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학생의 로망은 친구들의 엄마 - 7부 > 야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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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설

남학생의 로망은 친구들의 엄마 - 7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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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19가이드
댓글 0건 조회 44,725회 작성일 22-12-07 19:25

본문

본오동 뉴라성호텔 근방의 조용한 원룸에 처벅 처벅 계단을 쳐진 발걸음으로 타고 올라오는 소리가 들려온다. 아버지가 살고
있는 원룸을 찾아 어렵게 수소문한 끝에 부동산을 통해 찾아낸 현준은 
들어가는 입구만 보니 퀴퀴하고 다 쓰러져 가는 건물
같은데 
의외로 실내는 아주 청결하고 위생상태도 괜찮다. 하는 일 없이 아침부터 쏘다니느라 지쳐서 지친 몸으로 계단을
타고 있다.
 

“이백사호.. 이백사호..... 이백... 아... 여기다!!............”
 

달칵.. 열쇠로 문을 땄다. 현준은 지쳐서 스스스 병든 닭처럼 빌빌대며 걸어가 바닥에 풀썩 누웠다. 이상하게 피곤한 날이다.
아직 오후 두시밖에 안 됐는데 
스르륵 어느새 잠에 빠져들고 말았다. 정신을 차리고 벌떡 일어나보니 혹시나 와있을까
싶었던 아버지는 아직 없다. 
밖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고 시계는 7시 반을 가리키고 있다.
 

못 참겠다. 청년은 부리나케 몸에 걸치고 있던 티셔츠와 빤스 양말 청바지를 초스피드로 벗어 던지고 화장실로 돌진했다.
바로 샤워기를 트는데 이런 더운 물이 나올 생각을 안한다.
 

“뭐야?!!... 앗... 차거 시발...!... 완전 얼음장이잖아........!”
 

아무 대책 없이 덥다고 물부터 틀어제낀 건 좋았는데 차가워도 너무 차다. 투덜 거리며 일단 일회용을 뒤져 치카-치카-부터
하고 다시 손을 대보니 물이 미지근해졌다. 
서둘러 세안과 샤워를 대충 마치고 타월로 몸을 두르며 욕탕에서 나왔다. 바닥의
개지도 않은 이불 더미 위에 풀썩 주저 앉는다.
 

‘허이구... 여전하시구만.. 여관방도 아니고 다달이 월세 내면서 살거면 하다못해 재활용센터에서 자그만 침대라도 하나 들여
 놓으라니까.. 으휴.. 
으으... 추워... 보일러도 잘 나오지도 않고!... 불알이 쪼그라들 뻔 했잖아... 쓸데없이 근검절약은 백날
 외치셔.. 아주 피곤해 그냥.. 
오랜만에 찾아오는 아들은 배려 안하시나?... 크큭...........’
 

현준은 괜시리 아버지의 흉을 보긴 하지만 그의 생각을 잘 들여다보면 보통 아버지에 대한 애정을 가진 게 아니라는 걸
알수 있다. 
오슬 오슬 옷도 안입고 기세 좋게 있으니 금방 몸이 떨려 온다.
 

“헤헷취-!!!... 아... 시펄.... 쿨쩍...”
 

머리가 좀 지끈 맹맹인데 뒤져봐야 당연히 약 같은 건 있을리 없고 냉장고에도 먹을 것이 제대로 없었다. 유일하게 먹을 만한
것은 
남아있는 안성탕면 한 개와 맥심 모카 커피믹스 한봉지 속이 별로 안 좋던 현준은 입으로 쭉 커피만 뜯어서 컵에 쏟아
붓는다. 
뜨거운 물이야 집안에 냉온수기는 있으니까 그런데 커피를 후 후 불며 입에 털어 넣는 순간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아... 잠깐... 속도 안좋은데 공복에 커피 마시는게 더 안 좋은 거 아닌가?... 에이 몰라........’
 

죽기야 하겠어 청년은 커피를 털어 넣고 다시 벌렁 드러눕는다. 머릿속에는 보고 싶은 얼굴들이 몇 명 스치듯 지나가는데
예전에 공장을 다니면서 친했던 공순이들 쉬는 날이면 항상 나이트클럽 가서 죽때리던 그때의 친구와 형 누나들 얼굴이 문득
떠올랐다.
 

‘햐... 그때는 참... 무슨 깡으로 미성년 주제에 밥먹듯이 민증을 위조하고 다녔나 몰라... 큭큭.........’
 

예전에 친하던 사람들 얼굴을 떠올려 보며 잠시 그리움에 빠지는 현준은 그러다가 현재의 아버지와 아주 약간이지만 고교
입학후 알게 된 주변 사람들의 얼굴이 
어렴풋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같은 반 학생들 친구라고 하기는 어렵다. 현준은 지가
알아서 ‘보이지 않는 벽’을 철옹성처럼 두고 
아무도 다가오지 못하게 하는 게 취미이자 버릇이니까 누군가와 가까워지고
싶은 사람이 생기면 그때 이쪽에서 다가서면 된다.
 

눈을 감고 이미지를 형상화시키려고 하면 별 힘쓸 필요도 없이 곧바로 스파팟 정교한 영상으로 눈 앞에 생생히 그려진다.
황영애 내가 그토록 사랑하는 영애 누나 만나서는 잘도 누나라고 뻔뻔히 말하지만, 전화 통화를 하면 누나라는 말은 ‘감히’
안나오고 공손하게 아주머니란 호칭으로 돌아가는 자신 
피식 웃으면서 청년은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보고 싶네 누나... 지금쯤 뭐하고 있을까...? 그때 통화하고 목소리도 못들었는데.. 낼 모레 서울 올라가면 기습적으로 한번
 보자고 졸라 볼까나... 그러면 나와줄까?.......’
 

