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들의 행진곡 - 1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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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명숙은 선규가 황급히 방에 들어가서 문을 닫자 한동안 방문을 주시하고 있었다. 어제 선규에게 자신의 성생활에 대한
질문을 듣고나서는 또 선규가 무슨질문을 해올까하며 좌불안석해 있었다. 만약 선규가 질문을 해온다면 정말로 궁금해서
묻는것일수도 있어서 어떻게 피할까하며 난감해 있었다. 방안에 있을때도 혹시 선규가 들어오지 않나해서 자꾸만 문을
쳐다보게 되었고 그럼으로 인해서 신경이 예민해진 명숙은 급기야 방문을 잠그게되기까지 하였다. 방금전 선규가 자신을
여자보듯이 훑어보던것이 생각나자 약간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왜 나를 그런식으로 쳐다보는거야? 아무래도 내힘만으로는 안될려나?] 선규의 정신상태가 자꾸 이상해지는것 같아 걱정이
이만저만한게 아니었다. 몸이 아프다고 하면 자신이 어떻게 해줄수있지만 이런거에는 경험이 없어서 뭐가 아들을 위한
최선의 방법인지를 몰랐다. 거실의 불을 끌려고 하는데 우연히 비디오에 전원이 켜져있는것이 보였다. 반신반의하면서
텔레비젼소리가 안나오게 하고 비디오를 틀으니 타부가 나왔다. 그걸보자 명숙은 한숨이 크게 나왔다.
[저러다가 애가 정말 잘못되는거 아니야? 자꾸만 이런 안좋은 생각을 하면 어떡해?] 아무래도 지금 말을 하는게 좋을거
같아서 명숙은 방에서 가운을 걸치고 테이프를 꺼내 선규의 방으로 갔다. 그러나 문을 두들겨봐도 대답이 없었고 방문의
손잡이를 돌려도 문은 잠겨있었다. 문틈을 보니 새어나오는 불빛도 안보였다. [벌써 잠이 든 거야?] 한숨을 쉰 명숙은 내일
얘기하기로 하고 비디오테이프를 들고 방으로 들어왔다.
이른새벽에 잠에서 깬 태수는 옆에서 자고있는 엄마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어제저녁에 겁을 내며 혼자 걸어오다가 놀라서
자신을 끌어안았던 엄마를 생각하니 이상하기도 하고 가엽기도 했다. [혼자 자주 걸어오시는 길을 무서워 하시다니.....
요즘따라 엄마가 마음이 약해지시는거 같애] 그런 엄마의 모습을 보고 태수는 엄마에 대한 책임감이 더욱 들었지만 또한
한편으로는 자신을 감싸주며 보호해주던 엄마로 생각되지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엄마를 감싸고 챙겨줘야 한다는 생각이
점점 들었다. 이상하게 생각되는 점은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밤에 옆에서 자는 엄마를 여자로 생각할때가 가끔있었고 책방으로 엄마를 만나러 가거나 아니면 함께 나란히 걸을때는
가슴에서 알수없는 두근거림이 일어나곤 했다. 그전에는 그런 느낌이 없었는데 최근따라 왜 그러는지 이해가 안되었다.
[왜 그러지? 엄마와 같이 있는게 더 좋아져서 그런가? 엄마와 있으면 자꾸 떨리고 이상해진단 말이야] 자신을 바라보며
옆으로 누워 자고있는 엄마의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만지작 거리다가 손끝으로 얼굴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약간의 잔주름들이 있는 얼굴이었지만 피부는 연하고 고왔다. 한동안을 그러고 있으니 어제 길에서 자신에게 안겼던 엄마가
기억났다. 두려움에 어린애처럼 우는 엄마를 안고있으니 자신이 엄마의 보호자가 된것 같기도 하고 엄마가 애처롭기도해서
계속 품안에 안고 싶어었다. 그런생각이 나자 다시 엄마를 껴안아보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는 것이었다, 팔을 엄마의 목밑으로
뻗고 다른손으로 어제 엄마가 한거처럼 엄마의 팔을 자신의 목에 두른다음 바짝 끌어안았다.
