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지 않는 - 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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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을 하고 나서도 상민은 외숙모를 놓고 싶지 않았다. 다만 상민은 얼마나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의식할
뿐이었다. 상민의 아주 그윽한 눈빛을 외면하는 지선은 진절머리를 쳤다. 그것은 오랫동안 갇혀진 욕망이 불꽃처럼 타오르는
황홀함이었다. 한편 감당할 수 없는 희열 뒤이어 오는 자멸감에 젖은 그녀의 눈가에 이슬이 반짝였다. 남편에게 빼앗겼던
순결이 아니고 여자로서 순결을 잃었다는 심정이었다. 아니면 너무나 황홀한 쾌감에 흐르는 감격의 눈물이기도 하다.
단순하게 남편과의 부부관계 뿐만 모르던 그녀였다. 그것도 아무런 감정 없이 순식간에 남편에게 순결을 빼앗기고 그녀는
당연히 아내라는 의무감으로 살아 왔던 것이다.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의 남성을 받아드린 지선은 여자로서 거듭 태어나는
감정이었다. 남편에게 느껴 보지 못했던 강렬한 오르가즘의 순간이 지난 후에 오는 두려움인지도 모른다. 지선은 혼잣말처럼
상민의 귓가에 촉촉한 목소리를 흘린다.
“나... 나... 이제 어떡하니........................................”
“그냥... 사랑하고 싶어요.......................................”
“그럴 수는 없잖아!?....................................”
“나이나 혈연이 무슨 문제야... 내가 지켜줄 거야... 나에게 외숙모는 사랑하는 여자일 뿐이야...................................”
당당하게 말하는 상민은 두려운 표정으로 올려다보는 외숙모가 사랑스럽기만 했다. 외삼촌의 아내인 외숙모이기에 상민도
두렵기도 하지만 성적인 충동이 아니라는 변명을 하고 싶었다. 그에게는 오랫동안 사랑하고 싶었던 여자일 뿐이었다. 미래를
생각하고 싶지 않은 상민의 열정이었다. 상민은 사랑한다는 감정을 그녀가 알아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가슴속에 안겨있는
그녀의 입술을 탐닉하고 싶었다. 가까이 다가오는 상민의 입술을 눈동자를 크게 뜨고 올려다보는 지선은 눈을 스르르 감았다.
상민의 입술을 받아드리는 지선은 스킨십은 물론 사전 애무를 배려하지 않는 남편을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달콤하게 느끼는
상민의 키스도 황홀하였다. 혀와 혀가 엉키고 지선은 아직도 몸 속에서 꿈틀거리는 남성을 감지했다. 상민이 다시 발기하는
페니스를 아주 천천히 그녀의 몸속 깊이 밀어 넣었다가 빼내기를 반복했다. 엑스터시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던 지선은 또 다시
성감이 급 상승했다. 급히 숨을 들이마시는 지선은 상민이 다시 관계를 하려는 것을 느껴 눈을 흘겼다.
“아......!?... 안 돼............................................”
“놓아 주고 싶지 않아.........................................”
지선으로서는 남편에게서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당혹스러우면서도 지선은 둔부를 들어 올리면서 아랫 입술을 깨물었다.
문득 고개를 돌린 지선은 흠칫 놀랬다. 송이가 깨어나서 빤히 쳐다보고 있는 것이었다. 언제부터 송이가 깨어 있는 것인지
모든 것을 보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지선은 죄의식이 들었다. 상민도 지선의 시선을 따라 송이의 초롱초롱한 눈동자를 봤다.
지선이 허리를 틀며 촉촉한 목소리로 귓속말을 했다.
“아... 그만... 송이가 봐................................”
“미치겠어요.............................................”
가슴에 묻힌 지선이 애원하는 눈빛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상민의 이글거리는 눈빛이 그녀를 내려다본다. 쑥스러운 표정으로
상민은 가슴 속에 안고 있던 지선을 풀어주었다. 지선의 몸 위에서 내려온 상민은 송이를 사이에 두고 누웠다. 천진난만하게
올려다보고 있는 송이의 뺨에 상민이 입맞춤을 하며 중얼거렸다.
“송이도 엄마가 행복하기를 빌 거야.......................................”