후우 후우 입으로 동그란 도너츠를 여러개 휘날리며 맛있게 연기를 삼킨다. 담배가 달달하니 맛이 좋다. 그러고 보니 아까
지하철에서 만났던 여자에 생각이 미쳤다. 
현준은 역시 무서운 상상력으로 대단한 집중력을 발휘하여 눈 앞에 상이 맺히도록
열심히 용을 쓴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그녀의 근사한 자태가 보이기 시작했다.
 

‘죽여줬지 그런 애는 찾기 힘들어 이 동네에선.. 후우~ 가슴은 좀 작더만 그밖에 다른 곳은 나무랄 데가 없는 특 A급이었어
목소리가 좀 카랑 카랑한게 흠이라고 할 수는 있지만 그러고 보니 히프 진짜 탐스럽고 이뻤다.. 나도 만지고 싶었는데... 후~’
 

떡줄 사람은 생각도 안하는데 매번 앞서 가는 버릇이 있다. 재밌는 상상력을 발휘하는 걸 좋아하는 청년은 많이 우스운지
혼자 계속 웃었다.


[삐리리리리~~~~] 


열심히 머릿속으로 흥분하며 아까 그 여자의 옷을 벗기고 있었는데 당사자한테서 전화가 왔다. 오 마이 갓~ 현준은 진짜
놀라서 드드 손을 떨다가 폰을 손에서 쿵 떨어뜨렸다.
 

“여... 여보세요...?.....” 

“여보세요?.. 왜... 이렇게 전화를 늦게 받아요?..........”

“네..? 저........”

“훗훗... 아침에 지하철에서 저 구해주신 분 맞죠?............”

“네... 맞는 것 같은데요... 하하........”

“지금 어디예요?............”

“지금... 저희 아버지 사는 집에 와 있습니다만..........”

“어딘데요... 거기가??........”

“잠깐만요.. 죄송하지만 갑자기 너무 그렇게 물으시면.......”


“아... 죄송해요... 제가 성격이 좀 급해서... 호호호~ 저 지금 차 가지고 밖에 나와 있거든요... 괜찮으시면 같이 드라이브하러
 가자고 불렀어요.........”

“차를요..? 회사는 퇴근하신 겁니까..?................”

“ 직장은 안다니는데요... 저는 자영업자라 시간이 조금 여유가 있거든요........”

“아... 그렇구나... 그래요... 아가씨야말로 지금 어디신데요?........”

“아니... 제 위치를 왜 물어요 지금?.. 그쪽 분 집이 어디 근처냐고 했잖아요?................”
 

본인 표현대로 성질이 급하긴 한가보다. 하이톤의 목소리가 폰을 따다다 울린다. 제멋대로인 여자다. 아까 역사 앞에서 봤던
사근사근 공손한 모습은 뭐였지? 
괜히 열이 좀 난다. 현준은 소리가 안 들리게 폰을 막고 깊게 숨을 들이킨다.
 

‘후.. 열받네 이거.. 내가 뭐 지한테 약점 잡혔나.. 여긴 좁아서 차 끌고 들어올 골목도 아닌데.. 아니야.. 것보다, 내가 이렇게
 자기 멋대로인 애를 만나야 되나?...........’
 

잠시 뭔가 생각을 하는 현준이 얄미운 계집애한테 뭐 받아쳐줄 말 없나? 머리를 굴려도 답이 안나온다. 일단 나가보자~.
 

“여보세요?... 여보세요?... 끊겼나?... 뭐야..........” 

“아... 여... 여기 있습니다... 죄송해요... 집에 전화가 잠깐 와가지고........”

“아~ 괜찮아요!.. 쿄쿄... 자아~ 이제 집 주소를 얘기하세요..........”

“킁... 뉴라성호텔 어딘지 압니까?.......”

“뉴라성?.. 당근 알죠... 거기서 투숙하는 거예요?............”

설마요... 돈이 얼만데.. 그 근처.. 아니다... 3동 주민센터 앞으로 오세요..........”

“그러면 되나요?... 음.. 알겠어요!... 시간은 얼마나 걸리셔요?...........”

“예.. 한 15에서 20분 걸릴 겁니다............”

“좋아요...........”
 

통화가 끝나기 무섭게 딸칵 끊긴다. 현준은 뚜- 뚜- 소리나는 폰을 보며 이마에 살짝 핏줄이 올랐다.


영애의 붉은 입술은 아들의 입 안에 모두 빨려들어갔다. 이 자식이 어찌나 세게 빨아대는지 쭙- 쭙- 쮸좁좁- 거리며 무슨
진공청소기로 빨아대는 느낌 
영애는 뽀뽀를 한다더니 과하게 삼켜대느라 이성을 잃은 지우를 보고 당황스럽고 부끄러운
것은 둘째치고 쫍쫍 빨리는 입술이 너무 아프고 따끔거렸다. 
그래서 어떻게든 두 팔에 힘을 주어 지우의 가슴팍을 팍! 밀치며
벗어나려고 했지만 
은근히 이 녀석이 힘이 세서 꼼짝없이 지우의 품에 갇혀만 있었다.
 

“쮸웁... 쪼오옵... 푸흐으....... 하아... 하아.....” 

“후우... 휴우... 아후... 숨차... 너 이게.. 무슨 짓이니??......”

“미.. 미안해 엄마.. 갑자기 너무 참을 수가 없어서.. 엄마가 너무 매력있게 보...”

“아니.. 무슨 말을 하려는진 모르겠고.. 엄마가 아프다고... 손으로 밀치면서 거부의사를 보였잖아... 그러면 하다가 멈췄어
 야지..!!. 우씨- 아파... 따끔거리고...........”
 

