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들의 행진곡 - 56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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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점을 나와 집으로 갈려고 지하철을 탔는데 천장에 붙어있는 지하철 지도를 보고있던 선규가 별안간 말을 꺼냈다.
"엄마, 우리 영화보고 갈래?"
"영화? 내일 학교가야 하는데 이시간에 무슨 영화니?"
"간만에 나온김에 엄마와 영화보고 싶어서 그래... 이런 기회가 아니면 엄마와 같이 나오는게 힘들잖아"
"그래도 지금은 너무 늦었잖아... 내가 일요일 같은날 하루 쉬어볼테니 그때 가자"
그러자 선규는 언짢은 인상을 지으며 짜증을 냈다.
"내생일인데 그거 하나 못들어줘?"
선규의 기분이 돌변한걸 보고 순간적으로 긴장한 명숙은 시계를 보며 설득해 보았다.
"주말도 아닌데 이시간에 하는 영화가 어딨어? 해도 전부 마지막 상영을 하고 있을거야"
"어쨋든 가보자"
도저히 아들의 고집을 꺽지 못할거 같아서 명숙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아침일찍 일어나야 해서 극장가는것이 이내 못마땅
했지만 생일날의 아들기분을 망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럼 한번 가보자... 무슨 영화가 보고싶은데?"
"가면 알겠지"
다시 표정이 밝아진 선규는 지하철이 집에서 몇정거장 떨어진 역에 서자 그녀의 손을 잡고 내렸다. 어리둥절한 마음으로 아들의 손에
끌려나온 명숙은 거리로 나오자 주위를 둘러보았다. 시내한복판을 벗어난 그곳은 상가로 이루어져 있었고 저멀리에서는 아파트단지들이
보였다.
"여기에 극장이 있어?"
"찾아보면 있겠지"
선규가 자세히 얘기를 해주지 않고 계속해서 주위를 두리번 거리기만 해서 그녀의 가슴속에서는 일말의 불길함이 생겨났다. 워낙 엉뚱한
짓을 잘하는 애라서 지금의 행동을 보니 정말로 극장에 갈려고 한게 아닌것 같았고 또한 이동네도 처음 와보는것 같았다. 그녀의 손을
꼭 잡고 한참동안 골목을 이리저리 헤매던 선규는 상가가 뜸한 곳에 이르자 마침내 발걸음을 멈추었다.
"저기 가자"
그가 가리킨 곳을 보고 명숙은 기겁을 했다. 4층짜리 건물에 걸려있는 간판들중에서 선규가 가리킨 간판에는 비디오방이라고 적혀있었다.
"비..비디오방에 가잔 말이야?"
"응... 엄마말대로 이시간에 영화를 새로 상영하는 극장이 어딨어? 그러니 이런곳에 와야지"
겁을 먹은 명숙은 호기심이 잔뜩 있는 선규의 손을 가까스로 뿌리치고 뒤로 물러났다. 그녀도 신문이나 잡지를 통해 비디오방에 대해서
알고 있었고, 또한 그곳에서 사람들이 남부끄러운 짓을 하는것도 들어 알고있었다. 그런곳을 엄마인 그녀와 가자고 하는 아들이 기가
막히기만 했다.
"너, 비디오방에 가본적이 있니?"
"아니... 나도 처음이야"
"이런곳에서 사람들이 영화만 보는게 아니라는걸 알고있어?"
"그건 일부분의 사람들만 그러는거야... 거의가 그냥 영화보러 온데... 내 친구들도 갔었는데 극장보다 훨씬 편하데"
긴장하고 있는 명숙이 아무말을 하지않자 선규는 천진난만한 기색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영화만 보는건데 어때? 엄마도 영화보는걸 좋아하잖아"
"그..그래도 누가 보면......"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기 때문에 아는 동네 사람을 만날 염려도 없어"
그소리에 명숙은 다시한번 놀라지 않을수가 없었다. [애가 어찌 이렇게 영악할까?...] 비록 자신이 낳은 자식이지만 이렇게 잔머리를
굴릴때는 다른 사람으로 느껴져 혀가 찼다. 그러면서 그녀가 계속 침묵하고 있으니까 선규는 간절한 어조로 애원했다.
"엄마와 오래간만에 나와서 같이 저녁도 먹고 영화도 보고 들어가고 싶어서 그래. 내생일날 같이 있고싶은 사람은 엄마뿐이라고 했었잖아"
한참동안 주저하던 명숙은 그소리에 마음이 흔들렸다.
"그..그냥 영화만 볼거지?"
"영화보러 온건데 또 뭘 하겠어?"
선규의 얼굴표정을 보니 진심인것 같았다. 어차피 계속 싫다고 하면 선규가 섭섭해서 기분이 안좋아질거는 뻔해서 내키지가 않다러도
들어가야 한다는것을 아까부터 짐작하고 있었다. 다시한번 간판을 바라본 명숙은 이윽고 긴한숨을 내쉬며 무거운 입을 열었다.
"알았어... 네가 원하는대로 들어가서 보자... 대신 영화만 보고 나와야 하고 혹시 이상한 눈치를 챌지도 모르니까 행동을 조심해야 해...
약속할수 있지?"
그러자 선규는 금새 안색이 환해지며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알았어... 추운데 빨리 들어가자, 명숙씨"
"....."
"이러면 우리가 엄마와 아들이라는걸 아무도 모를거 아니야"
입을 크게 벌리고 경악을 하던 명숙은 장난기어린 웃음을 짓고있는 아들의 손에 이끌려 주위를 살피면서 건물안으로 들어갔다.
