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바이트 이야기 - 19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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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입장이 난처해졌음을 그제서야 깨달았다. 그런데 뭐라고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아서 그냥 가만히 있었다. 오하영은
투덜거리는 투로 한마디 했다.
"아무튼.. 두 사람 축하해......."
"형... 그럼 한수정 누나는 어떻게 되는 거죠?.............."
"야!.. 한철수... 너 혹시 같은 한씨라고 걱정하는 거야?.. 하필 오늘 같은 날 이 자리에서 한수정 언니 얘기를 꺼내서 초를
쳐야 속이 시원하니?.........."
"맞아... 내가 봐도 철수 너 완전 심했다.........."
한철수는 나와 한수정을 진심으로 걱정해서 말을 했지만 오하영과 윤기숙은 내버려두지 않았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내일 회사 때문에 들어가야 해........."
"오빠... 피곤하시죠?... 우리 나가요................"
윤기숙도 일어서면서 내게 팔짱을 낀다. 나는 계산대로 가서 권혜주에게 내 카드를 건네주었다.
"철수네 테이블까지 같이 계산해요..........."
"오빠... 오늘 내가 계산할껀데요?............"
"아냐... 나랑 사귀면 첫날이니까 내가 계산해야지............."
"어머머... 감사... 고맙.. 또 감사... 오빠 완전 짱인것 알아요?... 하하하............................"
윤기숙은 권혜주 앞이라서 그런지 일부러 아주 많이 오바하는 것 같다. 권혜주는 계산을 끝내고 나에게 카드를 되돌려주면서
말했다.
"부러우면 지는건데 기숙이가 진심 부럽네.. 잘생긴 남자 치고.. 착한 남자는 드물다던데.. 그래도 오빠는 착한 남자 맞죠?..."
"얘는 계산이나 하지 웬 잔소리야?... 이 오빠 착한 남자가 아니면 내가 왜 목을 매겠니?........."
"기숙이 너... 이 오빠가 나쁜 남자라서 버릴꺼면... 나한테 미리 말해... 하하하..........."
"그럴 일 전혀 없을꺼니까... 걱정 붙들어 매셔........."
"야... 그럼 이제부터 저 오빠가 너 말고 다른 여자랑 여기에 나타나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해?..........."
"어?... 그럼.. 까이거 걍 119로 신고해버려... 하하하..........."
"뭐야?... 119로?................."
"야... 오빠가 그러면 그거는 완전 난리난거 아니니?... 그럼 당연히 119죠... 거기 말고 다른데 아는 데 있으면 그리 하든가..
난 신경 안써... 너 알아서 해..........."
"저게 뭘 믿고 저렇게 자신만만한 거지?... 저거 오늘 완전 광대상승이네..........."
윤기숙은 내 팔짱을 끼고 가게를 나섰다. 한철수와 오하영 커풀이 꿀 먹은 벙어리처럼 우리 뒤를 따라온다. 나는 밖에 나와서
앞뒤로 똑같다는 대리운전 회사에 전화를 했다. 윤기숙이 오하영에게 유난히 큰 소리로 강조하듯이 말했다.
"오빠는 어제처럼 나 우리 집까지 데려다 주고 갈꺼거든... 너네는 너네가 알아서 가야겠다?........."
"걱정 마... 우리가 신촌에 한두번 오는 것도 아닌데.............."
대리운전 기사가 와서 나는 내 차의 키를 넘겨주고 윤기숙과 함께 뒷좌석으로 탔다. 윤기숙은 내게 기대오면서 내 목에 한쪽
팔을 걸었다. 또 재빨리 내 얼굴을 당겨서 내 입술을 빨았다. 그런데 쪽쪽 소리가 너무 크게 나서 차 밖에서도 충분히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밖에서 차 안을 들여다보는 둘에게 반대 쪽의 손을 흔들었다. 차 밖에 있는 두 사람은 차 안에서
우리가 하는 애정행각을 들여다보며 경악스러워하는 표정을 한다. 윤기숙은 활짝 웃으면서 한마디 했다.