영애는 정작 흥분해서 아들이 발정난 x처럼 엄마한테 키스했던 것을 따지는 느낌으로 말은 안하고 그냥 아팠다는 그 자체만
얘기한다. 
지우는 엄마의 빨갛게 부풀어 오른 입술을 보고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얼마나 세게 빨아대고, 이빨로 잘근 잘근
깨물었는지 
하얀 살결의 맨 얼굴에 아랫 쪽에는 붉은 입술만 퉁퉁 불어오른 모습이 마치 데이지 덕 같았다.
 

“아흐... 아파라... 후우 후우~~ 너 무슨 운동해 요즘에?.. 힘도 엄청 좋네.. 아령 사다놓은 거 하라고 해도 전에는 안하더니..
 요즘 열심히 드니?.......”

“하하하.. 아니야 그런거... 밥을 잘 먹어서 조금 힘이 세졌나보지 뭐... 미..안해 엄마 진짜... 아직도 막 쓰라려?.......”

“응... 아프지... 후시딘 같은 거 바르고 싶어... 좀 갖다줘 아들아~ 헤헤.........”
 

지우는 안심하면서도 약간 기분이 이상했다. 틀림없이 미친 듯이 입맞추다가 입술을 떼고 나면 엄마한테 뭐하는 짓이냐고
불호령이 떨어지면서 귀싸대기 한 대 쯤은 맞을 줄 예상하고 있었는데 오히려 나쁜 짓을 한 본인이 당혹스러울 만큼 엄마는
조금 전 키스에 대해 나무라지 않는다. 이상하게 생각을 안하는 것일까? 
어쨌든 약을 가져다 주기 위해서 그동안 엉큼하게
엄마의 온 몸을 구석 구석 만지면서 희롱하던 짓은 
멈출 수 밖에 없었다. 거실로 나가서 약을 찾아야 하니까 그게 아쉬운지
꿀꺽, 침을 약하게 삼키며 지우는 엄마를 품고 있던 팔을 놓아주었다. 
그러자 한참을 서로 끌어 안고 있던 모자는 드디어
결합이 풀리고 
영애는 휴우우~ 살았다는 듯 한숨을 편하게 내쉬기 시작한다.
 

“갑갑해서 혼났어.. 가슴이 너무 짓눌려서 힘들었거든.. 근데.. 뭘 그렇게 보고 있어~?... 얼른 가서 약 가져와... 바보 똥개
 멍충아.........”

“아.. 알았어............”
 

지우는 거실로 나와서 약 상자가 어디 있나 바쁘게 뒤지면서 머릿속은 혼란스럽고 이건 무슨 상황일까 헤메고 있었다.
‘엄마 입장에서는 내가 아들이니까... 진짜 뽀뽀만 했다고 생각하나?... 아무리 둔감한 엄마라도... 그건 그냥 뽀뽀가 아니라는 

 건 알텐데........’


머리를 절레 절레 흔들어 정신을 차리고 서둘러 약을 갖다 주었다. 영애는 침대에 천장을 보고 누운 채로 지우에게 밴드와
면봉도 가져오라고 시킨다. 
지우가 약을 다정하게 잘 발라준 다음, 후우- 후우- 불어주고 착 밴드를 붙여주었다. 다 바르고
나자 영애는 즉시 벌떡 일어나 선다. 
지우는 순간 정말로 무서워서 흠칫하고 몇 발자국 물러 섰다. 영애는 아들의 움츠러드는
모습을 보고 ‘응?’ 하는 표정을 짓는다.
 

“너... 왜 그래..? 아까부터 엄마를 왜 그렇게 무서워하니..........” 

“아니야... 그냥 방이 좀 춥네.......”

“뭐어~?... 이렇게 더운 날씨에 무슨 소리야... 호호..........”

“어... 엄마.. 저기.. 말야...........”

“응?... 왜애~~ 아휴... 속 시원하게 말좀해~!!............”

“아니야,.... 아니야... 난 잠시 나갔다 올게...! 미안해요..............”
 

엄마의 태평한 얼굴을 보니까 오히려 그게 더 무섭고, 얼굴을 볼 낯이 없어서 지우는 서둘러 남방을 껴입고 엘리베이터도
안타고 계단을 후닥닥 뛰어내려간다. 
아파트 1층 초소 입구를 나오자 심호흡을 크게 몇번 하고 일단 민망한 자리는 피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놀이터로 걸어가서 
단지 내에 있는 놀이터의 자그마한 정자에 주저 앉았다. 앉아서 생각을 정리하고
있다. 지우는 스스로가 공부는 잘 못해도 두뇌회전은 
꽤 빠르다고 자신이 있었는데 지금 같은 경우는 전혀 머리가 돌아가질
않는다. 
생각해낸 결론은 엄마가 잠깐의 민망한 상황을 모면하려고 아들이 너무 미안해하고 엄마 얼굴을 제대로 못볼까봐
저런 태연한 척을 하는 거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에... 그래서... 매년 그래왔듯이 올해도 수학여행지는 제주도로 정해졌단다... 말한 바와 같이 별다른 특이사항은 없고...
 자... 반장은 이 유인물을 나눠줘라.........”
 

드디어 고교 1학년 여름의 로망이라 불리는 제주도 수학여행이 다가왔다. 학생들은 저마다 웅성거리면서 고교 입학후 처음
가는 수학여행에 대해서 
설레임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다. 지우는 엊그제 있었던 일을 아직 생각하고 있다. 창가 뒤쪽에
앉아서 아이들이 여행으로 들뜨던 말던 별 관심 없는 눈빛이다.
 

‘어제도 아무렇지 않은 얼굴과 행동을 했어..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이 엄마는 내가 하는 그 정도의 키스는 별 일 아니라고
 생각하나?... 그렇다면 다행일텐데..............’
 

장난기 많은 수경은 또 지우가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있는 걸 보자 몰래 다가와서 실실 웃으며 등짝을 때리려다 자못 심각한
얼굴을 보고 손을 거뒀다.


‘왠일이지?... 오늘은 이상하게 진지한데... 무슨 일 있나...........’
 