그러자 엄마의 부드러운 젖가슴이 그의 가슴에 눌러왔고 엄마의 허벅지에 밀착된 자지는 더욱 발기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엄마를 껴안고 누워 있는것이 좋아서 무시해 버렸다. 이제는 엄마옆에서 자다가 자지가 발기되어도 그냥 그러려니 하고
생각되기 때문이었다. 엄마는 그런줄도 모르고 그에게 안긴채로 여전히 잠을 자고 있었다. 천천히 엄마의 등과 뒷머리를
쓰다듬다가 볼을 엄마의 볼에 대어보았다. 그렇게하자 얼굴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열이 났지만 엄마와 더욱 친밀해진거 같은
기분이 들어 계속 그렇게 하고 싶었다. 한동안 그러고있으니 마치 사랑하는 여인을 안고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아버지도 엄마를 이렇게 안고 주무셨겠지?] 그렇게 생각하자 문득 자신이 아버지의 여자를 빼앗고 있는것 같아 죄책감이
드는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엄마의 처지를 생각하며 스스로를 설득했다. [엄마는 지금 혼자이신데 내가 아버지대신에
엄마를 위로해 드려야 하지않겠어? 그러면 아버지도 이해하시겠지] 태수는 품안에 있는 엄마의 연약하면서도 부드러운
육체를 음미하다가 그만 다시 잠이 들어버렸다.
잠에서 깨어난 혜영은 태수와 서로 바짝 끌어안고 있는 자세를 깨닫고 화들짝 놀랬다. 더군다나 자신의 팔이 태수의 목을
감고있고 그의 얼굴과 맞대고 있어서 가슴이 뛰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태수의 팔도 그녀의 허리를 감고 있었다.
[자다가 나도모르게 이렇게 한 모양이구나..... 마치 연인들처럼 껴안고 잤네...] 그러는데 그녀의 허벅지에서 밀착되어 있는
태수의 커다란 성기가 느껴졌다. 얼굴이 빨개진 혜영은 잠자는 태수를 보면서 어찌해야 좋을지를 몰랐다. 얼마동안 그러고
있으니 허벅지가 뜨거워지면서 온몸에 전율이 오는것 같았다. 예전에 태수의 성기를 느꼈을때는 부끄럽기도 하고 아들이
얼마나 컸나해서 호기심도 났었으나 지금은 오래동안 잊고있었던 남자성기의 감각이 되살아나서 당혹스러웠다.
[아들인데 내가 왜 이러지?... 너무 오래동안 남자를 잊고 살아서 그러나?...] 기분이 이상하기도 하고 태수가 깨어났을때
부끄러워 할까봐 허벅지를 움직일려고 했지만 태수의 다리가 자신의 다리를 감고있어서 그를 안깨우며 움직일수가 없었다.
계속되는 접촉으로 얼굴이 화끈거렸으나 오랜만에 느끼는 전율이 좋기도 하였고 태수와 연인처럼 껴안고 누워있으니 마치
여자가 된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남편이 죽고난뒤 6년동안을 한아이의 엄마로서 살아오다가 이런 기분이 드니 다시 젊었을때가 회상되어서 이대로 가만히
있고 싶었다. 그래서 저도모르게 태수를 더 끌어안게 되었다. 자신의 가슴이 태수의 가슴에 더욱 밀착되면서 남자생각이
새록새록 들어왔다.
[꼭 남자를 궁금했었던 학창시절같은 기분이 나네] 고개를 돌려 태수의 얼굴을 보니 어제밤의 일이 생각났다. 태수는 집에
돌아와서도 걱정을 하며 놀랐던 그녀를 위로했지만 왜 그렇게 아들앞에서 어린애처럼 행동했는지 이해가 안되었다. 얼마전만
하더라도 태수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고 서로 안는것도 어색해 했었는데 요즘따라 태수앞에서 왜 이렇게 약하게 보이고
싶어하는지를 알수가 없었다. [불과 몇주사이에 어떻게 내자신이 그처럼 변할수가 있지?] 곰곰히 생각해보니 자신을 걱정해
주고 세심하게 챙겨주는 태수가 고마웠지만 자꾸만 그런아들이 하나의 남자로 느껴져서 나약해지고 기대고 싶어한다고
생각하니 놀랍기도 했다.
