... 마시고 자러 가세요... 이제 잠도 잘 올껄?........."
우리는 잔을 비우고 수다를 떨다가 지혜는 조해수와 같이 내려갔다. 지혜의 얼굴 표정은 밝지가 않다. 나는 내일 있을 PT
준비를 하느라고 제법 늦게까지 있다가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에 아이린은 달콤한 키스로 나를 깨웠다.
"애들은요?........"
"학교에 데려다 주고 왔어............."
나도 출근 준비를 끝냈다. 오늘은 회의 때문에 외근을 나가지 않으므로 차를 갖고 가기로 했다. 평상시보다 30분정도 일찍
최수희를 태워서 회사로 갔다. 나는 PT 준비를 하고 최수희는 빵과 커피를 가져왔다.
"배에서 쪼르륵 소리가 나면 안돼......."
"누나... 고마워..........."
"얘네들 지금 노숙자야?........"
"과장님도 이리 앉으세요............"
강은영 과장이 들어오면서 우리를 보고 한마디 했다. 최수희는 강과장을 앉히고 그녀에게도 커피를 따라준다.
"부장님 전화 받고 어제 밤에 잠을 별로 못 잤어... 막내... 오늘 잘 할 수 있는 거지?........"
"그렇게 심각해요?..........."
"이번에 부장님이 노땅들을 약간 밀어내야 하는 일이거든... 그럼 그 노땅들이 쉽게 밀리려고 하겠어?... 우리가 해낸 이번
분기 20% 증가율이라는 숫자는 지금까지 이 회사 생긴 이후 처음이야... 이번이 완전 기회거든... 이번 아니면 부장님도
가망이 없다고 봐야지........"
"그럼... 난 뭔지도 모르고 이렇게 해도 돼요?..........."
"네가 하는 PT가 시작이란 말이야... 일단 오늘 일이 잘 되면 알게 돼... 넌 아무것도 모르니까 마음 푹 놓고 준비한 대로
하면 돼.............."
"알았어요... 실력껏 할 테니까... 과장님 걱정하지 마세요.........."
"과고 출신에 대한대생이니까 그런 정도는 아무 문제가 없을꺼야......."
"오늘 하는 PT가 학교랑은 아무 상관이 없거든요............"
드디어 출근 시간이다. 오늘은 사무실로 들어오는 여직원들이 나와 최수희에게 놀리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녀들도 뭔가에
긴장하는 분위기이다. 최수희는 오늘 외근을 다른 직원들에게 맡겨서 내 보낸다. 시간이 되었다며 강과장은 우리를 데리고
회의실로 갔다. 최수희는 이경숙과 함께 PT 준비를 한다. 강과장과 나는 앞쪽에 있는 우리 부장 자리의 뒤에 있는 빈 의자에
앉았다. 드디어 간부들이 들어온다. 모두 50명 정도 되는 것 같은데, 대부분이 여자들이다. 남자는 열명 정도 되는 것 같다.
최수희와 이경숙은 나에게 두 손가락으로 브이(V)자를 흔들며 회의실을 나간다. 우리 부장이 들어와서 자기 자리에 앉기 전에
낮은 소리로 나에게 물었다.
"이상 없지?......."
"예........"
"그저께 했던 것 처럼만 부탁하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한참 동안 회의가 진행 되지만 내 귀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어쩌다 귀에 들리는 말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내 머리 속에는 내가 발표할 내용들이 한 페이지씩 차례로 계속해서 떠오른다. 드디어 사회자가 이번 분기를 분석한 결과를
보고하라고 했다. 우리 부장이 앞으로 나가서 자기가 분석한 것을 표와 그래프로 보여주면서 발표를 했다. 그는 살아남으려면
아직도 개선하여야 할 점이 현장에서 너무 많이 드러나고 있다면서 나를 앞으로 불러냈다. 그는 나를 소개했다.
"여기에 있는 김태현군은 처음에는 저희 총무과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조하는 아르바이트생으로 근무를 시작했습니다.....
김군이 어느 날 매장으로 업무지원을 나갔다가 그의 눈에 보이는 문제점들을 과장에게 보고를 했습니다... 저는 그날 당장
총무과장과 발빠르게 대처를 했습니다... 직원들을 고객인 것처럼 위장을 시켜서 매장으로 들여보내는 것입니다... 이 팀은
지금까지 몇 달 동안 매일매일 서울 경기지역에 있는 우리 매장들을 순회하면서 우리가 무엇을 잘 못하고 있는가를 찾아
냈습니다... 그 문제점들 중에서 중요한 몇 가지를 선별해서 이 자리에서 보고하고자 합니다......."
