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 게임 - 2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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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우리 형제자매님, 저희를 이렇게 구원해 주셔서 너무나 감사할 따름입니다.”
민석과 지민 부부에게 다가간 영호가 비교적 우스꽝스런 모습으로 말을 건넸다. 그동안 자신들의 진짜 모습을 숨겼던 민석과
지민에 대한 영호만의 비꼼이었고, 그것을 알아 챈, 민석이 영호에게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했다.
“훗... 우리가 실수를 한 것 같군요.”
“실수라...”
“영호님 부부를 떨어뜨려야 했는데... 괜히 살려줬나 봅니다.”
영호는 민석의 말을 듣고 순간 울컥했지만, 표정으로 그것을 내 보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여유가 있는 미소와 함께 다시 한번
민석 부부를 조롱했다.
“그렇죠. 나중에 후회가 될 수도 있을 터인데... 제가 민석님이었다면 저를 살려 두지는 않았을 것인데...
의외로 우유부단한 면이 있으시나 봅니다. 그게 아니라면... 그깟 칩 1개가 아까우셨던지...”
“하하하.”
영호의 말을 듣던 민석이 갑자기 크게 웃었다. 한참을 웃고 난 후, 민석은 영호를 쏘아 보며 말을 했다.
“겨우 죽다 살아난 분이 입은 참 쌩쌩하군요.”
“민석님 부부도 죽다 살아난 것 아닙니까?”
“후훗. 그럴까요? 눈이 있었다면 3라운드 게임의 진행을 봤을 것이고, 머리가 있었다면 본 것을 가지고 여러 생각을
해봤을 것이며, 양심이 있었다면 그 과정 및 결과에 대해 인정을 하셨겠지요?”
영호는 민석의 말에 별다른 대꾸를 하지 못했다. 민석의 말이 결코 틀리지 않음을 영호도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실상 위기는 영호 스스로 만들긴 했지만, 세 번째 게임에서 민석 부부가 자신에게 표를 던졌다면, 탈락할 수 밖 에 없었다.
“하하하. 제가 오늘 꽤 강적을 만났나 봅니다. 혹여나 살아 남으셔서 다음 게임에서 마주치게 된다면, 얼마나 즐거울지,
벌써부터 기대가 크군요. 3라운드 게임에서 크게 한 수 배웠습니다.”
“후훗... 그때는 살려두지 않겠습니다.”
영호와 민석 간에 묘한 신경전이 이어지고 있었다. 민석이 영호보다 거의 10살 가까이 나이가 많았지만, 전혀 기싸움에 지지
않았다. 오히려 세월에 대한 여유가 얼굴에 묻어나고 있었고, 그것을 본 영호는 묘한 경쟁심에 가슴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인생의 패배자들만 참여한 줄 알았는데.... 이런 인물이 있을 줄이야... 완벽히 당했구나...’ 영호는 냉정히 판단했다.
이번 3라운드 게임을 통과한 사람은 세 쌍의 부부였지만, 진짜 승리자는 민석과 지민이라고 생각을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또한 위험이 거의 없이 4라운드에 진출한 그들이었다.
‘나머지 다섯 부부들이 서로를 의심하고 배신하며, 또 이런 저런 계획을 세울 때... 이들은 우리를 그저 쳐다보며 기도하는
척 연기만 했을 테니... 거참... 마치 우리에 갇힌 동물들을 감상한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조심해야 할 상대다.’
대화를 마친 영호는 민석과 지민 부부에게 살짝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입가에 미소를 띤 채 작별 인사를 했다.
“다음에 꼭 다시 보시죠.”
“그럽시다.”
영호가 발길을 돌렸다. 그리고 그 뒤를 아내인 효진이 따랐다.
“우... 우리 완전히 속은 거지?”
“그럴 수 있다고 봐야겠지. 무언가 감추고 있다는 생각은 했지만... 아주 미친 듯이 기도만 하기에 방심을 했던 것 같아.
더구나 그 어린 수영이라는 여자애가 나에게 말해줬지. 저 5번 부부는 계속 기권만 한다고 했다고... 그것도 아주 절묘해.