"하아... 자기들은 내 앞에서 안그랬나?.................."
차가 출발하자 기숙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내게서 떨어져서 바로 앉는다. 나는 기숙이를 그녀의 집 앞에 내려주고 나의
오피스텔로 돌아왔다. 내가 집 안으로 들어서자 지혜가 나를 반겨준다. 지혜는 아직 거실에 있는 내 책상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어?... 오빠... 오늘은 일찍 오네?......."
"일찍 자야 일찍 일어나지... 엄마는 들어가셨니?.........."
"응............."
나는 샤워를 하고 잠옷으로 갈아입었다. 내가 나오기를 소파에서 기다리던 지혜가 내게 물었다.
"오빠... 와인 마실꺼지?........"
"너는 오늘부터는 술을 입에도 안댄다며?..........."
"그건 어제 생각이고... 오늘은 안그래... 하하................."
지혜는 와인병과 잔을 꺼내왔다. 나에게 잔을 건네주고 와인을 따랐다. 그런데 지혜가 내 손에 끼고 있는 반지를 보았다.
"이거.. 무슨 반지야?... 아까 나갈 때 까지만 해도 없었는데?......."
"응?.. 이거?.. 음.............."
"후배들이랑 공부하러 나간다더니... 술냄새를 풍기고.. 반지까지 끼고 들어와?.. 설마 결혼 반지는 아니겠고..........."
"뭐?... 결혼반지?... 얘가 무슨 소리를 이렇게 험악하게 해?........."
"그니까... 이게 도대체 뭐냐고........"
"이번 여름 방학때 동아리에서 봉사활동을 나가거든... 거기 필요한 기금을 마련한다고 선배들한테 강제로 팔았어... 나도
선배 축에 든다며 하나를 사라고 떠맡기더라...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사왔어.........."
"그렇게 뜻 깊은 반지면 오빠가 한개 더 사와... 그걸로 우리 커플링 하자..........."
"18금이라서 몇 개 없었거든... 금방 다 팔리고 없던데.............."
순진한 지혜에게 나는 생각나는 대로 거짓말을 임기응변으로 둘러댔다. 지혜는 자기가 똑같은 걸로 하나 더 맞추겠다면서
내 손가락에서 반지를 빼갔다. 며칠 후에는 지혜가 나에게 반지를 되돌려주었고 지혜도 손가락에 똑같은 모양의 금반지를
끼고 있었다. 경식이가 지혜와 내 손가락에 있는 반지를 보고 우리에게 물었다.
"어?... 커플링이네?.. 누나랑 형이랑 둘이 사귀는구나?........"
"아니야... 오빠네 동아리에서 봉사활동 기금을 마련하느라고 선배들에게 강제로 파는 것을 오빠가 사왔대..........."
지혜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자기 동생에게 거짓말을 한다. 쪼끄만게 완전 뻔뻔스럽다.
그 다음 주에는 학교에서 5월축제가 열렸다. 윤기숙은 날더러 하루만 시간을 내달라고 졸랐다. 나는 마지막 날 목요일 저녁에
가기로 약속했다. 그런데 내가 학교에 나타난 것은 9시가 훨씬 넘어서였고 행사는 모두 끝난 후였다. 그날 윤기숙은 나에게
전화를 해서 공대 퀸에 당선되었다고 말했다. 또 한수정이 떠오른다.
나와 윤기숙은 정문에서 만났다. 그녀는 나에게 팔짱을 끼고 공대에서 운영하는 주점으로 걸어갔다. 윤기숙이 전화를 해서
오하영과 한철수를 불렀다. 우리는 감자튀김을 놓고 맥주를 마셨다. 나중에는 또 다른 선배와 후배들도 왔다. 복학생들도
몇 명이 보였다. 윤기숙은 자기에게 추근거렸던 남자라며 나에게 조용히 몇 명의 남자를 가리켰는데, 그 중에 세 명 정도는
내가 잘 아는 사람들이다. 내 입학 동기 주영심도 왔다. 영심이는 나를 보고 오래만이라며 엄청 반가워했다. 그녀는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내 여친 그러니까 윤기숙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야... 김태현... 너 우리과 여자 후배랑 사귄다며?.........."
