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사랑 - 27부 > 야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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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설

착한 사랑 - 27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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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19가이드
댓글 0건 조회 47,312회 작성일 20-11-30 16:04

본문

" 이거 무거워요.."

" 으..응?? 아!~~ 나..나한테 줘.. 내가 들고 있을게."

" 참나.. 그냥 방에 놔두면 되지.. 비켜봐요."

" 자..잠깐!!! 아리 학상 우리 밥부터 먹자.."


'덜컹..' 

"왔냐.." 


민기가 거실에서 들린 소란스러운 목소리에 아리의 방문을 열고 모습을 보인다. 

상체엔 민소매 나시만 걸친 채 어제 입고 잠이 들었던 양복바지의 모습으로 까치집을 얹어 놓은 듯 한 머리카락들을 긁적이며 아리의 방에서 무심한 듯 걸어 나와 거실 바닥에 놓여있는 담배를 하나 입에 물고는 벽에 기대어 앉는다.


" 어!.. 오빠....." 

" ....후~~~"

" 계셨어요? 근데 왜 거기서 나와요?"

" ....안에 수지 있으니까.. 조용히 좀 하자.."

" 수지?...수지 언니요?"


아리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하곤 잠시 자신의 것이라고 동민이 말해준 방문을 뚫어져라 쳐다보게 된다. 동민도 덩달아 머리를 긁적이며 멍하니 서 있었기에 그런 동민과 함께 방문을 바라보던 아리는 곧 민기를 노려보게 된다. 


" 짐은 나중에 풀고.. 우선 저기 작은방에서 좀 쉬어라..." 

" ....."

" 지금 자세한 얘기는 좀 그렇고...."

" 됐어요.."

" ...."

" 저 때문에 괜히 신경 쓰시게 만든 거 같네요... 그럼 안녕히 계세요.."


" 아..아리 학상....." 


그래도 몸을 돌려 아리가 현관문을 열고 민기의 집을 걸어 나갔고, 그 모습에 더 당황한건 민기가 아닌 동민이었다. 

정작 민기는 고개를 숙인 채 머리만 긁적이며 담배를 연신 입에 가져다 댄다. 


" 혀..형님.. 아리 학상 잡아야 되는 거 아닙니까?" 

" ....잡아서?"

" ....예?"

" 잡아서 뭐라고 설명하려고?"

" 그...그거야..... 그래도 단단히 오해한 거 같은데 말입니다... 저대로 돌려...아니 갈 데도 없잖습니까..."

" 갈 데가 왜 없어.. 고시원으로 다시 들어가면 되지.. 우선은 수지부터........."

" 형님이 직접....고시원 다 뺏는데..."

" ......."

" 우선 나가보겠습니다.. 아리 학상 잡아서 대충이라도 얘길 해놔야..."

" 됐다...."

" 예??"

" 그렇게 걱정되면.... 네가 아리 좀 챙겨주던가... 너 살고 있는 빌라 옆에 빈 집.."

" 알겠습니다 형님.."


동민은 민기의 멋쩍어하며 하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몸을 움직여 방금 전 아리가 나간 현관문을 열고 나간다. 

민기의 마음도 행동과는 전혀 다른 속내였지만,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면 우선은 수지인 민기였다. 자신의 옛 여자 친구
이기 때문만은 아닌 복잡한 조직 간의 문제에 괜히 수지가 끼어들게 된 건 아닌지 많은 죄책감을 느끼고 있던 민기였기
때문이다. 큰형님을 만나고 온 민기는 밤새 어지러운 머릿속을 정리하려 노력했고 어느 정도의 결론을 내리게 된다.


김검사의 배후에 고만이 조직이 어느 정도 연관되어진 걸 확인하였고, 지금까지의 모든 상황에서 빠짐없이 나온 이름으로
어느 정도 유추를 할 수 있었던 민기였기에 김검사의 처리에 더 머리아파 하는 민기다. 분명 현장에서 발견한 약과 수지를
무참히 짓밟은 그 남자들은 민기에게도 낯설지 않는 몇 명의 모습과 함께 고만의 의도가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게 했다.