“어떻게 하지?!... 은주 엄마가 올지도 모르는데...............................”
혼잣말을 하는 지선은 깨어난 송이가 보고 있었다는 것보다는 또 다른 두려움을 느꼈다. 아주 시간을 가리지 않고 불쑥불쑥
찾아오는 은주엄마의 얼굴이 떠오른 것이다. 부리나케 일어난 지선은 뒤로 돌아 앉아 허리에 걸친 스커트를 내리고 블라우스
앞가슴을 여민다. 팬티를 집어 들고 뒤를 돌아보는 그녀와 상민의 시선이 마주쳤다. 끈적끈적하면서도 교감이 깃든 두 사람의
눈빛이 한순간 반짝였다. 여자는 자신의 육체를 준 남자에게 애정을 느끼고 아름답게 보이고 싶은 것인가.
발그스름하게 붉혀진 지선의 자잘한 눈웃음 속에 수줍음이 스며 나온다. 여자는 태어나면서부터 여자로 태어날지 모르지만
남자의 여자가 되어 성적인 역할을 통해 본능에 만족하고 다시 거듭나는 것이라고 한다. 안방을 나가 세면장을 향하는 지선은
허벅지 사이가 뻐근하고 현기증으로 다리가 휘청거리는 것 같았다. 세상모르는 송이의 방긋거리며 웃는 아주 귀여운 모습을
바라보던 상민은 나른함을 느껴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세면장으로 들어온 지선은 들고 온 팬티와 구겨진 스커트를 세탁기에 넣고 샤워기 밑에 발가벗고 섰다. 물줄기가 쏟아져 내려
피부를 적신다. 물줄기가 닿는 피부마다 아련하게 피어오르는 감촉에 지선은 짜릿한 전율을 느꼈다. 억눌렸던 욕망의 불길을
태우고 느끼는 육체의 희열도 애정인지 아니면 또 다른 행복인지를 지선은 자문한다. 그녀는 행복하다는 감정을 느껴본지가
아득하기만 하다. 허물 수 없는 벽을 허물고 채울 수 없었던 욕망을 느끼고 나니 지선은 지난 시간이 너무 울타리 속에 갇혀
살았다는 아쉬운 감정에 사로잡혔다.
비록 감출 수 없는 황홀함을 느낀 것에 죄책감에 젖어들면서도 지선은 상민에게 아련한 애정을 느꼈다. 그러나 남편 앞에서
지선은 얼음처럼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날 밤에도 남편은 자정이 넘어서 들어왔다. 한편으로 죄책감을 느낀 지선은 남편을
보기가 두려웠다. 한 침대에서 잠이 들지만 남편은 언제나 그녀에게 이방인이다. 서로 등을 돌리고 누워 서로 다른 꿈을 꾼다.
아침에 일어난 남편은 무표정하기만 하다.
지선과 경호 사이에는 침묵만이 흐른다. 경호는 하숙생처럼 날이 밝으면 차려준 식사를 하고 밖으로 나간다. 지선은 창녀
같다며 자신의 인격마저 무시하는 남편이 무슨 말이라도 해야 후련할 것 같다. 남편에 대한 야속함에 분노가 치밀지만 한편
그녀는 죄책감으로 상민을 의도적으로 피하게 된다.
‘그래!... 잊어버리자... 그냥 실수였어................................’
독백을 하는 지선은 스스로를 위로하며 상민에 대한 감정을 애써 지우려 했다. 그러나 그녀는 가슴속에서는 아직까지 느끼지
못한 불꽃이 피어나고 있었다. 그녀는 타오르고 있는 불꽃의 의미를 곰곰이 되새겨 본다. 과연 실수라고 잊어버릴 수 있는
단순한 욕망인가. 후유증으로 남편에 대한 죄책감인가. 아니면 사랑!? 꺼지지 않는 자신의 감정에 그녀는 혼란스러웠다.
지선은 어느 남자에게도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껴보지 못했다. 사랑의 의미를 담은 사전을 남편에 빼앗겨 버렸는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남녀 간의 사람! 그것은 길거리에서 만났더라면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쳐버렸을 한 타인의 영상이 아주 불쑥 자신의
인생 속으로 걸어 들어오는 순간의 감정이다. 창문을 바라보다가 문득 가슴으로 들어오는 풍경 같은 것일 것이다.