모든 사람에게 알린 것도 아니고, 한 팀의 부부에게만 넌지시 그 사실을 알렸으니... 의심을 가는 행동을 하면서도...
또 한 편으로는 의심을 넘어서 경계심까지는 갖지 않게 했어... 어차피 기권 규정의 경우에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니...
4라운드 진출에 목적을 둔다면... 아주 재밌는 계획이었어. 또한 단순했지.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점은 성공을 해냈다는
것이고... 지금이라도 정체를 알아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 지...”
영호의 말을 들은 효진 역시 고개를 끄덕거렸다. 효진 역시 5번 부부는 거의 신경을 쓰지도 않고 있었다. 그저 기도에 미친
사람들이라고만 생각했을 뿐이었는데, 그 모든 것이 4라운드 진출을 위한 연기였다고 하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다음에 또 만날 수도 있겠네?”
“만날 수도... 그렇지 못할 수도...”
“그들이 탈락할까 봐?”
“우리가 탈락할 수도 있지.”
“잉...”
“농담이야. 하하. 난 반드시 우승을 할 거야. 50억이 적은 돈은 아니지... 그런데 그것보다 저 5번 부부 때문에 하나 깨달은
사실이 있어.”
“깨닫다니?”
“인생의 패배자들만 이 게임에 참여했다고 생각했는데... 나의 경쟁심을 부추기는 사람들이 있네... 재밌지 않아?”
“치... 무엇이 재밌어. 난 당장이라도 그만 두고 싶은데... 루저가 되면 무서워.”
효진은 2라운드까지만 하더라도 별 생각이 없었다. 오로지 영호만을 믿고 참여한 대회였는데, 3라운드에서 세 쌍의 부부가
탈락하며 컴퍼니 직원들에게 끌려가는 것을 본 후, 마음이 약해져 있었다. 단순히 게임을 떠나서 지독한 현실을 보았고,
또 그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럴 일은 없을 거야... 나 승부사잖아?”
“칫. 그놈의 승부사... 그래서 지금 이 게임에 참여한 거야?”
효진이 별 생각 없이 던진 말에 영호의 가슴에 비수가 꽂혔다. 영호는 효진의 말이 불쾌했지만, 굳이 내색은 하지 않았다.
내색 할 이유도 없거니와, 내색을 할 정도로 감정 조절이 안 되는 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50억 상금 받아서... 한 번 더 겨뤄봐야지.”
“또?”
영호에게 있어 사실상 돈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작은 물에서 재기를 한다면 먹고 사는 것은 지장이 없었지만, 자신을
패배시킨 희대의 천재 겜블러와 최후의 한판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
영호에게 있어 섹스게임 우승 상금 50억은 천재 겜블러에 대한 최소한의 도전장일 뿐이었다.
“그 놈에게는 50억은 돈도 아닐 거야... 그런데 최소한 그 정도 돈은 가져가야지... 상대는 해주지 않을까? 그건 그렇고
무엇보다... 이 섹스 게임도 나름 재밌어... 별 거지 같은 놈년들만 있는 줄 알았더니...”
말을 마친 영호가 민석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영호는 고개를 돌려 충격에 빠져 주저앉아서 멍하니 있는 서영을 쳐다보았다.
‘저 여자도 곧 재기하겠지? 쉽게 무너질 여자가 아니야....’ 영호는 서영이 이렇게 무너지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영호가
그동안 상대해 왔던 겜블러 중에서는 서영보다 뛰어난 사람은 많았다. - 물론, 서영이 겜블러는 아니었지만, 그러나 서영
같은 사람은 또 없었다. 서로를 죽이지 못해 안달이 난 상황, 서로를 의심하고 또 경계해야 하는 상황, 이런 상황 속에서
자신을 믿어 줄 사람을 만들고 또 빠져나갈 수 없는 함정에 빠졌으면서도 자신은 물론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을 한 번
구하기 까지 했다. 이건 분명 쉽지 않은 일이었다.