[커서 자리를 잡을때까지 내가 돌봐줘야 하는데 그렇게 생각하면 안되지] 그러나 계속해서 자신을 사랑해주는 남자에게
안겨있는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저도모르게 행복감마저 드는 것이었다. 태수를 아들과 남자로 혼동하면서 그의 입술을 보니
며칠전에 몰래 입맞춤을 했던것이 생각나서 얼굴이 빨개지며 가슴이 마구 뛰었다. 계속 쳐다보니 사랑하는 남자의 잠자는
얼굴을 지켜보는것 같아서 다시한번 입을 맞춰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입을 가져다가 살며시 태수의 입술을 맞추니 그녀의
몸에서 경련이 일어났다. 그것은 태수아빠와 첫키스를 했었을때 가졌던 느낌이었다. 그러면서 눈을 감고 가만히 있는데
태수의 눈이 떠졌다.
자다가 이상한 기분이 들어 잠을 깬 태수는 눈앞에서 엄마가 눈을 감고 자신에게 입맞춤을 하고있는것을 보자 너무나 놀라서
온몸이 경직되었다. 그러나 자신이 깬걸 알면 엄마가 당황해 할까봐 얼른 눈을 다시 감고 자는척을 했다. 엄마의 부드러운
입술을 느끼니 얼굴이 달아오르고 심장이 마구 뛰었다. 엄마가 자신의 입에 왜 입맞춤을 하는지는 몰랐으나 기분은 좋기도
하고 매우 야릇했다. 영원히 엄마와 이렇게 있고 싶었다. 그러나 얼마후에 엄마가 입을 떼자 저도모르게 아쉬움이 들었다.
엄마는 얼굴을 그의 볼에 대고 가만히 있었다. 태수는 입맞춤할때의 느낌을 되새기며 한동안 가만히 있다가 일부러 신음을
내며 눈을 떴다.
"으..음"
눈을 떠보니 엄마는 얼굴에 약간 홍조를 띠고 자신을 그윽한 눈길로 쳐다보고 있었다.
"잘잤어?"
"네... 엄마도 잘 주무셨어요?"
"응"
그러자 태수는 엄마와 바짝 끌어안고 누워서 발기된 자지가 엄마의 허벅지에 붙어있다는것을 그제서야 깨달았다. 당황한
태수는 안고있던 팔을 풀으며 몸을 뗄려고 하자 엄마가 그를 붙들었다.
"잠시만 이러고 있으면 안되니?"
엄마가 자신의 성난 자지를 느끼고 있다고 생각하니 매우 부끄러웠으나 간절하게 보이는 엄마의 얼굴을 보고 태수는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뭉클해져서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가 원하시면 그렇게 해요"
태수가 조심스럽게 팔을 뻗어 다시 안자 엄마는 머리를 그의 어깨위에 기댔다. [엄마가 내가 부끄러워 할까봐 그러시나?]
자꾸만 엄마의 허벅지에 닿여있는 자지가 신경쓰였으나 엄마를 계속 안고있으니 부끄러웠던 마음이 어느정도 진정되었다.
엄마는 그의 볼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내가 요즘 네앞에서 너무 어린애처럼 행동하지?"
그러자 태수는 자신을 만지고있는 엄마의 손을 잡고 수줍어하는 얼굴을 쳐다보았다.
"아니에요"
"나도 요즘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 네가 나한테 그래야 하는데. 엄마가 되어서 너한테 걱정만 끼치고. 앞으로는 안그럴게"
태수는 그말을 들으니 엄마가 너무 불쌍해서 가슴이 찢어지는것 같았다. 그래서 저도모르게 엄마의 얼굴을 만지며 부드럽게
말했다.
"솔직히 저는 엄마가 그러시는게 더 좋아요... 제가 엄마에게 의지할수있는 상대가 될수있다는게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요...
그러니 그런마음 가지시지 마시고 힘드시거나 어제처럼 무서우시면 언제든지 저에게 기대고 표현하세요"
그러자 엄마는 행복한 표정으로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그를 꼬옥 껴안았다.
"고마워, 태수야. 네가 그렇게 생각해줘서 나도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
태수는 자신에게 안겨오는 엄마가 어느때보다 사랑스럽게 느껴져서 발기된 자지를 망각한채 엄마를 꽉 끌어안았다. 한동안
그러고 있으니 그의 머리속에 혼자가 되서 어린 자신을 데리고 고생하며 살았던 엄마의 모습들이 지나갔다. 그러자 자신의
말을 듣고 좋아하는 엄마가 너무나 애처로워서 그녀의 머리결을 소중하게 쓰다듬어 주었다.