선규에게 이끌려 비디오방의 입구에 들어선 명숙은 몹시나 긴장을 하고 있어서 안면이 굳어있었다. 그러나 입구에서 종업원이 맞아주자
자연스럽게 행동할려고 마음을 가다듬으며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지을려고 안간힘을 썼다. 수없이 와본것 같이 말하는 선규와 그녀를
데리고 종업원은 어느 방으로 안내했다. 방안에 들어선 명숙은 기가 막혀서 그저 가만히 서있기만 했다.
어두운 방안에는 커다란 텔레비젼과 소파가 놓여있었는데 말이 소파지 거의 침대와 다름없었다. 등받이는 거의 뒤로 기울어져 있었고
앉는 부분은 넓어서 성인 두명이 누워 자도 충분할 정도였다. 그런 그녀를 놔두고 선규는 종업원과 밖으로 나갔다. 종업원은 매일 남녀가
함께 오는걸 보는지 시종일관 아무렇지도 않은 태도였다.
그들의 관계를 몰라도 분명히 그녀가 선규의 엄마뻘되는 나이인것을 눈치챘을텐데 전혀 이상하다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었다. 조심스럽게
소파위에 걸터앉은 명숙은 한번도 와보지 않은 어둠침침한 방안에 혼자 있다는걸 상기하자 조금씩 두려움이 생기기 시작했다. 문을
바라보면서 선규가 오나 눈이 빠지도록 기다렸으나 그는 좀처럼 나타나지를 않았다.
[얘가 왜 이렇게 안오는거야? 여기서 찾으러 나갈수도 없고.....] 초조한 기색으로 저도모르게 스커트의 끝을 만지작 거리고 있는데
이윽고 방문이 열리며 음료수들을 든 선규가 들어왔다.
"왜 이렇게 늦게 온거야?"
벌떡 일어나서 나지막한 소리로 다그치자 선규는 미소와 함께 마치 아이를 걱정하는 표정을 지으며 다가왔다.
"내가 없어서 무서웠어?"
"이런데 나혼자만 놔두고 나가면 어떡해?"
"무슨 영화를 볼건지 고르느라고 늦었어... 겁이 많이 났나 보구나... 그러니 귀여워 보인다"
"몰라"
그를 보고 안심해 하는 명숙의 태도가 마음에 드는지 선규는 연신 싱글벙글거리고 있었다.
"아무도 눈치안챘지?"
"그럼... 아마 우리를 연인으로 생각할거야"
"....."
"그리고 눈치채면 어때? 엄마와 아들이 영화보러 오는게 이상한건 아니잖아"
할말이 없어진 명숙이 다시 자리에 앉자 선규는 음료수들을 내려놓고 텔레비젼을 틀었다.
"무..무슨 영화를 골랐어?"
"좋은 영화를 골랐어... 이상한거 아니니까 걱정하지마... 엄마도 좋아할거야"
태연스럽게 말하는 선규는 음료수들을 내려놓고 그녀옆에 앉았다.
"아까 내가 엄마이름을 불렀을때 기분이 어땠어?"
"자식이 그렇게 부르니까 이상하더라..... 장소가 이런곳이니까 그냥 넘어가지만 앞으로는 그러지마..... 난 네가 엄마라고 부르는게 아주
자연스럽고 좋아"
"나도 그래... 엄마와 내생각이 똑같네"
선규의 웃는 얼굴을 보던 명숙은 화면에서 영화가 시작되자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비록 선규가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래도 혹시 이상한
애로물을 고르지 않았나해서 은연중에 마음을 졸이던 그녀는 "햄릿"이라고 적혀있는 타이틀을 보고 깜짝 놀랐다.
"고상한걸 골랐네"
"마음에 들어?"
"응... 너, 이런걸 좋아하니? 아주 뜻밖이다"
"옛날에 책으로 읽었는데 흥미롭더라... 엄마도 좋아할거 같아서 이걸로 골랐어"
선규의 뜻밖의 선택에 놀라던 명숙은 긴장을 풀고 화면을 응시했다.
"이거 옛날에 내가 봤던거랑 다르네"
"몇년전에 새로 만들어진거야"
명숙은 고개를 끄덕이며 선규와 함께 영화속으로 몰입했다. 로렌스 올리비에가 맡았던 햄릿역을 멜 깁슨이 열연하는 영화는 현대적인
감각을 풍기며 새롭게 느껴졌다. 삼촌에게 암살당한 부왕의 복수를 계획하는 햄릿, 그삼촌과 결혼한 엄마와의 갈등등을 보면서 그녀는
점점 영화속으로 빠져들어갔다. 영화 중간에서 햄릿을 문책하려고 부른 엄마가 오히려 그의 말을 듣고 크게 반성하는 장면을 보고있는데
불현듯 이상한 느낌이 들어 옆을 쳐다보니 선규가 알수없는 표정으로 그녀를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었다.
"영화 안보니?"
"햄릿과 그의 엄마가 끝에 어떻게 되는지 알지?"
"둘다 죽잖아"
"그운명을 피할수 있었는데 왜 그렇게 됐는줄 알아?"
"....."
"우유부단한 성격때문이야..... 나같았으면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할거없이 단숨에 삼촌이라는 자를 죽이고 엄마와 행복하게
살았을거야"
명숙은 순간적으로 섬뜩함이 느껴졌으나 이해가 안되는 점이 있었다.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서?"