문제는 그 처리였다.

19명의 큰형님들 중 우식과 함께 고만이는 민기조차 함부로 처리할 수 없는 인물들이었고, 처리를 한다고 마음을 먹어도
결코 쉬운 상대가 아님을 알고 있었기에 큰형님을 찾게 만들었고 하나도 빼먹지 않고 얘길 해야 했다. 잠시간의 보류하라는 명령을 받은 지금 상황에서 김검사에게 손을 대는 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모든 일을 망칠 수 있는 일인지에 대해서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에 수지에게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는 민기였다.


만약... 아리에게도 이런 일이 닥친다면 이라는 끔찍한 생각을 하게 된 민기는 결국 아리만큼은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편이 그 아이한테도 제대로 된 삶의 기회를 줄 수 있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 복잡한 마음에 담배를 입에 물어 라이터대신 피던
담배의 불씨로 옮겨 붙을 붙이던 민기는 밖으로 나온 수지의 모습에 고개를 돌리게 된다.


" 왜?.. 더 자..." 

" 잠만 자냐... 방금 누구야?"

" 동민이하고.... 아리...."

" 아리?? 퇴원한 거야?"

" ....다른곳으로 보냈어."

" 어디로?"

" ........"

" 갈 데는 있대?"

" 동민이가 챙겨주겠지.."

" ... 나 때문이야?"

" ....아니야."

" ......"

" 그것보다.. 옷이나 좀 입어라..."

" ....뭐가 어때서.. 옛날에는 집에서 옷 입지 말라며?"

" ...지금이 옛날이냐?"

" ..나도 한대 줘봐."

" ..."


토사물로 범벅이 된 바지와 팬티가 다 말랐을 텐데도 수지는 하반신의 직업 특성상 잘 정리된 고른 털들을 그대로 내놓고
민기의 옆에 바짝 앉아 담배를 하나 받아들고 입에 문다. 
어느새 둘의 담배 연기가 거실을 메우자 민기가 일어나 거실의 큰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게 된다.


" 춥다." 

" ..바지 입어.."

" 언제부터 창문 열고 담배 폈냐?"

" ...."

" 진짜 변했구나....."

" 변하긴.. 그보다.. 좀 괜찮아?"

" 뭐? 아래?"

" ..."

" 참나.. 내가 일반 여성이냐....?"

" ....에휴."

" 솔직히.. 그 약만 아니었으면... 이런 고생도 안 할 텐데.. 그 새끼들은 그 딴 약이나 먹이고..
 차라니 대주라고 말을 하던가..  한 번에 두 명 상대하는 건 일도 아닌데..."


" .........."

" 왜? 이런 말 하는 게 이상해? 아직도 순진한 예전의 수지로 보여?"

" ...아니다."

" 아니긴.. 하긴 그땐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허리만 움직였었지.... 그게 좋은지도 모르고 그냥 막.."

" 시끄럽고.. 좀 누워라.. 아니면 바지라도 좀 입던가.."

" 미친놈.... 야! 엘르에 오는 넘들 치고 이거 한 번 만져보려고 줄을 안서는 놈들 있는 줄 알아?!!"

" ...그래 참~~ 좋겠다........그래도 바지 입어..."

" ...너 지금 낮 간지운거 알아?"

" ...?"

" 에휴... 모르겠다. 바지 어디다 뒀어?"

" ...화장실."


수지는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 입에 담배를 문 채 그대로 욕실로 향한다. 

확실히 예전보다 군살이 더 빠진 수지의 하반신은 많은 사내놈들이 침을 삼켰을 정도로 잘 빠진 각선미를 뽐내고 있었다.
야간에 일하는 직업에도 항상 수영과 에어로빅으로 몸을 가꾸는 수지였기에 20대 중후반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노련한 남자 다루는 솜씨와 몸매로 엘르에서 갓 스물이 넘은 파릇파릇한 여자아이들을 제치고 넘버원이라는 타이틀을 지키며 도도하게
생활하고 있었기에 그나마 한숨을 쉬게 된 민기였다.