지우가 심각한 얼굴인 걸 보고 수경은 슬며시 옆으로 다가와 앉았다. 그러자 생각에 잠겨 있던 지우가 인기척을 느끼고 눈을
뜬다.
 

“무슨 일이야 대체.. 아까부터 계속 지켜봤구만... 큰 일 있니?...........” 

“아니야.. 암 것도... 집에 좀 일이 있어서.... 헤헤... 왜 그래?...........”

“왜.. 왔냐니... 그런 얼굴을 보고 있으면 걱정이 되잖아... 친구인데.......”

“하하... 고마워... 아무 일 아니니까 걱정마... 내가 그렇게 심각했나.. 참.. 너 저번에 거기 찾아갔었다면서.. 어떻게 됐어?...”

수경은 무슨 말인가 싶어 지우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그러더니, 아아,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말이지.. 안갔어... 무서워서.....” 

“뭐?... 무섭다니... HJ 오디션도 아니고 면접보러 간다던 애가.........”

“그래... 그게 무서웠다구... 바보야........”

“아니 왜..?? 이해가 안가서 물어보는 말이야... 수경아... 가서... 잘 모르지만.. 널 캐스팅한 관계자랑.. 면담만 하면 되는 거
 아니야?...........”

“좀 말하기 그런데.. 가려다가 못 간 이유가 있어... 바보야...........”

“무슨 말이야... 그게 그렇게 들떠놓고 못간 이유라니?.........”
 

지우는 수경이 무슨 말을 하려다가 차마 목구멍을 넘기지 못하고 혼자서 끙끙 앓는 표정을 하고 있는지 너무 궁금했다.
그런데 입을 열어 물어보려니까 급 어두워진 수경의 기색을 살피고는 입을 다물었다. 심상치가 않은 얼굴이 예사롭지 않다.
가볍게 한숨을 쉬며 측은해 보이는 수경의 가녀린 양 어깨를 턱 두 손으로 짚는다.
 

“기운 내!... 아까 너도 그랬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이런 위로뿐이구나... 수경아........” 

“호호호....”

“왜 웃기만 해.....”

“지우 넌 참 바보야... 그렇지..?............”
 

수경은 눈물을 약간 글썽이면서 일어나더니 밖으로 걸어 나갔다. 그런데 반에 있던 모든 학생들이 수경의 작은 행동에도
계속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지 
지우와 수경을 빤히 번갈아 쳐다본다. 그러다가 아이들은 지우를 찌릿 노려봤다. 이 자식이
울게 만들었다.
 

‘뭐야 이 눈빛들은?? 이 멍청한 것들은 쥐뿔도 모르는 주제에.. 내가 울린 줄 알고 있네.........’
 

지우는 당황스럽기도 하고 조용히 힐난하는 것 같은 그 얼굴들이 짜증났다. 가만히 앉아 있으려니 아무래도 좌불안석이라
어떻게 해야하나 하고 있었다.
 

“야... 너 빨리 안 기나가? 어떻게 된 건진 모르겠는데.. 수경인 네 젤 친한 친구잖아!... 일단 나가서 달래줘야지 임마......”
 

가까이에 있던 덩치 큰 진호의 말을 듣고 부리나케 달려 나간다. 영애가 지우와 낯뜨거운 포옹과 입맞춤을 맞춘 그 다음 날
요가 교실을 마친 영애가 샤워실에서 온 몸을 구석 구석 기분 좋게 깨끗이 씻은 후 개운한 기분으로 탈의실로 걸어 나왔다.
 

‘아~ 시원해... 역시... 한바탕 운동을 하고 흘리는 땀은 최고야~~ 이렇게 기분도 좋고 몸도 가뿐해질 줄 알았으면 진작
 시작할 걸 그랬어... 후후훗............’
 

옷을 느긋하게 입은 후 옷장을 열쇠로 딸칵 잠궜을 때 뒤늦게 샤워실을 나오며 몸을 전신 타월로 감고 있는 친구와 마주쳤다.
영애의 여고 시절부터 절친한 친구인 김순정 이었다.
 

“벌써 다 씻고 옷까지 입었어?... 엄청 빠르다아 너... 내가 너무 늦은 건가........” 

“응!... 네가 동작이 좀 굼뜨네.. 푸하하~~ 난 천천히 너 기다리면서 입었거든?... 빨래라도 안에서 하는 줄 알았어~~ 호호..
 얘... 난 먼저 나가서 음료수 마시고 있을게...........”

“깔깔~ 그래... 미안해 기다리게 해서... 나도 금방 나갈게 영애야.............”
 

요가센터 바깥으로 나와서 시원하게 생과일 딸기 쥬스를 빨대로 쪽쪽- 거리며 마신다. 누가 보면 초등학생으로 알 것이다.
해맑은 얼굴로 기분이 완전 좋아서 귀여운 미소가 얼굴 가득~ 푸헤헤 웃으며 쥬스를 음미하는 영애 요가센터는 롯데백화점
잠실점 대각선 건너편의 대형 빌딩 내에 있다. 
4층의 센터 바깥으로 나와 거닐며 엘리베이터 앞에 있는 대형 소파베드에
풀썩 몸을 던졌다. 
딸기쥬스를 좋다고 마시다가 이쁜 손가락에 다 묻어서 그걸 물티슈로 닦고 있다.
 

그런 다음 핸드폰을 꺼내 무슨 연락 없나.. 휘파람을 휘~ 휘~ 불며 들여다보는데 지우의 담임 태식에게서 아까 오전에 온
문자를 다시 찬찬히 읽는다. 
읽는 도중 문득 어제 보여준 아들의 이상한 행동이 머리에 떠올랐다.
 

