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바이트 이야기 - 32편 > 야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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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설

아르바이트 이야기 - 3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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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19가이드
댓글 0건 조회 29,709회 작성일 23-03-04 11:46

본문

한참 후 두 여인이 옷방에서 나온다. 아이린은 거울을 한수정은 비닐 팩을 들고 온다. 나는 거울을 창문에 기대서 세워주었다.
두 사람은 식탁에 앉아서 화장을 시작한다. 아이린은 한수정의 화장품을 유심히 보더니 혀를 끌끌 찬다.
 

"어쩌면 화장품이 이 정도 밖에 안돼요?... 이건 말이 안돼요........."

"언니... 우리는 거기서 화장을 별로 안 해서 괜찮아요............"

"수정씨... 안 그래요... 여자는 화장으로 자신을 표현한대.. 이 정도로 화장품으로 수정씨를 표현한다는 것은 말이 안돼요..." 

"아이... 참.. 그렇다고 그 동네 화장품을 함부로 사용할 수가 없어요... 제가 좀 민감한 편이라 얼굴 다 뒤집어지거든요......" 


한수정은 어느 새 아이린을 언니라고 부른다. 아이린이 한수정과 함께 나에게 온다.
 

"그럼.. 난 가게로 갈테니까... 두 분 잘 다녀오세요.........." 

"네... 언니, 고마워요........."

"누나... 이따가 나갈 때 들를께요..........."

"바쁜데 들르긴 뭘 들러? 그냥 일이나 봐요..................."
 

아이린은 우리를 남겨두고 밖으로 나갔다. 한수정은 2박3일 정도로 준비한다면서 나를 옷방으로 데리고 갔다. 내 속옷 양말
남방과 겉옷을 달라고 해서 종이 팩에 나누어 담는다. 
나는 옷을 갈아입고 한수정은 내 백팩에 내 물건을 넣었다.
 

"진에 남방으로?.........." 

"응... 이거면 안될까?........."

"이번에 아빠가 보자고 하실텐데............"

"그럼... 슈트를 넣어가든가.........."

"짐이 많아지는데..............."
 

나는 한수정이 내주는 옷으로 갈아입었다. 우리는 오피스텔을 나서서 아이린의 PC 방으로 갔다.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가게는
아주 한산하다. 아침 알바생은 정숙이인데 계단을 청소하고 있었다. 
우리가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 아이린은 한수정을 맞아서
안으로 가며 가게 구경을 시켜준다. 나는 카운터 앞에 있는 PC에 앉아서 로그인을 했다.
 

"어머머... 그럼 언니는 지금 사장님이시네요?... 하하......." 

"사장님은 무슨?... 가게 주인이지... 겉만 번지르르해요............"

"그래도 너무 부러워요.........."

"아이 참... 부러워 할 게 따로있거든요... 수정씨야 말로 진짜 엄청난 미모에... 굉장한 공부에.. 빵빵한 남친에......."

"언니... 남친은 정말인 것 같아요... 하하................."

"내 말이... 지혜도 지금 완전 뻑 가있다니까?... 하하.............."

"내가 보기에는 태현이 앞에서는 언니도 쫌 흔들흔들 아닌가요?... 하하하..............."

"수정씨!.. 나는 할머니라서 내꺼는 콜라텍에 가서 찾아야 해요... 하하..........."
 

나는 게임을 시작하고 두 사람은 내게서 멀어져간다. 어느새 두 게임에서 나는 졌다. 알바생 정숙이가 냉커피 세 잔을 빈
테이블로 갖다 놓고 나를 부른다.
 

"오빠... 이거 사장님이 드시래요........." 

"고마워... 내꺼는 이리로 줄래?.........."

"여기요............"

"고마워... 너는 이번에 복학 안 하니?........."

"하기는 해야 하는데... 고민이야.............."
 