" 아직 안 말랐네... 기민아.." 

" 응?"

"  팬티 하나만 입을게."

" ...."


익숙함만큼 무서운 건 없다고 하더니 수지는 욕실에서 그대로 민기의 방으로 들어가 아무렇지 않게 옷장의 문을 열고는 가지런히 놓인 흰 팬티들 중 하나를 꺼내 하반신에 걸친다. 허리밴드는 많이 헐렁한데 엉덩이는 그나마 좀 맞는 이상한 모양새로 거실에 나온 수지는 짧아진 담배를 재떨이에 끄고는 다시 하나 붙여 입에 문다. 둘은 한참을 아무 말 없이 그대로 거실에 앉아 있게 된다. 추운 밖의 날씨에도 수지를 위해 보일러의 온도를 많이 올린 민기였기에 나른함을 느끼는 오후의 그림을 그리 듯 가만히 앉아 있던 수지가 그대로 거실에 새우들을 하고 옆으로 누워 잠이 들어버렸다.

민기도 벽에 등을 기대고 꾸벅꾸벅 졸더니 이내 잠이 든다.


달그락 거리는 솔에 눈을 뜨게 된 민기는 이미 저녁 7시가 넘은 시계를 보곤 소리 나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게 된다.
수지가 흰색 팬티만을 여전히 입은 채 주방에서 요리를 하는 듯 뒷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 .....뭐해?" 

" 저녁도 시켜 먹긴 그렇잖아.."

" ....."

" 진짜 아무것도 없더라... 참치 캔하고 김치로 찌개만 끓이니까.. 대충 먹어.."

" ..몸은?"

" 괜찮다니까...........네가... 옆에 있으니까.. 잠도 좀 잤고.. "

" ...."

" 입맛이 변했나 모르겠네... 간 좀 봐...."

" ......."


김이 모락모락 나고 끓는 냄비로 다가간 민기는 그립던 기억이 떠 오른다. 그러고 보니 수지가 가장 자신 있어 하던 음식 중
하나가 김치찌개였다. 어느새 화려한 드레스와 하이힐에 긴 생머리를 틀어 올려 가느다란 목선을 자랑하며 섹시함을 부각시키게 된 수지의 모습으로 이런 가정스러운 모습조차 잊고 있었던 민기였기에, 자신의 흰색 팬티만을 하반신에 걸치고 긴
생머리를 아무렇게나 늘어트린 수지의 왠지 모를 그리운 모습을 발견하며 숟가락에 국을 떠 입에 넣게 된다.
 


" ...맛있네." 

" 그래? 오랜만에 끓여 봤는데.. 다행이내.."

" ....정말 몸은 괜찮아?"

" 걱정 말라니까... 내가 이 생활 한두 해 해? 남자라면 아주 이골이 났다.."


씁쓸한 미소를 짓게 하는 수지의 대답이었다. 엘르에 자리 잡고 넘버원이라는 타이틀을 짊어진 수지를 보며 민기는 그냥
그렇구나하고 지나치기 일쑤였다. 수지가 왜 민기의 흥신소에서 가까운 엘르란 단란주점에서 자리 잡고 일을 시작했는지도 몰랐었고, 사실 알 필요도 없었다. 그만큼 여유조차 없는 생활에 쫓겨 살던 민기였고, 하루하루가 섬뜩한 칼날 위를 걷고 있던 민기였다.


수지의 말대로 이미 하반신에 난 상처는 어느 정도 아물고 있었다. 남자를 하루가 멀다 하고 접대하던 그녀였고, 말 그대로
쓰리섬이나 그룹까지도 손님들의 요구와 명령으로 초창기에 이미 겪어봤던 수지였기에 이번 강간사건 중 그 끔찍했던 몸의 마비만 아니었다면 정신적인 충격에서도 많은 괴로움을 덜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고 민기는 섣불리 생각하게 된다.