"아니... 엄마를 차지했기 때문이야... 아버지가 죽었든말든 난 상관안해"
그말을 들은 그녀는 또다시 아들에게서 나오는 그녀를 향한 강한 집착과 소유욕이 느껴져서 선규와 거리를 두며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선규는 번개같이 바짝 다가와서 속삭였다.
"내가 저기서 제일 마음에 드는게 뭔지 알아?"
"....."
"햄릿이 약혼녀를 거부하고 자기엄마의 잘못된 생각을 가르쳐주는 대목들이야... 엄마는 저러지 않을거지?"
숨도 못쉬며 선규의 절실하게 보이는 얼굴을 바라보던 명숙은 그가 왜 햄릿을 선택했는지 어렴풋히 짐작이 되는것 같았다.
"저..저번에 네가 수학여행에서 했던 말을 내가 안들었다고 이러는거야?"
"엄마와 단둘이서 행복하게 사는게 내가 제일 원하는거야... 그러니 제발 내가 걱정안하게 해줘"
그것은 언제나 그의 말을 들으라는 일종의 경고나 다름없었다. 아들의 이러한 태도에 순간적으로 화가 치밀어 오른 명숙은 반박했다.
"내가 네말을 안듣는게 어디있어? 네가 원해서 여기까지 따라왔잖아... 그렇게도 네엄마를 못믿니?"
"엄마하고 떨어져 있어보니까 불안했어"
"선규야....."
"엄마는 나를 남자로 생각안하잖아... 그건 아들로 생각하는것과 전혀 다른건데 내가 어떻게 안심할수 있겠어?"
"내가 다른 남자를 만날 생각이 없다는건 네가 더 잘 알잖아"
"남녀의 일이란 아무도 모르지"
이러다간 얘기가 계속 원점으로 돌아갈것 같애서 명숙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만 집에 가자"
그러나 선규는 다시 그녀를 자리에 앉히더니 전광석화같이 달려들어 키스를 했다. 갑자기 기습을 당한 명숙은 아들을 간신히 떼어내며
문쪽을 살폈다.
"너, 미쳤니? 이상한 짓 안한다고 약속했었잖아... 누가 들어오면 어떡할려고 그래?"
"문 잠궈서 아무도 들어올 염려는 없어... 그리고 영화 끝날려면 아직 한참 남았으니까 걱정하지마"
어느새 욕정으로 사로잡힌 아들의 얼굴을 보고 공포감이 엄습해와서 다급하게 일어설려고 했지만 선규가 놔주지를 않았다. 그녀를 소파
위에 눕히며 위에 올라와서는 다시 진한 키스를 퍼붓자 명숙은 몸부림을 쳤다.
"지..집에 가서 하자"
"여기서 하고싶어"
그러면서 선규의 손이 그녀의 스커트속으로 침범해 오자 명숙은 그에게서 벗어날려고 필사적으로 발버둥을 쳤다. 집밖에서 성행위를
하는것을 무척이나 꺼려했던 명숙은 온몸이 긴장되어 매우 절박한 심정이 들었다. 더군다나 이런 공공장소에서 아들과 섹스를 할수는
더더욱 없는 노릇이었다. 어떡하든 이상황을 모면할려고 안간힘을 쓰는데 선규의 손이 둔부에 닿자 있는힘을 다해 그를 밀쳐냈다.
"도대체 왜 이래? 내가 싫다고 했잖아! 내가 아무데서나 네성욕을 풀어주는 여자야?"
매섭게 노려보는 그녀의 눈길앞에서 선규는 순간적으로 당황하는 빛을 보였으나 곧 태연한 얼굴을 하며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엄마는 나를 아들로만 생각하는데 그아들이 원하는거를 들어주기 싫은 모양이지? 그것도 아들의 생일날에 말이야"
"....."
"햄릿의 엄마는 아들이 마실 독이 든 술을 마셔주는데 엄마는 그렇지 않은가 보네"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선규를 보며 명숙은 극심한 분노가 들었다. 태어나면서부터 오직 아들만 사랑해주고 온정성을 쏟아부었는데
그걸 선규가 몰라주고 오히려 의문을 제기해서 배신감마저 느껴졌다. 자식이라는게 원래 부모의 사랑을 받기만 하는 존재라는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정도인지는 몰랐다. 허탈감까지 들어 심정이 착잡해진 명숙은 자리에 털석 주저않으며 나지막한 소리로 말했다.
"나와 단둘이 살겠다고? 나중에 반드시 너를 결혼시킬거야... 너도 네자식들을 키우면서 고스란히 당해봐라"
그러면서 고개를 숙이고 두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있는 명숙의 눈에서는 어느새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흐는끼는 소리를 들은 선규는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바뀌면서 얼른 그녀옆으로 다가와 앉았다.
"미안해, 엄마. 그렇게 말한건 내진심이 아니었어... 엄마가 나를 얼마만큼 사랑해 주는가는 나도 잘 알아"
"....."
"내가 잘못했으니 그만 울어... 나도 가끔가다 왜 그렇게 말을 삐뚤어지게 하는지를 모르겠어... 정말로 내본심이 아니었어"
그리고는 여전히 흐느끼고 있는 그녀를 안고 등을 다독거려 주었다.
