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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설

멈추지 않는 - 9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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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19가이드
댓글 0건 조회 8,959회 작성일 24-06-10 18:56

본문

상민은 신촌에 대학생들의 단골 고객인 클럽에서 재용과 만났다. 번쩍이는 조명등과 아주 요란한 음악소리 주점 안의 젊음을
발산하는 흥겨운 분위기지만 상민은 혼자 외톨이가 된 기분이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오직 지선의 모습만이 떠올랐다. 그리고
갑자기 상민의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넋을 놓고 있는 상민에게 재용이 술잔을 권했다.
 

“상민이가 웬일로 술을 마시자고 하니... 뭐... 안 좋은 일이라도 있어?......................................” 

“아니... 그냥... 취하고 싶어서................................”


억지로 쓴 웃음을 띤 상민은 재용이 권하는 술잔을 들어 벌컥 들이마셨다. 술잔을 연거푸 비워도 상민은 청각이 마비된 것
같았다. 클럽 안의 모든 사람들이 언어를 잃고 있었다. 밴드들이 연주하는 음악소리도 스테이지 앞에서 춤을 추는 젊은이도
상민에게는 아주 흐느적거려 보였다. 어쩌면 상민 자신이 감정의 기억을 잃어버리고 싶은지도 모른다. 재용이 넋을 놓고 있는
상민의 어깨를 툭 쳤다.
 

“너... 아무래도 무슨 일 있나보다... 즐겁게 마셔............................” 

“응.......! 머리가 좀 아파서.................................”


망각에서 깨어난 상민은 다시 술잔을 비우고 재용의 술잔을 채워주었다. 상민은 지선과의 이별을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다.
그만큼 충격적이기에 무의식적으로 기억을 잊어버리고도 싶은 것이다. 금붕어가 어항 속에서 사는 것을 견딜 수 있는 것은
기억력이 거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금붕어는 유리벽에 닿을 때까지 헤엄쳐 갔다가 다시 돌아간다. 이런 과정은 무한히
돌아가는 회전목마처럼 되풀이된다. 결국 금붕어의 기억력이 약한 것은 미치지 않기 위한 생존 전략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흔히 인간을 망각의 동물이라고도 한다. 상민의 무의식적인 망각은 지선과의 이별이라는 충격으로에서 부터 탈피하려는 아주
본능인지도 모른다. 고개를 흔들어 스테이지를 응시하는 상민의 귀에 시끄러운 소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스테이지위에서
흘러나오는 광란의 음악소리 취객들의 흥청거리는 목소리 상민은 비로소 술기운이 오르는 것 같았다. 그때 상민과 재용의
좌석으로 다가오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희들과 합석하실래요?......................................”

“네.......!?...........................................”


그녀들을 바라본 재용이 아주 갑작스러운 제안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몸매가 들어나도록 달라 붙는 바지와 허벅지가
들어나는 미니스커트를 걸친 두 여자였다. 재용의 시선을 따라 상민도 그녀들을 힐끔 쳐다보았다. 옷차림새는 어려보이나
화장한 것으로 보아 상민이나 재용보다 나이가 많아 보였다. 재용이 빙긋이 웃으면서 상민의 눈치를 살폈다. 상민은 표정의
변화 없이 쳐다보기만 했다. 고개를 끄덕인 재용이 흔쾌히 그녀들의 청을 받아드렸다.
 

“괜찮으시다면 저희들은 좋지요.............................” 

“그럼... 술은 사주시는 거지요?........................................”

“하하~!... 얼마나 드시는지 모르지만 술쯤이야................................”


재용이 아주 호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서로의 시선을 마주친 그녀들은 망설인다. 바지를 입은 여자가 재용의 옆에 앉았고
미니스커트를 걸친 여자가 눈웃음치며 상민의 옆자리에 각각 앉았다. 기분이 다운되어 있는 상민은 별로 탐탁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재용이 여자들에게 인사를 했다.
 

“서로... 이름이라도 알아야 할 것 같은데... 저는 재용이라는 머슴이고 내 친구는 상민입니다..........................” 

“아!... 네... 난... 선경이고... 제는 소정예요...............................”


재용의 옆에 앉은 여자가 자신들의 이름을 밝혔다. 재용이 종업원에게 손짓을 하서 물러 술잔을 가져오라고 했다. 그리고
두 여자의 잔에 맥주를 채워 주고는 잔을 들어 마시기를 권했다.
 