‘흐음... 제대로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진짜 걔는 어제 왜 그런 거야?.. 어저께는 그래 놓고 청소하고 집안 정리하느라 바빠서
 생각을 못했는데.. 
지금 생각하니까 지우 녀석, 너무 저돌적으로 막 들이댄 것 같아.. 생전 그런 행동을 안 보여준 아이가..
 내가 그렇게 좋았나??... 이뻐서 못 견딜 정도로?... 쿠쿠............’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 별일 아니었겠지 라고 생각하며 미소를 짓다가 가만히 생각해보니 또 그게 아닌 것 같다. 아주 과격한
포옹은 일단 그렇다 쳐도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한 무서운 뽀뽀는 
확실히 이상하게 느껴지긴 했다. 하지만 영애는 아들에
대해서 한번 이상하게 생각하게 되면 끝도 없이 정상적이지 않다
라는 생각과 의구심이 생겨날 것을 알고 있었다.
본래 영애의 사고방식은 항상 합리적이고 매사에 분명한 걸 좋아하는 원칙주의를 지향한다. 그런 기본적인 마인드가 있었다.
 

‘불필요한 의심이나 부정적인 기분에 한번 잘못 빠져버리면 계속해서 우울하고 음침한 생각만 되풀이하게 된다’는 신념 하에
일찌감치 안좋은 생각을 하기 전에 선을 확 긋는 단호한 면이 있다. [긍정의 힘] 이라는 단어를 참 좋아하고 가능하면 세상의
밝은 면을 보고 살자는 
신념을 가지고 있는 그녀 그래서 아마 아들의 어제와 같은 경우도 최대한 좋게 생각해주려는 배려를
하는지 모른다.
 

‘그냥... 지가 스스로 엄마한테 앵겨와서 뽀뽀하자고 하는 일 자체도 거의 없으니까 쑥스럼이 많고 엄마한테 스킨쉽을 먼저
 다가오지 않는 아이니까.. 서툴고 익숙치가 않아서 
너무 세게 입술을 빨아 버리는.. 그런 모습을 보였을거야... 호호호...
 내가 아는 우리 아들은 그런 어설픈 애니까... 푸하하 웃기다... 근데... 사실 쫌 기분이 좋긴 했다는 말씀.. 안겨 있는 동안
 느껴지는 그건 뭐였을까.....?’
 

한마디로 영애는 아들에 대해서 조금도 의심을 안하겠다는 생각이 확고하다. 설마 오랫동안 봐온 사랑스러운 아들이~ 뭔가
음란한 마음을 먹고 
포옹과 애무 따위를 했으리라고는 감히 생각조차 하지도 못하는 영애였다. 덕분에 마음이 편안하다.
조금 의심이 들 뻔 했다. 
‘에이! 말도 안돼~~’ 하고 아들을 믿어주는 무한 신뢰가 있었다.
 

‘흐흐흣.. 짜식... 얼마나 그 팔이랑 가슴판이 단단하고 야무지던지.. 물렁물렁한 물살만 있는 줄 알았더니 운동을 좀 한게
 틀림없어~~ 기특한 녀석!... 
이제는 슬슬 힘든 일 위주로 많이좀 부려먹어야지.. 쿠쿠~’


“살았네... 다른 여벌도 없이 달랑 이것 하나만 남았구나..”
 

아버지 옷장은 주로 일용직 관련 현장에서 입는 옷들이다. 알고는 있었지만 혹시 하는 마음으로 열어보고는 한숨만 나왔다.
전부 작업복 아니면 후줄그레한 옷들 뿐이다. 그런데 잘 뒤지니까 용케 구석에 짱박혀 있는 예전에 입던 자신의 블랙 재킷이
나왔다. 
다행이다! 싶어 현준은 감동에 찬 얼굴로 눈물마저 찔끔 흘렸다.
 

약속장소로 향하기 전에 평소와 다름 없이 하는 행동대로 현준은 어김없이 폰을 뿌칵 열었다. 영애와 주고 받은 문자를 보는
것이 그에게는 피로 회복제와도 같았다.
 

“안녕하세요......” 


재킷과 블루 스키니진, 하얀 운동화만 신었지만 허우대가 멀쩡하고 체격이 좋아서 옷빨이 잘 받는다. 자신감이라도 있어야지
어쩌겠냐 하는 생각으로 
현준은 어색하고 조금 떨리지만 여자를 향해 웃어 보였다.
 

“네... 히히... 오늘 아침에 보고 저녁에 보는 건데... 오랜만인 것 같네요?......” 

“그런가요... 근데 제가 이 차에 타는 건가요?.........”

“그럼요?... 전화로 드라이브 어떠시냐고 말씀 드렸잖아요...........”

“그래도.. 여자분이 운전하는 차 타려니까 좀 쑥스럽네요.........”

“에에~! 요즘 세상에 그런 게 어딨어요..? 후후... 얼른 타세요.............”
 

확연히 다르다. 조금 전과는 다른 사람이 전화를 하고 이 사람이 대타로 나왔나 싶을 정도로 여자는 아까 전화에 대고 막
다그치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런 게 흔히들 심리학에서 말하는 이중인격이라는 건가..?
 

“저어... 어느 쪽으로 갈 생각입니까?.........” 

“흐음... 글쎄요... 아직은 생각 안해봤어요... 히힛~ 어디 가고 싶은데 있으세요?...........”
 

현준이 차에 타고 한마디 말을 꺼내자 여자는 금방 화사한 모습으로 밝아졌다. 이 차가워 보이는 여자가 이런 얼굴도 하는
구나 진심으로 귀엽다고 생각한다.
 

“쿡쿡... 하하........” 

“왜.. 웃어요?..........”

“일단 대책없이 나오기는 했는데... 만나서 정하자 이거였던 거죠?........”

