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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설

회색천사 - 7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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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19가이드
댓글 0건 조회 2,725회 작성일 24-07-30 19:37

본문

그녀와의 상담은 그렇게 평온한 분위기에 마무리 됐다. 다음 주에 다시 오겠다며 나가는 그녀의 모습이 조금은 아쉬웠지만
언제든 그녀와의 시간을 만들 수는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아주 섭섭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내 머리 속에는 그녀의 의식이
드러내려 하지 않는 무의식 속에 숨겨져 있는 실체였다.
 

“강주희씨는... 과거의 고통스러운 실체를 무의식 속에 감추고 있는 것을 보인다... 그에 대한 보호욕구는 무척이나 강해서
 깨어있는 의식 속에서는 전혀 그 실체를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심지어 최면상태에서도 그 실체로의 접근은 얼음에 봉인된
 듯 희미한 그림자만 비쳐 보일 뿐이다... 이 경우 내가 그 실체에 접근하기 위한 방법은.............................”
 


녹음을 멈추고 잠시 생각한다. 그 방법은 어떤 것이 있을까? 어떤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일까? 


“그녀의... 무의식을 완전히... 내 의사에 복종시키는 의식의 종속밖에는 없을 것 같다... 그럴 경우 부수되는 육체적 종속의
 문제는 향후 큰 부담이 될 것이다... 그러나... 더 큰 위험은 그녀의 무의식이 의식과 하나로 동화될 경우이다... 그 경우...
 무의식과 의식의 혼재로 스스로의 정체성이 재정렬될 확률이 있고... 그로 인해 야기되는... 실제적 혼란을 그녀의 의식이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시 된다... 또 치료의 마지막 단계까지도 그녀를 정상적 의식의 상태로 돌려놓을 수 없게 될 확률이
 큰 것도 간과할 수 없는 문제점이다............................”
 

녹음을 마치고 파일을 정리한 후 다시 생각에 빠진다. 정말 나는 어디까지 달려가게 될 것인지. 금요일 밤에 걸려온 전화에
주말과 휴일의 내 모든 일정이 뒤틀려버렸다.
 

“박씨!... 미안한데 감리 문제가 생겨서 한 2주 정도 쉬게 될 것 같아... 다시 시작하게 되면 내가 연락할 테니 당분간 인생을
 좀 즐기라구... 알았지?.....................................”
 


토요일 아침 눈을 뜰 때까지도 나는 이틀의 휴일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결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침대에 멍하니 누워 고개를
처박고 있을 때 문득 한 동안 내버려두었던 나의 애마가 생각이 났다. 
조금 답답하지만 그래도 넥 밴드를 하지 않으면 허전해
기어코 찾아 꺼내고 가죽 챕스에 버닝 블레이즈 재킷을 걸쳐 입고 리딕 부츠를 꺼내 신었다. 아주 오랜만이라 그런지 나도
모르게 왠지 어색했다. 현관을 나서다 말고 거울에 비쳐진 내 모습을 바라본다. 조금 웃기다.

차고 한쪽에 세워져 있던 녀석에게 가서 커버를 벗겨 냈다. 한동안 손질하지 않은 채로 두었지만 그래도 녀석은 변함없이
반짝이고 있다. 자리에 앉기 전, 녀석을 이리저리 살펴보고 헬멧을 쓴다. 헤드 웹만 걸치고 다니는 사람들도 있지만 내게 있어
안전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나처럼 머리 쓰는 사람에게 있어서의 머리란 존재는. 윈드실드를 뺄까 하다 그냥 두기로
했다. 어디까지 달려갈지 나도 모르니까. 사이드백을 열어 내용물도 확인해보고 연료의 상태도 확인해 본다.

기름은 가다가 만나는 첫 번째 주유소에서 가득 채우도록 해야지. 이제 자리에 앉아 시동을 켠다. 헬멧에 올려진 고글을 내려
썼다.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녀석의 소리가 우렁차다. 다이나 스위치백. 이 놈이 바로 내 애마다. 
녀석을 타고 하남시를
가로질러 팔당대교를 건너갔다. 양수리를 지나 북한강을 따라 느긋하게 달려가는 기분이 즐겁다. 한강 줄기를 따라 놓인
이 길은 언제라도 마음을 편하게 해주고 이리 저리 휘어지는 길은 지루하지 않아 좋다. 다만 물길을 따라 피어오르는 안개가
조심하라고 속삭일 뿐이었다.
 