정숙이는 카운터로 가버린다. 나는 냉커피를 마시면서 코레일을 찾아서 KTX 승차권을 예매하려고 했다. 그런데 한수정이
내 옆으로 오더니 아이린이 나를 흡연실로 부른다는 말을 전한다. 
아이린은 흡연실의 유리벽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나는 내 전화기와 신용카드를 한수정에게 건네주었다.
 

"코레일 웹사이트니까 부산 KTX 표를 예매해............." 

"예매까지 할 필요 없어... 이 시간에는 그냥 가면 돼................"
 

나는 그냥 흡연실로 갔다.
 

"자기가 부산하고 인연이 참 많네?............" 

"글쎄.............."
"지난번에 지혜랑 내가 태현씨한테 해주려다가 못해준 것이 있거든?........." 

"아이.. 누나!.. 뭘 또?......................."


"시끄럽게 하지 말고 이번에 내려갈 때 이 카드 가져가서 쓰고 와... 이건 지혜 아빠가 그렇게 하래... 할 말 있으면 지혜
 아빠한테 하든가... 난 심부름만 하는 거니까.........."


"누나가 이렇게까지 안 해도 되는데........." 


"내가 잠시 겪어봤는데... 수정씨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마음이 참 순수하고 맑다... 몸과 마음이 아름다운... 정말 여자다운
 여자야... 
제발 수정씨 마음 아프게 하지 말아요........."


"누나도 참... 내가 왜 수정이 마음을 아프게 해?..........."
 

"자기 지금 나이에 두 남녀가 사랑하기는 참 쉬워... 그런데 같이 살기는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거든... 수정씨가 겨우 몇
 일 있는 동안 마음 편하고 행복하게 있다가 떠나도록 자기가 알아서 잘 해... 
내 말 무슨 뜻인지 알겠지?... 자기네도
 바쁠테니까... 이제 나가자.............."
 

아이린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서 한수정에게로 갔다. 나는 마치 무슨 죄라도 지은 사람 처럼 아이린의 뒤를 졸졸 따라간다.
아이린은 우리를 서울역에까지 내 차로 태워다 주겠다며 내 차의 키를 달라고 했다. 
아이린의 옆에는 한수정이 타고, 나는
혼자 뒤에 탔다. 둘은 어느새 엄청 친해진 것 같다. 간간이 나에게 안 그러냐고 묻는데 나는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맞다고
말대꾸를 해주었다. 아이린은 우리를 서울역 앞에 내려주고 돌아갔다.
 

우리는 창구에서 KTX 승차권을 구입했다. 차 시간은 20분 정도 남아있다. 한수정은 엄마에게 우리가 지금 출발한다고 전화를
했다. 
시간이 되어 우리는 승강장으로 내려가서 열차에 탔다. 가는 동안에 나는 한수정이게 지혜네 집안 사정을 내가 아는
대로 이야기해주었다.
 

"지혜가 크면서 정말 힘든 시간을 많이 보냈겠다... 그러다가 너를 만났고... 너... 정말 지혜한테 잘해라..........."
"나도 그러려고 마음을 비우고 노력하는 중이야.........." 


"지혜가 나를 롤모델로 하겠다고?... 그럼 혹시 내가 태현이 너를 차지한 것처럼 너를?... 얘가 지금 혹시 나한테서 너를
 뺏겠다는 말 아냐?.............."
 

"야아... 한수정... 지혜는 이제 겨우 고 2야...." 

"아하... 그러셔?... 우리 고2때 어땠지?........."

"아마도 손만 잡았을껄?..........."

"그럼.. 지혜는?... 지혜가 안 그럴꺼라고 네가 어떻게 장담할 수 있어?........"

"아까 누나가 널보고 마음이 맑은 애라고 하더라... 맑은 마음으로 이 세상을 보세요.........."


"그 언니도 그래... 아니 우리 둘이 있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어떻게 그렇게 불쑥 들어와?... 너네집 비밀번호는 동네 사람이
 다 알고 들낙거리면 그게 무슨 비밀번호니?............"
 