책방에서 태수는 아침의 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자꾸만 엄마가 가엾다는 생각이 들어서 더욱더 잘해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지신의 입에 입맞춤을 한것이 이상했지만 그냥 엄마를 이해하는 쪽으로 생각했다. [얼마나 외로우셨으면
그러셨을까?] 엄마를 생각하니 계속 마음이 아파서 책이나 읽을까하고 일어나서 책장을 보는데 문이 열리면서 유진이가
들어왔다. 태수는 웃으면서 반갑게 맞아주었다.
"어서 와요, 누나"
유진이도 웃으면서 말했다.
"굉장히 오래간만에 보는거 같네"
"그러네요... 월요일에 왔었을때 책방이 문닫겨서 책을 못샀죠?"
"어머니가 편찮으셨다면서?"
그러자 태수는 눈이 휘둥그래졌다.
"그걸 어떻게 알아요?"
"며칠전에 왔을때 아주머니가 그러시더라... 이제는 많이 나으셨어?"
"예"
"네가 많이 놀랐겠다"
태수는 겸연쩍게 웃으면서 머리를 긁었다.
"좀 그랬어요... 엄마가 몸이 좀 약하시거든요"
"그래도 쾌차하셨다니 다행이네"
"그래요"
태수와 유진이는 의자에 앉아서 이것저것을 얘기했다.
"그런데 누나는 왜 옛날 노래들을 좋아하세요?"
"글쎄... 나한테는 옛날노래들이 요즘것들보다 더 좋고 아름다운거 같애... 아마 어두웠고 힘들었던 시절에 나온 노래여서
그런가봐"
"그게 무슨 말이에요?"
"대중음악은 문화의 일부분이야..... 문화는 한시대를 상징하지..... 우리가 흔히 듣는 팝송들은 미국과 영국에서 나온건데
60년대 중반과 70년대 중반사이에서 주옥같은 노래들이 많이 나왔어. 그때는 월남전으로 세상이 시끄러웠었거든"
"그런데요?"
"그때 비틀즈와 밥 딜런같은 신세대가수들이 나오자 젊은이들의 사고방식이 바뀌게 됐어..... 요즘같은 세상으로 말하면
신세대 대표주자로 불려지는 서태지와 아이들 같은거지... 우리또래 애들을 보면 복장도 바뀌어지고 자기주장도 서슴치않게
하잖아?"
"그러네요"
"그쪽에서도 마찬가지였어..... 또하나의 르네상스였다고나 할까..... 젊은세대들이 자기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2차대전때나
한국전때 나라의 부름을 받고 전쟁터에 나갔던 부모 세대와는 달리 왜 자기들이 남의 나라에 가서 피를 흘리며 싸워야하는지
의문이 들게 됐어. 그것은 기성세대들에게는 커다란 충격이었어. 마치 반항과 같았거든"
유진이의 얘기는 계속 되었다.
"미국정부는 젊은이들을 징병을 하게 되었고 거기에 젊은세대들은 반전과 평화를 위한 데모를 대대적으로 했지.. 대학캐퍼스
안에서 군에 발포로 학생들까지 죽었다니 한국 같았나봐"
"미국에도 그런일이 있었어요?"
"응.. 나도 그걸 읽고 놀랬어.. 존 레논의 "Give Peace A Chance"라는 곡은 데모할때 널리 불려지게 됐지.. 지난번에 걸프전때
학생들이 반전데모하는데 그걸 부르더라. 그노래외에도 많은 유명한 노래들이 나왔었어. 그때 노래들을 들으면 호소력을
느끼고 힘이 있다는걸 느끼게 돼"
"우리나라에도 그런 노래들이 있나요?"
"물론이야... 양희은의 "아침이슬"은 암울했던 유신시대를 상징하는 곡이 되었잖아... 우리나라는 70년대와 80년대에 훌륭한
가수들이 많이 나왔어. 그때는 군사정권시대였잖아. 그런 암울한 시대에는 이상주의와 상업주의가 공존하게 돼.. 송창식이나
신중현, 조용필등 뛰어난 음악인들이 많이 나왔는데 표현이 통제된 시기에 어떻게 창조적으로 음악을 발전시킬수 있었는지
놀라워"
얘기를 들으면서 태수는 그시절에 희생되었던 아버지가 생각났다.