"오늘같은 날에 엄마가 울면 내가슴이 아프잖아... 다시는 그런말을 않할테니까 울음을 그치고 이제 그만 집에 가자"
아들의 가슴품안에 안겨있는 명숙은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진정할려고 해봤지만 마음은 계속해서 괴로웠다. 선규가 잘못했다고 사과를
하지만 항상 가끔가다 이런식으로 그녀의 속을 뒤집어 놓았다. 옆에 아무도 없어서 그런지 그가 이렇게 나올때면 그녀의 마음을 너무나도
몰라주는게 속이 상해서 심한 외로움이 느껴지고 억장이 무너지는것만 같았다. 예전에도 그러한 성격이 있었지만 성관계를 맺으면서부터
선규는 그녀에 대한 집착과 비꼬는듯한 사고방식이 더 심해진것 같았다.
[도대체 어디서부터가 잘못된걸까? 역시 아들과 이러지를 말았어야 했는데..... 모든게 내잘못이지 누굴 탓하겠어?] 착잡한 심정은 떠나
가지를 않았으나 선규의 생일날 이러면 안되겠다싶어 애써 마음을 가다듬고 천천히 고개를 들어 근심어린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내가 너를 사랑하는것에 대해 자꾸만 의심이 가니?"
"....."
"보통 남녀의 사랑은 언제든지 변할수가 있는거야.. 네아빠와 나처럼... 하지만 부모와 자식간은 달라... 네가 나를 미워한다고 해도 나는
널 언제까지나 사랑할거야... 너를 위해서라면 죽을수도 있어... 그러니 그건 남녀의 사랑보다 더 큰거야... 알겠니?"
아무말없이 조용하게 듣던 선규는 다시 그녀를 껴안았다.
"다시는 안그럴게... 나도 엄마만을 사랑하니까 영원히 내옆에만 있어줘"
측은하게 말하는 선규의 말을 듣고 왠지모르게 불쌍함이 들어 명숙은 품안으로 그를 꼬옥 안았다.
[자식이라서 화도 못내겠구나. 나중에 커서 자기짝을 만나면 나아지겠지] 얼마동안 그녀의 품안에 있던 선규는 고개를 움직이더니 또한번
그녀에게 입술을 포개었다. 비디오방에서 이러는게 여전히 불안했지만 외롭게 느껴지는 아들에 대한 측은함을 떨쳐버리지를 못해서 그냥
그가 하는데로 내버려 두었다.
부드럽게 키스를 하는 선규는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가득차 있었다. 저녁을 먹고 그냥 집으로 돌아가기는 아쉬워서 어디를 갈까하고
생각한것이 비디오방이었다. 비디오방을 가본적은 한번도 없었지만 거기서 무슨일이 일어난다는것을 알고있던 선규는 엄마와 가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그곳에서 이상한 짓을 하면 엄마가 펄쩍 뛸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생일이라는것을 이용하면 할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항상 집에서만 섹스를 했던 선규는 엄마와 연인처럼 데이트도 하면서 집밖에서 섹스를 해보고싶은 마음이 늘 있었다. 문제는 엄마가
그러한것을 싫어하는 것이었는데 마침 생일이고 해서 며칠전부터 생각해왔던 것이었다. 간신히 설득시켜 비디오방으로 데려간 그는
엄마를 더욱 안심시킬려고 영화목록을 보다가 "햄릿"을 골랐다. 영화시간도 길어서 안성마춤이었다. 그가 예상했던데로 엄마는 안심을
하며 영화에 몰두했었다. 그도 처음에는 함께 영화에 집중했었는데 햄릿이 부왕의 망령을 만나는 장면에서 뒤통수를 얻어맞는 느낌이
들었다. 보이지않게 햄릿을 따라다니는 부왕의 망령, 그것은 그자신의 상황과 너무나도 흡사했다.
영화를 보면서 생각해보니 어렸을때 헤어지고 한번도 보지못했던 아빠의 존재가 항상 느껴지며 위협감마저 주고 그를 억누르는것은
영화속의 망령과 똑같았다. 그전에는 왜 그런 느낌이 드는지를 이해할수가 없었지만 영화처럼 보이지않는 아빠가 계속해서 그를
따라다닌다는 생각을 하니 저도모르게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러면서 엄마에 대한 불안감도 더욱 몰려왔다. 선규도 엄마가 다른 남자를
만날 사람이 아니라는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가슴속에 있는 뭔가 알수없는 불안감은 아무리 애를 써도 지워지지가 않았다.
특히 아빠를 생각하면 더욱 그랬다. 그러는 그에게는 엄마의 입에서 그만을 사랑한다고 계속해서 확인을 받아야만 그나마 안심이 되었다.
그러면서도 엄마가 그가 원하는데로 해주지 않을때는 의심이 들어 저도모르게 화가 나고 아무말이나 나왔다. 지금도 그런상황이었다.
그동안 선생님과의 일도 있고해서 지난번 수학여행때 전화했던 일에 대해 아무말도 하지못했던 그는 가슴속에 사묻혀져있던 불만이
폭발해서 마음에도 없는 말을 했다.
하지만 엄마가 눈물을 흘릴때면 가슴이 아파지는 선규는 그녀의 말을 듣고 그런말을 한 자신이 후회스러웠다. 선생님이 그에게 잘해주고
그녀의 상황에 동정이 가서 잘해주고 싶은 마음뿐이지만 선규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엄마뿐이었다. 이제는 성욕도 없어지고 그저
엄마의 품안에만 있고 싶었던 그는 오로지 그녀와 정신적으로 하나가 되어 부부같은 모자가 되고싶은 생각이 간절하기만 했다. 그녀의
따스한 품안에서 마음의 평온을 되찾은 선규는 무슨일이 있더라도 그만을 사랑해 주겠다는 엄마의 말이 고맙고 가슴이 뭉클해져서 저도
모르게 그녀에게 입을 맞추었다.
