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서 만난 남자 - 마지막편
페이지 정보
본문
한 두 모금 정도 빨았는데 힌두어로 뭐라고 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재빨리 담배를 손바닥으로 쥐고 감춘다. 힌두어 소리가
멀어지고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담배를 빨아당긴다. 조용한 발자국 소리가 들려오더니 누군가 내 어깨를 두드린다.
"클났다...................................................................."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긴장한 등을 돌리니 낮익은 얼굴이 나타난다. 은혜가 5루피를 손바닥 위로 올려 내어민다.
"놀랬잖아.........................................................."
"그러게 나쁜짓 하래요?............................................"
은혜가 담배의 불을 붙이며 싱긋웃는다.
"길 잃었죠?... 길치 아저씨......................................................."
"아냐... 그냥... 사람 없는 곳에서 담배나 한대 태울려고................................................"
"거짓말... 저 위에서 보니 아저씨 같은 곳만 뺑뺑 돌던걸요?.........................................."
저넘어 보이는 성위로 우리 일행들이 보인다. 담배를 피고 은혜를 따라 성위로 올라가니 일행들이 나를 보고 싱글거린다.
보이지 않던 현정이도 어디서 나타났는지 나를 보며 싱글 거린다. 그래도 시무룩하던 현정이가 웃으니 안심은 되었다.
"이야... 이거 색다른데?................................................"
나는 지금 오토릭샤의 뒷좌석에 앉아 점점 멀어지는 아침을 맞은 도시의 풍경을 감상하고 있었다. 양 옆으로 젊은 처자들
사이에서 내가 느낀 바로 각 도시마다 릭샤의 모양새가 조금씩 다르다. 안장의 모양새라던지 햇빛가리게의 문양이라던지
이제껏 들렀던 도시의 오토릭샤는 세명의 승객을 태울 좌석이 설치되어 있었다면 자이푸르의 오토릭샤는 6인승인 것이다.
앞좌석엔 은혜와 은영씨와 인범씨가 앉고 나는 양옆으로 현정이와 정민이를 끼고 앉아 있다. 내가 이런 배치를 원한것은
아니지만 릭샤꾼이 무거운 남자가 사이드에 앉으면 릭샤가 기울어진다고 하는 통에 이런 반가운 자리 배치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좀... 꼼지락대지 말아요............................................"
사진을 찍기 위해 이리저리 몸을 비트는 나에게 정민이가 주의를 준다. 인도 사람들은 스스로 사진 찍히기를 정말 좋아하는
것 같다. 디카를 들고 뒤로 가는 풍경을 찍으려니 한 오토바이에 올라탄 일가족과 다른 릭샤의 운전사들 그리고 승용차에
올라탄 금팔찌 번쩍이는 사람들이 자신을 찍어달라는 듯이 포즈를 취해 온다. 재밌다. 그렇게 정신없이 사진을 찍고 있는데
정민이는 좀 불편했나 보다. 나는 좋았는데 현정이도 있고 근데 오늘 현정이가 좀 조용한걸? 아주 동그란 눈을 내리깔고 좀
시무룩해 보인다.
"좋아요?......................................................."
은혜의 목소리가 등을 타고 넘어온다. 케이를 닮아가는 모호하고 직설적인 질문에 당황스럽다.
"뭐... 뭐가?.................................................."
"그곳에서 보는 풍경이요........................................"
"어... 좀 더 여유로운 풍경이야.................................."
인도에서 릭샤나 택시를 타는건 매우 스릴이 있다. 이곳 인도의 운전사들은 모두 레이서다. 중앙선이 거의 없어 역주행은
보통이고 끼어들기는 애교다. 그렇게 릭샤꾼과 동화되어 조마조마하게 릭샤를 타다가 이렇게 느긋하게 앉아서 뒷 풍경을
보니 뭐랄까 아주 재밌고 여유로운 마음이 든다. 여전히 앞에서는 끼어들고 욕하고 역주행에 장난이 아닐터에 디카의 렌즈를
통해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렌즈에 비친 현정이의 얼굴을 한참 바라본다. 30살 난 내 딸 현정이가 오늘은 왜 저렇게 풀이
죽어 있는지 모르겠다.