“이거도 인연인데... 같이 한 잔 하시지요.................................” 

“호호~!... 저희들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아요... 오래간만에 온 거니까.....................................”


그들은 서로의 술잔을 부딪쳤다. 자괴감에 빠진 상민은 그녀들이 안중에도 없었다. 소정이 술잔을 반쯤 비우고 옆에 앉은
상민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나이를 꼭 알아야 됩니까?......................................”

“아니... 어려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먹을 만큼 먹었습니다.......................................”


아주 탐탁지 않은 상민은 퉁명스러운 말투를 흘렸다. 그때 우락부락하게 보이는 청년 한 명이 탁자 앞에 버티고 섰다. 스물
대여섯 쯤으로 보이는 청년을 보고 소정과 선경이 흠칫하였다. 청년을 아는지 그녀들이 서로 눈짓을 하였다. 청년이 대뜸
소정에게 손가락질을 했다.
 

“소정이!... 너... 서방질 하는 거야?.........................................” 

“왜... 그래... 오빠!... 오빠가 무슨 상관이야?.....................................”


겁에 질린 소정이 손가방으로 얼굴을 가리며 뒤로 물러서 앉았다. 안면도 없는 여자들의 청에 의해 합석을 하게 된 재용과
상민은 낯선 남자의 등장에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소정을 바라보던 청년이 상민을 향해 반말을 했다.
 

“너... 소정이 하고 잘 아는 사이야?......................................” 

“초면에 말씀이 너무 거치시네요.......................................”


강압적인 청년의 말투에 상민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청년이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상민을 노려보았다. 취기가 있는 상민도
지지 않고 이맛살을 찌푸렸다. 술을 꿰니 마셨는지 얼굴이 시뻘겋게 변하는 청년의 입에서 욕설이 튀어나왔다.
 

“이런... 씨발놈이!?... 묻는 말에 대답 안 하고... 죽고 싶은 모양이구나............................” 

“씨발... 놈이라니!?......................................”


화가 치민 상민이 벌떡 일어났다. 상민의 반응을 기다렸다는 듯이 청년이 손을 뻗었다. 그리고 상민의 멱살을 움켜쥐고 밀어
붙였다. 전혀 대비하지 않았던 상민이 탁자와 함께 쓰러졌다. 탁자위에 있던 술병들이 바닥에 떨어져 깨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동시에 여자들이 놀라서 외마디를 질렀다.
 

“어... 멋!.........................................” 

“오빠... 왜 그래?.....................................”


그녀들의 놀라는 모습을 보고 청년이 코웃음을 쳤다. 순간 쓰러졌던 상민이 일어나면서 번개같이 청년의 턱을 돌려 찼다.
마치 슬로비디오의 한 장면처럼 턱이 돌아간 청년은 천천히 뒤로 나동그라졌다. 상민은 틈틈이 익힌 합기도의 유단자였다.
상민에게 일격을 당했으나 청년도 만만치 않았다. 벌떡 일어난 청년은 입가에 묻은 피를 주먹으로 문지르며 비웃음을 흘렸다.
 

“후... 후!... 제법인 걸... 좆같은 새끼!... 오늘 임자 만났다..........................................” 

“................................................”


갑작스런 사태에 사람들의 시선이 한 곳으로 몰렸다. 청년이 상민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와장창하고 술병 깨지는 소리
탁자 넘어지는 소리와 함께 종업원들이 통로 사이를 비집고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청년의 주먹을 피한 상민이 무릎으로
올려치기를 했다. 뒷걸음으로 피한 청년이 상민의 목덜미를 가격했다. 잠시 비틀 거리던 상민이 청년의 가슴을 휘둘러 찼다.
 

짧은 시간이었는데 경찰들이 뛰어 들어왔다. 종업원의 연락을 받고 근처의 경찰지구대에서 출동한 경찰들이었다. 동시에
쓰러졌다가 일어나는 청년과 상민 사이에 경찰이 가로막고 섰다. 경찰에 제지를 당한 청년과 상민 모두 얼굴에 상처를 입고
씨근덕거렸다. 상민과 청년은 경찰에 의해 지구대로 끌려갔다.
 

공연히 시비를 걸었던 청년은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씨근덕거렸다. 하지만 경찰 조서를 받는 동안 청년은 의외로 고분고분
했다. 조서를 작성했으나 서로 처벌을 원치 않았다. 뒤늦게 출두한 업주는 흔히 있는 손님간의 일이라 장사를 생각해서인지
손해 배상이나 처벌을 원치 않아서 상민과 청년은 합의 각서를 쓰고 지구대를 나왔다.
 

