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아내 - 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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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현씨의 부인은 어떤 분이세요?"
벌써 많이 취한 듯한 지윤씨가 혀 꼬부라진 말투로 물어본 것에 제가 답하기 전에 춘식이가 선수치며 말했습니다.
"미인으로 굉장히 섹시한 사람이야."
"자기가 그렇게 칭찬하다니 별일이네. 혹시 반한거야?"
"아아. 수현이가 부럽다."
"뭐라는 거야?"
저는 쑥스러워 다른 쪽을 보며 딴청을 피웠습니다.
"너에게도 이렇게 옆에 멋진 분이 있잖아."
제 말에 춘식이와 지윤씨가 순간 서로 얼굴을 쳐다보더니 웃음을 터트렸습니다.
"하하하, 너 오해했구나. 우리들 그런 깊은 사이 아니다.
물론, 가끔 사적으로 만나 데이트를 하긴 하지만. 나와 지윤인 엄연히 공적으로 기브 앤 테이크만 하는 관계라구.
이쪽 세계가 사랑하는 사람을 옆에 두고 일하기엔 조금 살 떨리는 일이 많거든."
"너, 독점욕 같은 것은 없는거냐?"
"없어. 남자건 여자건 각자 특정상대에만 얽매이는 건 너무 고루하쟎냐.
요즘에는 부부나 커플끼리 스와핑하며 즐기는 일도 공공연한 일이고."
"글쎄, 난 너와 달리 그런 일들은 본 적이 별로 없어서. 애정없이 가볍게 즐기는 건 좀 그렇다."
"머, 범생이였던 너야 그렇긴 하지."
춘식이는 진지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더니, 문득 무슨 좋은 생각이 떠오른 듯 싱긋 웃으며 지윤씨를 쳐다봤습니다.
"이 녀석한테 그걸 보여줘 볼까?"
"뭘?"
"어제 너 찍은 거말야."
"아잉, 자기도 참."
"야, 임마, 뭐 어때? 이런 순진한 놈에게 신세계를 보여주는 것도 좋은 일하는 거라고, 너 복받을 거다, 하하."
"아잉, 부끄러운데... 자기 맘대로 해."
얼굴을 붉히던 지윤씨의 동의를 얻자 춘식이가 말했습니다.
"이따 너한테 메일 보내마. 아마 몇일 밤잠 좀 설칠꺼다, 큭큭."
"뭔데?"
"뭐긴 임마, 좋은거지, 하하."
어리둥절한 저를 보며 춘식이와 지윤씨는 킬킬거리며 의미심장한 시선들을 주고 받았습니다.
"무슨 일 있어요?"
그 목소리에 저는 문득 정신이 들었습니다. 침대 옆을 보자 아내가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저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시트에 절반정도 가려진 알몸의 유방이 매혹적으로 빛나고 있었습니다.
"아니, 아무것도 아냐."
그날 집에 돌아와서 아내와 한창 섹스를 하는 와중에도, 저의 머릿 속에선 춘식이가 말한 것들이 빙빙 돌고 있었습니다.
그날 밤 일을 계기로 일상 생활에서도, 잠자리에서도 보다 가까워지게 된 아내였습니다.
저의 팔 안에서 아직도 여전히 조심스럽지만, 그러나 때때로 고혹적으로 흐트러지는 몸짓을 보이는 아내를 보다보면, 문득
아내의 안에 숨여져 있을 미개척된 여성에 대한 생각이 만개된 여성으로서의 아내의 환상이 저를 사로잡곤 했습니다.
확실히 춘식이의 말대로 그 녀석이라면 저 이상으로 아내 내면 속에 감춰져 있는 여자의 성을 더욱 아름답게 꽃피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춘식이는 남자인 제가 보기에도 매력적인 남자였고, 외양뿐만 아니라, 그 내면에도 무언가 다른 사내들보다 우월한 듯한
숫컷의 냄새를 풍기는 번뜩이는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저는 단정한 아내를 단순히 여자로서만이 아니라 인간적으로도 너무나 사랑합니다.
춘식이와 지윤씨의 관계같은 세속적인 남녀의 섹스같은 건 제가 아내를 사랑하는 것에 비교될 가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사랑하기 때문에, 더욱 더 아내를 알고 싶고 좀 더 아내 속에 감춰진 여성의 모습을 보고 싶다는 그런 거센 욕망이 제 마음
속에서 점점 꿈틀거리며 커가고 있었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 얼마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젊을 때는 혼자 고독을 씹으며 취미를 즐기는 걸 좋아하던 저였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아내와 살게 된 후에는 그녀를 위해
일하고 그녀와 함께 지내는 시간이 무엇보다도 소중하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신기한 일은 아내를 사랑하고 있는 자신을 자각할 때마다 더 깊게 아내를 알고 싶다는 충동이 커져갔다는 것입니다.
이전에는 옆에 아내가 있어도 쓸쓸함을 느꼈고, 그렇게도 자신을 닫고 있는 아내로 인해 답답해서 참을 수가 없었지만,
그 때와는 또 다른 마음이 되어갔습니다. 그것은 전보다 더욱더 강하게 타오르는 듯한 충동이었습니다.