"현정아........................................................."
내 손은 헉헉대며 현정이의 허리를 타고 올라 그녀의 젖가슴에 이르렀다. 산 정상의 흔들바위를 밀듯이 혹시나 떨어지면
어떡하나의 걱정과 설마 떨어지겠냐는 호기심에 가득차 그녀의 유두를 슬쩍슬쩍 밀어본다. 그녀의 가슴을 조심스레 모아
쥐어 본다. 현정이의 젖가슴이 부풀어 오른다. 몽실몽실한게 약간 땀에 젖어 상당히 야릇한 느낌이다.
입으로 현정이의 젖가슴을 조심스레 햩아본다. 땀냄새와 현정이의 체향이 후각을 자극한다. 현정이가 팔을 비스듬히 걸쳐 내
목을 껴 안는다. 혀로 유두를 굴리기도 하고 깨물어보기도 하고 한참을 희롱하다 내 혀는 현정이의 목을 타고 올라 그녀의
얼굴을 쓸듯이 애무하고는 마침내 입에 다다라 키스를 한다. 내 손은 어느새 현정이 바지를 끌어 내린다. 현정이가 새근새근
숨을 내쉬며 내 얼굴을 간지럽힌다.
"새근새근?...................................................."
"현정아...?....................................................."
꼭 감은 두 눈의 현정이를 내려다보니 이녀석 잠 든척을 하고 있다. 눈 커플이 움찔움찔 거리는 것이 귀엽다. 갑자기 무서워
진건가? 어떻게 할까? 좀 민망하군.
"내... 테크닉이 그렇게 별로였나?...................................................."
가슴을 드러내고 잠든 척을 하는 현정이의 얼굴을 내려다 보며 혼잣말로 이 무안한 상황을 무마시킨다. 아쉽고 허탈하다.
나의 허탈함과는 상관없이 서른살난 딴 현정이는 귀엽게 새근거리며 잘도 자는 척을 한다. 옷을 다시 입혀주고 담요를 몸에
덮어주고 나오려다 왠지 아쉬움 마음에 현정이의 이마에 입을 맞추어 본다. 30살난 귀여운 내 딸 현정이는 새근새근 귀엽게
잘도 자는 척을 한다.
"테크닉이 좀 지루한가 봐요... 아저씨................................................"
문을 열고 복도로 나오니 은혜가 한마디를 던진다. 은혜는 술을 마신듯 상기된 얼굴로 복도에 주저 앉아 담배를 피고 있다.
의문스럽게 눈을 크게 뜨자 은혜가 손짓으로 복도로난 창문을 가리킨다. 참 문은 열려있고 커튼이 젖혀져있다. 방안이 다
보였다. 무안해진 손으로 5루피를 은혜에게 내민다. 담배연기가 파랗게 피어오르고 우리는 말이 없다.
"케이는?........................................."
"정민이 언니랑 술 마셔요... 잠깐 바람쐴까 나왔어요......................................."
"많이 마셨냐?..................................."
"뭐... 조금요................................................"
다시 대화꺼리가 떨어졌다. 나는 걸음을 옮겨 은혜의 옆에가서 앉는다. 은혜의 농밀한 체향이 풍겨온다. 역시 이 녀석은 아주
훌륭한 방향제다.
"좋았어요?.................................................."
"뭐가?...................................................."
"은영씨요................................................"
"좋았어....................................................."
당황스럽다. 잠시 있고 있었지만 이녀석은 무척이나 직설적인 화법을 즐겨 구사한다. 하여 나처럼 아저씨의 길목에 서있는
사람에게는 참으로 당항스런 존재다.
"굉장했어요... 그날 밤... 아그라에서... 아저씨랑 은영씨... 코란이 울려퍼지는데 복도에서 알몸으로....................."
"..........................................................."