부장은 나에게 연단을 넘겨주고 앞에 있는 빈 자리에 앉았다. 나는 인사를 하고 나니까 벌써 긴장된다. 그래도 침착하려고
애를 쓰면서 PT 파일을 띄워 올렸다. 각 페이지 마다 들어있는 <우리의 문제 10가지>를 하나씩 차근차근 소개했다. 간부들은
진지하게 화면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들은 뭔가 알아듣고 있다는 신호를 보낸다. 그런데 나는 그들이 정말로 이해를
했는지 의심이 갔다.
"지금까지 말씀 드린 것은 우리 매장들을 고객의 입장에서 바라본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좋은 사업을 계획하여 추진한다
하더라도... 우리 고객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하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매장, 직원, 상품, 판매,
상담 등에서 생기는 문제들을 빨리 파악하여 대처한다면 30%나 50% 초과 달성에도 도전해볼 수 있다고 봅니다... 지금까지
제가 말씀 드린 것 말고도 궁금하신 점은 질문하십시오.............."
"영업부에서 질문드립니다... 김태현씨는 신선식품을 판매하는 데에 문제가 있다고 했는데... 구체적인 예를 들어주실 수
있습니까?........"
"한가지 예를 들자면 신선도가 높은 상품의 경우... 그러니까 우유, 냉장햄, 어묵등에는 생산자가 유통기한을 표시하기는
합니다... 유통기한이 아직 2일 남아있는 상품을 고객이 구입했다고 가정하겠습니다. 우선 여름에 기온이 높은 날에는
소비자가 운반이나 보관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 소비자가 구매 후 3일째 되는 날, 자기는 3일 전에
샀다면서 안심하고 그 상품을 들여다보면 유통기한은 어제까지였으니까 이미 지나버렸습니다... 그러면 겨우 3일 전에 산
상품을 그는 버려야 합니다..... 우리는 유통기한이 지나지 않은 상품을 판매했으므로 우리 잘못은 없습니다. ..그런데 그는
어떤 기분일까요?... 그는 자신이 유통기한을 제대로 살펴보지 않았다는 것을 후회할까요?... 아니면 우리 매장이 거의 맛이
간 상품을 팔아치우는 데에 자신이 당했다면서 억울하다고 생각할까요?... 이런 상품들의 경우에 만일 유통기간이 10일
이라면 절반으로 하여 유통기한 만료 5일 전에는 매장에서 치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냉장보관이 아니라 진열대에 진열
되어있는 상품은 당일 판매라든가... 이런 방법을 써서 더 일찍 치워야겠죠... 이것은 고객이 우리 매장에서는 안심하고
구입해도 된다는 믿음을 갖게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이 정도면 질문에 답변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마케팅에서 질문드립니다... 판매 과정에서 결제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습니까?......"
"지금까지 우리는 카드사와 제휴를 하고 있습니다... 이 카드들은 신용카드나 체크카드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 중저가
브랜드로 인식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면 직불카드로 확장하면 안되겠습니까?... 그 이유는 상품 대금을 카드로 결제
하면 여러 가지 할인혜택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현금결제를 하면서 할인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고객들이 현장에는 제법
많았습니다... 따라서 이런 카드 사용에 제한을 받는 영세 고객들도 빨리 우리가 흡수하여야 한다고 봅니다........."
"사업기획실에서 질문입니다... 가격 시스템에서도 문제가 발견되었다고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무슨 문제들이죠?........"
"시간 관계상 한 가지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우리 나름대로 상품의 가격을 정하는 과정이 있겠지만... 혹시 우리 근처에
있는 다른 마트들의 가격과 비교를 하시는지가 궁금합니다... 제가 확인한 바로는... 우리 매장에서 어제 모기향이 정가
2200원에 판매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불과 600미터 안쪽에 있는 플러스홈에서는 똑같은 상품을 정가 600원에 판매
하고 있습니다... 그 곳에서 이 상품이 PL 도 아니고 세일도 아닌 정상판매였습니다... 원가에 알파를 얹는다고 해도 이
차이는 너무 심한 것 같습니다... 다른 상품도 몇 가지 더 있습니다... 우리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고객 누구나 알
수 있는 일입니다... 이상입니다..........."