제가 아직 보지 못한 아내의 모습을 상상할 때면, 그와 더불어 춘식이의 자신만만한 얼굴이 떠올라 저의 마음을 뒤흔드는
것이었습니다. 그 무렵에는 아내와의 섹스도 많이 익숙해져서 때로는 아내의 양팔을 끈으로 묶는 등 가벼운 SM 비슷한
플레이를 시도해 보기도 했습니다.
"아, 아파...."
조그맣게 속삭이며 아내가 얼굴을 숙였습니다.
두 손을 등 뒤로 묶인 그녀의 유방을 감추고 있는 것은 접어 세운 하얀 무릎입니다.
목덜미에서 어깨로 걸쳐진 가늘고 연한 색깔의 끈이 본래부터 그 자리에 있던 장식인양 아내의 나체에 섬세한 아름다움을
더하고 있었습니다.
"너무 강하게 묶었나?"
제가 묻자 아내는 고개를 가로 저었습니다.
"괜찮아요."
그렇게 말하며 저를 쳐다보는 아내의 눈동자는 애처롭게도 이슬이 맺혀 있어 제 가슴을 야릇하게 울렁거리게 만들었습니다.
이렇게나 유순하고 부드러운 여인인 아내는 지금 이 순간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아내에게 물어보아도 진실은 역시 수수께끼로 남을 것입니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좁혀지지 않는 틈이 있습니다.
저희 부부에게 있어서 그 틈은 각자의 이기심과 추한 부분뿐만이 아닌, 서로에 대한 사랑과 배려때문이기도 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까, 행복과 외로움은 언제나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일겁니다.
기어가는 듯 다가간 제가 서서히 양무릎을 벌리자 아내는 나를 쳐다 보았습니다.
"?...!"
작게 신음하며 싫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안되요."
"뭐가 안되? 이대로는 할 수가 없잖아?"
"불이라도 꺼주세요"
"싫어, 이대로 널 보면서 하고 싶어."
"그럼, 천천히..."
"으음, 이렇게 해봐."
저희는 마치 사랑을 속삭이는 것 같은 그런 달콤한 대화를 나누면서 하나가 되어갔습니다.
그런 날이 이어지고 있던 어느 휴일이었습니다.
아내는 쇼핑을 나갔고, 혼자 있게 된 저는 심심풀이로 인터넷에서 성인사이트를 탐방하고 있었습니다.
일반인들이 자신이나 애인의 사진을 투고하는 사이트였습니다.
이런 사이트를 보고 있자니 세상에는 참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투고사진들은 남편이 아내의 알몸과 섹스 중인 모습 등을 찍은 것도 많아 타인의 성생활을 훔쳐보는 듯해, 관음적 즐거움을
충족시켜 주었습니다.
아마추어가 찍은 사진이 오히려 묘하게도 현장감을 주어 보는이로 하여금 더욱 흥분하게 만드는 것같았습니다.
어떤 남자가 찍은, 얼굴을 양손으로 가린 채 가냘픈 나신을 드러내고 카메라를 향해 부끄러운 듯이 가랑이를 벌리고 있는,
사진속의 여자 사진을 보면서 저는 모자이크 처리된 여자의 얼굴에 어느새 제 아내의 얼굴을 겹쳐서 보고 있었습니다.
그 망상은 저를 격하게 흥분시켰습니다. 부끄러워 하는 제 아내에게 카메라를 들이대며 "더 가랑이를 크게 벌려!"라고 거칠게
명령하는 남자의 모습이 머리 속에 그려졌습니다.
그런데,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그 망상속에서 카메라를 잡고 그렇게 아내에게 명령하는 남자는 제가 아니라 춘식이였던 것입니다.
문득 생각이 나서 전에 춘식이가 제 계정에 보냈던 동영상을 찾아 재생시켰습니다.
곧 플레이된 화면 속에 벌거벗은 춘식이와 지윤씨의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얼마 동안 저는 그 영상 속에 푹 빠져들었습니다.
동영상 속에선, 춘식이가 지켜보는 가운데 지윤씨가 울긋불긋 요란한 문신을 한 아직은 새파란 조폭들, 춘식이의 후배들과
서로 몸을 얽히며 교성을 내고 격렬하게 허리를 돌려댔습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직접 만나 이야기까지 나눴던 여성의 섹스 장면을 보는 것이 처음이라 흥분을 불러왔지만, 저에게는 더욱
자극적이었던 것은, 아마도 자신의 섹스파트너일 지윤씨가 연출하는 그 광란의 풍경을 춘식이가 두목 늑대인 양 느긋이
의자에 앉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실제로 춘식이가 지윤씨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저로선 알 수 없지만, 그 날 지윤씨가 춘식이를 보던 눈은 틀림없이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보는 눈길이었습니다.
그랬던 여자가 사랑하는 남자 앞에서 이렇게 음탕한 행위를 펼치며, 이렇게 음란하게 신음을 지르고 있었던 겁니다.
거친 섹스 중에도 가끔 지윤씨의 시선이 상대 남자들을 떠나 맞은 편을 바라 볼 때면, 저는 그 곳에 있을, 음흉한 웃음을 짓고
있을 춘식이를 상상했습니다.
동영상이 끝났습니다.
저는 등줄기를 간지럽히는 무언가에 전율하며 한참을 멍하니 소파에 누워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일어섰습니다. 춘식이에게 전화를 걸기 위해서였습니다.
아내가 돌아오기 전에...