"누나는 그시절을 어떻게 생각해요?"
"아주 어려웠고 어두웠던 시절이었으나 그래도 그런때가 있었기에 국민들의 생각이 바뀌고 또 하나의 독특한 문화가 나오지
않았나하고 생각해"
"하지만 사람들이 많이 죽었잖아요?"
"그런분들의 희생으로 우리가 민주주의를 얻게 되었잖아"
"저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한걸 하나도 못느끼겠어요. 투표할수 있는것이 그렇게 좋은가요?"
"지금이야 크게 변한거는 없겠지만 이걸 토대로 해서 나중에는 모든사람들이 이나라에서 인권을 존중받으며 살수있는 세상이
오겠지"
그러나 태수는 유진의 말이 가슴으로 와 닿지 않았다. 이미 아버지가 그것때문에 돌아가시고 엄마도 고생했는데 그런것이
이제와서 무슨 소용일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 왜 아버지가 그런 쓸데없은 일을 하셔서 식구들을 고생시켰을까하고
원망도 해본적이 있었다. 유진의 말을 들으니 왠지 그녀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하소연하고 싶어졌다.
"아버지는 군사정권때 기자이셨어요"
태수는 조용히 말을 시작했다.
"정부를 비판하는 글도 쓰시고 해서 자주 잡혀가셨죠... 결국은 그것때문에 일찍 돌아가셨어요"
유진은 얘기를 들으면서 태수를 쳐다보았다.
"아버지를 원망하니?"
"나를 낳아준 아버지이니 그러면 안된다고 생각해도 그런 생각이 날때가 가끔 있어요... 엄마가 많이 고생하셨거든요... 다른
아버지들은 평범하게 살면서 가족들을 책임지는데 왜 내아버지는 그러시지 않으셨을까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버지
한테는 가족보다 민주주의가 더 중요했나봐요"
유진은 어두운 태수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네 입장이 안되어봐서 내가 뭐라 말을 할수는 없겠지만 내생각에는 네아버지가 나중에 네가 더 좋은 세상에서 살수 있도록
그러신거 같애"
그말에 고개를 숙이고 있던 태수는 유진을 쳐다보았다.
"자신이 민주투사라고 국민들에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네아버지처럼 나라를 바로 잡겠다고 희생하신 이름없는 분들이
훨씬 많아... 나는 그런분들이 더 훌륭하다고 생각해... 일제때 독립운동을 하셨던 분들도 후손이 독립된 나라에서 살수있도록
자신을 희생하면서 그런일을 하셨지 않겠니? 그러니 아버지를 이해하도록 해"
그러자 태수는 엄마때문에 아버지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저는 그렇다치고 우리엄마는 뭐에요? 아버지를 잃으시고 평생 혼자 사셔야 하잖아요"
유진은 차분하게 태수를 달래주었다.
"사람은 그런일이 아니더라도 사고나 병으로 배우자를 잃게 돼... 네가 아버지대신에 엄마에게 잘하면 되잖니? 그러면 하늘에
계신 네아버지도 무척 기뻐하실거야"
말을 하던 유진은 얼굴이 어두워졌다.
"나도 어렸을때 엄마가 병으로 돌아가셨어"
그말에 태수는 놀라서 유진을 바라보았다.
"미..미안해요, 누나. 내가 괜한 말을 했네요"
유진은 힘없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괜찮아... 오래전의 일인데. 나도 엄마가 많이 보고싶었는데 혼자 사시는 아빠도 불쌍하더라"
"그럼.. 아직까지 혼자 사세요?"
"아니... 재혼하셨어"
엄마의 재혼을 가끔가다 생각해 왔던 태수는 궁금해서 물어보았다.
"누나의 아버지는 행복해 하세요?"
"그러신거 같더라"
"누나는요?"
"나는 처음에 아빠가 엄마를 배신하는거 같아 기분이 나빴었거든..... 그런데 아빠의 인생이니 그냥 있었어... 하지만 지금도
별로야"
"왜요? 엄마도 새로 생겼잖아요?"