마치 기숙사의 사감처럼 은주엄마는 거의 하루도 빼놓지 않고 지선의 집에 드나든다. 그리고 지선과 같이 액세서리를 만들며
두서없는 얘기들을 늘어 놓는다. 어쩌면 닫혀진 공간에서 맴도는 지선에게 은주엄마 창숙은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들려주는
배달부 노릇을 한다. 은주엄마를 뒤 따라온 은주는 거침없이 상민의 방으로 들어갔다.
지선은 평상시와 다르게 상민의 방으로 들어가는 은주를 유심하게 살피고 있었다. 넘어서는 안될 육체관계를 했던 상민을
의도적으로 경계하면서도 지선은 역시 여자였다. 상민도 지선을 의식해서인지 방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었다. 상민이 힐끔
거실을 내다보았다. 상민의 시선을 외면하는 지선은 공연히 얼굴이 화끈거렸다. 은주엄마가 지선을 빤히 바라봤다.
“며칠 사이에 동생이 더 예뻐진 거 같은데!... 송이 아빠가 잘해주나.......!?... 아니면 좋은 일이 있는 거야?...................”
“송이 재롱 보는 것 말고 좋은 일이 뭐 있겠어요................................”
말은 그렇게 하지만 지선은 왠지 속마음이 들어나 보이는 것 같았다. 어색한 미소를 흘린 지선은 곁 눈질로 상민의 방안을
바라보았다. 책을 보고 있는 상민의 뒤에서 은주가 혼자 재잘거리고 있었다. 이미 은주에게 실망한 상민이었다. 은주가 들어
오는 것을 알고도 상민은 말없이 책을 들여다 보고 있었다. 지선의 눈치를 살피기에 더욱 상민은 은주를 반길 수도 없었다.
전혀 상민의 마음을 보르는 은주는 관심을 끌려고 자신의 얘기를 늘어놓는데 열중했다.
상민이 반응도 하지 않고 공부에 열중하고 있으니 은주는 시큰둥해서 돌아갔다. 한동안 수다를 떨면서 액세서리를 만들던
은주엄마 창숙이 시장에 다녀온다면서 기지개를 켜며 일어섰다. 창숙도 나가고 액세서리 작업을 중단한 지선이 집안 청소를
하는데 송이가 잠에서 깨어나 보챘다. 송이를 안고 달래는 지선은 상민의 방을 바라봤다. 그녀는 그가 송이를 돌봐줬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다른 날 같으면 그녀는 서슴없이 상민에게 도움을 요청 했을 것이다.
하지만 다시는 실수를 하지 않으리라고 다짐한 그녀이기에 조심스럽기만 하였다. 그러나 냉정해지려는 마음과 달리 그녀의
시선은 자꾸만 상민의 흔적을 따라 가고 있었다.
‘내가 왜 이러지!?... 정말... 애정이라도 느끼는 것인가... 그럴 리 없어... 그럴 수도 없고........................’
지선은 자신의 감정들을 도저히 정리할 수가 없엇다. 아주 혼란스러운 생각들을 지우려고 그녀는 세면장으로 들어가 찬물에
세수를 했다. 거실 바닥을 기어 다니는 송이를 안전의자에 앉힌 그녀가 세탁물을 정리하기 시작하는데 현관의 차임벨 소리가
났다. 모니터를 들여다보던 지선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동안 연락을 자주 주고받지 못했던 지선의 여동생인 지영이었다.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지영은 은행여직원으로 인천에서
살고 있었다. 현관문을 여니 아주 생기가 돋보이는 지영이 정장을 한 캐리우먼의 모습으로 들어왔다. 지선은 활기찬 표정으로
들어오는 지영을 반갑게 맞이했다.
“아니... 지영이가 웬일이니?... 넌... 시집도 안 가고.......?.................................”
“시집은 무슨!... 서울 본사에 들렸다가 시간이 나기에...............................”
“남자 사귀는 모양이다... 화장을 다하고...............................”
“아직 남자는 거추장스러워!... 서울 출장 오느라고 찍어 발랐지......................................”