젠장. 딱 걸렸구나. 핵심만을 딱딱 짚어 다시한번 상기시키는 구만. 너 졸라 모범생이었지?
"뭐... 일부러 보려고 한건 아니고... 케이도 늦고 인범씨도 중국애들 방에 갔다길래 은영언니랑 놀려고........................"
뭐라고 말을 해야할까. 변명을 하기는 그른것 같고 은혜가 실망했다는 말을 할까봐 두렵다. 그래도 좋은 사람으로 기억하고
싶다고 했다.
"나한테 실망 많이 했지?................................................"
"케이도 은영씨가 좋았을 까요?........................................"
우리는 거의 동시에 말을 내 뱉었다. 내 뱉고 나서야 나는 우리의 대화의 핀트가 서로 맞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은혜는
애초에 내게 관심이 없다. 난 단지 "좋은사람"일 뿐이니까. 왠지 속이 상한다.
"풋... 내가 왜 아저씨에게 실망해요?........................................."
"그거야...................................................................."
은혜가 싱긋 웃는다.
"뭐... 아저씨가 좋은 사람이라는 건 알아요... 방금전에도 봤듯이... 대부분의 남자는 못참잖아요?... 뭐... 유부남의 신분으로
부인 아닌 다른사람을 탐한다는 것은 반 윤리적인 행동이지만... 뭐... 그래도 나는 아저씨 좋아해요......................."
"근데... 은영씨는 왜?..............................................."
"그냥... 케이가 은영언니랑은 자고 나랑은 자지 않아서 궁금해서 물어 봤어요... 내가 매력이 떨어지나 싶어서요... 어때요?...
내가 은영언니보다 별론가요?.........................................."
"몰라.................................................."
"왜요?... 나랑도 해봤잖아요................................................."
이녀석 자기가 잊자고 그래놓고서는 술이 취했나 보다.
"술취해서 기억안나..............................................."
"흠... 아저씨... 저는요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감정이 참 아름다운건줄 알았거든요... 근데..............................."
은혜의 입속에서 황홀한 냄새가 나를 유혹한다. 허벅지를 꼬집어 참아보지만 은혜의 유혹을 이겨내기엔 역부족이란 생각이
든다. 술기운에 눈을 감고 말을 이어가는 은혜의 입에 나도 모르게 입을 맞춘다. 부드럽다. 몽롱한 느낌이 내입안을 맴돌다가
서서히 빠져나갈듯 하면서 내 애를 태운다. 아쉬운 마음에 몽롱한 느낌을 강하게 빨아들여 이빨로 깨물고 내 혀로 엮어 맨다.
"좋았어요?............................................................"
키스가 끝나고 숨을 고르는데 상기된 얼굴로 은혜가 은근히 물어온다.
"어.........................................................."
"은영언니랑 비교하면요?.................................."
"뭐... 둘다 좋았어..........................................."
은혜가 싱긋 웃고는 일어나 복도를 걸어간다.
"나... 들어가 볼께요... 케이에게 빈틈을 주면 안되거든요........................................"
은혜가 등뒤로 손을 흔들며 걸어간다. 가녀린 그녀의 등으로 싱글거림이 전해져 온다.
"아저씨... 테크닉도 뭐 나쁘지는 않았어요... 중년의 노련함은 일단 인정해 주죠... 헤헤................................"
놀림당한 기분이 든다.
"아저씨... 현정이만 계속 찍지 말고 나도 좀 찍어 줘요..........................................."
정민이의 목소리가 들린다.
"너랑 4살밖에 차이 안나거든... 오빠라고 불러줄래?... 같이 늙어 가는 정민 아줌마..................................."
나의 예리한 반격에 정민이는 말을 잇지 못한다. 도시는 우리에게서 멀어지고 우리는 암베르 포트로 향한다.
"우와... 높다... 흔들거리는게... 어..................................................."