‘수많은 게임을 해봤지만... 다른 사람에게 믿음을 주는 사람을 만난 적은 없었는데... 믿음은 비상식적인 단어라고 생각해
왔건만...’ 영호가 민석과 서영을 번갈아 쳐다보고 있는 사이에 치킨 박이 다시 입을 열었다.
- 어수선하군요. 하하하. 대충 4라운드 진출자끼리도 대화를 하신 것 같고... 아이고 우리 최민혁님과 김서영님은 아직도...
일어나세요. 하하하. 그러면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입니다. 저희 직원들이 검은 두건을 씌울 테고, 번거롭지만 집으로
가는 길도 오실 때처럼 조금 돌아서 갑니다. 하하하. 판돈과 상금인 칩 5개를 꼭 받아 가시며... 저 치킨 박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로비 중앙에 있는 대형 스크린에서 치킨 박의 모습이 사라졌다. 그리고 주위에 있던 컴퍼니 직원들이 4라운드 진출하는
부부들에게 다가갔다. 그들의 손에는 검은 두건이 들려 있었고, 얼마의 시간이 지나지 않아 아직도 주저앉아 있는 서영의
얼굴은 검은 두건으로 가려졌다.
“엄마, 엄마!”
연아가 서영에게 다가왔다.
“응? 왜?”
“엄마, 어디 아파요?”
연아가 똘망똘망한 눈으로 서영을 바라보며 말을 했다. 서영은 연아가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약 이틀 간 집 밖으로 나가지도 않았고, 집에 있는 시간에도 거의 침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아니... 괜찮아. 아프지 않아.”
섹스 게임 3라운드를 마치고 돌아 온 서영은 산부인과를 다녀온 것을 제외하고는 거의 하는 일이 없었다. 딸인 연아의 밥을
챙겨주는 것을 제외하면, 침대에 누워서 생활을 했다. 몸이 힘들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마음이 지쳐 있었다. 서영은 울부짖
으며 끌려가던 수영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었다. 수영을 구하고 싶었지만, 서영은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수영을
보내야만 했다. 그 생각만 하면 서영은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지만, 딸인 연아가 있었기에 꾹 참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왜 침대에만 누워 있어요?”
“그냥... 조금 힘들어서...”
“잉... 연아 심심한데...”
“우리 착한 연아... 조금만 참아주지 않을래?”
힘겹게 미소를 보이며 서영이 말을 했다. 연아는 그런 서영을 바라보며 작은 머리를 살며시 끄덕거렸다.
“좋아요! 연아는 착하니까. 대신에 엄마도 힘내는 거예요!”
연아의 격려를 받으며 서영이 다시 한 번 미소를 보여줬다. 연아는 그 모습에 안심이 됐는지, 그때서야 서영에게서 멀어져
거실로 나갔다.
“휴우....”
연아가 다시 눈앞에서 사라지자 서영의 머릿속에는 수영의 생각으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3라운드에서 돌아온 후 서영은
지금까지 민혁과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민혁이 원망스러웠다. 또한 민혁 때문에 수영이 탈락했다고 생각했다.
“그도... 어쩔 수 없었겠지...”
민혁 역시 괴로워하고 있음을 서영은 알고 있었다. 자신에게 몇 차례나 미안하다는 말을 하려던 민혁의 모습도 보았지만,
거의 이틀간 아무것도 먹지 못해서 부쩍 수척해 진 모습이기도 했다. 원망스러웠던 민혁이었지만, 서영은 그를 조금씩 이해
하려고 애를 썼다. 이유가 어찌 됐든, 4라운드 진출을 위해서 그런 행동을 한 것이 아니던가. 더구나 민혁이을 떠나서라도
어찌 보면, 수영 부부의 탈락은 막을 수도 없었을 것 같았다. 기권만 하던 5번 부부가 수영 부부에게 투표를 해 버렸다.
“영호 부부... 그리고 민석 부부... 언젠가 만나게 되면...”
겨우겨우 영수 부부를 탈락시켰더니, 이제는 오히려 원망을 해야 하는 부부가 두 쌍으로 늘어났다. 서영은 그 점이 매우
심적으로 힘들었으나, 수영 부부를 생각하면 꼭 복수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들 역시 4라운드 진출을 위해서 어쩔 수
없다고 말하고 싶겠지만, 서영은 그래도 용서하고 싶지 않은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진짜... 방법이 없는 걸까?”