"그건 수업을 내 방에서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어... 지혜 엄마는 내 방 청소도 하고... 주방이랑 놋장 관리도 해주시거든...
 또 오늘은 지혜가 엄마한테 미션을 줬대잖아?..............."
 

"미션이 아니라 미션이네 고조할아버지를 줬어도 그렇지... 나같으면 차라리 두 사람을 밖으로 불러낸다............"
"그 시간에 밖에는 아직 문을 안 열었는데?.........." 

"야아아... 24시간 식당 제법 많거든?.........."

"과외쌤한테 그렇게 해주는 학부형이 대한민국에 누가 또 있을까?............"
 

한수정 생각이 전혀 틀렸다고는 말을 못하겠다. 그러고 보니까 한수정이 약간 무섭다. 열차는 부산역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열차가 플랫홈에서 멈추고 자동문이 활짝 열린다. 나도 한수정도 열차에서 내려서 사람들의 흐름 속으로 묻혀 들어간다.
한수정은 계단을 올라가면서 엄마와 전화통화를 하고 나서 나에게 말했다.
 

"출구에서 우리 엄마가 기다리셔..........."
 

그런데 내 전화기에서 진동음이 난다. 최수희가 전화를 걸어왔다. 한수정이 웬 전화냐고 발끈한다.
 

"뭔데?........" 

"회사야... 받아야 해.........."

"쉬는 날 아냐?........."

"내가 쉬는 날이야... 회사는 아니고..........."
 

시간은 오후 4시 반 최수희는 아직 퇴근 전이다. 지금 아마도 보고서를 써야 하는 시간일 것이다. 나는 통화버튼을 눌렀다.
 

"수희 누나!.........." 

"자기야... 어떡해?.........."

"왜 그래?... 무슨 일인데?.........."

"방효은이 잠수타네............."

"뭐야?... 이게 얼마나 됐다고 벌써..........."

"그게 문제가 아니고... 우리는 이거를 전산 시스템으로 돌릴 줄을 모르는데..........."

"이러언... 대형사고네........"

"과장님 지금 엄청 열받아서 당장 자기를 잡아오랜다.............."

"어?... 나 지금 부산에 막 도착했는데.. 어쩐다?............"

"지난 주에 부산에서 휴가 보내지 않았나?............"

"외국에서 유학파가 들어왔거든......."

"어머머... 그럼... 캐나다에서 자기 여친이 들어온거니?........."

"응... 지금 걔네 집에 가려고 열차에서 막 내렸어........"

"난리네... 자기 안 나온 것도 다 들통나고... 히히.........."

"내가 지금 여기서 바로 서울로 올라가는 차를 타도 여덟 시 전에는 회사에 못 들어가는데?........."

"자기야... 알았으니까 그럼 일단 전화 끊고 기다려봐........"
 

통화하는 사이에 우리는 이미 출구를 빠져 나와 있었다. 한수정은 벌써 엄마와 아빠의 품에 안겨있다. 나도 통화를 끝내고
그들에게로 갔다. 
청바지에 하얀 남방의 수학 선생님이라는 수정이 아빠 검은 스커트에 칼라풀한 블라우스의 역사선생님인
수정이 엄마 
외모에 관한 한 한수정은 분명 수정이 엄마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것 같다. 혹시 한수정 아빠가 돈이 엄청 많은
집안일까? 
그는 혹시 대입 수학의 최강인가? 아니면 결혼 전에 미리 사고를 쳐서 혼전임신이라도? 도대체 한수정 엄마는
무슨 이유로 한수정 아빠와 결혼했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하긴 한수정도 나 같은 남자한테 덤벼드는 이유를 나는 이해하지
못하니까. 
엄마나, 딸이나, 미녀들은 남자 고르는 안목이 하나같이 왜 이럴까?
 

"우리 엄마... 아빠셔... 김태현 알지?.........." 