지구대를 나온 청년은 상민을 잔뜩 노려보며 욕설을 뱉고 사라졌다. 상민은 기다리고 있던 재용과 지구대를 나섰다. 그들이
술 한 잔을 더하려고 근처의 포장마차로 가는데 클럽에서 합석했던 두 여자가 골목길에서 나왔다. 아주 슬며시 다가온 소영이
주춤거리며 상민에게 다가왔다.
 

“죄송해요... 그냥... 나를 쫓아다니는 친구 오빠예요... 미안해서 제가 술 한 잔 살게요.........................” 

“됐습니다... 그냥 가세요.............................”


뜻하지 않은 싸움으로 상민은 그녀들을 상대하기도 싫었다. 멋쩍은 표정으로 바라보는 그녀들을 뒤로 하고 상민은 재용과
포장마차로 들어갔다. 그렇지 않아도 지선과 이별의 아픔으로 고통스러웠던 상민은 술잔을 채우기 바쁘도록 술을 들이켰다.
상민은 재용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술을 마시며 횡설수설하였다.
 

다음날 상민은 갈증을 느껴 눈을 떴다. 창문에는 해가 중천에 걸려있고 어제저녁 어떻게 집으로 들어왔는지 상민은 가물가물
하였다. 현기증을 느끼며 방문을 열고나서는 그는 가구들이 없는 텅 비어 썰렁한 집안을 돌아본다. 어깨가 시리도록 한기를
느낀 그는 냉수를 들이켜고 앉아 자신의 나약함을 느꼈다.
 

이틀 후 상민은 구입한 전셋집으로 옮겼다. 새로운 마음으로 생활을 시작하자고 다짐을 하면서도 상민의 머릿속에는 지선의
모습이 떠나지 않았다. 그러나 캠퍼스 생활이 시작되며 학우들과 어울리고 새로운 학과에 몰두하게 된 고 상민의 하루하루는
바쁘게 지나가기 시작했다. 
들과 산이 초록으로 물들고 제법 날씨가 더워지기 시작하였다. 강의를 마치고 친구를 기다리는
상민은 캠퍼스 나무 밑의 벤치에 걸터앉았다. 혼자만의 여유로운 시간이 되면 상민은 지나간 아픔을 되살렸다.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그는 외숙모 지선의 소식이 궁금해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그러나 어떤 결과이든지 실망할 것이 두려워
전화를 하지는 못 했었다. 
항상 눈웃음이 깃든 정감어린 눈빛 조신한 성격이면서도 열정적인 지선의 모습을 떠올린 상민은
오늘도 휴대폰을 꺼내 들고 망설였다.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 행복을 깨는 것은 아닌지 과연 전화를 받고 반가워할는지 전화를
해서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는 알 수 없었다.
 

상민은 몇 번인가 망설이다가 포기 하고 말았던 지선의 휴대폰번호를 눌렀다. 신호는 가지만 지선이 전화를 받지 않았다.
두 번 세 번째도 받지 않아 실망한 상민이 포기하려는데 통화 버튼을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말이 없었다. 상민은
느낌만으로도 그녀가 틀림없다는 예감이 들었다.
 

“외숙모.........!?......................................” 

“..........................................”

“상민인데... 잘 지내고 있지요?......................................”

“...........................................”

“송이가 꽤 예뻐졌겠네.......................................”

“음!... 그렇지 뭐.........................................”


담담하면서도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렸다. 상민이 그녀의 목소리를 모를 리 없었다. 휴대폰을 들고 있는 상민은 아주 감정이
격해지고 있었다. 왠지 서먹하지만 상민은 예전과 다르지 않은 그녀만이 풍기는 느낌을 감지할 수 있었다. 
전화를 받고 있는
지선은 상민을 잊으려는 시간 속에서 살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속마음은 상민의 전화를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망설이다가
전화를 받았으나 지선은 자신의 감정이 들어나지 않도록 조심스러웠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소리 없이 숨을 들이마신 지선은
상민의 목소리에 흔들릴 것만 같았다.
 

“그 동안....... 별일 없었어요?.....................................” 

“음...........................................”


조금은 어색하고 들뜬 어조의 상민의 물음에 지선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포항으로 내려간 지선은 마음이 편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과거로 되돌아 갈 수도 없었다. 아팠던 상처가 다시 들어내고 싶지 않은 지선은 간단하게 전화를 끊어야 한다고 생각
했다. 다시 상민이 그녀에게 물었다.
 