지선과 지영은 소파에 마주앉았다. 지선의 가슴에 안긴 송이를 보고 팔을 벌리는 지영의 눈가에 아주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
지영이 지선에게서 송이를 받아 안고 뺨에 입맞춤을 했다.
“애구!... 우리 송이 예쁘게 많이 컸네.................................”
“예쁘니?.........................................”
“그럼... 내 조카인데... 언니도 더 예뻐졌네... 형부가 잘해 주는 모양이네..........................”
“잘해주기는?... 살기 바쁜 걸....................................”
지영은 언니의 고달픈 가정 얘기를 들어서 알고 있으면서 물어 본 것이었다. 지선의 씁쓸한 표정을 보고 안쓰럽게 생각했다.
지영이 들고 들어온 쇼핑백을 내밀었다.
“이거... 오다가 송이 생각나서 산거야.......................................”
“뭔데... 너도 힘들면서 이런 걸 사오니....................................”
지영이 쇼핑백을 열어 포장지를 뜯었다. 포장지 속에 들어있는 것은 예쁜 여자아기의 옷이었다. 지선이 옷을 받아들고 환한
웃음을 흘렸다.
“너무 예쁘다... 고마워..........................................”
“고맙기는!... 내가 자주 못 와봐서 미안해... 언니!..........................................”
상민의 방문이 열렸다. 지영의 시선이 방문으로 향하지만, 상민의 시선을 피하고 있는 지선은 송이의 옷에 관심을 갖는다.
거실로 나온 상민은 예기치 않은 손님을 보고 잠시 머뭇거렸다. 그리고 언젠가 보았던 외숙모의 동생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상민이 어색한 미소를 흘리며 지영에게 고개를 꾸벅여 인사를 대신하고 세면장으로 들어갔다. 상민의 뒷모습을 보던 지영이
물었다.
“언니... 저... 남자 누구지?....................................”
“시누이 아들... 너 모르니?...............................”
“아!... 결혼식장에서 본 기억이 난다... 그때는 어렸었는데 멀쑥한 남자가 됐네...........................”
“대학입시 공부하느라고 와 있어.......................................”
“언니도 힘든데... 그럼... 생활비 내 놓는 거야?............................”
“송이아빠 사채와 은행 이자를 시누이가 값아 주고 있어...............................”
“그래도 그렇지... 언니가 힘들잖아?......................................”
“형부가 오라고 했어..............................”
지영은 언니가 시누이의 아들 시중을 들고 있다는 말에 안타까웠다. 다시 세면장 문이 열리고 상민이 나와 방으로 들어갔다.
유심히 살피던 지영이 희죽 웃으며 지선의 눈치를 살폈다. 그리고 지선에게 귓속말을 했다.
“듬직하고... 잘 생겼는데!... 젊은 청년과 있으면 언니도 젊어지겠는데... 호호호..............................”
“얘는.......!?...........................................”
그녀들은 상민에게 들릴 것 같아서 입을 가리고 웃었다. 지영의 장난스러운 말에 지선은 공연히 뜨끔하였다. 여자들 사이에는
남자와 다른 직감이 있다. 지선은 혹시나 상민과의 관계를 동생이 눈치 채지나 않을까하여 공연히 두려웠다. 아주 정색을 한
지선은 화제를 돌려 물었다.
“어머니한테는 자주 가보니?.................................”
“응... 한 달에 두 번씩은 내려가... 엄마가 언니 걱정 많이 하더라... 하지 말라는 결혼을 해서 고생한다고......................”
“누가 알았니?... 자신의 미래를 알 수 있는 사람은 없어... 언젠가 고생한 보람이 있겠지.............................”
“언니 성격은 너무 착해서 큰일이야....................................”
그녀들은 지나간 이야기들과 집안 얘기를 한 동안 나누었다. 그녀들의 이따금 목소리를 낮추어 하는 얘기는 방안에서 청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상민에게도 들렷다. 그녀들은 웃기도하고 때로는 한숨을 내쉬기도 하며 오랜 시간을 소곤거렸다. 그녀들의
대화 소재는 화장품과 패션에 관한 것들로 바뀌고 있었다. 여자가 거울에 자신을 비춰보는 것은 단순히 자기의 자태를 보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그 목적은 남자에게 어떻게 보여질까하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요즘 패션에 관한 지영의 얘기를 듣는
지선은 문득 남자들이 자신을 어떻게 볼 것인지 되돌아 봤다.