서영은 수영 부부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했지만, 도저히 떠오르지 않았다. 더구나 치킨 박이 패자부활전도 없다고
말을 했기에, 수영 부부를 다시 볼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정말... 없는 걸까?”
아무리 고민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였지만, 서영은 계속해서 생각을 하고 또 생각을 했다. 자신에게 믿음을 줬던, 또
그렇게 울부짖으며 떠나야 했던, 수영의 모습을 생각해서라도, 서영은 절대 포기할 수 없었다.
“아...”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서영은 자신에게 도움을 줄 수도 있을 것 같은 한 사람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리고 그
순간 침대에서 일어나 소리쳤다.
“에이스!”
서영은 1라운드 게임 참여 장소에 데려다 주었던 택시기사인 ‘에이스’를 떠올렸다. 자신과 헤어지기 직전에 택시기사였던
에이스가 쪽지를 남겼었고, 서영은 남들 몰래 그 쪽지 내용을 읽었고, 또 에이스의 연락처를 머릿속으로 외웠었다.
“그... 그가... 위기 상황에 자신에게 연락을 달라고 그랬지... 찬스를 쓰라며...”
서영은 에이스가 남겼던 쪽지 내용을 기억해 냈다. 그리고 본의 아니게 에이스가 지시했던 사항을 충실하게 이행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누구에게도... 남편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했었는데...”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서영은 에이스의 존재를 기억해 냈고, 왠지 그라면 서영 부부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서영은 침대에서 일어난 상황에서 대충 옷을 두른 후, 거실로 나갔다. 혼자 놀고 있던 연아가 급하게
뛰어나오는 서영을 바라보며 말을 했다.
“어... 엄마!”
“연아야. 잠시만... 엄마... 앞에 좀 나갔다 올게.”
“가... 같이 가면 안 돼요?”
“미안... 금방 올게. 조금만 기다려.”
“잉...”
투정을 부리는 연아를 뒤로하고 서영은 황급히 밖으로 뛰어 나갔다. 거리로 나선 서영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어느 곳을
생각했는지, 왼쪽 방향으로 몸을 돌려 뛰어가기 시작했다.
“헉... 헉...”
서영은 금방 숨이 가빠왔지만, 쉬지 않았다. 서영 부부는 지금 이보다 더한 고통 속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몇 분의 시간이 흘렀고, 서영은 여전히 거리를 달리고 있었고, 그녀의 눈에는 익숙한 장면이 들어왔다.
“후아.... 후아...”
공중전화 박스에 도착한 서영은 숨을 내쉬며 심장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동전을 몇 개 꺼냈다. 수화기를 든 채,
공중전화 동전 투입구에 동전 몇 개를 집어넣었고, 서영은 머릿속에 기억해 두었던 에이스의 전화번호를 차분히 누르기
시작했다.
“... 신호가....”
서영은 가슴이 떨려왔지만, 다행스럽게도 신호가 가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몇 번의 신호끝에 누군가 전화를 받았다.
- 여보세요.
아주 짧은 목소리였지만, 서영은 익숙했다. 자신의 귀가 한 번 들었던 목소리임을 확인시켜주었고, 반가운 마음에 서영이
조금은 큰 목소리로 말을 했다.
“에... 에이스?”
- ......
“에... 에이스 맞죠? 저 기억하세요?”
서영의 ‘에이스’라는 부름에 전화를 받은 상대는 바로 대답을 하지 않았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서영은 점점 속이 타
들어가고 있었다.
- 에이스라?
“에이스가 아닌가요?”
- 맞긴 한데...
“아... 다행이다.”
서영은 철렁거렸던 가슴을 쓸어내렸다. 전화를 받은 상대가 에이스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기 때문이었다.
- 에이스는 맞긴한데... 넌 누구지?