"처음 뵙겠.. 아닌데?... 전에 고등 학교 때 뵌 것 같은데요?... 김태현입니다.........."

"맞다... 아직 잊지 않고 기억하네... 우리 고1때... 엄마 아빠 학교에 와서 만난 적이 있어........."

"자네가 그 유명한 외계인인가?... 하하하........"

"오느라고 수고했어요........."

"잠시만요... 수정아 나 좀 보자..........."
 

나는 수정이에게 회사의 상황을 설명하고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물었다. 수정이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본다.
 

"그래서... 지금 이 길로 다시 올라간다는 말이니?........." 

"그래도 늦어... 비행기로 가도 안돼......"

"내일 해주면 안되나?.........."

"우리 보고서를 매일 감사팀으로 넘겨주는 것이라서.........."

"그럼.. 그 동영상 파일을 편집이라도 하는 거야?........"

"그러면 좋지만... 안 그래도 괜찮아........"

"그럼.. 원격조정을 하든가... 아니면 영상통화로 하면 안돼?............"

"인트라넷이라서 접근이 안되니까 원격조정은 안되고.. 영상통화로 될까?.........."

"정 안되면 전산실로 넘겨주면 간단하게 해결되겠구만... 그럼 안돼?.............."

"영상통화로 해볼께... 아아... 이 누나들 완전 컴맹들이라서 장난 아닐텐데.............."

"집으로 갈까?... 아니면 PC방으로 갈래?........"

"PC방은 쫌 그렇고.. 일단 집으로 가자..............."
 

그런데 강은영 과징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는 한수정에게 과장님 전화라서 받아야 한다고 말했고 한수정은 부모님께로 가서
회사가 나 때문에 비상이라는 말을 했다. 
나는 그들에게 고개를 꾸벅 숙여서 죄송하다는 뜻을 전하고 강과장과 통화를 했다.
 

"과장님... 죄송합니다........."

"어쭈?... 죄송이면 다야?... 방효은은 잠수.. 김태현은 도망.. 너네들 지금 날더러 과장 자리를 내놓으라는 말이냐?........."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지금 제가 있는 곳은 부산역이니까 당장은 안되거든요... 일단 집에 도착하면 영상통화로
 해결하도록 할께요........"


"집에 가는 데 얼마나 걸리는데?........"

"넉넉잡고 한 시간이면 도착해요............"

"그리고 너 말이야... 야... 김태현!........."

"예............"

"내가 너한테 뭐 섭섭하게 한 것 있니?.........."

"전혀요...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는데요?.............."


"캐나다에 있는 여친이 왔으면 그렇다고 나한테 말을 했어야죠.. 그걸 최수희씨랑 둘이 짜고 나한테는 왜 숨기는데?.. 하루도
 못 가서 들통날 거짓말이나 하고 말이야... 
돌대가리들 같으니라고.........."


"과장님 누나... 엄청 죄송요... 일단 집에 가서 빨리 어떻게든 손을 써볼께요... 누나과장님 열 안받고 무사히 퇴근하시게
 할께요..........
"


"요게... 그냥.. 콱!... 이 판국에 어딜 또 애교야?... 그 일이 해결 될 때까지는 총무과 전원 야근 걸었으니까 알아서 해......"


"와아아.. 누나아아아!.........."

"과장님이야!..........."

"과장니이이임!........"

"누나라며?........."

"돌겠네........."

"너는 돌겠지?...... 우리는 속이 시커멓게 타서 미친다..........."


강과장의 화가 어느 정도는 풀린 것 같다. 우리는 통화를 끝냈다. 방효은이 회사를 그만 둘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렇게 빨리 과감한 결단을 내려서 우리를 당황하게 만들 줄을 나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나는
전화기를 주머니에 넣고 한수정에게로 갔다.
 

"정말 죄송합니다..... 지금이 휴가 바로 다음주라서 회사에 말을 하지 않고 살짝 도망을 나왔거든요..... 그런데 갑자기
 대형사고가 터지는 바람에 이 난리네요.........."
 