텔레비젼 화면에서는 영화가 계속 나오고 있었으나 선규의 머리속에는 오직 엄마밖에 없었다. 엄마는 아까처럼 밀쳐내지 않고 그를 안아
주며 키스에 응해주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입을 떼며 고개를 들자 어느덧 눈물이 멈춘 엄마는 포근하게 변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젠 괜찮아졌어?"
"응"
"집에 돌아가자"
말을 끝낸 선규가 일어났으나 엄마는 여전히 자리에 앉은체로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안가?"
"왜 여기에 오자고 했니? 정말 영화만 볼려고 온거야?"
"....."
그가 아무말도 못하고 그저 서있기만 하자 엄마는 약간 주저하는 기색을 보이다가 이윽고 입을 열었다.
"이런곳에서 하고 싶었어?"
"....."
망설이던 그녀는 뭔가 결심을 한듯 얼굴빛을 바꾸고 소파를 가리켰다.
"앉아봐"
선규는 엄마가 무슨말을 할려는지를 몰랐으나 그냥 그녀가 시키는대로 옆에 앉았다. 그러자 엄마는 그에게 바짝 다가오더니 안경을 벗고
키스를 하면서 그의 아랫도리를 부드럽게 애무했다. 깜짝 놀란 선규는 황급히 그녀의 얼굴을 잡고 물었다.
"엄마....."
"영화가 끝날때까지 아무도 안들어 오는게 확실하지?"
"응... 하지만 엄마가 이런거 싫어하는데 안해도 돼... 아까는 내가 제정신이 아니었어서 그랬던거야"
"지금도 원해?"
"....."
무슨말을 해야 좋을지를 몰라 입만 벌리고 있는 선규를 보던 그녀는 만면에 홍조를 띈체 고개를 끄덕이면서 문쪽을 한번 보더니 천천히
그의 혁대와 바지를 풀기 시작했다. 말리지도 못하고 멍하니 지켜보고만 있던 선규는 아직 발기되어 있지않은 성기가 그녀의 촉촉한
입안으로 들어가자 저도모르게 작은 탄성을 내질렀다.
"아..... 엄마........"
그녀가 손으로 불알을 어루만지며 입안으로 성기를 빨아들이자 선규는 다시 불같은 성욕이 일어나며 성기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낯선
장소에서 성행위를 싫어한다던 엄마가 갑자기 왜 이러는지를 알수가 없었으나 그녀가 자진해서 해주는거여서 선규는 아무말않고 엄습해
오는 욕정을 받아들였다. 성기가 완전히 발기되자 엄마는 혀로 민감한 귀두부터 뿌리까지 구석구석을 핥아주더니 다시 성기를 입에 물고
머리를 흔들면서 정성껏 빨아주었다. 그러자 빨려들어갈것 같은 쾌감으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선규는 점차적으로 이성을 상실해 갔다.
집이 아닌 공공장소에서 엄마와 이런 행위를 하니 그가 생각했던것 보다 더 짜릿한 전율과 흥분이 느껴졌다.
"아...... 아........."
등받이에 기대고 황흘감에서 헤매던 선규는 더이상의 자극을 참지못하고 그녀의 얼굴을 들었다.
"올라와봐"
목이 쉰 소리로 말하자 엄마는 또다시 문쪽을 바라보더니 그의 두허벅지위로 올라왔다. 그리고는 스커트속으로 손이 들어오자 그녀는
순간적으로 움찔했으나 그가 커피색의 팬티스타킹을 벗기는것을 그냥 내버려 두었다. 그런다음 팬티는 벗기지 않고 꽃잎을 가리고있는
부분을 살짝 옆으로 옮긴다음 노출된 질속으로 성기를 삽입했다.
"아!......"
아직 질이 젖어있지를 않아서 고통으로 얼굴을 찡그린 엄마는 가만히 앉아서 그의 성기가 익숙해질때까지 기다리다가 이윽고 천천히
위아래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따듯한 질벽이 성기를 감싸면서 서서히 조여오자 선규는 그의 어깨를 잡고 움직이는 엄마를 쳐다보았다.
싫어함에도 불구하고 그를 위해서 이렇게까지 해주는것을 깨달은 선규는 엄마가 그를 사랑한다는것을 다시한번 확인하면서 그녀를
향한 사랑이 가슴속깊히 느껴졌다. 엄마의 모든것을 독차지하고 싶은 강렬한 충동과 욕망으로 그녀의 머리를 끌어 깊은 키스를 하면서
스커트속에 있던 상의들을 끄집어내 그속으로 손을 넣어 엄마의 매끈하고 탄력있는 육체를 정신없이 더듬었다.
그리고는 브래지어속으로 비집고 들어가 말랑말랑하면서도 약간 굳어져있는 젖꼭지들을 만지자 그녀의 입에서는 좀더 큰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아...... 아흑........"
바깥으로 소리가 새어나갈까를 의식해서인지 신음이 나오자마자 그녀는 급히 그의 입술사이로 입을 묻었다. 엄마가 그의 품속으로 바짝
안겨와서 극도로 흥분한 선규는 다른 한손을 스커트속에 집어넣어 팬티로 가려진 탄탄한 그녀의 엉덩이를 잡고 격렬하게 몸을 흔들기
시작했다. 엄마는 팬티스타킹을 제외하고 코트를 비롯해서 옷을 두껍게 입고있었으나 그래도 그녀의 부드러운 육체의 느낌은 선규의
온몸으로 전달되어 자극을 주고 있었다.