내가 한 이 답변에 간부들은 수근거린다. 간부들의 질문과 나의 답변은 이런 식으로 계속되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자면
무슨 정신으로 내가 이런 질문에 답변을 했는지 나도 모른다. 긴장하지 않고 침착하려고 나는 나름대로 많이 노력을 했지만
긴장되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나중에는 부장이 물 한 컵을 갖다 놓으면서 등을 토닥거려주었다. 내가 알고있는 것이라고는
매장에서 직접 보고 들은 것 주로 최수희가 작성한 보고서에서 읽은 것이 전부이다. 나는 내가 알고있는 쥐꼬리만한 사실들을
그럴듯하게 포장해서 모조리 팔아치웠다. 내가 이것도 아마 군대에서 배운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PT를 마치고 내 자리로 돌아가서 앉았다. 회의의 나머지 부분은 얼마 걸리지 않았다. 드디어 회의가 끝나고 사람들은
회의실을 빠져나간다. 우리 부장은 어느 새 보이지 않는다. 나는 강과장과 함께 회의실을 나서고 있었다. 복도에는 최수희와
이경숙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들을 보자 긴장이 풀리면서 안심이 된다. 그녀들이 왜 그렇게 반가운지 마치 몇달
동안 헤어져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누군가가 나를 불러 세웠다. 그의 옆에는 남자와 여자들이 여러명 서있고 우리 부장도
그들과 같이 있었다. 강과장이 내 귀에 속삭였다.
"회장님이셔........."
그가 나에게 물었다.
"김태현이라고 했나?........."
"예... 총무과 김태현입니다..............."
대답은 나 대신 부장이 했다. 나는 그에게 고개를 숙이며 웅얼거리는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나중에 한부장님과 같이 내 방으로 오게............"
"네... 알겠습니다..........."
강과장은 우리를 데리고 총무과 사무실로 향했다. 최수희가 내게 팔짱을 끼며 묻는다.
"우리 막내 엄청 잘 했지?........."
"최수희씨... 대학에서 교수님이 강의하는 것 같았어... 듣는 내가 가슴이 뻥 뚤리는 것처럼 시원하더라........."
"어머머... 그렇게 잘했어요?... 부장님은 뭐라고 하셔요?.........."
"부장님이랑은 아직 얘기도 못했어... 다른 사람들은 다들 자기가 잘났고 일 잘했다고 떠벌기는 말만 했거든... 맨날 하는
소리니까 듣기도 짜증나더라고... 그런데 우리 막내는 우리가 이런 저런 잘못을 하고 있다고 고해성사를 했단 말이야...
아마 몇 군데는 엄청 크게 뒤집어질꺼야.............."
사무실에 들어오자 나는 내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박은희 대리가 내 자리에 커피를 갖다 놓는다. 나는 고맙다고 하면서
커피를 천천히 마셨다. 정신이 차려지는 것 같다. 나는 옆 자리에 앉아있는 이경숙에게 말했다.
"진짜 고마워... 파일 엄청 꼼꼼하게 잘 만들었더라.........."
"아이 참... 나는 오빠가 하라는 대로 했다니까..........."
최수희와 이경숙은 내 옆에 앉아있고 여직원들은 강과장에게 몰려간다. 강과장은 그녀들에게 회의 내용을 이야기해준다.
절반은 내가 한 PT 이야기이다. 강과장이 말하는 소리가 우리에게까지 들린다.
"회장님이 우리 막내한테 이따가 회장실로 오라고 하셨어........."
"어머머... 이러다가 우리 막내 혹시 회장님 비서로 가는 것 아냐?... 하하..........."
"회장님 비서실에는 여자만 있거든............."
강과장은 우리에게로 왔다.
"우리 막내... 배고프지?... 누나랑 점심 먹으러 가자........."
"누나가 사려고요?........"
"우리 애 이번 달 학원비는 못 내더라도... 막내 오늘 점심은 내가 살께... 하하........"
"에이... 착한 우리 막내가 그 말을 듣고 어떻게 먹으라고?........"
"과장님... 막내 점심은 제가 살께요........."
"최수희씨가?... 그래 주면 내가 고맙지... 명절은 오고.. 돈은 없고... 요새는 돌아버린다니까............"
우리는 같이 사무실을 나섰다. 그런데 우리 부장이 뒤에서 강과장을 부른다. 강과장과 박대리는 우리 뒤에서 부장과 이야기를
하면서 천천히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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