30먹은 초등학생 정민이가 호들갑을 떤다. 시무룩하던 현정이도 예의 그 똥그란 눈으로 호기심있게 코끼리를 바라본다. 뭐
나라고 별 다를바 있나? 어릴때 동물원에서 몇번 보기는 했지만 실제로 타보기는 처음이다. 뒤뚱뒤뚱 오르막을 올라가는
코끼리의 안장위에서 혹여나 떨어질까봐 균형잡기에 여념이 없다. 일인당 250루피. 매표소에 적혀있는 그 경악할 만한 비싼
가격에 그냥 걸어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이 솟아났지만 간만에 호기심 가득한 현정이의 얼굴이 다시 시무룩해 질까봐서
그냥 조용히 묻어가기로 했다.
"설마... 코끼린데 힘들어서 낑낑대지는 않겠죠?..............................................."
은영씨가 조심스레 지난날 아그라 포트가던길의 기억을 끄집어 낸다.
"설마... 코끼린데..................................................."
그렇다. 코끼리는 말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괴력의 소유자다. 설마 좀 오르막이기로서니 3명을 태우고 못올라 갈까? 더군다나
오늘은 철재 형님도 없다.
"저기... 피가 나는것 같애요... 어머... 어쩌지?............................................."
옆에 앉은 은영씨가 소리를 낮춰 속삭인다. 코끼리 몰이꾼이 코끼리 머리 위에 앉아서 게으름 피우는 코끼리를 재촉한다.
채찍으로 보이던 손에든 무언가를 자세히 보니 후크선장의 갈고리 만큼이나 위협적이고 아주 날카로운 쇠붙이다. 그가 무슨
소리를 지르며 코끼리를 재촉할때마다 코끼리의 귓등에서는 상처가 생긴다. 뒤를 돌아보니 따라오는 코끼리에 탄 동물을
좋아한다는 서른살 난 내 딸 현정이는 뭐가 좋은지 헤헤거리고 있다. 현정이가 헤헤 거릴때마다 같이 들뜬 그녀의 코끼리
몰이꾼은 코끼리를 재촉하고 코끼리의 두터운 가죽에는 상처가 생긴다.
"좋아하는 동물 학대하는 걸 좋아하나 봐요?... 취미가 가학적이신걸요?....................................."
내 귀로 케이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고개를 돌려 현정이를 한번 보고 은영씨를 지긋이 바라보며 검지손가락을
그녀의 입술에 가져다 댄다.
"쉬... 잇... 보안사항입니다................................................."
서른살난 귀여운 딸 현정이는 헤헤거리고 은영씨는 눈을 똥그랗게 뜨고 의문을 표시한다. 나는 멀리 보이는 암베르 포트를
바라보며 딴청을 피운다.
"이거 순 바람 값이네... 뭐..............................................."
은혜가 입을 삐죽거린다. 그 의견에 나도 한표. 우리는 지금 하와마할에 서서 바람을 쐬고 있다. 하와마할은 바람의 궁전이란
뜻이라던가? 뭐 어쨌든 겉보기엔 굉장히 이쁘고 그래서 비싼 입장료를 치르고 들어가니 이거참. 볼것이 하나도 없었다. 단지
꼭대기에서 바람을 쐬는것 밖에는 없다.
"하하... 이거 인도사람들은 난장이였나 봐요?... 아님... 여자들만 이 궁전에 있었거나....................................."
통로를 오가다가 천장에 머리를 부딪친 인범씨가 무안한 듯 변명을 한다. 이 사람에 몇백년 전에는 우리나라 사람들도 아주
작았다고 한다. 평균신장이 150몇 센티 였다고 한다.
"그냥... 숙소에 가서 쉴래요... 케이졸라서 쇼핑을 하던가요......................................."
은혜가 입을 삐죽거린다. 하와마할을 나서고 시계를 보니 다음장소에 갈 시간이 빠듯 하다. 사람들이 나를 매서운 눈으로
쳐다본다. 내가 길을 잃고 얼마나 헤맸다고 나를 보는가? 나도 고생했다고 우리는 숙소로 돌아갔고 마침 일을 마치고 돌아온
케이에게 부탁을 해서 쇼핑을 하기로 했다. 물론 거래의 조건은 오늘 저녁도 탄두리 치킨을 쏘는걸로 했다.