저와 아내가 휴가를 이용해 일본의 온천지역으로 향한 것은 그 해 팔월 중순의 일이었습니다.
아내와 해외여행을 가는 것은 신혼 이후 처음이었습니다. 시끄러운 도시를 떠나 일도 잊고 나흘 간 해외의 어느 시골, 조용한
곳에서 푹 쉬자는 제 계획에 아내도 기뻐하고 있는 듯 했습니다.
인천에서 출발해 비행기를 타고 두시간여쯤 나고야에 도착했습니다.
일본고속철로 갈아타 코잔으로 가는 동안에도 이국의 날씨는 쾌청해서 시원하게 트인 푸른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었습니다.
아내의 표정도 보기드물게 밝았습니다. 저는 그 환한 얼굴에 새삼 가슴이 아파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코잔역에서 내려서 시가지 주변을 관광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야, 임마, 김수현!"
스쳐 지나가던 남자가 말을 걸어왔습니다. 춘식이였습니다.
옆에는 지윤씨가 있었는데 그녀도 깜짝 놀란 듯이 저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네가 여기는 웬 일이냐?"
"참나, 나야말로 묻고싶다."
춘식이는 이내 아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습니다.
그쪽과 마찬가지로 놀란 얼굴을 하고 있던 아내는 그 순간 부끄러운 듯이 눈길을 떨구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춘식이가 쓴웃음을 지으며 저를 향해 살짝 신호를 보냈습니다. 저도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습니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였습니다. 저와 춘식이, 그리고 지윤씨는 여행지에서 우연히 만난 걸로 위장하기로 여행 전에 계획을
세웠던 것입니다. 그 사실을 모르는 이는 아내뿐이었습니다.
"오랜만이네요, 선배. 정말 놀랍네요."
지윤씨는 미리 춘식이의 부탁으로 우리의 협력자가 되어 있었는데, 이 여행에선 제 대학시절 동아리 후배라는 설정이었습니다.
"아아, 나야말로 정말로 놀랬어."
"이 쪽은 선배 와이프?"
"그래."
"처음 뵙겠어요. 강지윤입니다. 수현선배완 대학때 같은 동아리에서 활동했었어요."
예상치 못한 일에 당황하고 있던 아내도 지윤씨의 나이에 걸맞지 않는 차분한 태도에 평소의 자신을 되찾고 이었습니다.
"아, 안녕하세요. 전 수현씨의 아내인 이현수라고 해요."
아내는 정중하게 지윤씨를 향해 인사를 했습니다.
"춘식이는 전에 봤지. 지윤이는 춘식이 와이프야. 내가 두 사람을 소개시켜 주었었지."
"그랬군요."
"어이, 이런 길가에서 이야기하기 그렇다. 어디 들어 가자구."
춘식이의 말에 저희 네명은 걸음을 옮겼습니다.
"흐음, 정말 대단한 우연이네, 부부끼리 여행 왔는데, 그것도 해외인데, 둘 다 같은 곳이라니."
"역시 자기와 선배는 서로 마음이 통한다니까."
"그렇긴 하지. 뭐, 이 녀석과는 옛날부터 아주아주 질긴 인연이었으니까, 하하."
"뭐야, 그게?"
저와 춘식이 지윤씨가 그렇게 왁자지껄 분위기를 돋구며 얘기를 나누는 동안, 아내는 무료한 듯 했습니다.
다만, 겉보기에는 그런 생각이 보이지 않도록 신경을 쓰면서 조용히 대화를 듣고 있었습니다.
적당히 골라 들어간 카페는 냉방이 잘 되어 조금 쌀쌀한 느낌을 줄 정도였습니다.
"너희 부부는 묵을 숙소는 정했겠지?"
춘식이가 문득 떠오른 것처럼 물었습니다.
"어, 지인이 이곳을 소개해줘서 경치좋은 곳에 예약해 뒀지. 거기서 사흘 정도 머물면서 푹 쉬려고. 너희는?"
"실은 우린 아직 못 정했는데. 갑자기 귀찮은 일이 생겨서 우리 지윤이 바람도 쐬줄겸 겸사겸사 나와서 말야.
뭐, 어떻게든 그때그때 결정하자는 주의잖냐, 내가말야."
"확실히 네가 기분파긴 하지."
"그래서 말인데, 너희가 묵는 곳 좀 소개시켜주면 안될까?"
"나야 상관없지만, 일본도 요즘 한창 성수기일 텐데 이 곳에 빈 방이 있을지 모르겠다."
"전화 번호는 가지고 있을거 아냐. 그래도 일본어 할 줄 아는 네가 한번 물어봐 주지 않을래?"
"어쩔 수 없군."
저는 툴툴거리면서 소음을 이유로 카페 밖으로 나가 전화를 거는 척 했습니다.
사실은 이미 춘식이네의 숙소는 확보해 놓았지만 말입니다.
숙소에 도착한 것은 저녁 5시가 넘어서였습니다.
"우리 방은 너희 옆인 것 같아."
체크인하고 온 저와 춘식이는 돌아와서, 아내를 의식하며 대화를 했습니다.
"이 곳 주인이 내가 아는 사람 친척인데, 아까 빈 방을 알아보러 전화 건 게 나라서 더 신경을 써줬나 봐.
우리 부부가 미리 예약했던 방을 두 개짜리로 바꿔놓았더라고. 네 명이 같이 온 일행이라고 생각했었나봐."