“아픈 곳은 없어요?.............................” 

“걱정해줘서 고마워........ 앞으로는 전화 하지 말아줘...................................”

“.........................................”


지선의 냉정한 목소리에 상민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지선은 아주 천천히 통화버튼을 눌러서 껐다.
휴대폰을 들고 있는 지선의 눈동자에는 눈물이 글썽거렸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창문에는 낙조가 드리워져 있었다. 지선은
상민을 기억 속에 지우려고 해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녀는 결국 남편을 속이고 아기를 낳기로 결심했다. 그녀는 이룰 수 없는
애정 대신에 과거의 상처를 안고 살아 갈 뿐이었다.
 

지선이 통화를 끊고 나서 상민은 신경세포들이 아주 싸늘하게 전율을 하였다. 어쩌면 남자보다 여자가 감정을 들어내지 않는
아주 현실적인 감각을 지녔는지도 모른다. 상민은 그녀가 진실로 자신을 잊고 있었든지 아니면 잊지 못하는 감정을 들어내지
않으려하는 것인지가 중요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상민은 잊어야하는 그녀의 현실이 중요하다고 느꼈다.
 


휴대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은 상민은 허전하기만 했다. 잔디밭에 벌렁 누운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상민은 지선을 잊지
못하지만 외숙모를 불행하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만큼 그의 가슴 속에는 그녀의 영혼이 깊이 박혀 있었다. 상민은 올려다
보이는 같은 하늘을 바라보고 있을 그녀도 자신의 마음을 알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상민아!... 가자.................................” 


상민이 기다리던 친구 재용이가 잔디밭에 누워있는 그의 이름을 부르며 다가왔다. 상민이 수시입학 고시로 합격한 대학에
재용은 정식으로 입학 시험을 치루고 들어왔다. 학과는 다르지만 재용은 상민과 같은 서예 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었다.
누웠다가 상체를 일으키는 상민의 시야에 재용의 뒤편에서 다가서는 스커트 자락이 보였다.
 

“상민씨!...........................................” 


상큼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재용과 같은 학과의 미나였다. 그녀는 생일이 빨라서 상민과 거의 한 살 가까운 나이 차이였다.
미나도 상민과 같은 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었다. 재용과 자주 만나면서 상민은 아주 자연스럽게 그녀를 알게 되었다. 상민과
재용은 동아리 선배가 출품한 서예전에 갈 약속을 했었다. 재용이 상민을 재촉했다.
 

“늦어서 미안!... 빨리 가자...................................” 

“아직 시간이 많으니 괜찮아... 미나씨도 같이 가려고........!?...................................”


상민이 담담한 표정으로 미나를 바라보았다. 까맣고 큰 눈동자에 미소를 깃들인 미나가 고개를 까닥거렸다. 자그마한 체구의
마나는 무척 귀염성이 아주 돋보였다. 그녀의 부모는 모두 각각 다른 대학의 교수였다. 학자 출신r가문의 딸답게 그녀는 조신
하면서도 발랄한 성품을 지녔다. 
미나는 재용이 상민을 만나는 자리에 대부분 같이 어울렸다.

상민은 그녀가 자신에게 호감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물론 상민도 그녀가 싫지 않았다. 그들은 캠퍼스 정문을 향해
부지런히 걸어갔다. 재용의 뒤를 따라 걸어가던 미나와 상민의 시선이 마주쳤다. 그녀는 얼굴을 붉히면서 공연히 재용의
눈치를 살폈다. 
어둠이 내려앉은 종로거리의 음식점 안에서 재용과 상민, 그리고 미나가 구멍탄불이 이글거리는 원탁에 둘러
앉아 있었다. 구멍탄불 위에는 삼겹살이 연기를 피우며 익혀지고 있었다. 술 몇 잔에 취기가 올라 기분이 좋아진 재용이 불쑥
상민에게 물었다.
 

“상민아!... 그 날 재미있었지?... 하하~!.................................” 

“재미있기는 뭐.....!?... 그 여자들 이상하던데...............................”

“이상하던 말든 즐거우면 됐지... 뭐!... 하하하...............................”


불에 타고 있는 고기를 옮겨놓는 미나가 재용을 힐끔힐끔 쳐다봤다. 그녀의 시선을 의식하고 나서 재용은 해서는 안 될 말을
했다는 것을 알고 겸연쩍은 표정을 지었다. 여자들에 관한 말에 동그랗게 눈을 뜬 미나가 상민의 표정을 살피며 물었다.
 