가끔 사람들은 묻는다. 오토바이는 청년시절에나 즐길 것이 아니냐고. 그럴지도 모른다. 무엇엔가 미치고 싶고 달려가고
싶고 그래서 즐겁다면 등 뒤에 붙은 위험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을 젊음일 테니까. 그러나 두 바퀴가 주는 자유로움을 정말로
안다면 그 때는 나이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미친 듯 달려가지도 않을뿐더러 죽어도 좋다는 생각은 더욱 하지 않는다.
오히려 즐겁고 안전하게 자유를 만끽하고 싶을 뿐이다. 그래서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고 특히나 생활의 여유가
있다면 더욱 즐기고 싶은 유희가 오토바이가 아닐까?
 

영화촬영소 입구에서 길을 꺾어 들어가 왈츠와닥터만을 찾아 들어간다. 입구에 주차를 하고 저 앞을 유유히 흐르는 강물로
다가서본다. 지금 있는 강변의 자전거 도로가 없던 시절의 이곳은 더 아름답고 고즈넉했었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자전거
도로가 생겨 과거의 그 맛을 잃어버렸다. 사람들은 왜 그렇게도 자꾸만 인위적 포장을 하려고 하는 걸까? 인간의 편리를 위해
그 보다 더 귀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없애버리다니. 이것은 만행이다!

초창기에는 단층이던 집도 이제는 이층이 됐다. 박물관이 들어선 것이야 그렇다 해도 유유히 흐르는 강물과 조화를 이루던
아담한 집은 부담스러운 크기가 됐다. 그렇게 저렇게 세상을 따라 변해 가는 것.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이것이 운명인지도
모른다. 
안으로 들어가려는 데 누군가 계단 입구에 서서 길을 막는다.

“왜... 그러시죠?.................................”

“지금... 중요한 촬영 중이니까 조금만 기다립시다.....................................”

“여기... 직원이신가요?.................................”

“촬영팀 스텝인데 거의 끝나가니까... 조금이면 될 거요.............................”


이 놈의 태도가 불량하다. 이건 촬영팀이라기 보다 동네에서 막 놀던 양아치 같은 느낌이다. 


“얼마나 기다리면 됩니까?........................”

“아마... 대충 30분에서 한 시간 정도..............................”


“이보세요... 나도 마냥 시간이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또 촬영이 딱 시간 정해 놓고 끝나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테이크
 아웃하면 되니까... 내가 직원하고 이야기 해보죠..............................”
 

놈의 옆으로 돌아서 들어가려는데 놈이 턱하니 다시 자리를 막고 손을 뻗어 내 가슴을 민다. 


“이것 참... 이봐요!... 조금만 기다리라고 하잖아...............................” 


인간의 본성은 아주 쉽게 감춰지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런 양아치 놈들이 하는 촬영 운운하는 것이라면 제대로 된 촬영도
아닐 게 분명하다.
 “이 손 떼시죠...................................”

“좋게 이야기 할 때 가지........................................”

“손 떼!.....................................”

“어쭈!... 싫다면?.............................”


더 말할 필요 없다. 이 놈은 아무리 봐도 말로 해서 알아들을 놈이 아니다. 더구나 좀 두들겨 팬다고 해서 문제될 것도 없는
놈이다.
 

“좋은 말 할 때 가라... 응?............................” 