"Give and take. 거래의 기본이죠... 하하................................................."
저녀석 넉살도 좋다. 보라 저 여우같은 케이녀석을 다들 당연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이지 말란 말야. 이쯤이면 얌체라고
뭐라고 해야하지 않나?
"자이푸르의 별명은 핑크시티죠... 왜... 핑크시티인지는 도통 모르겠고... 뭐 하와마할이 핑크색이긴 하더군요... 바라나시가
비단이나 옷감이 유명하다면... 자이푸르의 유명한 물품은 보석이죠... 보석은 잘 모르지만... 원석이 나쁘지는 않은데...
세공기술을 떨어져서 보석가격이 굉장히 싸다고 합니다... 한번 보세요......................................"
케이의 설명을 들으며 우리는 반지며 목걸리 혹은 진주등을 이리저리 구경을 하고 있다.
"부인께는 이런게 잘 어울릴겁니다..........................................."
케이가 진주를 들고 싱긋 웃는다.
"질이 조금 떨어지는못난이 진주라 값이 싸죠...................................."
"어떻게 내 처를?......................................................"
케이는 여전히 싱글거리지만 눈가에 잠시 스치고간 당황한 기색을 놓치지 않았다.
"사진으로 봤잖아요...................................."
"사진만으로?............................................."
"뭐... 제 눈썰미가 띄어난 탓이라고 할까요?............................................."
케이는 싱글거리면서 더 이상의 답변을 거부하듯 등을 돌리고 걸어간다. 저녀석은 대답이 궁하면 은근슬쩍 등을 돌려버린다.
"은혜는 뭐가 어울릴까?......................................................"
나를 향해 돌려진 케이의 등이 무척이나 완고해 보인다. 내 손엔 케이가 골라준 진주목걸이와 귀걸이가 있고 내 눈에도 아주
이쁜이에게 어울릴것 같은 느낌이 든다.
"How much is this?.........................................................."
아주 잠시 고민을 하다 셈을 치룬다. 저녁을 먹고 방에 올라가 샤워를 하고 방에 누워 있으려니 형님들이 좀이 쑤신가 보다.
형님들은 어느새 에어인디아 마크가 찍힌 담요를 펴고 패를 섞기 시작한다.
"이리와서 붙어........................................."
"생각 없어요.............................................."
"돈 딴사람이 그렇게 입을 쓱 닦으면 곤란하지... 남자라면 복수전을 받아들여야지... 안그래?............................."
형오형님이 능글맞게 이야기를 하고 철재형이 눈을 부릅뜨며 분위기를 거들자 같이 한판 칠까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지난번의
그들의 만행이 떠올라 은혜를 불러온다며 방을 나선다.
"은혜야?................................................"
"왜요?...................................................."
은혜의 방 앞에서 은혜를 부르니 은혜가 문을 열고 얼굴을 내민다.
"저기... 형님들이 고스톱 치자는데 너도 같이 하자고........................................"
"흠... 어쩌지... 샤워할려고 했는데.................................................."
"그럼... 샤워하고 와... 너 올때까지 기다리고 있을께...................................."
"픽... 기다리다가 혼자 돈 잃으실려구요?... 들어와서 커피나 한잔하고 기다리세요... 저기 물 올려놨어요......................"
은혜의 방으로 들어선다. 정확히는 케이와 은혜의 방이다. 방에 참 이것저것 살림살이가 많구나.
"커피포트도 있었어?............................................"
"케이꺼요... 케이는 아침에 커피를 안마시면... 정신을 못차린데요... 시간없을 때는... 그냥... 생수통에 커피넣고 흔들어도
먹더라구요... 아마도 카페인 중독이지 싶어요............................................. "
샤워실을 향해 말을 던지자 물소리 사이로 은혜가 목소리가 들려온다.
"케이는?........................................"
"늦는데요... 잠깐 아는 사람 만나러 간다고요........................................"