물론 이 설명은 거짓말입니다. 사실은 처음에 숙소를 정했을 때부터 그렇게 지정해 두었던 것입니다.
"한지를 바른 미닫이 벽으로 두 개의 방으로 나눈 방이라는데 괜찮지?"
"저는 괜찮아요."
지윤씨가 즉각 대답했습니다. 아내는 힐끗 저를 쳐다보았습니다.
그 눈동자에는 뭔가 말하고 싶다는 의미가 담겨 있었지만,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은 자신도 상관 없다는 한마디였습니다.
우리들이 묵을 방은 결코 호화로운 구조는 아니었지만, 깔끔하고 정갈한 느낌을 주는 일본식 방이었습니다.
창 밖으론 울창한 숲이 도시의 소란함에 찌든 사람들을 부드럽게 감싸 듯 펼쳐져 있었습니다.
"괜찮은 방이네."
"그렇네요."
아내는 미소를 지으며 짧게 대답했지만, 그 미소는 어딘가 억지로 짓고 있는 듯한 인상이었습니다.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부부끼리 정답게 해외의 온천에서 편안히 휴가를 지내려 했는데, 갑자기 껄끄러운 남편친구 부부가 나타나 얇은 장지 한 장
너머의 옆방에 숙소를 정했으니 말입니다.
더구나, 이후의 휴가 기간동안에도 계속 함께 지낼 듯한 눈치를 보이고 있었으니까요. 성격상 사교적이지 못한 아내에게는
더욱 더 부담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아내의 모습에선 무신경한 남편에게 화내거나 불만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더욱 아내에 대해 죄의식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우리 와이프랑 한번 자 보고 싶지 않냐?"
이런 제 비상식적인 제안을 받아들인 춘식이가 세운 것이 이번 여행 계획이었습니다.
목적은 스와핑이었습니다. 즉, 저희 부부와 춘식이, 지윤씨 커플이 서로 상대를 바꿔 섹스를 하는 것입니다.
그 누구보다 몸 가짐이 단정한 아내를 함락시키기 위해서, 우선 낯선 해외로 여행지를 정했습니다.
아무래도 도덕적 부담감이 덜할 테니 말입니다. 그 후엔, 남편인 제가 앞장 서서 다른 여성과 관계를 갖는 모습을 먼저
보여주고, 그 후, 춘식이가 충격으로 감정적으로 행동할 가능성이 높은 아내를 설득한다는 꽤 그럴듯한 계획이었습니다.
"그런데, 지윤씨가 그런 역할을 승낙해 줄까?"
"이런 흥미있는 기회를 놓칠리가 없지. 걱정할 필요 없어. 그것보다 문제는 너라구. 각오는 충분히 되어 있는 거지."
전화 너머로 춘식이가 낮은 목소리로 다시한번 확인을 해옵니다.
춘식이가 말하는 각오란. 물론 제 아내를 춘식이가 맘대로 이것저것 하겠다는 것에 대한 각오입니다.
솔직히, 계획을 세우는 단계에서는 아내가 실제로 춘식이에게 안기게 될 지 알 수 없었고, 만약 그렇게 되지 않을 경우에
그 후 저희부부의 관계가 어떻게 될 지도 짐작이 가지 않았습니다. 또, 만약 아내가 춘식이에게 안긴다고 해도 문제였습니다.
그후에도 역시 앞날이 어떻게 변할지는 신이 아닌 이상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으니까요.
정말 한걸음 앞도 알 수 없는 캄캄한 어둠 속에 갇힌 기분이었습니다.
잘못하면 제 평생 지금까지 노력해 쌓아 온 행복을 모두 잃을 가능성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춘식이에게 대답했습니다.
"각오는 하고 있어. 무슨 일이 일어나도 후회하지 않을께."
아마도 저는 분명히 무언가에 홀려 있었던 것같습니다.
"어이, 지금부터 우리는 온천에 갈 껀데 그쪽은 어떻게 할래?"
"우리도 갈게."
장지 너머로 들려 온 춘식이의 목소리에 제가 답했습니다.
여관의 뒤쪽으론 울창한 수목들에 둘러쌓인 노천 온천이 수증기를 내뿜고 있었습니다.
근처에 개울이 있는지 시냇물이 졸졸 흐르는 소리도 들려왔습니다.
저와 춘식이가 먼저 온천에 몸을 담그고 있자, 이윽고 지윤씨가 여자용 탈의실에서 나왔습니다.
유두가 보일듯 말듯 흰 수건으로 여체를 가린 대담한 모습이었습니다.
저는 자꾸 그쪽으로 쏠리는 눈길을 애써 돌리려 노력 했습니다.
"현수는?"
춘식이가 지윤씨에게 물었습니다.
"언니는 혼욕탕인 걸 모르셨던 모양이에요. 부끄러우신지 아무리 설득해도 나오질 않네요."
아내의 성격이라면 있을 법한 일이었습니다.
저는 일어나서 여자용 탈의실에 다가갔습니다. 사람의 그림자 하나가 뿌연 유리 너머로 보이고 있었습니다.
"현수야."
"....."
"빨리 나오라고. 아이도 아니고 여기까지 와서 뭘 그렇게 부끄러워하고 있어. 빨리 나와."