"읍!..... 읍!........"
"음!..... 읍!........"
절정에 다다른 선규는 엄마의 질안으로 한방울도 남김없이 사정을 했다. 그순간 그녀도 그를 부둥켜 안으며 약간의 가느다란 경련을
일으켰고 질벽은 성기를 더욱 조여왔다. 이윽고 기나긴 사정이 끝나고 입을 뗀 그들은 막혀있던 숨을 거칠게 토해냈다.
"헉헉......."
한동안 헐떡거리던 엄마는 조금 진정이 되자 땀으로 흥건히 젖어있는 이마를 덮고있는 그의 머리카락들을 쓰다듬으며 부드러운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좋았어?"
애정이 가득 담겨있는 그녀의 두눈을 바라보고 있던 선규는 가벼운 입맞춤을 하고 행복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너무나 고마워.. 엄마가 이런거 싫어한다는걸 잘 아는데........"
쑥스러운 미소를 짓는 그녀는 다시 선규를 포근하게 안아 뒷머리를 어루만져 주었다. 그녀의 어깨너머로 보이는 텔레비젼 화면에서는
햄릿의 엄마는 이미 죽어있었고 복스를 마친 햄릿이 친구에게 뒷일을 부탁하면서 서서히 죽어가는 마지막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선규를 안고 심신을 가다듬고 있는 명숙은 착잡하기만 했다. 아까 선규가 했던 말들이 가슴에 무척 걸렸었고 또한 오늘이 그의 생일이기도
해서 뭔가 그가 원하는걸 해주지 않으면 오래도록 마음이 불편할거 같아서 누구에게 들킬지도 모른다는 위험을 무릅쓰고 섹스를 했다.
하면서도 계속해서 문쪽으로 신경이 쓰여 좋은지를 전혀 모를 정도였다. 더군다나 집이나 호텔이 아닌 이런 장소는 처음이어서 몸도
경직이 되곤 했었다.
전에는 이런 짓을 꿈도 못꾸어 왔었는데 자신이 먼저 아들의 옷을 벗기고 했다는것이 믿겨지지가 않았다. 결혼생활때에는 부부관계가
재미없다고 남편이 늘 불평을 했었고 그녀도 그런 남편을 못마땅해 했었는데 낯선 장소에서 이런 낯부끄러운 짓을 남도 아닌 바로
친아들과 한 것이었다.
[그때 애아빠에게 이렇게 해줬었다면 좋아했었을텐데.....] 그러나 궁극적인 목표는 선규를 기쁘게 해주고 그녀가 사랑하고 있다는것을
보여주는데 있었기때문에 그것들을 모두 달성한거 같아서 그녀도 기분은 만족스러웠다. 조심스럽게 몸을 올려 음부안에 있던 성기가
빠져나오자 하얗고 끈적끈적한 정액이 아주많이 흘러내렸다. 급히 빽에서 손수건을 꺼내 꽃입을 닦고 팬티를 바로한다음 아들의 성기도
닦아주었다. 그런다음 팬티스타킹을 찾아 입고 흐트러져 있는 스커트와 상의들을 매만진후 텔레비젼 화면을 보자 영화는 어느새 끝이나서
배우들과 제작진의 이름들이 올라가고 있었다.
"어서 나가자... 마침 영화가 이때 끝나서 다행이다"
그러는 그녀의 가슴은 여전히 조마조마한데 선규는 기분이 좋은지 안색이 활짝 피어 있었다. 비디오방에 들어올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명숙이 바지를 입은 선규의 손을 잡고 재촉하자 그는 웃음을 지으며 문을 열었다. 밖에 아무도 없는것을 확인한 그녀는 안도를 하며
자연스러운 표정을 짓고는 아들과 함께 건물을 빠져나왔다. 그리고는 큰길가로 나와서 지하철역까지 오자 그제서야 완전히 안심이 되어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선규는 그런 그녀를 연신 웃음띈 얼굴로 쳐다보며 말했다.
"방안에는 우리밖에 없었고 밖에도 아무도 없었는데 왜 그렇게 떨었어?"
가슴에 손을 얹고 뛰는 가슴을 달래던 명숙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들었다.
"너는 아무렇지도 않니?"
"아니... 난 엄마만 괜찮으면 돼"
애가 겁이 없는건지 아니면 아직 어려서 아무것도 몰라서 그런지 이해가 안되서 은연중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데 질안에 들어있던
아들의 정액이 다리를 타고 흘러내리는게 느껴지자 얼른 그의 손을 잡고 계단을 내려가면서 모기만한 소리로 일러두었다.
"오늘 한번만 이런거야... 다시는 그런거 하자고 하지마... 알았지?"
"알았어"
해맑은 미소로 대답하는 선규를 보면서 명숙도 그저 웃음만 나왔다. 다음날, 그녀는 동네 비디오가게에서 "햄릿"을 빌려 못본 부분들을
마저 봤다.
기말고사가 끝나고 방학하는 날, 태수는 어느때와 다름없이 선규와 같이 등교할려고 그의 약국으로 갔다. 약국문을 열고있던 선규엄마는
그를 보고 웃음을 지으며 맞아주었으나 얼굴에는 어딘지 모르게 몹시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선규는 아직 준비가 안됐어요?"
"선규가 어제 독감에 걸려서 오늘은 학교에 못갈거 같애"
"요즘 유행하는 독감에 걸린거에요?"
"응... 너는 괜찮지?"