뜻밖에도 에이스는 서영을 기억하지 못하는 듯 했다. 고작 며칠이나 지났다고 자신을 기억하지 못한단 말인가. 서영은 다급한
마음에 두서없이 자신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어... 얼마 전에... 강원도에서 택시... 탔잖아요. 컴퍼니... 게임에 참여...”
- 장난이었어. 훗.
당황해 하는 서영의 목소리를 즐겼던 것일까. 에이스는 장난이라고 밝히며 알 수 없는 웃음을 보였다. 서영은 수화기로
에이스의 장난 섞인 웃음소리를 듣고 화가 났지만, 그것을 내색할 수는 없었다.
- 그런데... 무슨 일이지?
“다... 당신의 도움이 필요해요.”
- 벌써 위기 상황인가? 그러면 실망인 걸... 날짜 계산을 해보면 고작 2라운드 혹은 3라운드나 끝났을 것 같은데...
마지막 라운드가 어떻게 되지?
“7라운드까지 진행이 되고... 지금 3라운드까지는 통과했어요. 곧 4라운드에 참여할 것 같고...”
- 하하하하하.
“왜... 왜 웃어요?”
- 지금 장난해?
수화기를 통해 듣는 에이스의 목소리는 차갑기 그지없었다. 서영은 비록 에이스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목소리만 듣고
있었지만, 온 몸이 서늘해질 정도로 공포심을 느껴야했다.
“자... 장난 아니에요.”
- 나에게는 장난 같이 느껴지는데? 내가 뭐라고 했지? 기억이 안 나? 전체 7라운드 게임에서 아직 절반도 못 끝냈는데...
위기 상황이야? 하하하. 내가 사람을 잘 못 봤군... 이만 끊도록 하지.
“아... 안 돼요. 자... 잠깐만 기다려줘요.”
서영은 에이스가 전화를 끊으려고 하자 매우 다급해졌다. 에이스마저 놓치면 수영 부부를 도저히 구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 고작 3라운드 통과해 놓고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다니...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제... 제발 도와줘요. 조... 조금만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 내가 도와주는 건 일종의 히든카드라고 했었지. 히든카드는 딱 한 번이야. 그런데 4라운드에 들어가기도 전에 그
히든카드를 써버린다고? 난 이해할 수 없는데...
서영은 에이스의 말을 듣고 어떤 대답을 해야 할 지, 알 수 없었다. 자신이 에이스라고 하더라도 분명 일리가 있는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아... 도와주기는 하는 건데... 그 히든카드를... 쓰는 건 아니에요.”
- 무슨 말이야? 도와주면 도와주는 것이지... 히든카드를 쓰자는 건 아니라니...
“그... 그러니까 제 이야기 좀 들어보세요. 게임을 도와달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사실은... 제가 아니라 제 친구가 위기에
빠졌어요.”
- 친구의 위기라... 하하하하. 이거 골 때리는 년이구만....
“제발... 이야기만이라도 들어주세요.”
서영은 계속해서 에이스에게 빌 수 밖 에 없었다. 서영의 애틋한 마음이 통했던 것일까. 몇 초동안 침묵을 지키던 에이스가
말을 했다.
- 좋아. 대신 3분을 주겠어. 요약해서 말해 봐.
다행히 에이스의 허락이 떨어졌고, 서영은 1라운드 게임부터 3라운드 게임까지 있었던 일을 최대한 간략하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3분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3라운드 게임에서의 수영 부부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강조를 한 서영
이었다. 에이스에게 전화를 건 목적이 수영 부부를 구하기였다.
“그래서... 전 그들을 구하고 싶어서...”
- 거 참... 지랄하네.
“네... 네?”
- 지랄한다고...
“도와주세요... 제발.”
- 이거 누가 누굴 구한단 말이야. 당신 정말 바보 아니야? 자기 앞길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구한다고?
어이가 없군.
“..........”
서영은 에이스의 말에 어떤 대꾸도 할 수 없었다. 엄연한 현실이었기 때문이었다. 당장 4라운드 게임에서 탈락할 수도 있는
것이 바로 자신이었다. 그런데 탈락한 사람을 구한다라? 누가 듣더라도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 이야기는 흥미롭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자기 코가 석자인 것은 안 보이나?