윤기숙은 이 말을 듣고 당당하게 맞섰다.
"언니... 그 여자 후배가 바로 저인데요............"
"너는 윤기숙?... 오늘 공대퀸에 뽑혔다며?............"
"네..... 맞아요.............."
"얘는 어떻게 건드렸다 하면 퀸만 건드려?.........."
"야... 내가 퀸을 건드리냐?... 나랑 사귀던 애들이 퀸이 되는 거지............"
"그거나 그거나... 그니까 내 말은 너는 꼭 퀸이랑 사귄다고.........."
"그게 아니라 사귀던 애들이 퀸이 되는 거라니까............."
"아휴.. 이 소심남 또 쪼잔남까지.............."
"언니... 그건 아니죠.............."
윤기숙이 발끈하며 갑자기 언성을 높였다. 카랑카랑한 윤기숙의 목소리가 누구나 다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갑자기
사태가 심각해짐을 느낀 오하영과 한철수가 윤기숙의 좌우로 붙었다. 주점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눈길이 우리에게로
쏠렸다. 윤기숙에게 찝쩍거렸다는 남자들도 우리를 본다. 주영심의 친구들도 그녀의 좌우로 왔다. 나는 한철수에게 눈짓을
해서 윤기숙을 데리고 나가라고 했다. 그런데 윤기숙은 막무가내이다.
"이건 아니죠... 내가 엄연히 여기 있는데... 내가 사귀는 남자보고 쪼잔남이니 소심남이니 하면 그게 말이 돼요?........
언니 저에게 사과하세요................."
"야아.. 나는 지금 김태현이랑 얘기하는 중이거든... 나랑 태현이는 입학 동기야..... 여기에 네가 껴서 사과하라고 할 자리는
아닌 것 같은데?....................."
"같은 말이라도 <아> 다르고 <어> 다르거든요... 이 남자가 쪼잔남 소심남이면 이 남자랑 사귀는 저는 뭔데요?... 그런 말은
저한테도 영향이 오거든요... 그러니 저는 안낄 수가 없죠.................."
둘 사이에 큰 소리가 오고가자 내가 나섰다.
"영심아... 네가 한 말을 내가 들었을 때는 괜찮았는데... 기숙이가 듣고 기분이 상했나 보다... 네가 사과하고 끝내라......."
"야아... 내가 사과를 하고 싶어도 잘못한 것이 있어야 사과하지... 너랑 나랑 그런 말도 못할 사이냐?..........."
"우리끼리 주고 받은 말 때문에 제3자가 기분이 상했다면... 너도 생각을 다시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은데?..........."
"너... 지인짜 완전 어이없네... 얘가 퀸이라고 날더러 무조건 사과하라는 거니?........."
"얘가 왜 이래?... 그게 퀸이랑 무슨 상관이 있어?..........."
윤기숙이 뭐라고 더 대들 판이었는데 한철수와 오하영이 끌다시피 해서 주점을 나갔다. 그 바람에 주영심도 더 이상 뭐라고
말할 수 없게 되었다. 나는 주영심과 건배해서 한잔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내가 주점을 나서는데 주영심도 따라 나선다.
"수정이는 퀸이라 해도 천사같은 애인데... 저건 어찌 된 게 싸움닭이냐?........"
"그걸 왜 나한테 그래?... 걔한테 직접 말하지..........."
"어라?... 너네 둘 다 완전 대책없다... 그럼... 수정이랑은 이제 끝났니?............."
"글쎄?.............."
"뭐라고?..............."
이 때 윤기숙이 나를 부르며 우리에게로 왔다. 영심이는 기숙이를 보고 피하려고 했다. 그런데 기숙이가 영심이를 불러서
사과를 했다.