저는 일부러 차가운 어조로 얘기했습니다.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면, 아무래도 마음을 독하게 먹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평소와는 다른 제 냉혹한 목소리에 아내는 한순간 움찔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몇 분 뒤, 옷을 벗은 아내가 나왔습니다.
왼손으론 젖무덤을 가린 수건 매듭을 움켜쥐고 오른손으론 짧은 수건 길이로 인해 드러난 허벅지 부근을 가리면서 아내가
천천히 걸어왔습니다. 도중에 얼핏 제 눈과 마주쳤지만 이내 부끄러운 듯 눈길을 돌립니다.
시간은 벌써 해가 질 무렵이었지만, 여름이기에 아직 해가 있어 어슬어슬한 석양빛이 아내의 하얀 살결을 희미하게 물들이고
있었습니다.
춘식이 쪽을 보니, 녀석은 태연한 척 느긋한 태도로 지윤씨와 물장난을 치고 있었지만, 제 느낌으로 녀석의 시선은
힐끔거리며 아내쪽에 신경을 두고 있었습니다. 지윤씨는 그런 춘식이를 보면서 핏 웃으며 귓가에 뭔가 속삭이고 있었습니다.
몸에 물을 끼얹고 그제야 아내는 온천으로 다가왔습니다. 제 몸이 담긴 물가 가까이에 서서 저를 내려다 봅니다.
제가 끄덕이자 아내가 다시한번 몸에 두른 수건을 확인하곤 체념한 표정으로 모두의 시선을 받으며 온천 물에 발을 담급니다.
"호호, 이런 혼욕 정도에 언니처럼 그런 비장한 얼굴을 하는 사람도 요즘 없을거야.
언니, 뭐... 어때? 알몸도 아닌데. 그리고, 여기 같은 여자인 나도 있잖아."
지윤씨가 일부러 밝게 말을 걸자 아내는 희미한 미소로 거기에 답했지만, 결코 춘식이와 지윤씨와는 시선을 마주치려 하지
않았습니다.
"미안해, 내 와이프가 이런 덴 익숙하지 않아서. "
"어머, 저도 별로 익숙하진 않은데요."
짐짓 뿔난 것처럼 입술을 쫑긋 세운 지윤씨가 몸을 비비꼬며 항의했습니다. 그런 그녀의 농염한 여체의 몸짓은 아내의 억눌린 색기와는 다른, 귀여우면서도 상대를 도발하는 듯한 섹시함을 뿜어내고 있었습니다.
"그나저나 언닌 피부도 하얗고 몸매도 날씬하고, 정말로 몸이 이쁘다. 부러워요, 호호. 그렇지, 응? 그렇게 생각치 않아?"
지윤씨가 호들갑을 떨며 동의를 구하듯 춘식이에게 묻습니다.
춘식이도 아까와는 달리 이제 스스럼 없는 시선으로 아내의 몸을 훔쳐보고 있었습니다.
"확실히 예쁘긴 하지만.. 내가 부러운 건 제수씨가 아니라 수현이야. 이런 미인을 부인으로 가졌으니 말야."
이런 말을 하곤 느끼하게 웃었습니다.
그 말에 아내는 점점 몸을 움츠리는데, 아내의 피부는 물의 뜨거움 때문만이 아닌듯 온톰 희미하게 붉게 물들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얘가 대학 다닐 때 널 남몰래 짝사랑 하고 있었다지 뭐야."
"어멋! 그런 말을, 언니 앞에서 실례라구요, 이 아저씨야."
"뭐 어때? 이렇게 네 명이서 함께 물에 몸을 담그고 있는데, 이참에 마음 속 때도 벗겨내려면 솔직하게 서로 얘길 나눠야
할꺼아냐."
여전히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아내를 놔두고 춘식이와 지윤씨가 제멋대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전부 지어낸 이야기입니다.
"그 이야기가 진짜야?"
제가 묻자 지윤씨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호호, 글쎄요. 좋아했는지도.."
"전에 좋아했다고 분명히 말했었잖아"
춘식이가 옆에서 참견하자 지윤씨는 살짝 그 쪽을 흘겨보았습니다.
"이야기하는데 끼어들지 좀 마. 뭐, 근데 그 때는 수현선배를 동경하던 여자가 나 뿐이 아니었어요.
왜냐하면 굉장히 상냥하고, 핸섬하고, 약간 그늘진 구석이 있었지만. 그것마저도 매력적으로 보였으니까요.
도저히 저하곤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해서 자격지심에 고백도 못하고 끝났지만요."
이쪽이 홍당무가 될 정도의 대사를 지윤씨가 척척 내뱉었습니다. 아내는 지금 어떤 표정을 하고 있을까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언니를 보고 납득이 되더라구요. 정말 이렇게 예쁘고 다소곳한 언니는 수현선배와 정말 잘 어울려요."
"우리들은 뭐 그렇다치고, 너도 춘식이와 잘 어울리는 멋진 한쌍이다. 행복해 보이고."
"후후, 상냥하지도 않고, 핸섬하지도 않고, 어두운 그늘 따윈 어디에도 없는 나와 이 녀석이 잘 어울린단 말이지?"
춘식이가 놀리는 것처럼 그렇게 말하면, 지윤씨의 벌거벗은 어깨에 손을 두르고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겼습니다.