"새엄마가 나와 15살차이밖에 안나... 그래서 엄마같은 기분도 안나고... 새엄마에게서 나온 동생들은 어리거든... 그러니
늦은 나이에 자식들을 보신 아빠가 얼마나 귀여워 하시겠니? 아빠가 이해되지만 그걸보면 아빠가 돌아가신 엄마와 나를
잊는거 같아서 섭섭하기도 해"
부모가 재혼을 하면 그런 고충이 있다는걸 깨달은 태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네어머니가 재혼하시기를 바라니?"
"엄마는 그런 생각이 없으시다고 말씀하시지만 저는 잘 모르겠어요. 엄마가 아버지말고 다른 남자와 사는거는 기분이 안좋지만 엄마가 원하신다면 할수없는거죠"
태수의 말이 끝나자 책방문이 열려서 둘은 고개를 돌렸다.
선규는 어제밤에 문틈으로 엄마가 비디오를 틀어 자신이 보던 포르노를 발견하자 너무 놀라서 급히 문을 잠그고 불을 끈다음
침대로 올라갔다. 무조건 엄마를 피하면서 시간을 버는게 상책이라는 생각이 든 선규는 엄마가 문을 아무리 두들겨도 대답을
안했었다. 엄마가 그냥 가서 안도를 했지만 나중에 거실에 가서 비디오에 테이프가 없는것을 보자 겁이 덜컹 났다. 포르노
테이프를 가지고 있는거야 용서를 빌면서 어느정도 둘러 얘기하면 되지만 그내용을 엄마가 알면 앞으로 엄마의 얼굴을
볼수가 없을것 같았다. 아마 엄마는 자신을 정신나간 놈이나 짐승같이 볼게 뻔했다.
아침에 엄마가 들어왔어도 계속 자는척을 했었다. 늦은 아침에 엄마가 약국으로 나간다음 몰래 집을 나왔다. 앞으로 어떻게
엄마의 얼굴을 봐야하나 고민하며 시간을 떼우다가 태수생각이 났다. 태수가 일요일에는 책방에 나간다고 했으니 거기에
가면 얼마동안 시간을 떼울수가 있을것 같았다. 책방으로 가서 문을 여니 태수는 어떤여자와 얘기를 나누다가 자신을 쳐다
보았다. 그런데 두사람의 얼굴에는 그늘이 지어있는 것이었다. 태수는 놀라면서 일어났다.
"어? 네가 여기에는 왠일이냐?"
"그냥 네생각이 나서 와봤어... 손님이 있는줄은 몰랐네"
그러자 여자도 일어나서 작은 가방을 들었다.
"친구가 왔으니 나는 그만 가볼게. 볼일이 있거든"
"그러세요... 오늘 얘기해준거 고마웠어요... 다음주에 뵈요"
"그래... 잘있어"
여자는 돌아서서 선규에게 가볍게 눈인사를 하더니 나갔다. 예쁜 얼굴은 아니었으나 깨끗한 인상을 주는 여자였다. 보니까
대학생같아 보였다. 선규는 태수가 자신과 마찬가지로 아는 여자가 없어서 그런 모습을 보자 신기하기도 하고 궁금증도 났다.
"누구야?"
"단골손님이야"
"얘기하는 모습이 친해 보이던데?"
"여기에 자주 와서 얘기를 하게 되었어... 친절하고 좋은 누나야"
"그래? 그런데 무슨 얘기를 나눴는데 표정이 어두워 보였어?"
"그냥 이것저것 얘기하다가 우리 아버지얘기가 나와서"
선규는 태수에게 태수아빠의 얘기만은 하지않아서 더 이상 묻지를 않았다.
"그런데 정말로 네가 여기는 왠일이냐?"
선규는 한숨을 쉬고 의자에 앉았다. 태수에게 말하기가 부끄러웠지만 가슴이 무거워서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었다.
"엄마한테 걸렸어"
"뭘?"
"포르노테이프"
그러자 태수는 눈이 커지며 입도 크게 벌어졌다.
"진짜야?"
"응... 그것때문에 집에서 도망나와서 돌아다니다가 너한테 오게 된거야"
"으이구, 그런걸 좋아하더니"
"그런 말할때가 아니야... 나는 정말 미칠지경이야"
태수는 선규가 딱하다는듯이 바라보았다.
"그냥 아줌마한테 가서 싹싹 빌고 다시는 그런거 안보겠다고 용서를 빌어"
그말에 선규는 한숨을 쉬었다. [나도 그럴수가 있다면 얼마나 좋겠니?] 태수에게 타부에 대해서는 차마 말을 할수가 없었다.