"언니, 우리가 서로 얼굴 안볼 사이도 아닌 것 같아요... 제가 언성 높인 것은 사과할께요. 정말 죄송했어요... 그 대신 언니가
오빠한테 그런 말 한 것은 사과 하든지 말든지 언니 알아서 하세요............."
그런데도 영심이는 기분 나쁘다는 듯이 안으로 들어가버린다. 윤기숙은 내 팔짱을 끼면서 말했다.
"오빠는 내일도 출근해야지?... 이제 가자.........."
"싸움닭처럼 싸움만 하고 그냥 가지 말고... 더 놀지 그래?......."
"아냐 됐어..... 그만 가요..............."
정문까지 왔는데 거기 있는 벤치에서는 오하영과 한철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빠... 아까 그 영심이 언니한테는 내가 엄청 미안하네............"
"됐어... 영심이도 애가 착해서............"
"나는 그 자리에서 그 남자들한테 내가 오빠랑 사귄다고 내 입으로 확실하게 선전포고를 하고 싶었거든... 그러다 보니까
영심이 언니를 약간 이용한 것이 됐잖아.............."
"나중에 만나면 미안하다고 하고 밥 한번 사면 될꺼야............"
윤기숙 그러고 보면 얘도 참 무서운 애다.
나는 계속해서 회사에 출퇴근을 했고 저녁에는 지혜와 경식이에게 수업을 해주었다. 주말에는 이틀씩 저녁에 학교에 나가서
기숙이네 스터디를 봐주었다. 끝나고 나면 윤기숙과 신촌에서 와인을 마셨다. 그 대신에 금요일 저녁은 쉬는 날로 정하고
주로 최수희의 아파트에서 보냈다. 아이린과도 주로 주말에 기회만 있으면 같이 침대에 가지만 항상 지혜와 경식이 때문에
조마조마해야 했다.
경식이와 지혜는 거의 미친 듯이 공부에 파고들었다. 6월 말에는 학교에서 기말고사를 쳤는데, 쪼끄만 지혜는 바닥에 있던
점수들을 모두 반의 평균 점수 위쪽으로 끌어올리는 데에 성공했다. 경식이도 성적을 확실하게 끌어올렸다. 아이린과 나는
지혜와 경식이가 보는 앞에서 인터넷으로 NEIS 에 접속하여 지혜와 경식이의 성적을 하나씩 확인했다. 아이린은 감격해
하면서 지혜와 경식이를 안고 눈물을 흘렸다.
"나는 우리 지혜랑 경식이가 해낼 줄 알았어.........."
"엄마... 내가 오빠 없이 어떻게 했겠어?..... 그치만 나를 믿어줘서 고마워.........."
"맞아... 형... 고마워............"
"아냐... 내가 아무리 도와줘도 결국 열심히 공부해서 해낸 사람은 내가 아니고 지혜랑 경식이야..........."
자식들을 양 팔에 하나씩 안고 눈물을 흘리는 아이린을 보고 있는 나도 눈가를 적셨다. 나는 공연히 창가로 가서 창 밖을
내다보았다. 그런데 창 밖에는 볼 것도 별로 없었다. 학교에 나가서 하는 스터디에서도 작은 변화가 일어났다.
한철수, 오하영, 윤기숙도 공부가 된다면서 좋아했다. 우리가 와인 마시러 가면 한철수와 오하영도 꼭 따라온다. 윤기숙은
한철수와 오하영이 보는 앞에서 자주 나에게 키스한다. 한번은 윤기숙이 일부러 신음 소리까지 제법 크게 내면서 입술도
빨고 혀도 빨았다. 우리를 보는 오하영의 두 눈이 동그래졌다.
"어머머... 어쩜... 얘가 왜 이래?.........."
"뭘.. 갖고 그래?... 너네는 이 정도로 안했니?........"
"우리는 그냥 거의 뽀뽀 수준이잖아?.. 그런데 너는 완전 딥키스야... 섹스할 때 하는 프렌치 키스잖아?..........."