"커피포트 말고 뭐뭐.. 있어?....................................................."
"찾아봐요... 나도 뭐 있는지 잘 몰라요... 케이 생긴거 답지않게 꼼꼼해서 이것저것 많이 싸들고 다니거든요......................"
방을 둘러보니 등산용 컵이 두개가 있어서 케이것으로 보이는 큰 컵에 커피믹스를 붓고 뜨거운 물을 붓는다. 역시 이 맛이다.
자판기 커피 다음으로 선호하는 일회용 인스턴스 커피. 원래는 원두커피를 아주 즐겨 마셨지만 이쁜이의 취향으로 입맛까지
바꿨다. 커피를 음미하고 있는데 방구석에 반쯤 풀려있는 가방이 보인다. 저 무식하게 큰 가방은 케이 꺼다.
뭐가 들었는지 한번살펴 볼까? 케이도 없고 은혜도 샤워중이고 잠시 살펴보는건데 주위를 한번 살피고 가방을 뒤적거린다.
카메라 2대와 렌즈4개. 엄청난 양의 필름. 건전지. 삼각대. 이녀석 카메라 용품이 절반이다. 이녀석도 에어인디아 담요를
가지고 있네? 고민되는군. 마침내 찾아낸 까만색 다이어리. 족히 몇년은 됨직하게 낡아있다. 잠시 고민하다 나는 하나의
명제를 떠 올린다.
"지피지기면 백전 불퇴라.................................................."
그래 너도 사람인데 약점이 없겠어? 너의 약점을 알기위해 너를 분석해 주마. 다이어리를 열자 19**로 시작하는 년도의 작은
다이어리용 달력이 보인다. 달력을 넘기니 흑백 사진 한장이 나온다. 젊은 여자의 누드사진이다. 좀더 자세히 들여다 보니
우리 이쁜이 인것 같다. 아니 자세히 모르겠다. 아직 젖살이 빠지지 않은 어린 이쁜이와 닮은 얼굴이 망막을 가득 채워온다.
"아저씨?........................................................."
은혜가 샤워를 마친 양 물기가 가시지 않은 머리를 수건으로 감고 나에게 다가온다. 아주 정색한 얼굴이 내가 뭔가 큰 잘못을
저지른 것 같다.
"케이알면 큰일나요... 빨리 도로 넣어요........................................."
"저기... 은혜야............................................................."
"빨리 넣으라구요.........................................................."
"알았어... 잠깐만....................................................."
케이의 가방을 정신없이 다시 쌓다.
"예전에 케이 가방 만지다가 케이가 화를 냈었거든요... 케이가 그렇게 화를 내는것 첨 봤어요... 가방에 든 물건이 케이에게
아주 소중한 것인가 봐요................................................."
가방을 싸고 나자 은혜가 조용히 이야기 한다.
"이제... 고스톱 치러 가요...................................................."
결국 난 1000루피를 잃었다. 어떻게 잃었는지 생각나지 않고 지금 그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방금 본 사진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워 머리 한쪽이 터져나갈 것만 같다. 물통을 들고 계단에 걸터 앉아서 담배를 핀다. 파란 연기 사이로
아까의 그 사진이 떠오른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호흡이라네요 누군가가............................................"
등뒤로 케이의 낮은톤의 목소리가 들려와 등을 돌리니 케이가 커피잔을 들고 내려와 내앞에 멈춰서더니 5루피를 내민다.
담뱃불을 붙이는 케이의 손이 조금씩 떨리는 것 같다.
"궁금해요?... 근데... 안가르쳐 줄래요... 계속 궁금하세요.............................................."
케이는 싱글거리며 담배를 피운다. 손은 여전히 조금씩 떨린다. 왠지 내가 알아서는 안되는 단호한 의지가 느껴진다.
관련링크
-
https://www.19guide03.com
289회 연결
- 이전글음악학원에서의 추억 - 1편 24.11.04
- 다음글인도에서 만난 남자 - 13편 24.11.01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