"방금 수정이한테 들었어... 우리 수정이가 그렇게 좋았나?... 하하........"

"일단 집으로 가야 한다며?... 그럼 식당 예약한 것은 취소해야 하나?......."

"아닙니다... 그러실 필요까지는 전혀 없습니다......."

"하여간에.. 이 외계인... 참나......."

"살려줘........"

"누가 죽인대?............"


우리는 부산역 광장으로 내려왔다. 한수정 아빠가 차를 가져와서 우리는 모두 그 차에 탔다. 나는 수정이와 뒷자리에 탔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화상통화로 해결할 일이 너무도 꿈만 같다. 그런데 최수희가 카톡을 보냈다.
 

"방효은 하루 종일 전화기 꺼져있고... 자기랑 통화하고 나서 과장님 화가 쫌 풀린 것 같다... 뭐라고 했어?..........."
"누나... 혹시 전산실에 친한 사람 없어?.........." 

"딱히?... 거기는 내 구역이 아니거든........."

"알바생 중에 이경숙 아직 있어요?.........."

"응... 아직 퇴근 전.........."

"이경숙도 오늘 야근 해요?......."

"노... 알바생들은 칼퇴근........."

"이경숙 야근하라고 해봐요.........."

"콜... 기다려.........."


한수경은 옆에서 카톡 대화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최수희가 누구야?......"

"우리 팀장.........."

"이경숙은?........."

"알바생... 얘가 컴퓨터를 조금 다룰 줄 알거든..........."


최수희는 이경숙이 야근을 한다는 연락을 해왔다. 나는 이경숙과 연락을 해서 카톡으로 한가지씩 해결하기로 했다. 이경숙은
컴퓨터로 가서 준비가 끝나는 대로 나와 카톡을 하기로 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간단하다. 우선 우리 카메라에 들어있는 칩을
꺼내서 컴퓨터에 연결되어있는 리더기에 꽂고 컴퓨터로 저장을 한다. 그 중에서 필요한 동영상 파일을 찾아서 보고서에 첨부
파일로 연결 시키면 끝이다. 이 작업이 뭐 그리 대단한 기술이라고 
방효은은 지금까지 자기 혼자 이 일을 하고 있다가 잠수를
타 버렸다. 그런데 이 I.T. 강국에 있는 나라마트의 총무과에는 이 일을 해결할 사람이 없는 것이다. 
우리는 거실에 앉았고
한수정은 엄마와 함께 주방에서 과일 접시를 들고 온다.
 

"오빠... 경숙이에요... 준비 됐어요........."

"카메라 3대 전부 다 전원에 연결돼있지?........"

"예............"

"메모리 카드 어디 있는 줄은 알아?........."

"모르는데요........."

"그럼... 한대만 들고 밑에 보면 화살표가 보일꺼야... 거기를 살짝 누른 상태에서 화살표 방향으로 밀어........"

"뚜껑 열렸어요..........."

"메모리카드 꽁무니가 보일꺼야... 손가락 끝으로 살짝 눌러........"

"튀어나왔어요......."

"그거 리더기에 꽂아........."

"넣었어요..........."

"컴퓨터 화면에서 [컴퓨터]로 보면 이동식 디스크로 인식 될텐데........"

"드라이브 [G:]?......."

"더블클릭.........."

"파일이 전부 17개인데..........."

"그거 [컴퓨터]에 드라이브 [C:]에 [경숙_01] 폴더 만들고 그리로 옮겨.........."

"하는중..........."

"두번째 카메라는 [경숙_02] 폴더로... 세번째 카메라는 [경숙_03] 폴더로........"

"그 다음은요?........."

"보고서 에 있는 내용을 보고 그 파일을 찾아서 거기에 링크 시켜........"

"링크 시킬 줄 모르는데............"