" 먹자." 

" ...."

" 근데.. 아리는? 동민씨한테 연락 안 해봐도 돼?"

" ..."

" 너... 정말 아리 좋아하니?"

" ....밥이나 먹어."

" .......너 큰일이다.. 큰일.."

" ..."


" 어디 가는데?" 

" 고시원이요."

" 아리학상.. 차라리 내가 방 하나 얻어줄게.. 우선 거기서..."

" 싫어요."

" 돈 있어? 돈도 없잖아.. 형님이 나한테 아리 학상 거처를 알아보라고 했다니까.. 부담 갖지 말..."

" 됐어요!"

" ....."

" 기민 오빠.. 그 오빠 얘긴 하지 마세요. 그냥 살던 대로 살면 되요."

" ..내가 혼난다니까..."


어느새 아리의 빠른 발걸음은 고시원의 현관 앞에 이르게 된다. 동민이 민기의 집에서 뛰쳐나온 직후에 아리의 모습을 발견
할 수 없었기에 곧바로 그 육중한 몸을 힘겹게 달리기 시작해 고시원 쪽으로 달려왔는데 한참을 지나고 나서야 그나마 다행히 아리가 그 큰 봉지를 손에 들고 걸어가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동민이 달려와 숨을 헐떡이며 아리를 말려보지만,
고집 쎈 아리는 그런 동민을 무시한 채 계속해서 걸어간다.


" 가세요..." 

" 어허~.. 나 형님한테 죽는다니까."

" 안 죽어요. 사람 그렇게 쉽게 안 죽어요."

" 아니라니까.. 형님이 화나면 얼마나 무서운데..."

" 뭐라고 하면 제 핑계 되세요..... 아니지.... 이게 다 누구 때문...에이씨~~... 그럼 안녕히 가세요..."

" 아..아리 학상..."


인사를 하곤 그대로 고시원 안으로 뛰어 들어간 아리 때문에 결국 동민은 흥신소로 돌아가게 된다. 이대로 민기를 만난는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고 생각한 동민은 그것보다 먼저 짱개의 조사가 어느 정도 진행이 됐는지 보고라도 받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생각을 하며 흥신소로 향한다. 그리고 앉아 전화통화를 하고 있던 짱개를 기다리게 된다.

전화통화가 끝이 났지만, 어두운 표정의 짱개의 얼굴을 확인한 동민이 쉽게 말을 붙이지 못한다. 


" 어!.. 오셨습니까 형님..." 

" 그래.. 뭐가 안 되냐?"

" ....이 새끼 보통이 아닌데 말입니다."

" .. 우선 형님 사무실로 들어가자."

" ....예."


" 그래... 뭐가 문젠데?" 

" 그게.... 아직 큰형님한테 말씀도 안드린거라서.."

" 내가 누구냐.. 어차피 다 알게 될 건데.. 말 해봐."

" ...."

" 이 새끼가!!"

" 그 김정욱 검사란 새끼 말입니다..."

" ..."

" 보통 놈이 아니던데 말입니다.. 이미 윗선까지 죄다 약점 잡고 지 세상이던데 말입니다.."

" 그 정돈 예상했던 일이잖아.. 그러니까 형님이 너한테 더 털어보라는거 아니냐?!"

" 그 새끼 마누라는 현 국회의원의 2남1녀 중 막내로 집안에서도 귀여움을 독차지하던 여자고..
 거기에 아들 하나도 영제소리 듣고 있는 아이고 말입니다.. 표면상으로는 가장 이상적인 가정사를 꾸리고 있었습니다."


" 표면??"

" 예 형님.. 차라리 그게 사실이고 그렇다면 약점이라도 잡을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 그건 또 무슨 말이야?"