“어디 갔었는데?...............................” 

“오래간만에 클럽에 갔었지...............................”


변명을 하면 더욱 이상하기에 재용이 넙죽 대답을 하며 히죽거리며 웃었다. 호감을 느끼고 있는 상민도 같이 어울렸다는 것에
민감해진 미나의 표정이 샐쭉해졌다.
 

“거기서 아는 여자들을 만난거야?..............................” 

“아니... 놀러와 있던 여자들이 합석하자고 한 거야.............................”


쑥스러워진 상민이 변명을 했다. 그는 마치 다른 여자를 만나다가 애인에게 들킨 사람처럼 미나의 시선을 피했다. 미나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남자들은 모두 똑같아... 상민씨도 그런데 좋아하는구나..................................” 

“아냐!... 정말 그냥... 술 취한 여자들이였어......................................”

“그런데... 재미있었다면서.........?..............................”

“그 여자들이 술주정을 하는 모습이 웃겼다는 거지... 우리는 금방 나왔어...............................”

“피 잇~!... 상민씨도 못 믿겠네..............................”

“못 믿는다는데 어떡해?... 어쩔 수 없지.....................................”


미나가 상민을 향해 곱게 눈을 흘겼다. 미나의 모습을 보고 재용은 괜한 말을 했다고 생각하여 무안한 표정을 지었다. 재용도
미나가 상민을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미나가 묻지 않아도 상민과 만날 때는 알려주곤 했다. 재용은
괜히 클럽에 갔던 말을 꺼냈다고 생각하여 화제를 돌렸다.
 

“창식이 선배 서예실력이 늘었던데... 우리는 언제 출품해보지?...............................” 

“그 선배 아버지가 서예가이잖아... 아버지에게 어렸을 때부터 배웠으니까 그렇지..........................”


새침했던 미나가 밝은 표정으로 재용의 말에 대답을 했다. 그들은 이내 동아리 회원들의 얘기와 서예전에서 보았던 작품에
대한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대화 도중에 미나는 상민의 접시에 익은 고기를 담아주기도 하며 섬세한 모습을 보였다. 대화
도중에 미나가 불쑥 물었다.


“우리 언니 결혼식에 올 거야?................................”

“아!... 맞아... 이번 주 토요일에 미나 언니 결혼식이라고 했지.............................”

“이번 주 토요일이었던가!?.....................................”


잊었던 일을 생각한 재용이 젓가락으로 탁자를 쳤다. 상민 역시 잊고 있었기에 미나에게 미안하다는 눈빛을 보냈다. 미나는
같은 학과인 재용보다 상민이 서운했다. 그만큼 자신에게 관심이 없다고 생각하는 미나는 상민에게 눈을 흘겼다. 젊음은
두려움보다는 패기와 낭만으로 이상에 도전한다. 또한 우정과 사랑에 풍성한 감정을 지닌 인생의 황금기이다.


주말 토요일에 상민은 약속대로 미나 언니의 결혼식에 참석했다. 미나 부모가 교수여서 학계의 많은 축하객들이 예식장에
있었다. 상민의 캠퍼스 친구들과 동아리 선후배들의 모습도 보였다. 미나가 상민을 반갑게 맞이하였다. 언니의 결혼식에 참석
하느라 그녀는 평소와 달리 옷차림에 신경을 쓴 모습이었는데 한결 성숙해 보였다. 미나가 상민의 손을 잡아끌었다.
 

“우리 언니 소개 시켜줄게.............................” 

“지금 바쁠 텐데... 나까지..................................”

“하여튼 와봐.................................”

“.........!?...........................................”


상민은 마지못해 미나에게 끌려 신부대기실로 들어갔다. 대기실에는 드레스를 입은 미나 언니 미정과 미정의 친구 연주가
있었다. 신부화장을 하고 어깨를 들어낸 드레스를 걸친 미정의 모습이 화사하게 보였다. 얼떨떨한 상민이 인사를 어떻게 해야
할지 주춤거렸다. 미나가 활짝 웃으며 미정에게 상민을 소개했다.
 

“언니!... 내 친구야.......................................” 

“강상민입니다........................................”


겸연쩍은 상민이 미정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미정과 연주가 상민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환한 미소를 흘리는 미정이 긴
속눈썹을 껌벅이며 말했다.