다른 손을 지윤씨의 젖가슴쪽으로 뻗어 젖은 수건 겉으로 톡 튀어나온 유두를 손가락으로 살짝 잡아당깁니다.
"아잉, 부끄럽게 왜 그래? 선배랑 언니도 있는데."
애교를 부리는 여성 특유의 혀 짧은 목소리로 항의하면서 지윤씨가 살짝 아내의 눈치를 살핍니다.
그 때, 저는 물 속에서 제 손에 아내의 손이 닿는 것을 느꼈습니다.
제 손을 꼭 쥔 채 아내는 여전히 부끄러운 듯 고개를 떨구고 있었습니다.
언뜻 보이는 아내의 그 섬세한 목덜미와 가냘프게 흔들리는 듯한 어깨에 저는 신선한 욕망을 느꼈습니다.
밤이 되었습니다. 과연 깊은 산속이어선지 주변은 고요했습니다.
저녁 식사는 방에서 했는데, 그 때는 저희 부부의 방과 춘식이네 방 사이에 있던 문을 활짝 열어젖혀놓고, 넷이서 테이블
하나에 모여 앉았습니다.
함께 온천욕을 한 사이임에도 아내는 아직도 어색한 듯 긴장이 풀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대화에도 별로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원체 말수가 적은 여자였기에 남편인 저와도 친숙해지는데 시간이 걸렸던 만큼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아내는 아내나름 춘식이와 지윤씨, 이 가짜부부를 어딘가 믿을 수 없다, 어쩐지 수상쩍다고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아내는 섬세한 성격이었기에, 사소한 것 하나로도 무언가 이상한 걸 눈치 챌 정도의 민감한 면이 있었습니다.
저녁 식사가 끝나고 우리들은 각자 자기 방으로 흩어졌습니다.
춘식이와 짠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스와핑은 내일 밤에 시도하게 됩니다.
하지만, 여전히 불편해 하는 아내를 볼 때면 저는 이 계획이 결국엔 실현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저로선 안타까웠지만,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어딘가 안심도 되는 복잡한 심정이었습니다.
한밤중에 문득 눈을 뜬 것은 한시가 조금 지났을 때쯤이었던 것같습니다.
하루종일 여러가지로 긴장했던 탓인지 자리에 눕자마자 곧바로 잠이 들었는데, 옆방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눈이 떠진 겁니다.
끊어질 듯 말 듯 들려오는 여자의 신음 소리. 높고 가늘고 음탕한 울림을 가진 그 목소리는 분명히 지윤씨의 것이었습니다.
저는 제 옆에 누워있는 아내를 보았습니다.
아내는 눈을 감고 있었지만, 계속 깨어있는 듯 뭔가를 꾹 참고 있는 듯한 표정이었습니다. 저는 슬그머니 손을 뻗었습니다.
아내가 반짝 눈을 뜹니다. 저의 의도를 알아챘는지, 입모양만으로 "안돼요."라고 힘없이 속삭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막무가내로 아내의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습니다.
아내의 목덜미에 키스를 하며, 하늘거리는 잠옷 속으로 손을 집어넣고 유방을 마구 주물렀습니다.
동시에 다른 손은 은근슬쩍 아내의 하체쪽으로 가져갔습니다.
아내는... 이 방에서 만들어지는 소리에 옆방의 두 사람이 눈치챌까 신경이 쓰이는 듯, 말 없이 그러나 여느 때보다 격렬하게
제 손길에 저항을 해 왔습니다.
저는 오른팔로 아내의 양손을 함께 잡아 누르면서 아내의 몸 위에 올라타 그 저항을 봉쇄했습니다.
그러고선, 다시 아내의 하반신에 걸쳐진 팬티 속으로 손을 밀어넣었습니다.
아내의 몸 뒤침 속에 겨우 그 부분을 만진 순간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아내의 음부는 확실히 알 수 있을 정도로 흥건하게 젖어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놀라서 아내를 쳐다보자, 제 눈빛에 어린 그 의미를 헤아렸는지 아내는 거의 울 듯한 표정이 되어 제 가슴에 얼굴을
힘껏 밀어붙여 왔습니다.
그것이 시작이었습니다.
저는 거의 자신을 잊어버린 듯 강한욕정에 휩싸여 지금까지 한번도 해본적이 없을 정도로 거칠게 아내를 안았던 것입니다.
벗기다만 잠옷 상의를 허리 부분에 두른 채 속옷만 모두 빼앗기듯 벗겨진 아내는 제 품 안에서 한동안은 필사적으로 신음을
참고 있었지만, 결국엔 견디질 못하고 "아, 앗, 앗"하며 신음소릴 내기 시작했습니다.
결국엔 참지 못하고 몰아치듯 터져나오는 그 신음속엔 남자의 마음을 더욱 가학적으로 만드는 듯한 애절한 느낌이 실려
있었습니다.
어느샌가 옆방의 소리는 그쳐 있었습니다. 춘식이와 지윤씨는 무얼 하고 있었을까요.
어쩌면, 아니 아마도 틀림없이 어둠을 틈타서 문을 살짝 열고선 그 틈으로 저희 부부의 정사를 바라보고 있었을 것입니다.
아내는... 그것에 생각이 미치진 않았을까요?
제 아래에서 여느 때보다 더욱 빠르고 강하게 다가온 쾌락에 몸부림치며, 연신 사랑스러운 신음을 토해 내는 것이었습니다.