"네"
작년과 마찬가지로 유행하는 독감에 걸렸다니 선규가 조금만 아파도 안절부절 못하는 선규엄마가 근심하는 모습을 보이는게 당연했다.
"오늘은 수업이 없고 방학식만 하지?"
"네"
"그럼... 네가 선생님께 사정을 잘 말씀드려 줄래?"
"걱정마세요... 아줌마도 감기 옮지않게 조심하시고요... 학교갔다와서 선규한테 들릴게요"
"그래, 고맙다... 너도 조심하고... 특히 네엄마 잘 보살펴 드려라... 작년에 네엄마가 몸살에 걸려 고생했던거 기억하고 있지?"
"네... 무슨일이 있으면 아줌마께 달려올게요"
태수가 인사를 하고 떠나자 선규엄마는 약국문을 완전히 열고는 황급히 약국으로 들어갔다.
약국문을 닫을 시간에 명숙은 여전히 근심어린 얼굴로 의자에 앉아있었다. 어제 시험이 끝났다고 친구를 만나고 돌아온 선규는 종일
밖에서 있었는지 감기에 단단히 걸려있었다. 처음에는 증상을 안보였는데 한밤중에 옆에서 나는 끙끙 앓는 소리에 잠이 깨어 선규의
이마를 만져보니 불덩이였었다. 놀란 그녀는 밤을 꼴딱 새며 그를 간호해 주었고 약국에 있을때도 걱정이 떠나가지를 않아서 일이 손에
잡히지를 않아 10분간격으로 집에 들어가 열이 내렸는지를 살피기에 여념이 없었고 자는 애를 억지로 깨워 죽과 약을 먹였다.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열은 내려가기 시작했으나 선규는 여전히 잠에서 깨어날줄을 몰랐다. 어렸을때부터 몸이 약해 잔병이 잦았던
아들이 이렇게 아플때면 중병에 걸린것처럼 그녀의 가슴을 떨리게 했고 그가 다 나을때까지 어떠한 일도 신경을 쓸수가 없었다.
[아무리 유행하는 독감이라지만 하필이면 선규가 걸리냐? 그동안 아무탈도 없고 잘 있다싶더니..... 다시 애를 깨워 약을 먹여야 하겠네]
시계를 보며 문닫을 시간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는데 문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서 오세......"
오늘은 시간이 길어질 손님은 그냥 보내기로 마음먹고 고개를 들며 인사를 하다가 들어온 사람을 보고 눈과 입이 커다랗게 벌어졌다.
"그동안 안녕하셨어요, 선규어머님?"
두개의 쥬스상자들을 들고있는 선규의 담임선생님은 약간 수줍어 보이는 얼굴로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서..선생님이 여..여기는 어쩐일이십니까?"
"오늘 태수에게서 선규가 아프다는 말을 듣고 찾아왔습니다"
그말을 듣고 황송해서 몸들바를 몰라하는 명숙은 얼른 선생님앞으로 달려가서 두손모아 허리를 굽혔다.
"바쁘신 선생님께서 여기까지 찾아주시다니요"
"요즘 독감이 유행한다는데 선규가 많이 아프지는 않나 걱정이 되어서요... 연락도 드리지않고 불쑥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벼..별말씀을 다하십니다... 우리 선규를 이렇게까지 걱정해 주시니 저야 감사할 따름이지요"
잔잔한 미소를 짓는 선생님은 쥬스상자 하나를 두손으로 내밀었다.
"변변치 않은거지만 쥬스가 감기에 좋다고 해서 사왔어요... 물론 어머님께서 잘 알아서 선규를 보살피고 계시겠지만요"
"그냥 오셔도 되는데 뭘 이런거까지....."
"선규는 좀 나아졌나요?"
급히 쥬스상자를 받아들은 명숙은 그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며 대답했다.
"네.. 이제 열이 많이 내렸습니다.. 내정신좀 봐.. 저희집을 찾아주신 선생님을 계속 세워놓고 있었네요.. 누추하지만 안으로 들어오세요"
거실로 안내한 명숙은 허둥지둥 집안을 정리하며 말했다.
"여기에 앉으시지요... 제가 차를 내오겠습니다"
"약국이 비어있는데....."
"이제 곧 문닫을 시간이에요"
"제가 도와드릴 일은 없습니까?"
그러자 명숙은 기겁을 하며 황급히 대답했다.
"저 혼자 할수있는 일입니다... 찾아주신것만 해도 감사한데요"
"그러면 그동안 선규방에 있어도 될까요?"
"네... 그렇게 하시지요"
명숙이 방에 들어와서 불을 켜자 뒤따라 들어온 선생님은 침대위에 누워있는 선규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여기까지 오셨다가 선생님께서도 감기에 옮으실까봐 걱정스럽네요"
"괜찮습니다... 제걱정은 하시지 마시고 약국에 나가보세요... 공연히 저때문에 어머님의 일에 지장을 드리지않나해서 송구스럽네요"
"그럼 얼른 일을 마치고 차를 가지고 오겠습니다"
인사를 하고 방문을 닫고 나온 명숙은 부리나케 약국으로 달려나갔다.
선규와 단둘이 남게된 선생님은 천천히 방주위를 살펴보았다. 책장에 꽃혀있는 책들을 보다가 시선이 책상옆에 세워져 있는 기타를 보자
그녀의 입가에서는 미소가 지어졌다. 그리고는 의자를 끌어 침대옆에 놓은다음 그위에 앉아 잠자고 있는 선규를 쳐다보았다. 고요한
표정으로 있는 그의 얼굴은 하루사이에 많이 수척해 있었다. 손을 뻗어 이마를 짚어보자 약간 뜨거웠다. 헝클어진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다가 손을 밑으로 내려 한동안 얼굴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그러면서 애틋한 그녀의 눈길은 선규에게서 떠나갈줄을 몰랐다.