놈이 왼손에 힘을 주어 밀어온다. 몸을 비틀며 놈의 손을 잡아 손목을 꺾어 돌리자 의외로 몸을 돌리며 오른손으로 후려쳐
온다. 반사적 반응이 싸움에 능숙한 놈이다. 어쩌면 그냥 막 굴러먹던 양아치 종류가 아니라 제법 운동을 한 전력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무릎을 굽혀 자세를 낮춰 놈의 오른손을 피하며 나도 몸을 회전시켜 오른발로 놈의 정강이를 걷어 찼다. 묵직하게
걸린 느낌에 놈이 자빠지리라 생각했지만 놈은 이번에도 의외로 뒤로 텀블링을 하듯 한 바퀴를 돌아 그 충격을 완충하고는
어느새 중심을 잡고 다리를 뻗어 내 명치를 가격해 온다. 아슬아슬하게 몸을 틀어 비키는데 스쳐 지나가는 소리가 날카롭다.
 

어설프게 상대할 놈이 아니라면 적극적으로 나설 수 밖에 없다. 놈의 다리가 다시 제자리도 돌아가기 전에 빠르게 놈에게
다가서며 몸을 낮추고 팔꿈치로 놈의 낭심을 겨낭한 채 놈의 몸 중심을 몸으로 부딪혀간다.
 

“허!.............................................” 


놈이 짧은 소리를 뱉으며 몸의 축을 잡고 있던 다리를 굽히며 상체를 낮추고 다가서는 내 팔꿈치를 또한 두 팔꿈치로 막아
선다. 팔과 팔이 부딪히고 오히려 부딪혀간 내가 더 전진하지 못하고 한 걸음 뒤로 튕겨졌다. 팔이 저리다. 놈도 한 걸음 뒤로
발을 뻗으며 물렀다. 아직 몸의 중심을 다 잡지 못한 상태에서 놈의 눈빛이 번쩍하는 듯 싶더니 이내 도약을 하려 다리를 살짝
굽힌다. 무술이 아닌 싸움에 있어서는 선방이 가장 중요한 그때였다.
 

“오빠!...............................................” 


누군가 계단을 빠르게 내려와 내 팔을 잡았다. 놈도 자세를 풀고 사태를 살펴보는 듯 했다.
 

“오빠... 오지 말라니까 왜 왔어요?... 어서 가요.................................”

“가긴 어딜가?... 하던 이야기는 마저 하고 가야지.......................................”


계단 위에서 머리를 올백으로 쓸어 넘긴 기생오라비 같이 생긴 놈이 여자를 내려다 보며 말했다. 


“이야기 다 끝났어요... 난 이번 작품 관심 없으니까... 서로 신경 끄죠........................”

“너... 그러다 후회한다.......................”

“그럴 일은 없을 것 같군요... 영화 출연 못해서 환장한 사람도 아니고... 커피는 잘 마셨어요... 먼저 갈게요... 가요... 오빠...”
 

여자가 내 팔을 잡아 끌었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여자로서는 어서 자리를 떠야 할 상황인 듯싶었다. 나는 여자의 끌림 대로
걸음을 떼어 놓으며 뒤를 돌아봤다. 계단 위의 남자가 아까의 그 놈에게 눈짓을 했고 놈이 나를 보며 시선과 시선이 마주쳤다.
놈의 눈빛이 마음의 결정을 하지 못한 듯 보였다. 1:1이라면 어느 정도 해볼만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2:1의 상황이라면 어려울 것이다. 더구나 이 낯 모르는 여자를 보호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더욱 더 어려워질 것이다.
그렇다고 약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다. 나는 놈이 아닌 계단 위의 기생오라비를 흘겨보며 가벼운 미소를 흘렸다. 녀석을
붙잡아 놔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심리적 위협을 느끼게 해야 한다. 녀석이 움찍하는 것이 느껴졌다. 이제 싸움이 붙는다 해도
아까처럼 승부를 바로 내기 어려운 1:1의 상황이 될 것이다.
 

여자와 내가 나의 애마로 오는 동안 두 놈은 그저 우리를 바라보면서 움직이지 않았고 나는 여유롭게 사이드 백에서 여분의
헬멧을 꺼내 여자에게 씌워줬다. 여자는 내가 하는 대로 가만히 있었다. 나를 보는 눈빛은 두려움으로 마구 떨리고 있었지만
겉으로는 무척이나 태연한 듯 보이게 가장하고 있었다.
 