"섹스?... 그거 얼마 안있으면 우리도 할꺼니까 걱정 마............."
"뭐야?... 언제 할껀데?..........."
"오빠... 우리 언제 할까?... 100일 기념일이 어때?... 하하하..........."
그렇지만 윤기숙은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는 항상 나에게 사과한다.
"오빠... 아까 불쾌하셨죠?... 미안해요..........."
"됐어...."
"그치만... 그건 내 진심이기도 해요........."
"그러지 마... 나중에는 기숙이 너만 엄청 힘들어져..........."
"한수정 언니 때문에요?............"
"누구 때문이건 상관없이................"
"오빠... 한수정 언니 말고 다른 여자가 또 있구나?............"
"야아... 그 말이 지금 왜 나와?............"
"오빠가 버러럭 하는 것을 보니까 하나 둘이 아니네... 하하................"
만날 때마다 이러다가 윤기숙에게 정이 들까봐 걱정스럽다.
5월 마지막 금요일이었다. 내가 퇴근 준비를 하려고 총무과 사무실로 들어서는데, 방효은이 뒤따라 들어온다. 방효은은 우리
<매장 감사팀>에서 일하는 알바생이고 한남여대 컴퓨터 공학과 3학년이다. 방효은은 처음에 들어올 때부터 결코 쉽지
않았다. 방효은을 뽑을 때, 알바 구인 광고에 같이 지원해 온 학생들이 8명 정도 있었다. 그런데 마지막 결정을 할 때 나와
최수희는 의견이 달랐다. 방효은 머리에는 빗질도 하지않은 푸석푸석한 모습으로 면접에 나타났다. 면접관이었던 나와
최수희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보였다.
물빠진 청바지는 허벅지 군데군데가 찢어져있고, 헐렁한 티셔츠차림이었다. 그리고 얼굴에는 강은영 과장처럼 검은색의
두꺼운 뿔테 안경을 걸치고 있었다. 그런데 내게는 방효은이 일부러 꾸미지 않은 그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비록 옷과
머리에서는 약간 지저분한 느낌까지도 받았지만, 방효은의 미모는 그렇게 해서 숨길 수 없었다. 나는 방효은에게 물었다.
"몸이 많이 안 좋으신 것 같은데... 감기몸살이세요?............"
"죄송합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쌩쌩했는데... 오늘 아침부터 시작하는 것 같아요............."
매장 감사팀의 팀장인 최수희는 내 옆자리에 앉아서 방효은의 이력서만 들여다보고 있다. 그녀는 방효은에게는 눈길 한번을
주지 않는다. 나는 방효은이 지난번에 알바 했던 몇 가지를 물어보고 면접을 얼렁뚱땅 끝냈다. 나는 최수희에게 말했다.
"누나... 방효은으로 결정합시다............"
"왜... 방효은?... 나한테는 별론데?... 차라리 어제 왔던 구예선이 어때?............"
"방효은이 컴퓨터공학과에 다닌다고 했거든요........"
"웃겨... 막내 너 방효은 얼굴이랑 몸매 때문에 그러는 것 다 알거든요............."
"누나도 참... 지금 미모 얘기가 왜 나와요?... 미모보고 일 시킬래요?.............."
"야아아... 하루 종일을 같이 다니면서 일할껀데... 너야 당연히 예쁜 여자애겠지?......... 과장님도 너를 면접하고 나서 결국
마지막 결정을 너로 틀었잖아?.............."
최수희도 방효은의 미모를 눈치챈 것이 틀림없다. 최수희의 말을 듣고 있노라면 나는 가슴이 뜨끔할 정도이다. 그렇지만
최수희는 투덜거리면서도 내 결정을 밀어주었다. 최수희는 방효은에게 합격통보를 했다. 방효은은 총무과로 출근해서 일을
몇 가지 배운 후에 나와 최수희에게로 왔다. 우리는 하루에 매장 한개씩을 감시한다. 그 후로 다른 과에서 두명이 더 지원을
오고 알바생도 한명을 더 뽑았다. 우리가 하는 일에도 점차 체계가 잡히기 시작했다. 나는 나중에 방효은에게 물었다.