언제부터인가 자신이 남자의 눈에 어떻게 보일지를 잊고 살았던 지선이었다. 특히 그녀는 남편이 자신에게 무관심한 이유와
아울러 상민의 그윽한 눈빛을 떠 올렸다. 지영과 대화를 하면서도 지선은 이따금 상민의 방을 힐끔거렸다. 두서없는 대화를
하던 지영이 가야한다고 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동생이 바로 간다는 말에 서운한 지선이 저녁식사를 하고 가라고 했다.
그러나 지영은 지선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바쁘다며 집을 나갔다. 동생이 다녀가고 나니 지선은 쓸쓸하고 집안이 텅 빈 것처럼
허전했다. 지영이 돌아가고 상민이 하품을 하며 거실로 나왔다.
송이를 안고 있던 지선은 가까이 다가와 앉는 상민을 의도적으로 피해 일어났다. 남편이 돌아 올 시간이 가까워지면 지선은
더욱 예민하게 상민을 외면하려고 했다. 그렇다고 그녀는 남편에게 부부애를 느끼거나 위로를 받는 것은 아니다. 남편이 집을
나가고 나면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상민의 일거수일투족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넘어 설 수 없는 벽을 생각하면서도 시간이
갈수록 지선은 상민의 관심을 받고 싶은 마음이었다. 상민을 피하면서도 그가 도서관에 가거나 친구를 만나러 나가면 지선은
현관문을 주시하는 자신을 의식하곤 했다. 그녀가 그를 기다리는 것은 기다리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기다려지는 것이다.
말하자면 그를 기다리는 것은 욕망이 아니라, 남편에게 느낄 수 없는 애정이었다. 상민에 대한 지선의 두려움은 며칠 지나지
않아서 점점 사라졌다. 아무리 외면을 하려고 해도 상민의 그윽한 눈빛을 피할 수 없었다. 아니 도리어 공부를 하는 틈틈이
집안일을 돕거나 송이를 돌보아 주는 상민을 그녀의 시선이 뒤 쫓고 있었다. 그리고 지선이 반응을 보이지 않아도 상민이
장난을 걸면서 애정 표시를 하려고 하였다. 변명인지 몰라도 결국 개그맨 흉내를 내는 상민의 묘한 표정에 지선은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정색을 하려는 외숙모의 웃는 표정을 보고 싶었던 상민이었다.
여자가 가장 즐기는 것은 남자의 기만성을 폭로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의 가장 큰 즐거움은 여자들을
즐겁게 해주는 것이라고 한다. 남자는 실제로 여성의 실체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사랑이라는 정욕으로 말미암아 자기기만을
끊임없이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녀의 눈웃음이 가득한 표정에 상민은 안심이 되었다. 결국 자신의 웃음으로 어색했던
분위기를 떨쳐 버릴 수 있었지만 지선은 알 수 없는 혼돈의 늪 속으로 빠져드는 기분이었다.
그 늪은 기분을 전환시키는 구심점이 되어서 그녀를 하루하루 활기 넘치는 시간이기도 했다. 지선은 자신도 모르게 시간이
지날수록 상민에게 자신이 어떻게 보일지 관심이 더욱 깊어져갔다. 사람들은 이성과 감성의 세계에서 살아간다. 밝은 낮이면
경쟁의 사회에서 이성을 잃지 않으려고 하지만 어둠이 내리면 감성에 예민해진다. 애정을 느끼는 남자에게 아름답게 보이고
싶은 것이 여자의 심리이다. 해가 저물고 상민이 돌아올 시간이 되어 지선은 처녀시절에 입던 핫팬티를 걸쳤다.
학원에 갔던 상민이 해가 저물고 아주 칙칙한 어둠이 내릴 무렵에 집으로 돌아왔다. 상민을 의도적으로 피했던 그녀의 마음은
진심이 아니었다. 상민의 나이에 어울리는 어린 여자로 보이고 싶은 지선의 심정이었다. 며칠 동안 외숙모가 더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었다는 것을 의식하는 상민은 거실에서 신문을 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관심은 온통 그녀에게 쏠려 있었다. 아주
건성으로 신문을 들고 있는 상민은 주방에서 일을 하고 있는 지선을 힐끔 쳐다봤다.