" 아무것도 모르는 부인이라면 말입니다.. 협박이라도 할 수 있을 텐데.. 사실 겉모습은 그렇게 유지하면서 속은 곯을 대로
 곯은 속물들이었습니다."

" 뭐?"

" 김검사 새끼는 지하고 싶은 대로 씹질 하고 다니고.. 그 마누라란 여편네도 툭하면 호빠를 찾던데 말입니다..
 이미 예전부터 각방 쓰면서 서로의 이중생활은 그냥 인정하는 분위기인거 같습니다.."


" 뭔 소리야.. 아니.. 같이 살면서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놀건 따로 다 논단 말이냐?"

" ....예."

" 그거 또라이들 아니야?"

" ... 거기에 불륜이란 게.. 친고죄다 보니.."

" 그래도 약점을 될 수 있을 거 아니야!..그 새끼가 건드린 여자들이 한둘이야?"

" ... 입막음을 확실히 해놔서.. 어느 하나도 나서서 증언이나 증거를 될 년들이 없었습니다...."

" 무..뭐?? 참나.. 도대체 얼마를 푼 거야.."

" ...죄송합니다 형님.."

" 그럼.. 우리가 나서야 되는 거 아니야?! 이 새끼 잡아서 다른 놈들처럼 족치면?"

" 그..게......"

" 또 뭐?!!?"

" 고민이 새끼들하고 어디까지 연관이 됐는지도 아직 몰라서....그리고 회장님이 우선 놔두시라고..."

" ....참나.. 뭐냐 이거.. 우리가 언제부터 법대로 했다고.. 아니... 언제부터 누구 눈치 보면서 살았냔 말이야.."

" 기민형님은.. 항상 눈치를 보고 사셨습니다.."

" ...뭐?!!"

" 저희야... 기민형님이 사고 치면 항상 뒤를 봐주셨지만.... 정작 기민형님은..... 아무리 화가 나도 항상 뒤를 계산하시고
 자신만 참으면 될 일이면 항상 참으셨습니다...."


" ..네가 뭘 알.......에이! 시발........"

'쾅!~~~' 


재떨이를 바닥을 향해 던져 또 깨버린 동민이다. 다른 누가 아닌 짱개의 얘기였기에 아무 반박도 부정도 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는 동민이다. 민이파에서 항상 뒤처리엔 민기나 짱개 둘 중에 알아서 했고, 그렇기에 민기의 노고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짱개 였을 것이다. 
이를 꽉 물고는 무섭게 깨진 재떨이를 노려보는 동민의 모습에 짱개도 화를 내고 있다는 듯
그 재떨이로 시선을 옮겨 깨진 재떨이처럼 뭉개진 김정욱 검사 놈의 모습을 그려본다.


" 이걸.. 형님한테 뭐라고 말씀드려야 하냐...." 

" 알고 계실 겁니다.."

" ..?"

" 아마.. 짐작하고 계셨기 때문에 미리 큰형님한테 다녀오신 거 같습니다...."

" ...에휴... 그런 씹새 하나를 처리 못해서..... "

" 원래.. 그 쪽 놈들 목하나 따는 게 가장 힘든 거 아시지 않습니까...."

" 몰라 이 새끼야!.. 그딴거 알았으면 내가 이 짓하냐! 씨발 공부해서 판검사 됐지!!"

" ..... 누가... 형님이 말입니까?"

" 이 새끼가!!"

" .......아무리 그러셔도 현실적인... 얘기를 하셔야... 기민형님이시면 모를까.."

" .....확 뒈질래?!"

" ..나가보겠습니다 형님.."

" ..."


다시 돌아오게 된 고시원의 작은 방안에 짐을 내려놓게 된 아리는 길게 한 숨을 쉬게 된다. 아주머니의 배려로 전에 쓰던
방을 그대로 사용하게 된 아리는 이제는 익숙하게 짐을 풀어놓기 시작한다. 교복을 꺼내 벽에 걸려 있는 옷걸이에 가지런히 걸어놓았고, 책상에 다시 책들과 생활용품을 정리해 질서 있게 올려놓고 키를 맞춰놓는다. 나머지 옷들을 다시 정리하던
아리는 병원에 입원할 때 입었던 아직도 피가 얼룩진 추리닝 바지를 정리하다 묵직한 무게감에 주머니를 뒤지게 된다.