시동을 켜고 내 허리를 잡은 여자의 떨리는 손을 느끼며 나는 아주 여유롭게 출발을 했다. 왈츠와닥터만을 벗어나며 바라본
두 놈은 서로 바라보며 무언가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만 따라올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한참을 달리는 동안 여자는 추위를
타 듯 점점 더 떨고 있었다. 아주 가여운 옷차림이긴 했지만 사실 그렇게 추운 날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아마도 심리적인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놈들이 따라오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고서도 애마를 세운 곳은 한참을 달린 대성리역 앞에서 였다.
 

“어디로... 모셔다 드릴까요?..............................”

“............................................”


여자를 돌아봤다. 그제서야 눈을 감고 있는 여자의 얼굴에서 흘러내린 눈물이 바람에 밀려 이리리 물길을 만들었음을 알아
챌 수 있었다.
 

“어디로 가시는 길이세요?................................”

“글쎄요... 그냥.. 바람 쐬러 나온 길이라 딱히 정하지 않았습니다만...........................”

“그렇군요... 그럼... 저도 좀 데려가 주실래요?...............................”


여자의 아주 투명한 눈이 지독히도 아름다웠다. 그녀와 나는 탐색하듯 정적 속에 서로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기를 얼마나
됐을까? 대성리역을 지나는 기차의 경적소리가 울린 직 후 나는 애마에서 내려 그녀가 앉아있는 등받이 뒤 렉에 걸쳐진
가방에서 혹시나 싶어 가져온 여분의 재킷을 꺼내 여자에게 건네줬다.
 

“입어 보세요... 바람에 오래 노출되면 추워집니다.....................................” 


여자는 내가 준 재킷을 입었다. 아주 조금 크긴 하지만 그래도 아주 보기 싫지는 않았다. 바지는 스키니 진. 키가 커서 그런지
신발은 단화였다. 그 정도면 크게 문제될 것은 없을 것 같았다.
 

“선글라스 있으신가요?........................................” 


내 말에 여자가 어깨에 맨 작은 핸드백에서 선글라스를 꺼내 썼다. 


“괜찮으시면... 핸드백은 가방에 넣어두시면 어떨까요?....................................” 


여자가 선선히 핸드백에서 지갑을 꺼내 재킷 안주머니에 넣고 내게 내밀었고 나는 그 핸드백을 렉에 걸쳐진 가방에 넣었다.
다시 애마에 올라 출발했다. 여자가 자연스럽게 내 허리를 잡아왔다. 문득 다음엔 뒷좌석에 손잡이가 달린 것으로 개조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뒤에 누군가를 태우고 달린 경험이 거의 없었던 터라 내 허리가 누군가에게 붙들려 있는 것 자체가
낯설었다.
 

45번 국도와 75번 국도를 연이어 달리다 남이섬을 얼마 앞두고 391번 지방도로 접어들었고 얼마 후 다시46번 국도로 갈아
탔다. 북한강을 따라 달려가는 그 사이에 나와 여자는 아무런 말도 나누지 않았다. 그저 살아있는 듯 으르렁거리는 애마의
엔진음과 귓가를 스쳐가는 바람소리 그리고 그림 같은 강변의 모습만이 우리의 침묵을 대신할 뿐이었다.
 

“이거... 좀 답답해요................................” 


혹시 몰라 갖고는 다녔지만 새들백의 크기로 인해 그 속에 넣어두었던 여분의 헬멧은 어쩔 수 없이 작은 바이크용이었다.
그것이 마음에 걸려 춘천에 들어가자 마자 할리데이비슨 취급점에 들러 제대로 된 헬멧을 사서 여자에게 씌워줬다. 여자는
긴 머리를 묶어 간신히 머리를 집어 넣고는 무척이나 불편한 모양이었다.
 

“그래도 안전을 위해서는 이걸 써야 해요... 몇 번 쓰다 보면 익숙해집니다......................................” 


내 말에 여자는 더 이상의 토를 달지 않고 아주 익숙해지려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그런 여자의 모습을 나도 모르게 희미한
웃음으로 바라봤다. 그러다 여자와 눈이 마주쳤을 때 그녀가 말했다.
 

“어때요?... 봐줄 만 한가요?.......................................”

“모델 포스로군요...................................”