자신이 엄마에게 음란한 생각을 품었다는것을 알면 태수도 자신을 이상하게 생각할것이 분명했다. 그런줄도 모르고 태수는
계속 선규를 달랬다.
"남들도 그런거는 다 보잖아. 아줌마가 약사이신데 그런거 하나 이해 못하시겠냐?"
그러자 선규는 답답해서 속이 뒤집어질것만 같았다. [어제 딴걸 볼걸... 괜히 타부를 봐 가지고 이 난리야]
"나 여기에 있다가 너와 함께 집에 돌아가면 안되겠냐?"
"그렇게 해... 그런데 네가 말없이 나갔다면 아줌마가 걱정하시는거 아니야?"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 아마 지금 화가 많이 났을걸"
"설마 그러시겠냐?"
태수는 선규를 달래면서 책방을 보다가 시간이 되어 문을 닫고 나왔다.
혜영은 아침에 태수의 말을 듣고 태수가 어린애처럼 행동하던 그녀를 흉보지않고 오히려 좋아한다고 해서 알수없는 무한한
기쁨과 행복감이 들어있었다. 더군다나 태수가 말하는게 어른같아서 마치 아들이 아니라 성인이 자신을 이해하고 받아주는것
같은 기분까지 들었다. 오늘따라 아들이 매우 특별하고 각별하게 생각되었다. 하루종일 집에 혼자있으니 자꾸만 태수가
생각나고 그리워졌다.
[예전에 남편을 기다릴때도 이랬었는데 태수에게도 같은 기분이 드네] 그런생각을 하자 약간은 이상했으나 아들을 보고
싶어하는 마음이라 생각하고 잊어버렸다. 태수가 올시간이 되자 그를 본다는 생각에 가슴까지 설레이며 버스정류장으로
달려나갔다. 정류장으로 오는 버스들을 보며 태수를 애타게 기다리는데 어느 버스에서 문이 열리며 태수와 선규가 함께
나와서 깜짝 놀랬다. 태수는 그녀를 발견하고 얼른 달려왔다.
"선규와 같이 있었니?"
"네"
선규도 놀라서 혜영을 쳐다보았다.
"아줌마가 여기는 왠일이세요?"
"태수를 마중나오러 온거야"
태수고 웃으면서 말했다.
"엄마가 일요일마다 나오셔... 아마 책을 얼마나 팔았나를 궁금하셔서 그러시는거 같애"
그러자 모두들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나 선규는 혹시 엄마도 옆에 있지않나해서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아줌마, 혹시 오늘 우리엄마 만나시지 않으셨어요?"
"아니... 왜?"
"그냥요"
태수는 선규가 초조해하는 모습이 웃겼지만 웃음을 참고 가만히 있었다. 한편 혜영은 태수와 단둘이 함께 걷고싶었는데
선규가 있어서 아쉬웠지만 그래도 오래간만에 만나서 반가웠다.
"어서 가자... 선규도 가서 밥먹어야지"
선규는 걸으면서 태수와 태수엄마를 보니 부러웠다. [친하게 지내던 엄마와 나보다 더 정답게 보이네... 휴, 내가 어쩌다가
이렇게 됐지?] 그냥 태수와 태수엄마를 따라가던 선규는 집이 점점 가까워지자 겁이 났다.
"뭘 사야하는걸 깜박 했네... 나는 슈퍼에 갈테니 먼저 가... 아줌마, 다음에 뵈요"
그말을 하고 선규는 오던 방향으로 부리나케 달려갔다. 선규의 속마음을 아는 태수는 선규가 저렇게까지 행동하자 걱정이
되었다. [그냥 가서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면 되는데 왜 저렇게까지 겁을 내지? 아줌마가 그런걸 이해못하실 분도 아닌데]
혜영도 바람같이 사라진 선규를 물끄러미 보고있었다.
"선규가 이상하지 않니?"
"뭘 사는걸 잊어버렸대잖아요... 급하게 사야하나봐요"
"그래도 애가 뭔가 불안해 하던거 같던데?"
"별일 아니겠죠... 빨리 집에 가요... 안추우세요?"
그러자 혜영은 태수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래... 배고프지? 오늘 수고 많았다"
태수도 미소를 지으면서 엄마의 손을 잡고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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