"그럼... 파일 이름 적고... 파일을 USB에 복사해서 갖다 줘... 링크는 다음에 해준다고 해........."

"알았어요... 해볼께요.........."

"USB는 수희 누나한테 달라고 해..........."

"도망가지 말고 끝날 때까지 기다려요............"


옆에서 보고 있던 한수정이 답답한 듯 한숨을 쉰다. 


"그래도 이게 어디야?... 안 그래?......" 

"그러게... 넌 내일 올라가서 링크시키는 것을 해야겠네?........."

"전산과 직원한테 부탁해보려고........"

"너 나중에 이경숙한테 단단히 한턱 쏴야겠네?........."

"왜 내가 쏘냐?... 그것은 팀장이 알아서 해야지........"

"우리 밥 먹으러 나갈 시간이야..........."

"가자... 나머지는 밥 먹으면서 해도 돼............."


한수정 아빠는 우리를 차에 태워서 송정 해수욕장이라는 곳으로 가서 저녁을 먹었다. 나는 처음 와보는 곳인데 조용해서
좋다. 
우리는 해물탕을 주문했다. 한수정 아빠는 차 때문에 술을 마시지 않는다. 나와 한수정 엄마 그리고 한수정은 소주를
마셨다. 
한수정 엄마는 혼자서 소주 한 병을 거뜬하게 마신다. 나와 한수정은 한 병을 나누어 마셨다. 한수정 엄마가 나와
한수정을 번갈아 가며 바라보더니 한수정에게 말했다.

수정 엄마 : "나는 아빠랑 결혼했는데... 너는 김태현이랑 결혼할래?......."

수정 : "엄마도 참... 우리 나이가 몇인데... 무슨 결혼 얘기를 벌써 해?........."

수정 아빠 : "너희는 결혼을 생각하고 만나는 것이 아니었어?..........."

수정 : "글쎄?... 그럼 이 참에 함 생각해 볼까?... 에이... 그래도 아직은 아니다... 나랑 태현이랑은 고등학교 동창에 대학
 입학 동기일 뿐이거든요......."


한수정 엄마는 또 한잔을 비운다. 나는 그녀의 빈 잔에 소주를 따른다.
 

수정 엄마 : "만나다 보면 금방이야... 어쩌다 보면 드레스 입고 결혼하고... 또 어쩌다 보면 배부르고... 애 낳고...
 
애 키워놓으면 늙었고............"


수정 : "하아... 걱정 마세요... 우리는 아직 할 일이 엄청 많거든요......"

수정 아빠 : "아무리 할 일이 많아도... 결혼해서 애 낳고 애 키우는 일 말고는 실속있는 일이 없어........"

수정 엄마 : "이 나이 먹으니까... 나한테 남은 거라고는 한수정밖에 없잖아.........."

수정 : "그런데 엄마는 지금이라도 내가 후딱 시집이나 갔으면 좋겠어?........."

수정 엄마 : "나야 싫지... 늙어 죽을 때까지 나는 너랑 살고 싶지........."
 

엄마가 한 이 말에 한수정은 두 눈이 동그래지면서 인상을 찌푸린다.
 

수정 : "엄마! 김태현도 있는데... 지금 이 자리에서 늙어 죽는다는 그 말을 꼭 해야겠어?......"

수정 엄마 : "야아... 말이 그렇다고... 이제 앞으로 두고 봐라... 세월 진짜 빠르거든요... 금방이다........."

수정 : "뭐가.. 또 금방이라는 거야?........"

수정 엄마 : "나 늙어 죽는 것 말이야........"

수정 : "엄마! 진짜... 엄마 지금 술 취했어?.........."
 

수정 엄마 : "얘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내가 취할 만큼 마시기라도 했니?... 그러니까... 몇년만에 한국에 왔으면
 엄마한테 먼저 와야지... 
어쩌자고 김태현한테 먼저 갔어?........"


수정 : "그게 그렇게 엄마 가슴에 맺혔어?.........."