내 말은 진심이었다. 팔도 다리도 긴 작은 얼굴의 슬림한 몸매. 그것은 일반인이 쉽게 가질 수 있는 비율이 아니었다. 이양의
그 늘씬함에는 시원함은 있었지만 이 여자처럼 가녀린 멋은 없었다. 아마도 아까의 그 불편한 상황만 아니었다면 나도 지금
주변의 남자들처럼 넋을 잃고 그녀를 바라보았을 것이다.
 

“그럼... 갈까요?....................................” 


내가 움직이기도 전에 여자가 뒷좌석에 올라 앉았다. 


“잠깐만요... 혹시... 배고프지 않아요?...............................” 


시간 상으로 오전 11시 반을 지나고 있었다. 아침을 부실하게 먹어서인지 배도 고팠지만 내심은 다른 것에 있었다. 


“고파요.......................................” 


담담히 말하는 여자의 태도가 그녀의 솔직함을 나타내는 것 같았다. 


“그럼... 식사하고 출발하죠... 조금 손볼 것도 있구요........................”

“그래요... 그럼... 점심은 제가 살게요..................................”

“좋죠... 그러시다면 메뉴 선택권을 드리죠...............................”

“닭갈비 어떠세요?... 춘천은 그게 유명하다고 하던데요.............................”

“전... 좋습니다...........................”


가게 직원에게 물어 적당한 닭갈비집을 수소문하고 점검과 더불어 몇 가지 개조를 부탁했다. 아주 다행히 시간은 많이 걸리지
않는다고 했다. 
식사하는 내내 여자는 아까의 두려움을 떨쳐내고 아주 밝은 모습이었다. 오물오물 식사하는 모습이 얼굴만큼
예뻤다. 어쩌면 그것도 미인에 대한 선입견인지 모르지만 말이다. 나도 식사에 열중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았다면 나는
그녀의 얼굴에서 잠시도 시선을 떼지 못했을지 모른다.
 

“댁이 서울이시죠?.......................”

“네..........................”

“그럼... 돌아가실 때 저도 같이 가면 되겠군요...........................”

“계속 같이 가시겠다구요?.........................”

“안되나요?..................................”

“전... 내일 저녁에나 돌아갈 건데요...............................”

“잘 됐군요... 저도 화요일에나 약속이 있거든요...................................”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까? 


“이거 저 때문에 하신 거에요?.................................” 


고개를 끄덕이자 여자가 팔걸이를 만져본다. 두툼하게 잘 자리잡은 등쿠션도. 


“한 번 앉아보시죠...................................” 


직원의 말에 어색하게 자리에 오르려 하자 직원이 서둘러 팔걸이를 젖혀준다. 


“타실 땐 여기를 누르시고 이렇게 위로 올리시면 됩니다..........................”

“아.....................................”


자리에 앉아 몸을 움직여 보는 여자가 직원에게 물어본다. 


“몸이 큰 사람은 못 앉겠는데요...............................”

“걱정 마세요... 옆으로도 이렇게... 폭 조절 가능한 겁니다.............................”

“아... 그렇네요... 좋은데요!.......................................”


재미있는 장난감을 손에 든 아이처럼 여자가 웃었다. 그 웃음을 따라 나도 아이처럼 웃었다. 


“어때요?... 괜찮으신가요?...............................”

“네... 아주 좋아요... 제 사이즈에 딱인데요............................”

“아마 27정도 되시죠?.................................”

“어?... 어떻게 아세요?.............................”

“아... 네... 뭐... 아까 팔걸이 폭을 조절할 걸 생각해서 사이즈를 좀 눈 여겨... 헤헤..............................”


직원이 뒤통수를 긁으며 웃는다. 여자도 피식 웃는다. 내 웃음만 씁쓰레하다. 


“갈까요?.................................” 


내가 자리에 앉자 여자가 내 등뒤에서 귀엽게 머리를 옆으로 비스듬히 숙이며 말했다. 


“신경 써주셔서 고마워요... 꼭 선물 받은 것 같아요.....................” 


다시 그르렁거리는 애마의 소리와 함께 출발하며 나는 속으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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