“뭐.. 헤헷.. 미안해요... 그냥.. 일단 빨리 얼굴이 보고 싶었어요... 시간은 지금부터 괜찮으세요?.. 다른 약속이 있다든가...”
“하핫.. 뻘쭘하네요.. 저 다른 약속은 없습니다... 참.. 우리 최소한 이름은 알아야죠?... 저는 최현준입니다.. 그쪽은요?...”
“아... 그러네! 이름도 아직 몰랐네요... 호호.. 한지애 예요... 스물 여섯 살이구요... 현준씨는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현준은 패닉에 빠졌다. 아차 괜히 통성명을 하자는 말을 했나 아주 자연히 나이도 물어보게 될 텐데 자기보다 7살이나 많은
연상의 여자에게 몇 살이라고 말할까 심각하게 고민한다. 
아침에 전철에서 봤던 차분한 복장은 20대 후반쯤으로 보였는데
지금은 편안한 검은색 트레이닝복을 입고 화장도 옅어서 그냥 여대생으로 보였다. 그런데 26이라니 나이가 많아서 현준은
시간을 자꾸 끌면 이상하게 보일까봐 헛기침을 하며 대답했다.

 
“그렇군요... 저는... 아니다... 지애씨가 제 나이 한번 맞춰보실래요?... 몇 살 같은지......” 

“네?.. 호호.. 그냥.. 알려주지 그래요~.. 음... 좋아요!... 옷입은 느낌이나.. 그런 걸로 봐서는 좀 어려보이는데... 행동이나
 말투를 보면.. 그렇지도 않고... 
하아... 어렵네요... 한 스물.. 일곱 정도?.........”
 

장난하나 이 아가씨가 지금 현준은 자기도 모르게 주먹에 힘이 꽈악 들어가며 한 대 치고 싶어졌다. 스스로 얼굴이 나이에
비해 좀 삭은 것은 알지만 
도대체 몇 살을 올려놓는 거야?? 기분이 착잡하다.
 

‘안돼. 이런 걸로 흥분하면 안되지.. 내가 그렇게 삭았나.. 슬프다.. 피부관리 좀 해야겠구나......’
 

여자는 현준이 말이 없자 내가 실수했구나 하는 얼굴로 그의 얼굴만 조심스레 살핀다. 현준은 그녀를 보며 방긋 웃어 주었다.
 

“하하... 저 스물 셋입니다... 올해 제대했구요... 지애씨가 그렇게 봐주시니 기분 나쁘지는 않아요... 그냥 저를 듬직하고 남자
답게 보셨다고 생각합니다..........”

“어멋... 실례했어요... 정말 죄송해요.... 기분 나빠지시면 어쩌지... 저... 저는 현준씨가 참 든든하고 왠지 어른 같아 보여서
 그만... 
너그러이 이해해주실 거죠..? 히힛...........”
 

아까 전화로 보여준 말투도 그렇고, 어딘가 별난 구석이 있는 아가씨다. 지금은 현준도 잠시 당황하긴 했지만 그렇게 미안해
하고 
거듭 사과할 필요까지는 없다고 보는데 약간 과할 정도로 여자는 싹싹하게 미안해하고 있었다.
 

“저... 정말 괜찮아요.. 나이가 뭐 중요한가요?... 어차피 숫자인데.. 넘 미안해하지 마세요... 하하... 너무 사과하시니까 제가
 무안하네요........”

“그래요... 다행이다... 휴.. 내가 눈치가 좀 없어요......... 가끔씩.. 히잇~ 자... 그것보다 뭘 먼저 하는게 좋을까요?...........
 드라이브 아니면.........”
 

현준은 그러고 보니 아침에 빵 한조각 먹고 나온 후로 지금까지 아무것도 안먹었다. 공복감이 이어지다 못해 안 느껴져서
잊고 있었는데 
갑자기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현준은 당황해서 얼굴이 붉어졌는데 지애는 소릴 듣자마자 킥킥 웃는다.
 

“몸은 솔직하죠... 말 대신 몸으로 대답해주시네요... 푸하하.......” 

“민망합니다... 에헤헤... 점심 먹은지 오래되서.......”

“쿡쿡쿡... 좋아요!!.. 일단 식사부터 해요... 우리~ 어차피 그러려고 나오시라 부른거니까.............”
 

지애는 호탕하게 아하하 웃더니 핸들을 쥐고 엑셀을 밟았다. 아직 면허가 없는 현준은 운전할 줄도 몰라서 곁눈질로 그녀의
동작을 훔쳐보며 
트레이닝 복장도 어딘지 모르게 섹시하고 멋지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운전하는 모습도 매력있고 그런데
밟는 움직임이 좀 세다.
 

세상에 고속도로도 아니고 시내에서 시속 70km를 밟다니..?? 빠른 속도감에 현준은 불안해서 창문 위 손잡이만 꼬옥 쥐었다.
시내는 그날따라 마침 한산해서 차는 번개같이 중앙역 25시 광장에 도착한다. 지애는 차를 세우고 싱긋 웃으면서 말했다.
 

“여기서 식사하시는 게 어때요?.....” 

“좋아요~ 먹거리도 많고 산책도 하고 괜찮습니다... 저도 여기 자주 왔었어요..........”

“그렇구나~~ 후후... 현준 씨 좋아하시는 음식은 뭐예요?..........”

“전 다 잘 먹어요... 키키... 가리는 음식 같은 거 없습니다... 지애씨는요?........”

“저두요... 편식 따위는 있을 수도 없는 얘기예요... 호호호......”

“키키킥... 일단 내리죠.......”


시원한 저녁 바람이 무척 기분 좋아진다. 많은 사람들이 특히나 가족단위로 노천광장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 있다. 오늘도
라이브 공연을 하는지 기타, 드럼, 디지털 피아노 몇몇 장비들이 눈에 띈다. 
저런 악기들와 음악 세션들에 대해서도 꼭 배워
보고 싶었다. 
현준은 음악을 참 좋아해서 잠시 벤치에 앉아서 지애와 공연을 즐겼다.
 