"하.. 앗. 아앗.. 아아아..."
그리고, 저는 폭발했습니다.
아내 속으로 쏟아져 들어간 정액과 동시에 절 꼭 끌어안은 아내의 몸도 절정에 올라 꿈틀꿈틀 경련하고 있는 느낌이
언제까지고 제 기억 속에 새겨지고 있었습니다.
"이야, 어젯밤은 엄청나던데요. "
가까이 다가 온 지윤씨가 속삭이듯 말했습니다.
저는 뒤쪽의 아내와 춘식이를 신경 쓰며 퉁명스럽게 "뭐가?"라고 대답했습니다.
"알면서 그래요?"
"...."
"언니가 그렇게 흐트러질 때도 있었네요. 평소의 청초한 느낌으로는 상상도 못할 정도였어요.
굉장히 에로틱하고 매력적이셨는데."
지윤씨가 그렇게 말했지만 사실 저도 그정도로 가파르게 절정에 오르던 아내의 모습을 본 것은 어젯밤이 처음이었습니다.
그날 아침 잠에서 깨어 보니 옆에 아내의 모습은 없었습니다. 잠시 후 방으로 돌아온 아내에게 "어디 갔었어?"라고 묻자,
"목욕탕에요."
아내는 짧게 대답하는 그 모습은 평상시의 아내의 모습이었지만, 역시나 어젯밤의 열정적이었던 몸부림을 부끄러워하고
있던지 저와 눈을 마주치려 하질 않았습니다.
그 후, 방 사이의 문을 열고, 어제처럼 또 네 명이서 식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만, 어젯밤의 정사를 두 사람이 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제 자신도 다소 어색함을 느낄 정도였으니 아내는 더욱 그랬겠지요.
대화는 춘식이와 지윤씨만이 했을 뿐 저희 부부는 묵묵히 식사를 할 뿐이었습니다.
뭐, 춘식이와 지윤씨에게도 사정은 비슷했을 것이지만 말입니다.
차가 없어서 관광하려 해도 방법이 없고, 또, 이 숙소가 위치한 곳의 조용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서 오전 중에는 특별히
아무것도 하지 않고 빈둥거리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오후가 되어서야 춘식이가 "주위를 한번 둘러보는게 어떨까."라고
제안을 해 와 그제서야 네 명이 함께 숙소 밖 구경에 나섰습니다.
"너희들이야말로 너무 분위기 좋은거 아냐?"
제가 대꾸하자, 지윤씨가 가볍게 웃으며 손사래를 쳤습니다.
"아뇨. 선배쪽이 시작하고나선 그 사람, 그쪽에만 정신이 팔려서, 아시잖아요, 그 사람 예전부터 언니 팬이었으니까..."
여기서 그 사람은 물론 춘식이였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지금 우리 뒤에서 아내에게 이것저것 말을 걸고 있었습니다.
아내가 그것에 대해 간단하게 예의상 맞장구를 쳐주는 것을 보다가 저는 문득 어떤 일에 생각이 미치게 되었습니다.
그 날... 춘식이가 저희 집에 와서 아내에게 "섹스를 싫어하세요?" "남편이 만족시켜 주지 못하나요?"등의 질문을 하던 그날의
일이었습니다.
저는 그 이전부터 사이가 원만치 못 했던 아내에게 처음으로 이혼얘기를 꺼냈고, 그날 밤 아내는 제 침대에 몰래 들어왔었습니다.
그때 아내는 이대로 헤어질 것같은 두려움에 어떻게든 저를 잡으려고 그런 행동을 했다고 얘기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어젯밤의 일을 돌이켜 생각해 보았습니다.
옆방에서 관계를 갖던 춘식이와 지윤씨의 소리를 들으면서 남몰래 음부를 적시고 있던 아내. 그것을 저에게 들키자 부끄러워
몸부림치면서도 제 애무에 달아오르며 신음을 지르던 아내....
그것은 제가 이제껏 본 적이 없던 아내의 모습이었습니다.
어쩌면 아내는 수침심을 느낄 때 더 민감해지는 여자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존감이 남달리 강한 만큼 수치심이 강해질수록 성감이 자극되어 버리는 여자. 만약 그렇다면, 그 날 아내가 침대에 숨어
들어왔던 것은 저를 붙잡기위해서만이 아니라, 춘식이의 말에 자극되어선 달아오른 몸을 가라앉히기 위해 제가 필요했던
것은 아니였을까 나는 곰곰히 생각 했습니다.
"무엇을 그렇게 생각하세요?"
생각에 잠겨있는 저를 이상하다는 듯 바라보다 지윤씨가 갑자기 팔짱을 껴왔습니다.
마치 예전부터 연인이나 부부였던 것처럼 자연스러운 몸짓이었습니다.
"자연스럽게 해요, 언니가 보고 있어요."
지윤씨의 속셈을 알았습니다.
오늘 밤 실행할 예정인 스와핑의 포석으로 저와 지윤씨 사이의 친밀감을 의도적으로 아내에게 보여주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되도록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지윤씨와 팔짱을 끼고 길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밤이 찾아 왔습니다.
"아아, 기분 좋아라. 여기는 정말 좋은 곳이네요."
방바닥에 누워 천정을 바라보며 지윤씨가 은근한 어조로 말했습니다. 그 얼굴은 술로 살짝 발갛게 물들어 있었습니다.