주머니 안에서 아리가 꺼내든 건 지포 라이터였다. 금색의 몸통에 흠집이 여기저기에 많이 나 있는 오래 된 라이터가 민기의 것이란 걸 쉽게 기억해낼 수 있던 아리였다. 아마도 땅에 떨어진 라이터를 쓰러진 그 와중에 손에 움켜쥔 게 분명했고, 병원에서는 피해자인 아리의 물품인줄 알고 같이 챙겨준게 확실했다.


" 참나.. 내가 담배 피게 생겼나....." 


' 카랑~~~'

" ...." 


' 카랑~~.. 카랑~~철컥...카랑~~..카랑~~철컥...'

" 소리는 좋다....치~.. 주인처럼 날카롭기만 하고.. 좋긴 뭐가 좋아..." 

" 그런데.. 이거 없으면 오빤 담배 어떻게 피냐....."

" 씨~~ 이딴걸 걱정하고 있어.... 그새를 못 참고 다른 여자.... 다른 여잔 아니지만.. 아무리 사귄 사이라도 어떻게 나
 퇴원하는 날 집에 들일 수 있냐.. 진짜 나쁜 남자내!.. 나쁜 남자.."

" 에휴.. 진짜 오빠만 아니면....."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아리는 책상위에 세워져 있던 라이터를 갑자기 손가락으로 튕기어 쓰러뜨리게 된다. 

네모난 지포라이터의 명쾌한 작동음이 아리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민기만큼 각진 외형에 황금색의 누런빛이 바란
색감조차 이상하게 민기를 떠올리게 만들었기에 괜한 화풀이를 라이터에 하게 된다.


어두운 가운데에서도 또렷이 방에 들어오는 실루엣이 수지임을 알게 된 민기는 이미 문소리에 눈을 뜨게 된다. 

가만히 누워 그런 수지를 보며 입을 연다.


" 왜? 잠이 안와?" 

" .....기민아."

" .....응?"

" 나 일 그만 둘까?"

" ...갑자기 무슨 말이냐?"

" 아무리 몸 파는 년이라도.. 나도 여자잖아.. 그런일 당하니까.. 회의감 든다."

" ......그건 네가 결정할일이지.. 왜 나한테 물어봐?"

" ......"

" 자라.."

" 넌 사람이 변해도 그따구냐.."

" ....내가 뭐?"

" 이럴 땐.. 위로라도 해 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그래도 한 때 사귄 사인데.."

" ...내가 그런걸 할 줄 아는 놈이냐.."

" ...하긴... 나 담배 좀 줘...."

" ........... 거실에 있잖아."

" 없더라..."

" ....작작 좀 펴라.."

" 미친놈.."

" ...."


상체를 일으켜 시계를 확인하는데 새벽 3시의 시간에 찾아온 수지였다. 아마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거실에 있던 담배를 다
없앤 수지임을 짐작한 민기는 일어나 양복 상의에서 남은 담배를 꺼내 입에 하나 물고는 수지에게 건넨다.
 

다시 누워 담배를 깊게 빨아들이는데 수지가 민기의 옆에 앉아 마찬가지로 담배에 불을 붙인다.


" 잠 안 오면 여기서 자던가..." 

" .....너 그런 행동...정말 사람 오해하게 만든다는 거 모르지?.."

" .....오해?"

" 자꾸 기대고 싶어지잖아...."

" 지롤을 해요.. 지롤을...."

" 큭큭.."

" 얼빠진 소리하지 말고 누워.... 재워줄게."

" .... 진짜 나 엉기면 어떻게 하려고..."

" ..."

" 에고~~ 나도 모르겠다.... 우선 좀 안아주라.. 이것도 버릇이 되네.."