"면접때 왜 그렇게 꾸진 차림으로 왔었어?......."
"오빠... 아무리 그렇게 해도 도저히 숨길 수가 없나봐... 하하............"
"숨기긴 뭘 숨겨?............."
"아이 참... 다 알면서?............"
우리는 그 때까지 스마트폰에 내장되어있는 카메라를 사용했었는데 앞으로는 몰카에 쓰이는 소형카메라를 쓰기로 했다. 나는
주말에 방효은과 만나서 전자상가에 가보기로 했다. 최수희는 이것도 불만이었다.
"전자상가에서 카메라 사는 일은 한 시간이면 충분할텐데... 그 후에는 뭐할꺼야?..........."
"두 시간 정도는 걸릴껄?... 일일이 테스트도 해야 하는데.........."
"무슨... 테스트를 해?..........."
"우리가 사려는 카메라는 무선 CCTV랑 비슷해요... 촬영하면서 저장도 하지만... 바로 실시간으로 전송할 수도 있거든요...
그러니까 살 때 미리 테스트를 해보고 우리한테 맞는 것으로 해야죠.........."
"그럼... 잘 하면 하루 종일 걸릴 수도 있다는 말이네........."
"그렇게 오래는 안 걸려요... 그런데 누나는 왜 신경과민인데?............"
"신경과민이라니?... 그야 뭐.. 뻔하니까.........."
"뭐가 뻔해?..........."
"참새는 방앗간을 절대로 그냥 안 지나갈꺼거든요... 막내는 효은이랑 밥먹고... 신촌 가서 와인 마시고, 영화보고.. 등등...
뻔하지... 안그래?............"
"나... 주말 알바 때문에 그렇게까지는 시간이 많이 없는데요........."
"시간?... 시간이 없으면... 아마도 만들어내기라도 할껄?........."
"그렇게 마음이 안 놓이면... 누나도 같이 가요........"
"싫어... 내가 왜 너네 둘 사이에 껴서 눈치 먹냐?............"
"그런 것 전혀 아니라니까... 누가 누나한테 눈치하는데?............."
방효은과 나는 미리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두었다. 우리는 10가지 종류로 정하고, 전자상가의 매장으로 갔다. 내 노트북에
매장에서 권하는 카메라의 응용프로그램을 설치한 후에 10가지 기종을 모두 테스트 했다. 그 중에서 우리는 세가지 종류를
구입했다. 그런데 최수희의 걱정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토요일에 나는 일단 과외 수업을 오후 2시에 끝냈다. 방효은과
오후 4시에 만나서 전자상가에서 일을 본 후에 강남으로 가서 영화를 보고, 같이 저녁을 먹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촌으로 넘어가서 와인을 마시는 일은 하지 않았다. 이유는 권혜주가 알면 119에 신고할 것이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이 말은 농담이고 권혜주를 통해서 윤기숙이나 오하영의 귀에 들어가기라도 하면 세상이 조용할 것 같지 않아서이다.
이 날 같이 있는 시간이 길어진 이유는 전적으로 방효은에게 있다. 방효은은 일하러 나올 때에 주로 청바지와 헐렁한 티셔츠
차림이었다. 그런데 그 날은 무지 짧고 엄청 달라붙는 핫팬츠에 어깨끈이 매우 얇은 민소매를 입고 나온 것이다.
거의 완벽에 가까운 Y라인? 보고만 있어도 침이 꿀꺽 넘어가는 모습이다. 내가 예상하고 있던대로 가슴도 제법 큰 편이었다.
방효은의 몸은 옷이 가린 부분보다 옷 밖으로 드러난 부분이 훨씬 많다. 유리처럼은 아니지만 그 정도로 맑고 투명한 피부를
보고 있으면 내 손끝이 떨릴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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