"조용하고, 아늑하고, 모든 걸 잊고 마음이 활짝 열리는 것같아요. 이런 기분 대학교 때 이후 처음이예요."
그렇게 말하며 지윤씨는 젖은 눈빛으로 저를 올려다 봤습니다.
"이것봐라, 대학시절의 짝사랑이 다시 불 붙은 거 아냐?"
술을 마시던 춘식이가 옆에서 농담을 던졌지만 지윤씨는 여유로운 표정이었습니다.
"뭐 그것도 좋죠, 선배와는 정말 오랜만에 만났으니까! 그렇죠?"
그렇게 말하더니 지윤씨는 장난끼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야옹~ 야옹~"거리며, 고양이 흉내를 내면서 저에게 안겨 왔습니다.
"어어어, 너 너무 취한 거아냐?"
"야옹~"
저는 반쯤은 정말로 당황해서 지윤씨에게 말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고양이 흉내를 내며 저에게 매달려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아내를 보니, 그쪽도 이쪽을 쳐다보고 있다 황급히 눈길을 돌리는 게 보였습니다. 그대로 아내의 손이 술잔을 집어듭니다.
평소 술을 마시지 않는 아내로서는 드물게도, 아내는 그날 밤 많은 술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옆에 아내가 있는데도, 헤프게도 남편에게 안겨 오는 지윤씨와 그런 지윤씨에게 헬레레거리고 있는 저 때문에 괴로웠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얼굴만 보고선 알 수 없는 여자였기에 확실치는 않았지만 말입니다.
한참을 더 방에서 끝없이 술을 마신 뒤 우리들은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리고 한시간 후. 부스럭거리며 일어나는 저를 보고 아내는 의아한 표정이 되었습니다.
"뭐.. 하려고요?"
"목욕하고 올께."
이 여관의 목욕탕은 시간제한이 없었습니다.
"그래요?"
아무것도 모르는 아내는 다시 눈을 감았습니다.
방을 나오자 현관에는 이미 지윤씨가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정해진대로 였습니다.
우리는 서로 눈짓으로 신호를 교환한 뒤, 그 자리에 조용히 주저 앉았습니다.
잠시 후...
"제수씨, 일어나 계신가요?"
방에서 춘식이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네."
작은 목소리로 아내가 대답하는 것도 들렸습니다. 이어서 장짓문을 여는 소리가 났습니다.
"그쪽 방에 수현이가 없지요?"
처음부터 "제수씨"하고 아내만 불렀었기에 잘 생각해 보면 불순한 느낌이 들었을 춘식이의 말이었지만, 외갓 남자의 갑작스런
침입에 긴장한 아내는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남편은 목욕하러 가셨는데요."
"하, 역시나... 지윤이도 지금 목욕을 간다고 나갔거든요."
"..."
"제 아내지만 대담한 여자군요, 남편을 남기고 다른 남자와 밀회를 하러 가다니, 그리고 당신 남편도 대단하네요. "
"...목욕탕에 갔을 뿐인데요."
"혼욕탕입니다. 그리고 이 시간엔 다른 손님도 없잖습니까? 제수씨도 낮부터 그 두 사람의 모습을 보셨잖아요?"
어둠 속에서 무심코 지윤씨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지윤씨는 킥킥 웃고 있었지만, 저는 아내가 신경쓰여 그럴 기분이 아니었습니다.
"수현이 놈도 지독한 놈이군요. 이렇게 아름다운 분을 곁에 두고도 다른 여자에게 한눈을 팔다니."
"...더 이상 다가오지 마세요."
아내의 음성은 떨리고 있었습니다.
"한번 들어 보세요. 버림받은 동지끼리, 서로 상처나 위로하자는 상투적인 얘기가 아닙니다. ...저는 당신을 좋아합니다."
춘식이의 말을 들으며, 그게 연기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제 가슴은 두근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당신에게 반했습니다. 당신이 수현이의 저에게 유일한 친구인 그 녀석의 아내라는 현실이 싫었습니다.
저는 나쁜 남자입니다. 다른 남자였다면, 저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당신을 빼앗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녀석만은 배반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녀석이 당신을 배신하는군요."
"아아...."
한숨 섞인 아내의 신음이 들려왔습니다.
"울고 계십니까?"
"....."
아내가 흐느끼는 소리가 났습니다. 저는 더 이상 듣고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원했던 일이지만, 정작 아내의 울음소리를 들으니 가슴이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이젠 됐어, 다 거짓말이다, 모든 게 연극이었어, 그러니 울지 마 저는 하마터면 그렇게 소리치며 방으로 뛰어들 뻔했습니다.
그러지 않았던 것은, 그 때 방안의 불이 켜지며, 불투명한 유리 너머로 어렴풋이, 앉아있는 아내와 그녀를 안는 춘식이의
모습이 비쳤기 때문입니다.
"울지 마세요."
제가 말할 뻔했던 대사를 춘식이가 말했습니다. 지금까지 녀석의 입에서 한번도 들은 적이 없었던 그런 부드러운 목소리로,
"걱정 마세요. 다 잘 될 겁니다."
저는... 저는 조용히 밖으로 나왔습니다.
방금 전과는 다른 의미에서, 나약해진 저는 아내와 춘식이의 대화를 더 이상 듣고 있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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