“그렇지만... 구하고 싶어요.”
- 당신 빚이 얼마나 돼?
에이스가 갑자기 서영이 지고 빚의 액수를 물었다. 서영은 에이스의 의도를 알 수 없었지만, 솔직하게 대답을 했다.
“약 30억 정도...”
- 지랄 맞게 큰돈이군... 아마 참여자들 중에서 당신들 부부가 가장 빚이 많은 사람일 수도 있겠는데?........
그건 그렇고 우승 상금이 얼마라고 했지?
“치킨 박이라는 사람이 50억이라고 했어요.”
- 50억이라... 우승을 하면 빚을 제외하고도 20억이 남는군.
에이스가 잠시 뜸을 들였다. 그리고 서영은 초조하게 에이스의 말을 기다릴 뿐이었다.
- 20억이라... 적지 않은 돈이야.
“네?”
- 무슨 뜻인 줄 몰라? 당장 1억... 아니 몇 천, 몇 백 만원만 쥐어줘도 사람을 대신 죽여주는 세상이야...
그런데 20억이면... 죽어가는 사람도 살릴 수 있는 돈이지...
“그... 그럼? 우승을 해서 상금으로 수영 부부를 살릴 수 있다는 이야기인가요?”
- 그건 나도 몰라. 그러나 분명 가능성은 있어. 치킨 박이 그런 말을 했다며? 루저가 어떻게 되는지 알고 싶으면...
직접 루저가 되어 보거나... 우승을 하거나... 이 말은 곧 우승을 하면 루저가 어떻게 되는지 알 수 있다는 것이고...
방법이야 알 수 없지만... 상금을 가지고 당신 친구를 살려볼 수는 있겠지...
에이스 역시 정확한 방법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서영은 희망의 빛줄기를 발견했다. 우승을 한다면 수영 부부를
살릴 수도 있다는 에이스의 말, 그 말 한 마디가 깊은 절망에 빠졌던 서영을 다시 땅 위로 일어서게 했다.
“사... 살릴 수 있는 것이죠?”
- 나도 확실히 모른다니까. 그 가능성을 제기하는 것일 뿐이지. 일단 우승을 해야 이 가능성을 확인해볼 수 있지 않을까?
“... 꼭... 꼭 우승할 거예요.”
- 입은 살아 있나 보군. 쉽지가 않을 텐데... 더구나 이야기 들어보니까 3라운드에 만났던 적들... 같이 4라운드에 진출했던
적들... 만만치가 않은 것 같군... 재밌겠어.
“이... 이겨낼 수 있어요.”
- 비록 3분 동안 짧게 이야기를 들었지만... 내 생각에는 여전히 쉽지가 않을 것 같은데? 당신 남편이...
역시나... 문제가 크단 말이야.
“가... 같이 이겨낼 수 있어요.”
- 과연 그럴까? 내가 당신을 선택했으니... 믿어보는 수 밖 에 없지만... 내가 오늘 크게 양보를 하겠어. 히든카드는 여전히
유효한 것으로 남겨두지. 대신에 담에는 이런 일 가지고 나에게 연락하지 마.
“알겠어요.”
- 그리고... 몇 가지 조언을 줄 텐데....
서영은 에이스에게 전화를 한 것에 대해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영 부부를 구할 수 있는 일말의 방법도 제시 받았지만,
또 다시 조언을 들을 수가 있었다.
“부탁해요.”
- 게임을 포기할 생각이 없나? 내 최고의 조언은 게임에 참여하지 말라는 것인데...
“아... 기억나요. 그러나 이제는 더욱 더 포기할 수 없어요. 친구를 구해야 하니까...”
- 참... 오지랖도 넓어서... 쯧쯧. 좋아. 두 가지 조언을 해주겠어. 먼저 더 이상의 친구를 만들지 마. 이 게임은 해봐서
알겠지만, 마음이 약해서는 절대 이기지 못해. 믿음은 부부 사이에서나 가능하지... 이번처럼 다른 참여자와 믿음을 나누면
그것 역시 일종의 게임이 돼. 서로 믿냐, 안 믿냐,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이지. 알겠어?