“어서 와요... 멋진 남자 친구네... 그런데 남자친구니 애인이니?.......................................”

“호호~!... 언니 멋대로 생각해..........................”

“도도하게 굴더니 미나도 남자 친구가 있구나.................................”

“언니는!?... 내가 무슨..............................”


미나는 새침한 표정으로 미정에게 눈을 흘겼다. 그때 대화를 하느라고 상민의 등 뒤에 있는 대기실 문이 열리고 누군가 들어
오는 것을 모두들 모르고 있었다. 미정은 미나의 새침해지는 표정이 재미있다는 표정을 했다. 그리고 상민에게 물었다.
 

“미나가 무척 속 썩일 텐데?..................................” 

“글쎄요....... 별로 그런 건 모르겠는데요...............................”

“그럼... 미나가 남자친구에게 단단히 반했나보네... 그런 성격이 아닌데............................”

“언니!...................................”


미정의 핀잔에 미나가 와락 소리를 지르며 얼굴을 붉혔다. 그리고 공공연히 상민의 어깨를 주먹으로 쳤다. 상민을 바라보는
미나의 얼굴에 부끄러움과 애교가 넘쳐났다. 미정의 시선이 상민의 등 뒤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와서 대화를 듣고 있던
사람은 미정의 다른 친구였다. 미정이 반가운 표정으로 문 쪽을 향해 손을 뻗쳤다.
 

“지영이구나... 와줘서 고맙다...................................” 

“어머!... 미정이... 너... 신부 화장하니 너무 예쁘다... 연주도 와 있었구나.............................”

“응... 반갑다... 그런데 지영이 너는 시집도 안가니?... 너만 남았다............................”

“연주... 너는 시집 간지 얼마 됐다고... 그런 말 하냐...............................”

“호호호~!..........................................”

“호호................................”


미정과 연주 그리고 지영이 서로 바라보며 밝은 미소를 지었다. 그녀들을 빤히 바라보던 상민의 눈빛이 아주 반짝였다. 지영!
그녀는 상민이 언젠가 보았던 지선의 동생이었다. 상민의 시선을 느낀 지영이 마주보고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넌.......!?....................................” 

“안녕....... 하세요......................................”


상민이 자신을 알아보는 지영에게 더듬거리며 인사를 했다. 미나가 상민과 지영을 번갈아 보았다. 미정도 두 사람을 번갈아
보고 지영에게 물었다.
 

“두 사람 아는 사이니?..............................” 

“응.......!... 우리언니 시댁 조카..........................”

“호호~!... 세상은 넓고도 좁구나..........................”

“글쎄 말이야... 호호호................................”


그녀들은 마주보고 웃었다. 그리고 친구들의 근황에 대해 묻고 답하며 이야기의 꽃을 피웠다. 상민과 미나는 잠시 그녀들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미나가 자잘한 미소로 상민 손을 잡아끌었다.
 

“상민씨!... 우린 나가자.........................................” 

“음... 그래.................................”


그녀들이 대화를 중단하고 상민과 미나를 쳐다봤다. 상민은 목례를 하고 미나를 따라서 신부대기실을 나왔다. 지영이 상민과
미나의 뒷모습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대기실을 나온 미나가 상큼한 표정으로 상민에게 물었다.
 

“우리 언니 예쁘지?..........................................” 

“미나하고는 조금 다른데..............................”

“왜... 내가 어때서?..................................”

“하하~!... 귀여운 못난이................................”

“피 잇~!... 다른 사람은 언니보다 내가 더 예쁘다고 하던데...............................”

“하하하...................................”


미나가 상민에게 하얗게 눈을 흘겼다. 예식장 입구는 더욱 축하객들로 아주 붐비고 있었다. 남녀노소 모두들 나름대로 옷을
차려입고 만나는 사람마다 인사를 하며 덕담을 나누는 모습이었다. 두 사람은 흥겨운 표정으로 축하객 무리 사이를 헤치고
예식장 안으로 들어갔다. 
창문으로는 항상 바다가 보였다. 지선은 커피 한잔을 들고 바다가 보이는 창문을 바라보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침묵의 시간 속에 머물고 있는 그녀는 누군가와 하고 싶은 얘기를 바다와 하고 있다.

바다는 언제나 시작도 없었으니 끝도 없다. 지선은 파도가 밀려오는 수평선의 외로운 섬과 자신이 아무래도 남남 같지 않은
인연이 있음직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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