“으.. 배고파요... 현준씨, 재밌게 보시는 것 같아서 미안한데.. 그만 보고 얼른 가죠... 음악이 좋아서 빠져버렸네... 근데
 더는 못참겠어요.......”

“하하... 그래요.. 저도 한계가.. 밥을 잊고 있었네요.. 뭘 먹을까..?”

“이 골목으로 쭉 들어가다 보면요... 눈에 잘 안띄는 곳이지만.. 괜찮은 이탈리아 레스토랑이 있어요... 파스타 어떠세요?...”
“좋죠!.. 저도 좋아합니다... 얼른 가죠..........”
 

그런데 뱃가죽이 등에 붙을 지경이라 사실 현준은 걱정이 된다.
 

‘파스타?... 맛있기는 한데 국수 가락 먹으면서 배가 차겠어...?’
 

한적한 곳에 있는 분위기가 아주 괜찮은 가게였다. 현준은 분위기 있는 가게는 좀 어렵게 느껴져서 어릴 적부터 패밀리
레스토랑이니 
이런 곳과는 인연이 없었다. 오죽하면 열아홉살 이 나이 먹도록 누가 가자고 데려와 주길 했나 안산에서 자랄
동안 항상 주변엔 시커먼 
남자놈들만 드글드글 했으니 여자들과 만나도 주로 가는 코스는 정해져 있다. 허구헌날 여관아니면
모텔, 호프집 
좋은 여행이라든가 괜찮은 곳도 가끔씩 다니고 그랬어야하는데 좀 아쉬운 생각이 든다.
 

약간 뻘쭘하지만 어색한 감정을 티내기 싫어서 애써 태연한 척 긴장한 얼굴로 메뉴판을 폈다. 얼레? 메뉴들 가격이 생각보다
비싸진 않네 
이거 잘못하면 어리버리 움직이다가 촌티나는 걸 다 들키진 않을까 별게 다 있구나. 사진만 보면 다 맛있어
보이네 고민된다. 
빠르게 눈으로 사진들과 들어간 재료들을 조용히 훑어보는 현준 일단 무난하게 보이는 까르보나라 그리고
지애는 해물 크림 파스타를 시켰다. 
지애는 꿀꺽 꿀꺽 물 한컵을 다 마시며 개운한 표정을 짓는다.
 

“푸앗... 살 것 같다... 목이 말라서 혼났어요...........” 

“핫핫... 성격이 시원시원한 편 같아요!... 지애씨..........”

“그런 편이라고 생각해요... 저도... 쿠쿠쿠... 아.. 그 재킷 아까 만날 때도 생각했는데 깔끔하고 멋지더라구요.......”

“이게요..? 옛날에 입던 건데.. 감사합니다... 흐흐........”
 

이런 저런 이야기를 천천히 나누면서 현준은 조금씩 더 이 여자에게 호감을 느꼈다. 역시 그 전화상대는 다른 사람이었던 게
아닐까?
에피타이저로 나온 빵을 갈릭소스에 정신없이 찍어먹는 지애 곧 식사가 나오자 둘은 눈을 음식에서 못 떼고 이성을
잃은 얼굴이 되었다. 
빠른 속도로 먹어치우기 시작한다. 현준은 뜨거워서 제대로 먹지도 못하는데, 지애는 뭐 거침이 없다.
눈깜짝할 사이에 빈 접시를 보이기 직전이 되자 [앗-]하고 정신을 차리는 지애 현준은 이제 1/3 정도 겨우 먹었다.
 

그제야 ‘내가 너무 정신놓고 먹었구나..’ 하는 생각이 퍼뜩들며 잘 보이고 싶었던 눈앞의 남자를 의식하며 얼굴이 빨개지는
것이다. 
현준은 지애의 흔들리는 눈빛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눈치를 챘기 때문에 그냥 모른는 척하고 속으로만 킬킬
웃었다.
 

“호호.. 오호호.... 여..기는 야... 양이 좀.. 적네요.. 아하하..........” 

“저는 오히려 생각했던 거보다 좀 많다고 생각했는데요.......”

“이럴 거예요..? 지금 속으로 나 비웃고 있죠?... 엄청난 돼지라고 흐흑..............”

“캬캬... 아닙니다... 잘 먹는 사람은 누구나 보기 좋아요... 하하... 이것도 좀 드세요........”

“그.. 그럴 순 없어욧..! 저도 염치는 있지.. 현준씨도 배고픈데 잠깐만요.. 음.. 하나를 더 시켜야지.. 둘이 같이 노놔 먹어요..”
“노.. 노놔 먹어요?... 풉.. 푸하하하..........”
 

갑자기 튀어나온 구수한 사투리에 현준은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지애는 응? 왜 그러지 하는 얼굴로 현준을 보며 해맑게
웃는다. 
잘은 몰라도 자기 때문에 뭔가 즐겁다고 생각했는지 그냥 씨익 웃으면서 메뉴를 열심히 뒤적 뒤적하며 눈빛만
반짝거렸다.
 

“아.. 이런.. 새우 링귀니 파스타 요게 뭔지 신기해서 시켜볼라 그러는데.. 이거 너무 비싸네요.. 음, 닭가슴살 스파게티로!..
 여기요~~”

“지애씨.. 근데 진짜 그 많은 걸 다 드시고도 또 시키면.. 다 먹을 수 있겠어요?.. 걱정이 되는데요.. 후루룩- 음.. 맛있당...”
“킥킥... 현준씨 꺼나 얼른 드세요... 오~ 거의 다 드셨네... 같이 먹으면 되죠 호호.......”
 