“알겠어요.”
- 수영 부부라고 했나? 그들을 구하고 싶으면... 더욱 더 다른 참여자와 손을 잡는 행위를 하지 마. 굳이 함께 하고 싶으면...
반드시 배신 해. 다른 참여자의 눈물에 인정을 보이지 말라는 거야.
“... 알았어요.”
서영이 에이스의 말에 힘없이 대답을 했다. 배신을 하라는 말, 썩 듣기에 좋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 마지막으로... 조언이 아닐 수도 있으나...
“네. 말씀 하세요.”
- 행운이 따르기를....
“네? 무슨 말이죠?”
- 내가 이 말까지 할 줄은 몰랐지만... 나 역시 루저 출신이야.
“네? 뭐라고요?”
서영은 에이스의 말에 깜짝 놀랐다. 에이스가 루저 출신이였다니....
“루저 출신이라면... 루저가 되면... 그래도 괜찮은 걸까요?”
- 하하하하하. 웃기는 소리. 내가 왜 게임에 참여하지 말라고 했을까? 총 100쌍의 부부가 참여했다고 했지?
상금만 타고 게임에 포기할 수 있다고 했지?
“네. 이론상으로는 그게 가능해요.”
- 말도 안되는 소리지. 100쌍의 부부 중 우승하는 팀은 딱 한 팀. 나머지 99쌍은 루저가 된다. 그 누구도 게임을 포기하지
못하지. 그게 바로 섹스게임의 마력이야. 그만두어도 되는 상황에 또 다시 게임에 참여하게 만드니까. 물론, 빚이 클수록
마지막까지 갈 수 밖에 없어. 당신 부부 역시 마찬가지야. 그런데 거기에 친구를 구한다고 하니까, 반드시 우승해야겠지?
“... 그래야겠죠.”
- 결국 당신 부부는 우승 아니면, 루저야. 그런데 루저는 99쌍이 될 것이고... 당신 부부는 어느 쪽일까? 당신! 루저가 되면
어떻게 되는 줄 알아?
“모... 몰라요. 치킨 박의 말에는 오히려 위너가 될 수도...”
- 아주 개새끼야. 아니 닭대가리라고 해야 되나? 하하하.
에이스가 치킨 박에게 욕설을 내뱉은 후, 한참을 웃었다. 그리고 웃음을 멈추고 이어서 말을 했다.
- 죽는다.
“네에... 진짜 죽는다고요?”
서영은 루저가 되면 죽을 수도 있다는 예상을 하긴 했다. 그러나 에이스는 단호하게 루저는 죽는다고 말을 했다.
- 나 역시 너무 많은 비밀을 누설해 버리는군. 컴퍼니가 알면... 나 역시 죽은 목숨일 뿐... 루저가 되면 대다수 죽는다.
그리고 그 중 몇은 살아남을 수 있지. 살아남은 사랑 중 몇은 평생 부귀영화도 누릴 수가 있다. 그러나 그건 사람 사는 게
아니지. 어찌 보면... 다 죽는 거나 마찬가지... 나 역시 운 좋게 살아남은 사람 중 하나일 뿐이야.
“더... 더 자세히 알려주세요. 루저가 되면... 어떻게 되나요?”
- 당신 우승하고 싶지?
“네.”
- 골때리는년, 양심도 없이 질문을 하는군. 더 이상 말해주면... 당신에게 독이 될 거야. 아는 것이 힘이 될 때도 있지만,
때론 지나치게 알면, 먼저 죽기 마련이지. 내가 왜 행운이 따라야 한다고 말했을까?
“모... 몰라요.”
- 당신 부부가 어렵게 우승을 했어. 엄청난 고난과 역경을 이겨냈겠지....
그리고 상금으로 30억의 빚을 갚고, 20억으로 수영 부부를 구한다고 할 때... 이런 생각도 해봐야지.
“무슨 생각이요?”
서영의 질문에 에이스가 싸늘하게 대답을 했다.
- 돈은 있어. 그런데 구하고 싶은 사람이 이 세상에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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