수지가 담배를 끄고 민기의 옆에 바짝 누워 안긴다. 팔과 다리를 민기의 몸 위에 올린 채 말 그대로 엉겨 붙듯 민기의 품에
안겨 눈을 감았고, 민기가 담배연기와 함께 깊게 한숨을 내 쉬는 모습에 더 얼굴을 파묻게 된다.


며칠 동안 민기의 품에 잠만 자던 수지였고, 그런 수지의 몸 상태는 급속도로 정상을 되찾는다. 그러나 아직도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철민의 모습에 민기는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쉽게 수지를 돌려 보낼 수도 없었고, 어느새 수지는 민기의 집에 있는
풍경이 어울리는 여성이 되어 민기가 집에 돌아올 시간에 맞춰 밥을 지어놓고 기다리는 모습까지 보여주며 안사람과 마찬가지로 행동을 하게 된다.


" 일찍 왔네.." 

" 무슨 냄새야?"

" 오늘 낮에 시장 봤거든.. 매일 김치찌개만 먹긴 뭐하잖아."

" ....."

" 뭐해 손만 씻고 빨리 와."

" .... 이제 출근해도 되겠네."

" ....."

" ..."


급속도로 싸늘해진 눈빛으로 민기를 노려보듯 쳐다본 수지였다. 


" 왜?" 

" 응?"

" 나 있는 게 불편해?"

" ...아니.. 엘르 사장도 많이 걱정하더라고.."

" 그래서?"

" 넘버원이 빠지니까 사장도 불안한가 보더라... 그리고..."

" 정말 난 그런 일 당해도 아무렇지 않은 거 같니?"

" 갑자기 무슨 말이야...그게 아니고...."

" 그래! 나 몸 파는 년이다.. 그래서 이제 아무렇지도 않아! 됐냐?! 그렇지 않아도 남자 그리웠는데 잘 됐네.."

" 야! 넌 왜 그렇게 극단적이냐... 내 말은..."

" 뭐냐고! 그래 뚫린 입으로 한번 말해봐라! 왜? 집사람처럼 밥하고 기다리는 게 그렇게 부담 느껴지니?!! 아니면?
 코 꿰일 거 같아서 걱정이야?!"


" .....참나.. 말을 말자...."

" 야! 어디가!!"

" 그만하자고...."

" 뭘 그만해! 왜? 나 책임져야 할 거 같으니까? 불안해?? 정 주기 무섭니?!"

" ......너 왜 그러냐? 출근하라는 게 그렇게 화낼 일이야?"

" 넌 그게 나한테 할 말이냐?! 너 양아치야? 아무리 헤어졌다고 해도 전여친한테 몸 팔러 나가라는 게..."

" 진짜... 넌 그걸 그렇게 듣냐?...."

" ........나쁜 새끼..."

" ..............."


너무 섣부른 얘기였다는 걸 민기는 알고 있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수지가 지금 가장 기대는 것이 누구인지 당사자인 민기도 알 수 있었고, 그런 수지를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큰일을 저지를지 모를 민기였기에 더욱 꺼리게 된다. 수지가 방문을 소리 나게 닫아버리고 들어가자 민기는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자신도 방으로 들어가게 된다. 한숨을 쉬는 자신의 모습에
또 다른 한숨을 쉬게 되었고, 버릇처럼 담배를 입에 물게 되었다.
 


'철컹~~쿵....철컹...' 


갑자기 들린 문소리에 담배를 입에 문채 민기가 황급히 거실로 나간다. 

적막하기까지한 거실에 서 아리의 방문이 열려 있는 것을 발견한 민기는 발걸음을 옮겨 아리방으로 향하게 되는데 수지의
모습조차 보이지 않았다. 방금 철문 여닫는 소리로 수지가 밖으로 나간걸 거라고 짐작한 민기였고, 그 예상대로 수지는
그날 저녁에 돌아오지 않는다.