수정 아빠 : "맺히기만 해?... 이번 일은 네 엄마가 두고두고 안 잊어먹을꺼야... 하하하............"
 

한수정 엄마는 나를 쳐다보고 한숨을 내쉬면서 말한다. 


수정 엄마 : "하아... 그런데 오늘 김태현을 실물로 보니까 우리 수정이가 그럴 만도 하네......."

수정 : "왜?... 또 무슨 소리를 하려고?........"

수정 엄마 : "김태현씨가 인물 하나는 참 잘 생겼다고............"

수정 : "엄마도 참.. 내가 얘 인물 보고 이러는 줄 알아?........."

수정 엄마 : "하긴... 나중에 결혼하면 신랑 얼굴만 쳐다보고 살 것도 아닌데........"

수정 : "엄마... 정 할일 없으면 신랑 얼굴이라도 쳐다보고 살아야죠... 헤헤............."


수정 아빠 : "그건 나중에 늙어 꼬부라져서 얘기야... 그 때 되면... 지금 잘생긴 얼굴이 그때 가서 무슨 소용이겠니?.......
 쭈글쭈글 쪼그라들면 다 마찬가지인데........." 


수정 : "아냐. 김태현은 늙어도 주름살 생기면 절대로 안돼... 생기는 주름살마다 내가 전부 보톡스로 콱 없앨꺼야......."
수정 아빠 : "그런데 그게 어디 한두개라야지......." 

수정 : "생기는 즉시... 내 눈에 띄면, 무조건... 그날 그 시간 부로... 바로 보톡스야............."

한수정의 단호한 이 말에 내게는 소름이 끼칠 정도다. 한수정은 고집스러운 표정을 전혀 바꾸지 않고 엄청 진지하다. 한수정
아빠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자기 딸 한수정을 쳐다본다.


수정 아빠 : "김군은 인물만 잘생긴 것이 아니라 자기가 맡은 일에 대해 책임감도 강하구만......" 


수정 엄마 : "그래... 맞아... 우리 수정이 데리고 내려오는 것도 그렇고... 회사 도망치고 나온 것이나... 또 여기서 사고 난
 것을 처리하는 것도..........."
 

이경숙은 세 대의 카메라에 있는 파일을 컴퓨터로 모두 옮겼다고 했다.
 

"메모리카드 세 개를 전부 포맷해서 다시 끼우고 내일 촬영해........" 

"그럼... 끝?.........."

"그래... 수고했어........."

"오빠.. 나중에 밥 사........."

"수희 누나한테 말해..........."

"싫어... 오빠가 사주는 밥 먹을꺼다............"

"알았어.............."

한수정이 우리 대화를 같이 들여다 보다가 말했다. 


"하아... 내가 뭐라대?........" 

"너는 얘가 이럴 줄 알았어?.............."

"걔 이쁘니?............"

"아니... 전혀... 그런데 참 착해빠진 애야............."

"그러니까 그렇지................"

"뭐가?........."

"조심하라고!........."

"얘가... 부모님 계신데 못하는 말이 없네............"

"아냐... 너희 마음 놓고 얘기해... 요새 나나 네 아빠는 귀가 잘 안 들려.............."

"여보... 우리 여기 오래만인데... 밖에 나가서 아이스크림이라도 먹을까?............"


"남자가 젊었을 때 이여자 저 여자 건드리고 다니잖아?... 나이 먹고 늙어서 그 버릇을 개한테 줘도 개도 그거 안 가져가...
 숟가락 들 힘만 있어도 그 짓이라니까......." 



"왜?... 아빠가 또 사고 쳤어?............"

"아빠가 그 정도로 늙었니?............"

"아직은 아닐껄?............"

"글쎄... 몇일 전에 자기 새까만 후배가 새로 왔다고........."

"여보... 빨리 나가자니까!..............."


한수정 아빠는 수정이 엄마를 데리고 재빨리 서둘러서 식당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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