다른 날과 다르게 핫 팬티를 걸치고 싱크대에서 돌아서 있는 그녀의 뒷 모습이 상민은 깜찍해 보였다. 잘록한 허리에 그녀의
탐스런 엉덩이가 앙증맞고 선정적으로 들어난 허벅지의 각선미가 상민의 시선을 끌었다. 별안간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나고
지선이 짧은 외마디를 질렀다.
“앗~!..............................................”
“왜... 그래요?......................................”
신문을 던진 상민이 벌떡 일어났다. 깨진 접시 조각이 산산조각이 나고 바닥에 지선이 넘어져 있었다. 아주 울상이 된 지선은
발목을 붙잡고 엎드려 있었다. 설거지를 하던 지선이 의자에 걸려서 넘어지면서 접시를 떨어트린 것이다. 상민이 다가가서
지선을 안아서 가볍게 번쩍 들었다. 지선은 발목을 다친 아픔보다 상민의 가슴에 안기는 것이 더 두려웠다.
“왜... 왜... 이래........?......................................”
“기다려요...................................................”
명령하듯이 말한 상민은 지선을 식탁위에 걸터앉혔다. 그리고 세면장으로 들어간 상민은 세숫대야를 들고 나와서 식탁 밑에
놓고 지선의 발목을 잡고 당기며 응급처치를 한다. 응급 조치원 자격증을 획득한 상민이었다. 그것을 모르고 있는 지선은
아픔을 호소한다. 지선을 올려다 본 상민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녀의 표정은 엄살을 하는 소녀처럼 앙증맞았다.
“하하~!... 애들 같이 귀여워요.....................................”
“정말... 아프단 말이야..........................................”
무심코 지선은 뽀로통하게 입술을 내밀면서 어린소녀처럼 응석을 하는 말투를 흘렸다. 상민의 말에 그녀는 스스로가 아주
어린 소녀가 된 기분이다. 그녀는 상민의 눈빛에서 애정이 가득한 정감을 느낀다. 상민의 응급조치를 받고나니 그녀는 통증이
사라진 것 같았다. 그녀는 어쩔 수 없는 만족감에 미소를 흘렸다. 그녀의 표정이 아주 귀엽다는 눈빛으로 올려다보는 상민이
냉장고에서 얼음과 냉수를 꺼내 세숫대야에 붓는다. 상민은 우악스럽게 지선의 발목을 잡아 세숫대야에 담근다. 미간을 마구
찌푸린 지선이 어깨를 움츠리며 상민의 어깨를 쳤다.
“못 됐어!... 너무 차가워......................................”
“하하하~!... 이래야 아프지 않은 걸... 정말 애들 같아........ 미치겠네...............................”
“말도 안하고 넣으니까... 그렇지........!... 뭐를 미쳐?...................................”
“하는 모습이.......................................”
샐쭉해진 지선이 곱게 눈을 흘겼다. 상민이 망설이더니 지선의 발등에 입맞춤을 한다. 입술이 닿는 짜릿함에 지선은 신경이
곤두서는 것 같았다. 지선은 말없이 상민의 등을 주먹으로 때렸다. 그럴수록 그녀가 귀여워 보여 빙그레 미소를 띤 상민은
발목을 주무르며 얼음찜질을 해준다. 피부에 닿은 상민의 손길에서 아주 따뜻한 촉감을 느끼는 지선은 알 수 없는 기쁨과
짜릿함에 젖었다. 한동안 얼음물속에 담근 지선의 발목을 주무르던 상민이 방으로 들어가 약품 상자를 들고 나왔다. 그리고
그녀의 발목에 연고를 바르고 붕대를 감았다.
상민은 아무 말 없이 바닥에 떨어진 접시 조각을 청소했다. 저녁식사 준비를 하는 지선은 청소를 끝내고서 방으로 들어가는
상민의 뒷 모습을 힐끔 쳐다봤다. 그녀는 왠지 서운함을 느낀다. 의도적으로 경계를 하는 그녀도 자존심으로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았지만 아프지 않느냐고 다시 물어 보지 않는 상민이 공연히 얄밉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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