잠을 자던 선규는 누군가가 그의 얼굴을 만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눈이 떠졌다. 잠결에 만지고 있는 사람이 엄마인줄로 알았으나 뭔가
엄마손과는 다른 감촉이 느껴졌다. 낯이 익다는 생각을 하며 간신히 정신을 차린 그는 옆에 앉아있는 사람을 보고 깜짝 놀랬다.
"선생님이세요?"
"잠에서 깼니?"
처음에는 꿈인줄 알았으나 선생님의 목소리를 듣고 급히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선생님은 다시 그를 눕히며 부드러운 소리로
만류 했다.
"괜찮으니까 계속 누워있어... 빨리 나야지... 괜히 나때문에 잠을 깬건지 모르겠다"
"아..아니에요... 오늘 하루종일 잤는데요"
아직까지 정신을 못차린 선규는 왜 그가 선생님과 함께 있는지 의아해 하며 사방을 두리번 거렸다.
"지금 저희집에 오신거에요?"
"응... 태수에게 네가 아프다는 말을 듣고 찾아왔어... 많이 아픈 모양이구나... 얼굴이 반쪽이 됐어... 이젠 괜찮아?"
"네... 어제밤보다 많이 나아졌어요"
"감기가 유행하는데 조심했었어야지"
선규는 근심어린 선생님의 얼굴을 보며 그녀가 자신을 이토록 걱정해주는거에 감격했다. 그동안 선생님도 아무말이 없었고 지난번에
비디오방의 일로 엄마에게 매우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그녀의 집을 찾아가지를 않았었다. 그래서 그가 아프다고 집에까지 문병와주는
선생님에게 소흘했다는 생각이 들어 그녀에게도 왠지모를 미안함이 들었다.
"아이들은 집에 돌아왔어요?"
"요새는 집과 외갓집을 오고가고 그래"
"애들이 혼란스럽겠네요"
"그렇겠지..... 아직 애아빠와의 일이 끝나지를 않아 내마음이 편치않아서 그런가봐..... 어서 그일이 끝나야 할텐데..... 생각보다 절차가
길어지고 있어"
어두워지는 선생님의 얼굴을 측은하게 바라보던 선규는 그녀의 손을 살며시 잡았다.
"죄송해요, 선생님... 자주 찾아뵈서 위로라도 드려야 하는거였는데요"
"그동안 시험도 있었고해서 너도 바빴잖아"
"제가 찾아가면 위안이 되세요?"
"응"
그녀가 쑥스러운 미소를 띄며 고개를 끄덕이자 선규도 함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방학동안에 자주 찾아뵐게요... 선생님은 웃으시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아요"
비록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지만 부드럽게 말하는 그의 말을 듣고 그녀의 얼굴에서는 약간의 홍조가 띄어졌다.
"그럴려면 빨리 나야지... 너와 함께 음악을 연주하고 싶은데"
선생님과 선규는 서로의 손을 놓지않고 한동안 마주보고 있었다.
"제옆에 계셔도 괜찮은거에요? 감기 옮으시면 어떡해요? 애들을 만나실때 안좋잖아요"
"괜찮아... 그건 네가 걱정안해줘도 돼"
그러는데 부엌에서 소리가 들리자 선규는 그제서야 엄마가 떠올랐다. 순간적으로 불안감이 들어 조심스럽게 선생님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들어오시다가 엄마를 만나셨어요?"
"응... 어머님께서 네병간호를 하시느라 무척 힘드신 모양이더라"
그말을 들은 선규는 엄마와 선생님사이에서 무슨 말들이 오고갔는지가 몹시 궁금했다. 이것은 선생님과 마담과의 일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그를 사랑해주는 엄마와 잘해주고 아껴주는 선생님이 상처받는것은 원하지를 않았다.
"선생님"
"응?"
"저희집 바로앞에 태수가 살고있거든요.. 이따가 나가시면서 거기도 들려주세요.. 여기까지 오셨는데 저희집만 오신다는거는 그렇잖아요"
선규의 말뜻을 알아들은 선생님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안그래도 그럴려고 하고 있었어... 걱정하지마"
그러는데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선규와 선생님은 재빨리 잡고있던 손을 놓았다. 찻잔을 공손하게 선생님에게 준 엄마는 아주
조심스럽게 침대위에 걸터앉았다.
"여기서 차를 드셔도 괜찮으신지 모르겠네요... 불편하실텐데요"
"괜찮습니다... 저때문에 선규가 잠을 깨게 됐네요"
"그렇지 않아도 약을 먹일려고 깨우려던 참이었어요"
침대위에 누워있는 선규는 얘기를 나누고 있는 그들을 멍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엄마와 담임선생님이 함께 있는것은 어디에서나
있을수 있는 일이었지만 그에게는 달랐다. 둘다 모두 그와 몸을 섞은 여자들이었다. 예전에 이런 생각을 하며 남들은 상상도 못할 일들이
그에게 일어나서 매우 신기해 한적이 있었지만 그의 눈앞에서 얘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이상했고 마치 꿈을 꾸는것만 같았다.
그러면서도 엄마와 선생님이 서로 눈치를 채지는 않을까해서 아슬아슬한 조바심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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