추리닝 바지에 흰 티만을 걸친 수지는 그대로 택시를 잡아타고 엘르방향으로 향하게 된다. 수지도 알고 있었다.
민기의 마음은 이미 떠난 상태란 것과 자신이 했던 행동이 부질없는 미련 때문이란 것을 알고 있었기에, 말도 없이 택시를
잡아타고는 멍하니 창문 밖을 응시하게 된다.


" 여보세요?" 

[나야...]

" 예?? 누구세요?"

[수지언니다..]

" 아!.. 안녕하세요."

[나 택시비 좀 내줘.]

" 예??"

[나중에 줄 테니까..]


통화를 끝낸 아리는 조금 황당한 감정을 느끼며 없는 돈을 다 털어서 수지에게 가르쳐준 고시원 앞에서 수지를 기다렸다. 

곧 도착한 택시에 돈을 지불하는데 수지가 내려 그대로 고시원 안으로 들어가 버렸기에 잔돈을 챙겨 황급히 따라 들어가게
된다. 아리의 방을 알 리 없는 수지였기에 계단 입구에서 서서 기다리는 모습을 하고 있었고, 이내 아리는 수지의 간결한
복장에 우선 자신의 방으로 안내하게 된다.


" 이런 곳에서도.. 사람이 사는구나...." 

" ....편해요."

" ...시험이 얼마나 남았니?"

" 예? 4일이요..."

" 이런데서 공부는 되고?"

" ....왜 오셨어요?"

" 가자.."

" 예?? 어딜요?"

" 우리 집.. 아니! 내 집으로 가자고."

" ...제가 왜요?"

" 나 빚지고 못하는 성격인데.. 너한텐 빚진 거 같아서 도저히 못 참겠다."

" 그건 또 무슨 말이에요? 언니가 왜 저한테 빚을 져요?"

" 복잡한 거 싫으니까.. 내 말대로 하라고.. 어차피 난 낮에는 잠만 자고 밤엔 출근하니까 공부하기는 편할 거야."

" ......싫어요."

" 그럼 나 기민씨한테 다시 돌아갈까?"

" ..그러시던가요."

" 이번엔 그냥 안 놔둘 거야. 어차피 옛날에 볼 거 못 볼 거 다 봤던 사이란 거 너도 알지?"

" 그..그게 저랑 무슨 상관이에요.. 두 분이 연인이신 거 저도 알고 있어요. 두 분이서 사귀던 말든 저랑은 상관없어요...."

" 그래? 그럼 그러던가.. 확! 애부터 만들어 버려야겠네.. 자는 거 덮쳐서... 지까지게 버틸 수 있겠어!?"

" ....."

" 그럼 수고해.. 택시비는 나중에 갚을게."

" ......어..언니."

" ....뭐?"

" 정말로.....오빠네 집으로 가시려고요?"

" 그럼? 요즘 나 악몽 때문에 혼자 잠 못 자.... 너라도 데려가려고 온 건데. 싫다니 어쩔 수 없잖아."

" ..악몽이요?"

" 나 강간 당했다는 거 몰라?"

" 예??!!"

" 몰랐니? 나 기민씨 집에 있었던 이유?"

" ..."

" 네명.. 아니지.. 그 새끼까지 다섯 명이네..."

" ..."

" 그런 표정으로 쳐다보지 말고.. 어차피 몸 파는 년인데 그런 게 대수냐? 그래도.. 잠 들 땐 힘들긴 하지만.. 그럼 공부해.."

" ...가요. 제가 언니 집으로 같이 갈게요."

" 근데.. 너 공부는 하니? 이런 곳에서 공부가 돼?"

" 형설지공이라고 했어요."

" 뭐?"

" 어려워도 환경이 중요한 게 아니고 마음가짐이 중요하다고요..."

" 하여튼 배운년들이라고 티내는 거 보면.... "

" 가요.."


재촉하는 수지로 인해 가방에 교복들과 대충의 물건들을 쑤셔 넣은 아리는 수지를 따라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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