맛있게 게눈 감추듯 먹어 치운 두사람은 그제야 포만감 가득한 얼굴로 가게를 나왔다. 현준은 배가 부르니까 기분이 좋아서
환하게 웃는 지애를 보고 엄청 귀엽게 느껴졌다. 
보면 볼수록 단순히 이쁜 얼굴을 떠나서 사랑스러운 매력이 있는 여자였다.
차를 세워둔 곳 가까이로 돌아간 두 사람은 근처의 많은 커피숍 중에서 탐앤탐스를 골라 들어갔다. 지애는 ‘까페베네가 좋긴
한데 드럽게 비싸요..’ 중얼거린다. 
둘다 고르기 귀찮아서 시원하게 카라멜 마끼아또로 통일해놓고 따듯한 느낌이 좋은
마끼아또로 후루룹 목과 마음을 적시면서 훈훈한 대화를 나누었다.
 

“참... 아까 전화로... 무슨 자영업을 한다고 하셨는데........” 

“아~ 그거요... 제 가게는 서울에 있어요... 강남역 근처에... 자영업이라고 하니까 좀 이상하네요... 호호... 아까는 마음이
 급해서 그렇게 말했나봐요.. 
조그만 화장품 가게를 하고 있어요... 저희 언니랑 같이......”

“그렇구나... 멋진데요... 우와... 강남역이면 비싼 동네잖아요?..........”

“그렇죠.. 임대료가 엄청나요.. 사실 제가 능력이 있어서 차린 것은 아니구요... 저희 어머니가 큰 맘 먹고 차려주셨어요..
 헤헤... 부끄럽다... 죄송해요... 
절대 자랑같은 말투로 한 얘기는 아니예요... 오해마세요.........”
 

“이상하게 생각 안했어요... 흐흐... 걱정마세요. 부럽다고만 느꼈죠.. 언니가 있으시구나... 언니는 몇 살이예요?.......”

“언니는 스물 아홉이예요... 아직 당연히 결혼 안했구요.. 애인은 사귀지도 않고 바보같이 일만해요.. 저랑은 디게 친하고
 어릴 때부터 사이가 좋았어요.. 후후. 
마음씨도 아주 착하구요. 얼굴은.. 음.. 뭐라고 해야되지? 이건 얘길 잘 해야 되는뎅...”
 

지애는 뜸을 들이다가 현준이 계속해서 빵빵 터지며 웃어대자 자기도 피시식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깔깔깔 재밌는 얼굴로
웃었다.
 

“그러차나욧... 미모에 있어서 우열을 가리는 건 어려운 이야기니까.. 쿄쿄.. 장난이구요.. 우리 언니가 저보다 이뻐요.. 호호..
 매력은 제가 더 있는 것 같지만......”

“하하... 지애씨도 아주 이쁘세요.. 매력 흘러넘치는 건 말할 필요도 없고요... 톡톡 튀는 성격이 너무 보기 좋거든요!.....”
“어맛... 그래요? 홀홀.. 모.. 그런 말도 종종 들어보기는 했지요.. 오호호~~ 아.. 맞다!! 말이 나온김에, 우리 지금 그리로
 갈까요?... 강남역 쪽으로!......”

“네에..?? 지금이라니.. 근데 저 오늘 서울에서 올만에 온건데요.......”

“알아요.. 알아요!!.. 아버님 뵈러 왔다구 했죠?... 데려다 드리면 되는 거잖아요?........ 히히~”
 

엄청 천진난만하고 시원 시원 생각한 것을 빠르게 행동으로 옮기는 아이다. 현준은 그런 모습을 보면서 말은 안했지만 잘은
몰라도 얼굴 표정이나 말할 때의 느낌들을 보면 뭔가 계산적이라거나 
얍삽빠르고 여우 같아 보이는 그런 것 같지는 않구나
라고 생각했다.
 

‘설정하는 느낌은 아닌 것 같아.. 맹~한 매력이 있는.. 긍정적인 에너지가 넘치네.. 하하........’
 

오늘 처음 만나서 가진 데이트인데 자기도 느끼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 어느새 이 쿨하고 소탈한 아가씨에게 조금씩 빠져들어
가는 현준이었다. 
현준은 안산에서 돌아온 다음주 월요일이 되자 학교로 반드시 돌아가겠다고 다짐을 했었건만 등교하려니
머리에 쥐가 나기 시작하고 속이 메스껍고 답답해옴을 느꼈다. 
머리로는 용케 가야지 착한 마음을 먹었지만 몸이 생리적으로
심한 거부반응을 일으킨다.
 

“아우 넘어올 것 같고 왜이러지.. 큭큭큭 그냥 가지 말라는 계시인가.. 아 죽겄네.........”
 

그래도 집에 누워 쉬고 싶다는 강한 유혹과 울렁증을 잘 극복해내고 결국 기특하게도 가방을 매고 학교를 향해 나선다. 어제
일요일 밤에도 영애에게 연락을 해보고 싶었지만 
혹시 모를 아저씨(영애의 남편 준호)가 옆에라도 있으면 대단히 난처하기
때문에 
섣불리 전화를 아니 문자도 보낼 엄두를 내지 못했다. 지극히 정상적인 심리다. 그런데 내심 아쉬운 것이 뭐냐면언제든지 목소리가 그립고 이야기가 하고 싶으면 찾아달라고 말한 영애 누나 참 자상하고 나를 생각해줘서 고맙다는 마음이
들면서도 다른 한켠에는 이런 생각도 든다.
 

‘근데 꼭... 내가 연락을 하기 전에는 생전 연락하는 걸 본 적이 없단 말이야..? 처음으로 올림픽 공원 데이트 한 날 아니 그
 전에 날짜 정할 그때만 먼저 연락을 줬고.. 
생각해보면 그 다음부터는 항상 내가 먼저 누나를 찾았네.....’
 

굳이 그런 피해망상을 가질 필요는 없는데 누나가 좀 얄밉다는 생각을 하게 되자 아쉬움이 상당히 크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자기 욕심이라는 건 스스로도 알지만 씁쓸한 입맛을 다시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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